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264)
# 83장 북해로 (2) #
개봉의 마교 지부.
-쿵!
북해빙궁의 사신 단백현이 바닥에 이마까지 박아가며 절실함을 보였다.
“부디 도와주십시오.”
현재 객실은 감동의 여운으로 물들어 있었다.
신분패의 주인이 마교의 전 태상교주 천인지임이 확실해지자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굳이 신분패를 거론하지 않고 있었지만 현 마교주라고 해도 이 상황에서는 분명 도와줄 수밖에 없다고 여겼다.
‘전 태상교주를 구하기 위해서라도 도와줄 것이다.’
그때 이마를 바닥에 박고 있는 단백현의 귓가로 천여운의 의아해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한 가지 물어볼게 있다.”
이에 단백현이 고개를 살짝 들어 올리며 말했다.
“무엇인지?”
“왕전 공의 말대로라면 북해빙궁은 정도 무림맹과 상호 동맹 협정까지 맺었다고 했는데, 어째서 그들에게 먼저 도움을 청하지 않은 거지?”
‘이런…..’
마교의 파병이 결정되면 북상하면서 밝히려고 했던 진실이었다.
왜냐하면 이 같은 자신의 행동을 설명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천여운이 날카롭게 그것을 먼저 지적하자, 이를 어찌 답해야할지 난감했다.
“본교의 전 태상교주님의 소식을 가져다준 것은 고맙게 생각하는 바다. 그런데 북해빙궁에서 일개 궁인의 말 한마디만 믿고서 사신을 보낸다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군. 게다가 정식 공문 요청서도 없이 말이야.”
‘…….너무 일을 쉽게 보았나.’
당연히 통상적이라면 이 같은 파병 요청이 다소 무리수라는 것을 알았지만 전 태상교주라는 패가 있기에 가능성이 높다고 여겼던 그였다.
“궁주가 죽었는데, 평범한 궁인이 정식 공문도 없이 혼자 중원으로 내려와 순수한 충의로써 파병 요청을 할 정도의 배짱을 지닐 수 있다고 보나?”
그 말에 단백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져버렸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것인지?”
-부웅!
“흐헛?”
엎드려 있던 단백현의 몸이 심후한 공력에 의해 일으켜졌다.
놀라서 내공을 일으켜서 반항하려고 했지만 샘물과 바닷물 정도의 격차에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당혹스러워하는 그에게 천여운이 말했다.
“바보가 아닌 이상 두 가지 추측을 할 수 있지. 스스로가 북해빙궁을 대표할 만한 자격이 있다고 여긴다거나.”
‘!!!’
-꿀꺽!
단백현이 긴장된 얼굴로 침을 삼켰다.
그런 그에게 천여운이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내부에 적이 있다고 판단되어서 공식 요청서 없이 북해빙궁이 아닌 개인적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라고 해야 할까?”
그 말을 들은 단백현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북해빙궁에서 벌어졌던 용귀에 관련된 사건들만을 이야기 했는데, 그 정보만을 조합해서 전체적인 상황을 유추해낸 것이었다.
‘통찰력이 보통이 아니구나.’
과연 중원 무림을 움직이는 한 세력의 수장다웠다.
소문을 들었기에 무위는 그렇다 치더라도 약관의 나이에 불과해보여서 이런 판단은 미숙할지도 모른다고 여겼는데 아무래도 오산인 듯 했다.
‘숨겨선 안 되겠다.’
이 정도까지 추측했다는 것은 이미 자신의 정체를 짐작했을 게 뻔했다.
단백현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사죄했다.
“절대로 속이려는 의도는 없었습니다. 한시가 바쁜 상황이었고 교주님께서 끝내 요청을 거절하실 수도 있기 때문에 당장에 알려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단백현의 입장에서도 어쩔 수가 없었다.
그가 단독으로 마교에 도움을 요청한 이유는 북해빙궁의 내부 문제와도 직결되었기 때문이었다.
궁내의 치부를 외부에 밝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말하지 않은 것을 밝혀라.”
“……저는 북해빙궁의 소궁주입니다.”
“역시!”
허봉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단백현의 진정한 정체는 일반 궁인이 아니었다.
그는 차후에 북해빙궁을 이끌어갈 소궁주였던 것이다.
이미 천여운의 말에서 그의 정체를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던 수하들은 크게 놀라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교주님의 혜안에 놀랐습니다. 부디 무례를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꽤 대담하군. 만약 전 태상교주의 소식을 알려주지 않았다면 상당한 대가를 치렀을 거다.”
-오싹!
아무렇지 않게 하는 말이었지만 단백현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저 옥패가 자신의 방패가 되어준 셈이었으니 말이다.
더 이상 속이면 자신이 위험할지도 모른다고 판단한 단백현이 모든 것을 솔직히 밝히기로 마음 먹었다.
“더, 더 이상 숨기지 않겠습니다. 교주님께서 추측하신대로 정식 파병 요청서를 가진 사신은 정도 무림맹으로 갔습니다.”
단백현은 솔직하게 모든 것을 밝혔다.
“하!”
이 말에 허봉은 내심 불만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 말대로 라고 한다면 자신들과 정도 무림맹에 동시에 도움을 요청한 셈이었다.
문제는 정작 공식 요청서는 무림맹에만 간 상태였기에 괜히 이 자의 말만 듣고서 북해로 가게 된다면 도움이 아니라 간섭이 되어버린다.
그때 고왕흘이 한 가지 사실을 꼬집었다.
“이상하군. 자네가 정말 북해빙궁의 소궁주라고 한다면 궁주 대리 본인이 아닌가?”
그랬다.
궁주가 사고를 당한 경우 정상적인 절차대로라고 한다면 소궁주가 자리를 물려받거나, 취임 직전에 대리로 일을 처리하는 것이 맞았다.
이에 단백현이 입술을 질끈 깨물며 분노가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아닙니다. 지금 궁주 대리는 제가 아니라 본궁의 부궁주이자 둘째 숙부인 단주천이라는 자입니다.”
“부궁주?”
그 말에 천여운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그렇다면 현재 북해빙궁의 수장은 궁주 대리라는 말이었다.
단백현의 반응을 보아선 분명 북해빙궁의 내부적으로 알력이 있었음이 틀림없었다.
물론 이것은 관심 바깥이었다.
“다른 것을 전부 배제하고 결론적으로 그대는 아무런 권한도 없이 독자적으로 본교에 도움을 요청한 것이군.”
천여운의 차갑게 식은 목소리에 단백현이 다급히 말했다.
“그,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저로서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본 궁에 그 놈들의 간자가 남아있습니다.”
“간자?…..혹시 극도육무문을 말하는 것이냐?”
“……그렇습니다.”
단백현은 빙장석 지하 동굴에서 죽은 자들 이외에도 북해빙궁에 극도육무문의 간자가 남아있을 거라 확신했다.
가장 의심스러운 것은 부궁주 단주천과 그를 따르는 자들이었다.
궁주가 불미스러운 사고를 당하고 용귀가 풀려났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가 가장 먼저 취한 행동은 회의를 소집하여 궁주 대리로 부임한 일이었다.
“그 자는 대책을 마련하는 것보다 위기를 이용했습니다. 그때 제가 내상으로 이틀 동안 잠들어 있지만 않았어도! 큭!”
용귀가 풀려난 것을 기회 삼아 궁주 대리로 부임한 그는 죽은 궁주가 지녔던 모든 권한을 위임받아 북해빙궁의 모든 힘을 하나로 집결시켰다.
위기의 순간이기는 하나 단주천은 지금 북해빙궁의 사람들에게 영웅으로 떠받들어지고 있었다.
부상으로 잠들어 있는 사이에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이뤄진 것이었다.
마치 이 순간을 기다린 것처럼 말이다.
“정황상 충분히 의심이 갈만한 상황이긴 하지만 간자가 아니더라도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서 라고는 생각하지 않나?”
고왕흘이 의문을 제기했다.
이에 단백현이 분하다는 듯이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그 자가 실력으로 본 궁의 궁주 자리를 원한 것이라면 저나 아버님 역시도 납득할 수 있습니다! 하나, 아버님의 친형제라 할 수 있는 자가 위기를 이용하여 권력을 차지했습니다. 만약 귀교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단순히 권력싸움으로 치부하시겠습니까?”
“…….”
이 말에 고왕흘이 입을 다물었다.
사실 단백현의 말이 완전히 틀린 것도 아니었다.
위기를 이용했다고 말은 했지만 철저하게 극도육무문과 결탁했을 확률이 높았다.
그들은 마교에도 그런 식으로 흉계를 꾸몄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삼 장로는 부궁주의 오른팔이라 불리는 자입니다. 극도육무문에서 폭탄을 공수해오는 것을 찬성한 것도 부궁주와 그들 세력…”
“됐다.”
‘!?’
그때 천여운이 그의 말을 끊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전부 듣지도 않고서 끊자, 단백현은 불안했는지 안절부절 하지 못했다.
그런 그에게 천여운이 말했다.
“더 이상 사정은 들을 필요는 없을 것 같군.”
“그….그럼?”
“어차피 본교에서는 전 태상교주님의 신변을 확보하기 위해 북해빙궁으로 갈 것이다.”
“아!”
천여운의 입에서 나온 희소식에 단백현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방금 전까지 반응만 보아서는 전혀 도움을 주지 않을 분위기였는데, 북해빙궁으로 갈 것이라고 확실하게 의사를 밝혔다.
“가, 감사합니다!”
그런데 기뻐하는 단백현의 귀에 찬물을 붓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기서 계약서를 작성하도록 하지.”
“네?”
뜬금없이 튀어나온 계약서라는 말에 단백현이 어안이 벙벙해졌다.
전 태상교주가 걸려 있는 일이었기에 당연히 자신들의 일이라고 생각하여 도움을 줄 거라 여겼는데, 이해할 수가 없었다.
“천마신교의 전 태상교주님의 안위가 걸려있는 일일 텐데 무슨….”
“착각하지 마라.”
“넷?”
“공식 요청도 없이 북해로 가게 될 경우에 본교는 틀림없이 귀 궁의 부궁주와 정도 무림맹과 대치하게 될 거다.”
“그, 그건…….”
“만에 하나라도 전 태상교주의 신변이 확보가 되지 않는다면 본교는 명분 없이 움직인 꼴 밖에 되지 않는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전 태상교주인 천인지가 혹여 용귀에 의해 시신조차 남아있지 않게 된다면 공식 요청서가 없는 마교에 있어서는 명분 없이 타문파의 일에 간섭한 꼴이 된다.
재앙이라 불리는 용귀를 퇴치하기 힘들기 때문에 당장에 도움은 받을지 모르겠지만, 그것을 해결하고 난다면 어떤 식으로 나올지 모를 일이었다.
‘아! 명분이 필요한 거로구나.’
이를 납득했는지 단백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현재의 부궁주라면 어떤 식으로 나올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하나 있었다.
“교주님. 그런데 계약서를 작성해드릴 수는 있어도 저에게는 어떠한 권한도 없습니다. 궁주 대리인 부궁주가 이를 무시할 수도 있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상관없다.”
“네? 정말이십니까?”
“작성이나 해라.”
전혀 개의치 않는 듯이 말하는 천여운의 반응에 단백현이 의아해했다.
하지만 언제 그의 마음이 바뀔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얼른 객실의 책상에 있던 문방사우(文房四友)를 챙겨와 붓을 들었다.
그리고서 천여운을 힐끔 쳐다보며 물었다.
“어떤 내용의 계약서를 작성하실 건지?”
“간단하다. 세 가지 약조만 해주면 된다.”
“세 가지요?”
단백현이 미간을 찡그렸다.
세 가지씩이나 될 줄은 몰랐다.
왠지 모르게 불안해졌지만 일단 들어보기로 했다.
“첫 째. 용귀를 퇴치하고 나서 나오는 용귀의 진원과 피는 놈을 제거한 본 천마신교에 귀속한다.”
“귀, 귀교에서 퇴치하고 나서를 말하는 것이지요?”
“그렇다.”
이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마교에서 용귀를 죽인다면 당연히 그 권리는 그쪽에 있다.
물론 북해빙궁과 힘을 합쳐서 죽이게 된다면 문제가 생길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용귀로 인해서 북해가 초토화되게 생긴 마당에 관련이 없음에도 목숨을 걸고 도움을 주는데, 이런 조건은 충분히 수용할 수 있었다.
“둘 째. 이번 용귀 퇴치가 끝나면 북해빙궁과 정도 무림맹과의 협정을 파기해라.”
“네? 그, 그건…..”
당혹스러워하는데, 천여운이 세 번째 계약 내용을 이어서 말했다.
“셋 째. 파기한 협정을 대신하여 본교와 북해빙궁이 새롭게 협정을 맺는다. 이상 세 가지를 적어라.”
‘!?’
천여운의 말에 단백현은 당혹스러움을 넘어서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첫 번째 조건은 그렇다 쳐도 두 번째와 세 번째는 자신의 선에서 도저히 결정할 수 없는 내용들이었다.
“이 조건으로 계약한다면 지금 당장 북해로 출정하겠다.”
“자, 잠깐만요. 교주님! 지금 말씀하신 계약 내용은 일개 소궁주인 제가 어떻게 할 만한 내용들이….”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네?
“곧 궁주로 취임하게 될 터이니.”
천여운의 입에서 나오는 파격적인 말에 단백현의 눈동자가 급격하게 떨려왔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당혹스러워 했던 마음이 묘하게 바뀌어갔다.
그런 단백현에게 천여운이 입 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결정하시오. 단 궁주.”
* * *
그렇게 일 각의 시간이 흐른 후,
객당의 호실에서 나온 천여운이 수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지금 당장 육검단을 소집해라. 출정이다.”
“충!”
지금 이 순간 마교의 북해 출정이 결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