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262)
# 82장 북쪽에서 온 손님 (4) #
용귀(龍龜).
신령스러운 이 동물은 오령(五靈) 중의 하나이다.
오령은 대붕, 이무기, 불기린, 풍백호, 용귀로 이 다섯 영물을 지칭한다.
용귀는 이름 그대로 용의 머리를 갖추고 몸통은 거북이의 등껍데기를 갖춘 영물이다.
대개의 영물들이 그러하듯이 시간이 흐를수록 그 육신이 커지고 더욱 강한 영력을 가지게 되는데, 용귀는 그것이 머리의 숫자로 형성된다.
용귀는 상인들이 부적처럼 용귀상을 만들어 재화가 들어오길 기원하는 신물로써 모시곤 하는데, 그것은 그들의 바람과는 다른 존재였다.
아득히 먼 옛날의 사기(史記)를 보면 삼황오제(三皇五帝) 시절에 머리 여섯 달린 용귀가 나타나 중원 사람들의 씨를 절반이나 말렸다고 한다.
이때 삼황인 복희씨(伏羲氏) ·신농씨(神農氏) ·여와씨(女媧氏)가 가신들을 이끌고 이 영물을 죽여 세상을 평안케 했다는 전설이 있다.
“용귀는 정말 위험한 존재입니다. 각 웅주들께서 그렇게 쉽게 보실 일이 아닙니다.”
개방의 방주 홍팔우와 마찬가지로 도움을 요청하는데, 거절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인물은 모용세가의 가주인 모용강이었다.
떨리는 눈빛으로 말하는 그의 모습은 매우 진지했다.
멸망한 연나라 출신인 모용세가의 사람들은 누구보다도 용귀를 잘 알았다.
“과거 연나라에도 머리가 셋이나 달린 용귀가 나타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어떤 일이 벌어진 줄 아십니까?”
그때 이 머리 셋 달린 용귀 때문에 다섯 개의 성(城)이 박살나고, 수만 명에 이르는 백성들이 죽음을 맞고 말았다.
수많은 군력과 무림인들의 도움을 받은 끝에 용귀를 가까스로 죽일 수 있었다.
그래서 모용세가를 비롯해 용귀에 대한 전설을 잘 알고 있는 이들은 이 영물을 재앙(災殃)이라고 불렀다.
“괜히 재앙이라 불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아도 본 맹의 전력이 많이 감소한 마당에 무리해서 도울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모용강이 확실하게 선을 그었다.
반면 이웅주이자 소림사의 방장인 각연 대사의 생각은 달랐다.
“아미타불. 하나 모용가주의 의견대로 방관한다면 북해빙궁은 굉장한 피해를 입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멸문할지도 모를 일이오. 본 맹과 협정을 맺고서 상호 간에 도울 일이 생긴다면 돕기로 하였는데, 이를 모른 채 넘어간다면 무림의 동도들이 어찌 보겠소?”
“설사 그렇다고 해도….”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십사웅주 종남파 적양 진인이 끼어들었다.
도교를 숭상하는 문파들 중에 공동파와 더불어 온건주의 적인 인물이었다.
“모용가주. 빈도 역시도 각연 대사님의 말씀이 옳다고 보오. 본 맹이 지향하는 정신은 정의숭상(正義崇尙)인데, 그에 위반된다고 생각하지 않소?”
“크흠.”
정도 무림맹의 정신을 거론하자 모용강의 말문이 일순간 막히고 말았다.
하지만 개방 방주 홍팔우는 할 말이 있는 모양이었다.
“진인의 말대로 정의도 좋소. 의(義)를 지키는 것은 정파인으로서 당연한 덕목이지만 그렇지 않아도 서쪽에는 사파 연맹, 동쪽에는 극도육무문이 건재하고 마교의 힘이 나날이 강해져 가는데, 여기서 본 맹이 더 타격을 받아 최악의 사태로 치닫게 된다면 중원의 정도는 누가 지킨단 말이오?”
“본 맹에 타격을 입지 않는 선에서 도움을 준다면…”
“아니. 머리 세 개 달린 용귀가 다섯 개의 성을 초토화시킬 정도로 위험하다고 하지 않았소. 그렇다면 머리 네 개 달린 용귀는 얼마나 더 위험할지는 짐작할 수 있지 않소? 오히려 이곳 중원이 아니라 북해이길 다행스럽게 여겨야…”
“아미타불! 홍 방주. 말씀이 과하오.”
지금껏 있었던 회의 중에서 가장 격렬한 양상을 띠고 있었다.
양측이 서로 일리가 있는 주장을 했기 때문에 누구하나 물러날 기세를 보이지 않았다.
맹주 이목으로서도 고민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두 측의 의견 모두가 본 맹을 위한 주장이기에 일리가 있다. 한데, 한 가지가 신경 쓰이는 구나.’
서찰에는 그들이 처한 위험에 대한 원인을 비교적 짧게 적어놓았다.
중원에서 공수한 폭탄의 위력으로 봉해져 있던 용귀가 풀려났다고 했는데, 이 점에 관해서는 두루뭉술하게 적혀 있어서 미심쩍었다.
네 웅주들은 용귀에 초점을 두어서 찬반으로 다툴 때, 그는 이것이 신경 쓰였다.
‘흠?’
그런데 맹주 이목 말고도 이 부분을 유심히 살피는 이가 있었다.
그는 둘째 아들인 강소아였다.
정기가 넘치는 전형적인 정파인의 모습이라 할 수 있는 첫째 연부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인물이었다.
한 자루의 날카롭고 예리한 병장기를 보는 듯한 분위기에 다소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위험하다는 느낌마저 들게 만들었다.
‘재능은 녀석 못지 않은 건가.’
맹주 이목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첫째인 연부소가 보름 전에 무림맹에 송환되었다.
[괴물…..놈은 괴물입니다. 으으으!]도착한 연부소는 팔이 잘렸을 지언정 무공을 잃지는 않았다.
그런데 마치 탄탄대로를 걸어가던 권력자가 한 번 절망에 꺾이면서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듯이 그의 부러진 정심(正心)은 쉽게 회복될 기미가 없었다.
‘녀석이 숨기고 있는 어둠 때문에 크게 쓰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가 거둬들인 세 자식들 중에 가장 야망이 큰 남자였다.
무서운 것은 야망, 혹은 야욕을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가벼이 드러내지 않고 때를 기다릴 줄 알았다.
그것은 스스로를 무한히 발전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겠지만 맹주 이목은 그를 중용하지 않았다.
[사마의 무리들은 절멸시켜야 합니다.]십 년이나 줄곧 같은 주장을 해온 강소아다.
맹주 이목은 그런 그에게서 짙은 살성(殺性)을 느꼈다.
그가 자신의 뒤를 잇게 된다면 무림은 피로 물들지 모른다는 일말의 두려움이 그를 멀리하게 만들었다.
[강소아 공자의 재능도 연 공자 못지않았소?] [지금이라도 후계로서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그렇게 멀리하려 했던 그가 이 자리에 있는 이유였다.
연부소가 저렇게 되었으니, 강소아에게도 기회를 주는 것이 어떻겠냐는 의견을 수용했다.
그래서 시험 삼아 최근에 여러 정무에 참석하게 했다.
그늘에 가려져 있던 잠룡이 이것을 기회삼아 일어나려는 것일까?
한참을 서찰에서 맹주 이목과 같은 부분을 살피던 강소아가 일어나, 맹주를 비롯한 웅주들에게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맹주님. 그리고 여러 웅주님들께 한 가지 양해의 부탁을 드려도 괜찮겠습니까?”
한참 격렬하게 갑론을박이 벌어지던 양측의 시선이 일제히 강소아에게로 향했다.
‘응?’
이목의 눈빛에도 의아함이 서렸다.
설마 처음 참석하게 된 중요한 웅주회의 자리에서 무언가 의견을 내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듯 했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는지 조용한데 누군가 입을 열었다.
“아미타불. 무슨 부탁인가? 강 단주.”
소림사 방장 각연 대사였다.
강소아는 연부소의 백원단, 그리고 정의단과 더불어 무림맹이 자랑하는 사대 무력 단체 중의 하나인 흑영단(黑影團)의 단주였다.
각연 대사의 물음에 강소아가 공손히 회의실 바깥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북해빙궁의 사신으로부터 여쭙고 싶은 것이 있는데, 잠시 회의실로 소환해도 될지?”
이에 모용강이 가늘게 눈을 뜨고서 물었다.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는데 말인가?”
그 눈빛에는 아직 애송이인 그가 의견을 낼만한 자리가 아님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굽힐 생각은 없는지, 강소아가 대답했다.
“북해빙궁의 파병 건에 대한 찬반을 결정지을 만한 중요한 사안입니다.”
“찬반을 결정 지을만한 사안이라고?”
“흐음……”
의아해하던 네 웅주들은 결국 강소아의 요청을 허락했다.
이윽고 응접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단주성이 초조한 얼굴로 회의실에 들어왔다.
드디어 결정이 난 것인가 기대감이 서린 눈빛도 보였다.
그런 바람과 달리 들어오자마자 강소아가 서찰의 한 부분을 손으로 짚으며 물었다.
“북해빙궁의 사신 분께 여쭙고 싶습니다. 서찰의 내용을 보면 북해빙궁의 잃어버린 신물을 찾기 위해 빙장석을 깨고서 지하 공동을 수색하려 했다고 되어 있군요. 용귀가 살아있는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말이죠.”
이에 단주성은 내심 실망스러워했다.
분명 한시가 바쁜 사태임을 말했는데 아직까지 결정이 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자신들이기에 이를 내색하지 않고 차근히 답했다.
“……용귀가 빙장석에 얼려서 봉해진 지, 수백 년의 세월이 흘렀소. 본 궁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그 괴물이 죽었을 거라 여겼소.”
“그런가요? 흠, 그 부분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에 단주성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뭔가 강소아가 자신을 심문한다는 묘한 느낌을 받았다.
강소아는 이를 개의치 않는지 자신의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그런데 다음에 이어지는 서찰의 내용에는 중원에서 공수한 폭탄의 위력 때문에 이런 사태가 벌어졌다고 적혀져 있습니다.”
그 말에 단주성의 표정이 완전히 굳어졌다.
잠시 대답을 망설이던 그가 짧게 답변했다.
“…..그렇소이다.”
“중원에서 폭탄을 구하셨다고 두루뭉술하게 적으셨는데, 어느 단체에게서 구했는지 자세히 알 수 있겠습니까?”
“그것을 어찌?”
다소 당혹감이 실려 있는 단주성의 물음에 강소아가 답했다.
“이 서찰에서 말할 정도로 용귀라는 괴물을 봉해놓은 장소를 붕괴시킬 정도의 위력이라면 그 폭발력이 보통이 아닐 겁니다.”
“…..그렇소.”
“그런 폭발력을 지닌 폭탄을 중원에서 구했다고 적어놨습니다.”
“………”
“그런데 이런 위력의 폭탄이라면 관에서 소유한 진천뢰(震天雷) 정도는 되야 하는데, 이것은 관 외의 사람들에게는 절대로 풀지 않는 물건입니다. 관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저희 정도 무림맹에서도 구할 수 없는 것이죠.”
“아!”
그런 강소아의 말에 웅주들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들은 재앙이라 불리는 용귀에만 초점이 맞춰져서 간과하고 있던 부분을 애송이라 여겼던 강소아가 날카롭게 짚은 것이었다.
‘조약식 때 일어난 전쟁에서 극도육무문이 대량의 개량된 진천뢰를 진성의 지하에 심어뒀었다고 들었다.’
강소아는 이 폭탄의 출처를 극도육무문으로 추측했다.
그래서 이 질문을 던진 것이었다.
북해빙궁이 그들과 어떠한 연관을 가졌는지를 알아야만 파병에 대한 확실한 찬반을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서찰에 두루뭉술하게 적어놓은 것을 보면 뭔가 밝히지 않은 숨겨진 내막이 있었다.
모두의 시선이 이제 단주성에게 집중되었다.
정곡을 찌르는 강소아의 질문에 난처한 표정을 짓던 그가 한참을 고민하더니, 이내 깊은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후우, 이 일은 본 궁의 내부 문제가 얽혀 있어서 후에 밝히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구려. 솔직히 말씀드리겠소. 그 폭탄은 중원의 어떤 괴 단체에서 구하게 되었소. 그들이 직접 물건을 가지고 본 궁에 왔소이다.”
“괴 단체?”
“어떠한 단체인지는 궁주 대리도 그렇고 본인도 알 수가 없소이다.”
“알 수 없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죠?”
“그 괴 단체는 본 궁의 삼 장로와 연이 닿아 있는 중원 무림의 문파라고만 들었소.”
“그런데 모를 리가 없지 않습니까?”
“그들은 중원에서도 제국의 법도로 금지한 물건이기에 만약의 상황을 위해서 신분을 알려줄 수 없다고 했소.”
웅주들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설사 그렇다고 해도 삼 장로라는 자가 인연이 있다면 그에게 귀띔으로라도 그들의 신분에 대한 것을 들을 수 있는 문제였다.
“귀 궁의 삼 장로가 끝까지 밝히지 않았단 말입니까? 그건 도무지 납득하기 힘든 말씀이군요.”
그런 강소아의 말에 단주성이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승에 없는 자에게서 무엇을 듣는단 말이오.”
“넷?”
“……본 궁의 궁주님과 삼 장로는 그 괴 단체의 무리들과 함께 용귀가 있는 빙장석에 갇혀서 사망했소이다.”
‘!?’
비통한 목소리로 밝힌 진실에 모두가 놀라했다.
서찰을 보낸 직인이 궁주 대리의 것으로 되어 있어서, 아무래도 궁주의 신변에 뭔가 문제가 있을 거라 짐작했지만 이런 일이 있을 줄은 몰랐다.
맹주 이목이 씁쓸한 목소리로 말했다.
“안타까운 소식이구려. 귀 궁주의 사고에 애도하는 바이오.”
“말씀은 고맙지만 궁주님의 죽음은 사고가 아니오.”
“…..그게 무슨?”
-탁!
단주성이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서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잘 접혀 있는 종이였다.
가장 가까이에 앉아 있던 모용강이 조심스럽게 그것을 펴보았는데, 종이는 무언가를 탁본해놓은 물건이었다.
이를 살펴보던 무림맹주 이목과 웅주들의 두 눈이 커졌다.
“이, 이건 대체?”
“유일하게 그곳에서 살아남은 자의 몸에 있던 상처를 탁본한 것이오.”
그것은 당연히 탁본을 본 순간에 알았다.
문제는 탁본에 남겨진 흔적이었다.
‘극도육무문!’
탁본에 남겨진 도흔은 극도육무문의 도법 극도신무에 당해서 생긴 상처였다.
진성에서 그들과 싸웠기 때문에 확연하게 알아볼 수 있었다.
강소아의 통찰력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진 것이다.
* * *
개봉의 마교 지부.
천여운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상의를 벗은 단백현의 상체에 남겨진 도흔을 바라보았다.
도흔은 익히 잘 알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분명 극도신무의 도초에 당해서 생긴 상처였다.
“아시겠습니까?”
객실에 있는 모든 이들의 표정이 심상치가 않자, 단백현이 굳은 얼굴로 물었다.
이에 대호법 마라겸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극도신무. 극도육무문의 도법이다.”
“극도육무문!”
그 말에 상처를 보인 단백현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중원으로 오면서도 자신을 죽음의 위기로 몰아넣었던 이 상처가 어떤 무공인지조차 짐작하지 못했던 그였다.
‘극도육무문이라면 최근에 새롭게 부상했다는 세력이 아닌가?’
워낙 기이하고 절세도법이었기에 마교주 천여운이나 중원 무림인들은 알지도 모른다고 여겼는데, 예상보다 훨씬 위험한 단체가 이 상처의 출처였다.
‘북해에도 손을 뻗은 것인가.’
천여운이 속으로 혀를 찼다.
무쌍검 왕전이 증빙을 해준 덕분에 겨우 자신이 북해빙궁의 사람임을 증명한 단백현은 태상교주의 신분패를 얻게 된 과정을 설명하는 중에 이 상처를 보였다.
“삼 장로라는 자의 소개로 초빙한 자들이라고 했나?”
“하아…..그렇습니다. 삼 장로가 중원에서 폭탄을 취급하는 문파를 알고 있다고 해서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었습니다.”
북해빙궁에는 오래 전에 잃어버린 신물이 있다고 한다.
이 신물은 북해빙궁을 상징하는 보물이자 궁주들이 대대로 물려받는 물건이었다.
하지만 수백 년 전에 북해에 나타난 용귀를 제압하는 과정에서 당시 궁주와 빙궁의 전사들이 동귀어진의 수로 희생을 하면서 같이 빙장석 지하 동굴에 묻혀버렸다.
“당연히 그로부터 수백 년이나 지났기에 아무리 영물이라도 얼어서 죽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궁주는 삼 장로, 사 장로, 그리고 북해빙궁의 정예 전사들을 데리고 폭탄을 공수해온 극도육무문의 무리들과 함께 빙장석을 폭발로 일부 깨뜨려서 지하 공동으로 들어가는데 성공했다.
“그때는 미처 몰랐습니다. 그놈들에게 목적이 있을 줄은.”
삼 장로가 신원을 보장했기에 당연히 불순한 의도는 없을 거라 여겼다.
말로만 들어왔던 지하 공동은 굉장히 깊었다.
“얼마나 깊이 내려왔는지 모를 시점에 무언가를 발견했습니다.”
잃어버린 신물을 먼저 발견하기를 바랐지만 예상과 달리 가장 먼저 찾은 것은 빙장석에 갇혀서 얼어있는 용귀의 몸뚱이였다.
그들이 상상한 것 이상으로 거대한 용귀의 모습은 경이로울 정도였다.
“여기서 사건이 터졌습니다. 놈들이 본색을 드러낸 것입니다.”
극도육무문의 무리들이 갑자기 그들을 공격한 것이다.
세외의 패자라 불리는 북해빙궁의 궁주와 전사들답게 갑작스러운 기습 공격에도 불구하고 침착하게 대응했다.
그러나 예상하지 못한 복병이 있었다.
“아군이라 생각했던 삼 장로……”
-으득!
그를 떠올리면 분노를 참을 수 없는지 단백현이 이를 갈면서 말을 이었다.
“그놈이 궁주님의 등에 검을 꽂은 겁니다.”
믿었던 수하에게 당한 궁주는 적들의 합공에 당해 그 자리에서 숨지고 말았다.
그를 비롯해 남아있던 빙궁의 전사들이 항전을 했으나, 수장인 궁주를 잃은데다가 적들의 무공이 너무 강했기에 결국 길게 버티지 못했다.
“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겠지만 놈들이 가지고 있던 폭탄이 터진 것이었다.
“그때 빙장석 얼음이 부서지면서…..그….그 괴물이 풀려났습니다.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진 거죠. 수백 년이나 얼어있던 괴물이 살아있을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것은 용귀를 노렸던 극도육무문의 무리들조차 예상하지 못한 듯 했다.
수백 년이나 구속했던 빙장석 얼음에서 풀려난 용귀는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고, 극도육무문의 고수들이 일제히 놈을 죽이기 위해 달려들었다.
“용귀는…..정말 괴물이었습니다.”
아직도 그 괴물의 포효를 잊을 수가 없었다.
극도육무문의 고수들은 하나 같이 강기(罡氣)를 발산하며 대항했는데, 용귀의 비늘조차 제대로 베지 못했다.
도리어 용귀가 내뿜는 전격(電擊)에 감전되어서 하나둘씩 죽어갔다.
금방 전멸할 것만 같았다.
그런데 극도육무문의 고수들 중에서 그들과는 전혀 다른 무공을 펼치는 존재들이 있었다.
“얼굴에 철가면을 쓴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놈들과는 달랐습니다. 그 중에….”
한 사람의 무공은 경이로울 정도였다.
그는 궁주가 살아나 일대일로 겨룬다고 해도 상대가 될 수 없을 거라고 확신할 만큼 전율적인 무위를 지닌 자였다.
“하지만 그런 괴물 같은 자조차도 진짜 괴물 앞에서는 어쩔 수 없더군요.”
용귀는 말 그대로 재앙 그 자체였다.
한 번 날뛸 때마다 동굴 전체가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리는데, 도무지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한 단백현은 부상을 입은 몸을 이끌고 탈출을 감행했다.
다행스럽게 그를 붙잡을 자는 없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미친 듯이 위로 올라갔습니다.”
올라가는 도중에 지하에서 엄청난 폭발음을 들려왔다.
빙장석으로 이루어진 동굴 전체가 무너질 듯이 흔들렸기에 놀란 단백현은 이를 악물고서 더욱 빠르게 경공을 펼쳤다.
“폭탄이군.”
천여운의 말에 단백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철가면의 고수들이 용귀를 죽이기 위해 폭탄을 터뜨린 것 같더군요.”
얼마나 도망친 것일까.
그렇게 흔들리던 동굴이 잠잠해졌다.
격하게 싸우던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거의 동굴의 중반이 넘는 위치까지 올라왔을 때, 극도육무문의 고수에게 당한 상처의 출혈이 심했던 단백현은 지친 몸을 회복하기 위해 잠시 멈춰 섰다.
“저만 살아남고 모두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괴물 같은 용귀조차 죽었다고 여겼죠. 하지만 전부 착각에 불과했습니다.”
바닥에 균열이 일어나며 용귀의 머리 중 하나가 튀어나왔다.
용귀는 오랫동안 굶어왔던 허기를 채우려는 것인지 흉악하고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며 그를 먹어치우려 들었다.
“죽었다고 생각했을 때였습니다.”
갑자기 누군가 튀어나와 용귀의 두 눈을 찔렀다.
두 눈이 찔린 용귀가 포효를 하듯이 비명을 지르더니, 그 긴 목과 용머리가 굉장히 빠른 속도로 나타났던 구멍 속으로 꺼졌다.
동굴 바닥이 심하게 들썩이는 것을 보아 분노를 참지 못하고, 본체를 움직여 올라오는 듯 했다.
“구해준 자가 누구였지?”
천여운의 눈이 반짝였다.
본능적으로 그를 구해준 자가 누구인지 직감한 듯 했다.
“그 전율적인 무위를 지닌 철가면의 사내였습니다. 그 자에게 목숨을 구제 당한 저는 영문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분명 극도육무문의 무리와 같은 한 패가 틀림없었다.
그런데 어째서 자신을 구해준 것인지 그 이유를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때 철가면의 사내가 그에게 말했다.
[도망가라. 그리고 도움을 청해라. 절대로 용귀가 놈들의 손에 들어가게 해선 안 된다.]어찌 된 영문인지는 몰라도 목숨을 구해준 은인이었다.
적이 아니라고 판단한 단백현은 그에게 같이 도망치기를 권했다.
하지만 철가면의 사내는 남아서 용귀가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빙장석 동굴을 붕괴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그때 철가면의 그 분이 이것을 주었습니다.”
단백현이 탁자 위에 올려 있는 전 태상교주 천인지의 신분패를 가리켰다.
이에 가면 틈새로 보이는 대호법 마라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철가면의 사내가 주었다고?”
“그 분이 말하더군요. 이것을 들고 천마신교의 교주를 찾아가라고.”
철가면의 사내는 이 신분패를 보이고 이것의 주인이 보냈다고 말하면 십만대산에 있는 마교에 들어갈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너무 급박한 상황이라 그런 건지 그는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이상하게 그는 자신의 정체도 이 신분패의 주인이라고만 지칭하고, 용귀를 노린 자들이 어느 단체인지조차 정확하게 밝히지 않더군요.”
그 말에 천여운의 눈빛이 묘해졌다.
이를 모르는 단백현은 이야기의 마무리를 지었다.
“그 분은 마지막으로 이 신분패를 꼭 전해달라는 부탁과 함께 용귀가 뚫어놓은 구멍 속으로 사라졌…”
-팍!
그가 말을 미처 끝내기도 전에 대호법 마라겸이 그의 양팔을 붙들고서 말했다.
“혹시 그 철가면의 사내가 펼치던 무공 중에 조금이라도 기억나는 초식, 아니 식이라도 있나?”
“제, 제가 따라 하기에는 너무 고절한 검법을 써서….”
“아무 것이라도 좋네. 어설퍼도 괜찮으니, 부디 기억나는 무언가가 있다면 식(式)만이라도 펼쳐보게. 교주님!”
마라겸은 단백현이 했던 이야기 중에 철가면의 사내가 펼치는 전율적인 무공을 보았다는 말을 계속 신경 쓰고 있었다.
단백현이 만약에 철가면의 사내가 펼치던 검법의 식이나 초식을 조금이라도 기억 한다면 그 정체를 유추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마라겸의 허락을 구하는 눈빛에 천여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챙!
그러자 마라겸이 자신의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집에서 검을 뽑아 넘겼다.
당혹스러웠지만 이내 검을 받아든 단백현이 눈을 감고서 그때의 순간을 떠올리며 말했다.
“자세히는 기억나지 않으니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마십시오.”
그 말과 함께 단백현이 조심스럽게 검을 휘둘렀다.
철가면의 사내가 용귀를 상대로 펼치던 검식들을 떠올리며 그것을 최대한 따라 해보려했다.
‘기억나는 동작만이라도 어떻게 해보자.’
애초에 초식을 구현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로서는 도무지 범접할 수 없는 검법이었기 때문이다.
-촤촤촤촤촤촥!
허공을 가로지르는 검식.
이것은 제대로 된 형태라기보다는 추상적으로 휘두르는 행동에 가까웠다.
‘으음, 너무 어설픈데. 이래서야 알아보겠나?’
허봉의 눈에는 허술하게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검을 휘두르는 것을 유심히 지켜보던 천여운과 마라겸의 반응은 달랐다.
얼마 있지 않아 두 사람의 입에서 동시에 같은 말이 튀어나왔다.
“천마검공!”
어설프게 휘두르는 단백현의 검식들은 드문드문 많이 비어있었지만 분명 천마검공의 스물네 개의 검식과 일부 닮아있었다.
이에 마라겸이 두 눈시울이 붉어져서는 감격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아아! 교주님! 그분이 틀림없습니다. 전 태상교주님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