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261)
# 82장 북쪽에서 온 손님 (3) #
세외(世外) 삼대 세력.
그들은 중원 바깥에 있는 이민족들이 이룬 무림(武林)이다.
물론 중원인들의 입장에서는 세상의 중심을 그들로 알고 있기에 세외 세력이라고 부르지만 그들만의 무림을 구축하고 패권을 다투는 형태는 중원 무림과 다를 바가 없었다.
세외를 대표하는 삼대 세력은 동, 서 ,북으로 이루어진다.
동쪽의 성산이라 불리는 장백산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검술의 본향이라 불리는 장백파(長白派).
서장 티베트 고원에 불교가 전파되어 생겨난 황교가 뿌리가 되어 소림사와 더불어 내가 무공으로 명성을 떨치는 포달랍궁(包達拉宮).
그리고 마지막으로 북쪽 차가운 설원의 대지인 북해(바이칼 호)에 자리한 음한의 무공인 빙공(氷功)을 다루는 북해빙궁(北海氷宮)이 있다.
물론 이들 이외에도 남만야수궁, 소뢰음사, 백타산장. 남왜 등 여러 무력을 지닌 단체들이 있으나 현재 가장 큰 세력을 구가하는 곳이 위 삼대 세력이었다.
‘북해빙궁이라…..’
한 때 삼십여 년 전, 세외 세력 중에 중원 무림의 패권을 노리고서 남하했던 무리가 있다.
그들이 바로 북해빙궁이다.
하지만 그들은 중원에 진출한지 불과 한 달 채도 되지 않아 북해로 철수했는데, 장기간 전쟁을 지속하기에 중원의 기후나 식문화 등이 너무 큰 차이를 보였기에 그들 스스로 포기하고 말았다.
이때 북해빙궁은 전쟁을 포기했을 때, 대립했던 정도 무림맹과 평화 협정을 맺은 걸로 유명하다.
“북해빙궁의 사신이라고?”
천여운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행방불명된 전 태상교주 천인지의 소식을 가져온 자가 북해빙궁에서 왔다고 하니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사신? 흐음.’
허봉이 약간은 불신하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 정도로 거대 세력의 사신이라면 어느 정도 위세를 갖춰서 왔을 텐데, 허름한 장포하며 흉터투성이의 얼굴은 그저 낭인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정말로 소협이 북해빙궁의 사신이라 한다면 응당 신분을 상징할 만한 무언가 있어야 하지 않겠소?”
처음부터 그를 의심스럽게 생각하던 대호법 마라겸이 물었다.
이에 모두가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스스로를 사신으로 칭했다면 적어도 북해빙궁의 궁주의 서신이라던가 혹은 그들만이 지닌 신표(信標) 정도는 들고 있을 것이다.
“아……”
마라겸의 물음에 북해빙궁의 사신이라 칭한 단백현의 눈빛에 당혹감이 서렸다.
생각해보니 정식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궁주 대리의 서신은 그의 숙부 단주성이 정도 무림맹에 들고 갔다.
“그, 그 서신은 제가 아니라 숙부가…”
“숙부?”
“하아, 이걸 어찌 설명해야 할지….”
사실 정도 무림맹에 가는 서신은 정식으로 요청하는 공문이었지만, 마교를 찾아온 것은 북해빙궁이 아닌 오직 그만의 자의였다.
뭔가 이 사실을 당장에 얘기하면 분위기상 굉장히 불쾌해 할 것 같았다.
‘수상한데.’
그가 망설이자 마라겸의 눈빛에 더욱 불신이 실렸다.
이에 어떻게 해야 하나 당황해하던 단백현이 문득 자신의 신분을 증명할 만한 것을 떠올렸는지 말했다.
“아! 제가 북해빙궁의 사람이란 증거를 보여드리겠습니다.”
가장 간단한 방법이 있었다.
단백현이 옆에 서있는 고왕흘에게 포권을 취하며 부탁했다.
“내공의 금제를 잠시 풀어주시겠습니까?”
“내공의 금제를?”
고왕흘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무공 수위를 봤을 때 그리 위험한 인물은 아니었지만, 아직 확인 절차를 마치지 않은 상태에서 이를 풀어줄 필요가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러나 천여운이 허락한다고 했기에 풀어줘야만 했다.
-타타타탁!
“하아!”
내공의 금제가 풀리자 그의 입에서 김이 흘러나왔다
막혔던 내기가 돌아가면서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내공을 순환시킨 단백현이 탁자 위에 올려 진 찻잔을 가리켰다.
“응?”
“잘 보십시오.”
반쯤 채워져 있는 찻잔을 들고서 그가 단전에 잠재되어 있던 음한의 내공을 운용했다.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이윽고 변화가 일어났다.
-슈우우우! 쩌저적!
그러자 그의 손에서 차가운 한기가 일어나더니, 옅은 수증기와 함께 이내 찻잔 안의 찻물이 얼어붙었다.
북해빙궁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빙공을 선보인 것이었다.
‘쉬운 방법이 있었는데, 당황해서 하마터면 괜한 의심만 받았구나. 휴우.’
단백현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중원의 무림인들은 불가능한 능력을 선보였으니, 이제 자신의 신분을 의심치 않을 거라고 여겼는데,
‘응?’
그를 바라보는 눈빛이 여전히 미심쩍다.
심히 당황스러웠다.
‘왜, 왜 그러는 거지? 빙공을 보였는데 어째서?’
누구 한 명 할 것 없이 여전히 불신의 눈빛으로 가득했다.
북해빙궁을 상징하는 빙백신장(氷白神掌)을 응용해서 보여주었는데, 이것으로도 증명이 안 된다는 것이 이상한 상황이었다.
왜 그러는지 이해할 수 없어하는데 천여운이 탁자 위에 가볍게 손을 얹었다.
-솨아아아!
‘!?’
-쩌저저저저적!
‘뭐, 뭐야!!!’
그 순간 강렬한 한기가 발산하며 방 전체가 서늘해지더니, 탁자에 하얀 서리가 생겨나며 이내 얼어붙어버렸다.
완전히 얼어붙은 탁자를 천여운이 가볍게 내려치자, 그 부분을 중심으로 균열이 일어나며 얼음조각처럼 부서져 내렸다.
-파스스슥!
바닥에 떨어진 얼음 파편들을 보며 단백현이 황당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어, 어떻게 이런 극음의 내공을?”
말도 안 될 정도의 극음의 한기였다.
게다가 그가 선보인 빙백신공의 내공 운용보다도 훨씬 빨랐다.
차가운 북해에서 살기 때문에 사시사철 한기에 노출되어서, 체내에 음기를 지니고 있는 북해인들도 아닌 천여운이 이런 능력을 보이자 도리어 놀라버렸다.
“이러면 나도 북해빙궁의 사람인가?”
“………”
이런 식으로 물으니 할 말이 없어진다.
잠시 말문이 막혔던 단백현이 말까지 더듬으며 입을 열었다.
“대, 대체….어떻게 이런 음기를 지닌 겁니까?”
“그게 중요한가? 북해빙궁의 사신임을 증빙할 만한 신표를 보이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라 생각되지 않는데.”
단백현이 난처해했다.
애초에 그는 의심을 받을 만한 상황이었다.
태상교주의 신분패를 들고 오기는 했지만, 마교의 입장에서는 이것이 일종의 함정일 수도 있기 때문에 섣불리 믿기 힘든 것은 당연했다.
“교주님. 굳이 이렇게 하는 것보다 더 쉽게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습니까?”
허봉의 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최근에 천여운이 가장 많이 써먹는 암시와 자백제를 쓰면 확실하게 거짓인지 아닌지 구분할 수 있다.
뭔가 불안함을 느낀 단백현이 다급히 말했다.
“잠깐 기다려주십시오! 그건 아시겠죠? 본 궁의 무공인 빙백신공을 극성으로 익힌 자는 머리카락이 내공의 영향으로 은발이 됩니다.”
“…..그대의 머리카락은 흑발로 보이는데.”
희미하게 회색빛을 띠지만 그래도 짙은 흑발이다.
“저는 극성으로 익히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팔층 신공 중에 오층의 경지에만 달해도 빙백신공을 십성 공력으로 다루게 되면 은발이 발현합니다.”
이 말에 천여운이 의문스러운 눈빛으로 대호법 마라겸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객실 안에서도 무림에 대한 경험이 가장 많은 마라겸 역시도 이 부분은 잘 알지 못하는지 고개를 저었다.
북해빙궁은 삼십여 년 전에 단 한 차례의 남하했을 때를 제외하고 실질적으로 중원인들과의 교류도 적었고, 그들과 유일하게 대립했다가 교류를 한 이들도 정도 무림맹뿐이었다.
황하 이남에 자리한 마교였기 때문에 북해빙궁과 한 번도 부딪치거나 교류를 할 작은 건수조차 없었기에 빙백신공의 자세한 효능까지는 알 수 없었다.
정보를 주로 다루는 암종의 수장인 환의 장로라면 혹시 알지도 모르겠지만 그는 십만대산에 있었다.
그때 마라겸이 이를 알만한 한 사람을 떠올렸다.
“왕전 공이라면 알지도 모르겠군요.”
“아…..그럴 수도 있겠군.”
이에 천여운이 일리가 있다고 여겼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무쌍검 왕전이 수로삼십채의 수적 몰살 사건을 계기로 오대고수가 되기 전까지는 정파 무림인으로 활동했던 것을 모르는 이가 없었다.
삼십여 년 전에는 왕전이 한참 후기지수로서 정도 무림맹의 단원으로 활동하던 시기였으니, 충분히 알 법도 했다.
“허봉. 왕전 공을 불러와라.”
“넵. 교주님.”
천여운의 명에 허봉이 부리나케 객실을 나섰다.
‘왕전……왕전….어디서 많이 들어봤는데, 왕전…..앗!’
그들이 나누는 대화 속의 낯익은 이름에 누구인지 고민하던 단백현이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무쌍검 왕전!”
생각해보니, 개봉으로 향하는 와중에 들었던 것 같았다.
마교주 천여운에 대한 놀라운 신위 이외에도 중원 무림을 들썩이는 소문 중 하나가 오대고수인 무쌍검 왕전이 마교에 입교했다는 이야기였다.
‘소문이 사실이었구나.’
세외 무림인 북해빙궁 역시도 한 때 중원 무림 진출을 꿈꾸었었기에 때문에 중원에서 명성을 떨치는 무림인들에 대한 이름 정도는 파악하고 있었다.
물론 지금에 와서는 흐지부지한 이야기가 되었지만 말이다.
‘마교 한 곳에만 중원무림의 오대고수가 두 명이나 있다니. 당금 무림의 패권을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구나.’
오대고수의 신위는 귀가 따가울 만큼 들었다.
그러기에 경이로울 따름이었다.
“그만 놀라고 이제 증명해라.”
“아, 알겠습니다.”
이런 식으로 증명을 하기 위해서 빙백신공을 익힌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으로서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은 이것뿐이었다.
-고오오오오!
방금 전에 빙백신장을 응용했을 때와 달리 제대로 빙백신공을 운용하자, 단백현의 몸에서 눈에 띠는 변화가 생겨났다.
서리가 일어나며 피부가 새하얗게 바뀌며 흑발이었던 머리카락이 모근부터 시작해 은발로 변해갔다.
“오오!”
눈앞에서 일어나는 신기한 현상에 고왕흘과 호상화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흑발이었던 단백현의 머리카락이 완전히 은발이 되어서 여느 사람들과 다른 신비한 분위기마저 풍겼다.
‘신기하군.’
어떠한 내공 운기법을 지녔는지는 몰라도 놀라운 현상이었다.
방금 전까지는 약간의 미심쩍은 느낌이 없지 않았지만 왕전이 증빙만 해준다면 확실히 북해빙궁이라고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슈우우우!
단백현이 빙백신공의 운기를 중지하자, 이내 은발이 다시 빛을 잃고 흑발로 바뀌었다.
하나의 마술을 보는 듯 한 신기함이었다.
“보셨습니까?”
아까와는 확연히 달라진 분위기에 단백현은 내심 다행스럽게 여겼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은발만큼은 빙백신공을 익혀야만 가능한 일이기에 충분히 증명이 될 거라 확신했다.
“교주님. 왕전 공을 모셔왔습니다.”
그때 마침 허봉이 다른 객실에 있던 왕전을 데려왔다.
오대고수이자 한때 정파인이었던 무쌍검 왕전이 증명만 해준다면 이제 마교주 천여운을 설득해서 도움을 청해야 하는 또 다른 난관이 남아있었다.
‘그래도 태상교주의 신분패가 있으니, 그 자의 말이 맞다면 도움을 줄 것이다.’
객실 문이 열리며 가장 먼저 허봉이 들어왔고, 그 뒤로 누군가들이 따라들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아…..왕전 대협이라!’
어렸을 적부터 들어왔던 오대고수 중 한 사람인 왕전을 본다는 기대감에 부푼 단백현이 얼른 뒤로 몸을 돌려서 포권을 취하려는데,
“북해빙궁의 단백현이 중원 오대고수이신 왕전 대협을….엇!?”
단백현의 두 동공이 지진이 난 듯이 흔들렸다.
왕전의 옆에 새하얀 얼굴에 은발의 미녀인 왕여군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이, 이건 대체?’
순간 당황한 단백현이 어쩔 줄 몰라 했다.
방금 전에도 천여운이 극음의 내공을 선보였기 때문에 불신을 당했는데, 같은 일이 벌어질까 두려워 제 발이 저려서 해명했다.
“뭐, 뭔가 잘못 되었습니다. 저 소저 분은 대체 어떻게? 빙백신공을 익히지 않고는 이런 일이….”
횡설수설하는데 이제는 울상마저 짓고 있었다.
태상교주 천인지의 신분패만 보인다면 만사형통으로 일이 진행될 거라 여겼던 단백현은 정말 억울할 지경이었다.
* * *
비슷한 시각, 정도 무림맹의 본단.
무림맹의 웅주 회의실에 맹주 이목을 비롯한 네 명의 웅주들이 탁자에 올려놓은 장문의 서찰 내용을 훑어보면서 심각한 얼굴로 상의를 하고 있었다.
회의실의 바깥에 있는 응접실에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 이가 있었는데, 북해빙궁 단백현의 숙부인 단주성이었다.
그는 궁주 대리가 보낸 서신을 전달하고 한시가 급함을 알렸다.
그래서 맹주 이목은 현재 무림맹의 본단에 있는 웅주들을 긴급 소집하여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한 시진 가까이 기다리고 있는데, 왠지 불안했다.
그렇지 않아도 이곳 정도 무림맹으로 내려오기 전에 소문을 접했다.
‘하필 이럴 때 그런 사건이 터졌었다니. 아아.’
통허현 진성에 있었던 전쟁 때문이었다.
그 사건으로 정도 무림맹의 전력에 많은 타격을 받았다고 들었다.
평화 협정을 맺고 나서 주기적으로 교류를 가졌지만 어쩌면 이번에는 도움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우려마저 생겼다.
회의실은 의견이 반으로 갈려서 격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개방의 방주 홍팔우가 서찰의 내용 중에 한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건 너무 위험하오. 맹주. 머리가 네 개 달린 용귀라니?”
“홍 방주님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대체 얼마나 오랜 세월을 살아온 영물이기에 그런 괴물이 북해빙궁에 봉해져 있단 말입니까?”
의견을 분분하게 만든 서찰의 요청.
그것은 바로 이무기나 불기린과 더불어 신령스러운 영물이라 불리는 용귀(龍龜)를 퇴치하는데 도움을 달라는 간곡한 내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