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265)
# 84장 대평원의 대흉족 (1) #
중원에서 세외에 속하는 북쪽 지역.
그곳은 감숙성, 섬서성, 산서성, 하북성의 경계면 위를 의미한다.
북쪽 세외 무림의 패권을 쥐고 있는 북해빙궁이 있는 바이칼호로 가기 위해서는 여러 야만족들이 지배하는 대평원을 지나쳐 가야했다.
-다그닥! 다그닥!
산서성에서 대평원으로 넘어가는 경계 지역.
말발굽 소리가 사방을 울렸다.
사백여 명이 넘는 정도 무림맹의 정예 무사들이 기마 부대를 형성하여 오와 열을 맞춰서 빠르게 북상하고 있었다.
앞서 파병단의 사령관인 강소아가 공고한대로 한 시가 급한 상황이었기에 쉼 없이 이동한 끝에 불과 사흘 만에 이곳까지 도달했다.
물론 산서성까지는 정도 무림맹의 지부에 들려서 말을 교체했기 때문에 쉬지 않고 이동할 수 있었으나, 지금부터는 말의 휴식까지 어느 정도 감안해야 할 것이다.
-다그닥! 다그닥!
말을 몰고 가는 내내 사령관인 강소아는 뭔가 고민하는 얼굴로 침묵하고 있었다.
그가 이렇게 심각해하는 이유가 있었다.
북상을 하는 도중에 예상하지 못한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마교에도 도움을 요청했단 말입니까?] [그렇소이다. 아아! 귀 맹에게 보낸 것처럼 정식 요청이 아니라, 본 궁의 소궁주가 독단적으로 벌인 일이라 그들이 파병하는 일은 없을 것이오.]혹시나 하는 마음에 단주성은 진실을 밝혔다.
당연히 마교에서 도울 일은 없다고 추측했지만 만약의 상황이라는 것도 있으니, 사전에 이야기를 해놓는 것이었다.
협정을 맺은 정도 무림맹에게만 도움을 요청한 줄 알았는데, 뜬금없이 단주성의 입에서 마교가 거론되자 고민에 빠진 강소아였다.
[이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군요.] [뭐, 정식 요청이 아니라면 굳이 신경 쓸 일이 아니네. 정벌 전쟁이 아니고는 한 일파의 수장이 명분을 무시할 수 없네.]모용세가주 모용강은 이 이야기를 듣고 마교에서 도울 리가 없다고 단언했다.
그것은 제갈소희 역시도 반은 동의했다.
[모용가주님의 말씀에도 일리가 있습니다. 현재 마교는 개봉에서 기반을 다지는데 전력을 다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런 와중에 굳이 전력을 분산해봐야 손해를 보게 되죠. 다만,] [다만?] [군사의 입장으로 본다면 그것이 정답이지만……마교주 천여운이 반드시 그럴 거라는 보장은 할 수가 없군요.]제갈소희는 마교에 사신으로 가면서 소교주 시절의 천여운과 대면했었다.
그리고 천여운이 교주가 돼서 지금까지 보인 행보를 유심히 지켜본 결과, 그가 군략이나 전형적인 틀에 맞춰서 움직이는 유형의 인물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그렇기에 마교에서 절대적으로 움직이지 않을 거라는 확신은 할 수가 없었다.
[강 단주. 어차피 본 맹과 마교는 동맹을 맺은 상태에요. 그들이 북해빙궁에 파병을 한다고 해서 굳이 우려 할 일은 아니지 않을까요?] [……용귀의 진원이나 영력이 담긴 사체들이 그들의 손에 넘어가도 그런 태평한 소리가 나올지 궁금하군요.] [진원?]강소아는 용귀를 퇴치하는 것보다도 그 후를 우려하고 있었다.
제갈소희는 혹시나 근처에 있는 북해빙궁의 사신 단주성이 들었을까 걱정되어 그를 만류하려 했다.
[강 단주. 진원의 소유권을 굳이 이 자리에서….] [연부소가 마교주의 손에 오른팔이 잘리고 폐관에 들어갔는데도 그 약혼녀라는 사람은 동맹을 운운하는 걸 보면 참으로 무른 사람이군요. 아니면 악(惡)에 굴복한 건가요?] [지금 무슨 소리를!] [당신과 할 말은 없습니다.]강한 모욕감을 느낀 제갈소희가 화를 내려고 했지만 강소아는 이를 무시하고서 더욱 진군의 속도를 높였다.
‘후우…..’
제갈소희는 속으로 화를 삭여야만 했다.
그녀라고 해서 약혼자의 팔을 자른 천여운이 밉지 않을까.
하지만 무림맹 전체의 군략을 담당하는 군사로서 공적인 일에 사사로운 감정을 불어넣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이 없음을 알기에 참는 것뿐이었다.
‘아직도 마교에서 파병하는 것을 걱정하는 건가.’
하루가 지나도록 여전히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강소아였다.
표정을 보면 군략을 짜는 군사처럼 고민하는 듯한데, 아무래도 신경이 쓰였다.
‘아! 이제 대평원이구나.’
말을 몰고 있던 그녀의 눈앞에 북쪽의 대평원이 보였다.
자신도 그와 말을 섞고 싶지 않았지만 군사로서의 임무가 있기에 강소아에게 소리쳤다.
“곧 대평원입니다. 강 단주. 야만족의 영역이에요.”
그녀의 말이 들리자 선두에서 앞서가던 모용세가주 모용강의 얼굴에 긴장감이 서렸다.
중원 내륙에 자리 잡은 황보세가나 제갈세가와 달리 북쪽 요녕 땅에 정착하고 있는 모용세가의 사람들은 야만족의 무서움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무림인은 아니었지만 기마민족으로 사시사철을 전쟁과 침략으로 보내는 전투에 능한 집단이었다.
일대일로야 당연히 두렵지 않았으나, 말과 인마일체(人馬一體)가 된 수백, 수천, 수만이나 되는 야만족은 정말 상대하기 껄끄러웠다.
‘그나마 사령관이 강 공자라서 다행이군.’
모용강이 선두에서 말을 몰고 있는 강소아를 바라보았다.
강소아와 흑영단은 오 년 동안이나 산서성 북쪽에서 야만족을 상대해왔다고 들었다.
그렇기에 그가 파병을 지원했을 때, 맹주 이목을 비롯한 웅주들이 전부 만장일치로 동의했던 것이었다.
‘최근에 그들과 협약을 맺었다고 했던가.’
듣기로는 이 년 전에 강소아가 대평원 야만족들 중에 패자라 불리는 대흉족(大凶族)의 대족장 아사라와 협정을 맺었다고 들었다.
진군 행렬의 가장 뒤편에 있는 마차에는 병량미 이외에도 여러 보물함들이 있는데, 그들과 마주쳤을 때를 대비한 것이 틀림없었다.
‘별 일이 없기를 바라야 겠군.’
용귀의 일로 여력이 없는 것도 있겠지만 북해빙궁에서 사신을 고작 한 명만 보낸 것도 야만족과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대규모는 아니지만 사백 명이나 되는 무력 단체가 대평원을 가로지르는 이상 그들과 마주칠 것은 확실했다.
그렇게 반나절 정도를 이동하는 동안에는 특별한 일은 없었다.
늦은 오후 무렵이었다.
-들들들들!
“아!”
진군하고 있던 정도 무림맹 파병단의 행렬이 일제히 멈춰 섰다.
사령관의 명령이 떨어진 것도 아니었지만 누구하나 할 것 없이 멈춰 서서 어딘가로 시선이 향했다.
노을이 지고 있는 초원의 지평선을 가득 메우는 엄청난 군세.
수천이 넘는 말발굽 소리가 마치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대지를 떨리게 만들고 있었다.
“첫날부터 마주치는 것인가.”
모용강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지평선을 가득 매우고서 말 위의 안장에 태연자약하게 앉아서 진군해오는 털가죽 옷에 병장기를 들고 있는 저들은 야만족이 틀림없었다.
“회갈색 늑대 털옷…..저들은 대흉족이오.”
그의 옆에 있던 북해빙궁의 사신 단주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뿌우우우우!
저들의 군세에서 뿔피리를 부는 소리가 들려왔다.
당장에라도 진격해올 기세에 파병단 무사들의 얼굴에 긴장감이 서렸다.
그때 강소아가 수신호를 보내 깃발을 높게 들게 했다.
“깃발을 들어라!”
“충!”
흑영단의 부관 하원표의 외침에 앞 열에 있던 무사들이 흰 깃발을 들어올렸다.
흑영이라 적혀 있는 깃발을 들어 올리자, 앞으로 천천히 진군해오던 군세의 선두에 있던 수십 필의 말들이 따로 떨어져 나와 그들을 향해 달려왔다.
‘아! 저들의 수장인가?’
뒤에 수많은 대군이 있다고는 하지만 담대한 자들이었다.
수십 필의 인마들 중에서 유독 눈에 띠는 자가 있었는데, 타고 있는 적혈마(赤血馬)조차 왜소하게 느껴질 만큼 거구에 붉은 털모자를 쓴 사내였다.
무공을 익힌 것도 아니었지만 풍기는 패왕의 기세가 분명 이들의 수장이었다.
“아사라.”
강소아의 입에서 나온 말에 모용강과 단주성의 눈이 커졌다.
아사라는 대흉족의 대족장의 이름이었다.
그들조차 그 이름과 명성을 들어본 적이 있었지만 실질적으로 얼굴을 본 적은 없었다.
‘아니. 저 거구의 사내가 대흉족의 대족장이라고?’
한 손으로 들고 있는 말 머리만한 거대한 철퇴를 보면 대단한 신력을 지닌 인물이었다.
아사라라고 부른 사내가 앞으로 당도하자 강소아가 그를 향해 공손히 포권을 취하며 인사했다.
“Намайг удаан хугацаанд уулзаарай(오랜만입니다.)”
뜻밖에도 강소아의 입에서 나온 말은 야만족의 언어였다.
선두에 있던 사람들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오 년 동안 야만족을 상대해온 것을 알았지만 그들의 언어마저 능숙하게 하는 것을 보면 대단했다.
-척!
아사라라 불린 대흉족의 대족장이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익숙하게 강소아가 그것을 잡더니, 이내 서로의 가슴을 두드렸다.
-팍팍!
그것을 마친 아사라가 누런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어보였다.
‘아! 저들의 인사법이구나.’
활짝 웃는 것을 보면 적대적인 감정은 없어보였다.
강소아가 손을 들자, 뒤에 있던 흑영단의 무사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마차로 가서 열 개의 화려한 함들을 들고 왔다.
-탁!
함을 열자 그 안에 수많은 패물들과 금괴가 가득했다.
이를 보게 된 대흉족의 대족장 아사라가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Би дурта.(마음에 드는구나.)”
급하게 준비했지만 이들의 마음에 들었다니 다행이었다.
강소아는 자신들이 이곳을 가로질러서 북해를 방문할 것을 미리 설명했다.
자신들에게 전혀 피해가 없는데다가 공물까지 준 것에 만족한 아사라는 연신 알겠다는 말만 답했다.
“이야기가 잘 된 것 같소이다.”
조용한 단주성의 말에 제갈소희가 물었다.
“저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겁니까?”
“북해와 대평원이 맞닿아 있다보니, 종종 교류나 마찰 등이 있어서 알고 있소이다.”
북해빙궁의 사람들의 대부분은 이들의 언어가 가능하다고 했다.
단주성의 말 대로라고 한다면 야만족과의 마찰 없이 북해빙궁에 들렸다고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대화가 생각보다 길어지고 있다.
“Та юу гэсэн үг вэ!”
아사라의 목소리가 다소 올라갔다.
‘뭐지?’
제갈소희는 아사라의 반응에서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강소아가 뭔가를 요구하는 듯이 손동작을 하면서 말을 하는데, 아사라와 그 옆에 있는 부관으로 보이는 대흉족의 사내가 따지듯이 뭔가를 말했다.
“허어…..”
그런데 이것을 듣는 단주성 역시 표정이 심상치가 않았다.
[단 대협. 혹시 괜찮으시다면 강 단주와 저들이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그 전음에 단주성이 당혹스러운 듯이 답했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할지….] [?] [가, 강 단주가 대흉족에게 정도 무림맹 이외에 대평원을 가로지르려는 자들을 통과하지 못하도록 처리해달라고 부탁하고 있소이다.] [네에?]이에 제갈소희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 * *
정도 무림맹의 파병단이 거래를 마치고 북쪽으로 향하고 나서 대족장 아사라의 왼팔이자 대흉족의 다음 권력자인 부족장 소라추가 말했다.
“대족장. 정말로 강소아 저 이방인 놈이 한 제안을 받아들이실 겁니까?”
“왜 무림인이라고 해서 두려운 것이냐? 대전사인 네가 아까도 그렇고 이런 말을 하다니 의외로구나.”
자신을 보좌하며 수많은 전쟁을 치른 용맹한 전사인 소라추의 우려에 아사라가 물었다.
이에 소라추가 고개를 흔들면서 말했다.
“무림인이 위험한 것도 있지만 최근에 전사 부초이가 중원에 다녀오면서 들은 소식을 같이 듣지 않았습니까?”
부초이는 대족장 아사라의 호위 전사들 중에 한 사람이다.
야만족이 세외 민족이라고 하여 완전히 중원과는 단절되어 있을 거라 여기겠지만, 그들 역시도 중원에 사람을 보내서 정보를 수집하고 때론 교류를 하기도 한다.
“부초이!”
아사라의 부름에 말을 타고 있던 자들 중에 얼굴에 짐승의 발톱 자국으로 보이는 흉터가 그어진 건장한 사내가 대답했다.
“네! 대족장!”
“최근에 중원 무림의 패권을 다투고 있는 자들이 마교와 극도육무문이라는 단체라고 했나?”
“그렇습니다. 그 중에서 마교의 교주 천여운이라는 자는 마신이라고 불릴 만큼 괴물 같은 무인이라고 들었습니다.”
중원 무림인들을 통해서 들었던 마신 천여운의 신위.
그것은 인간을 넘어선 힘이었다.
하늘에 떠올라 성 전체에 번개를 내려치게 만들었다고 하는데, 처음 들었을 때는 전혀 믿기지가 않았다.
“마신이라…..참으로 광오한 별호구나. 일개 인간이 감히 신이라는 칭호를 붙이다니.”
놀랍게도 그들은 중원 무림의 소식조차 알고 있었다.
그 이유는 무공에 있었다.
부초이라 불린 아사라의 호위 전사는 무공을 익힌 전사였다.
침략 전쟁을 위해 중원을 남하할 때마다 황군 이외에도 무림인들과 마찰이 있었던 대흉족의 전전대 족장은 무공에 흥미를 가졌다.
그래서 중원 무림에 사람을 보내, 삼대(三代)에 걸친 오랜 세월을 투자해 무공을 익힌 자들로 이루어진 무적의 부대를 만들어냈다.
이를 바탕으로 대흉족은 당금 대평원의 패권을 차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어차피 위험한 것은 그 마신이라는 자뿐이라고 하지 않았나?”
아사라의 말에 소라추가 인상을 찡그렸다.
아까 전에도 정도 무림맹의 강소아가 제안을 했을 때, 그가 개입하여 마신에 대한 명성을 들었다며 대족장 아사라에게 거절하기를 권했다.
그때 강소아는 그들을 설득했다.
[마교주에 대해선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저희 정도 무림맹도 맹주께서 이런 일에 일일이 행차하시지 않는데, 그에 버금가는 세력의 수장인 마교주가 직접 나타날 것 같습니까?]강소아는 마교주가 직접 대초원을 가로지를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 호언장담했다.
만약에 그런 문제가 일어난다면 정도 무림맹에서 책임지고 돕겠다는 약조를 하면서 대족장 아사라가 제안을 받아들인 것이었다.
“그건 그렇지만……”
“걱정하지마라. 어차피 그들과는 직접적으로 부딪칠 일은 없을 것이다.”
그 말에 소라추가 의아한 눈빛으로 물었다.
“따로 염두하신 바가 있으신지?”
“후후후, 어차피 저들은 정도 무림맹 이외의 무인들을 통과시키지 말아달라고 하지 않았느냐.”
“그렇습니다.”
“대흉족의 용맹한 오만의 군사가 버티고 있는데, 아무리 무림인이라고 한들 전투를 벌일 거라고 생각하나?”
오만 명의 군세.
그것은 절대로 가벼이 여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정도 무림맹의 정예 무사들조차도 이 많은 군세를 앞두고 하나 같이 긴장하지 않았나.
이 엄청난 군세의 병사들이 화살을 쏘기만 해도 그것이 하늘을 새까맣게 뒤덮는다.
“겁만 주셔서 보낼 생각이신 겁니까?”
“그렇다. 적당히 위협만 가하는 것이지. 어차피 그들과 직접적으로 부딪치지 않는다면 마신이라는 놈이라고 한들 이곳 대평원까지 와서 우리 대흉족과 싸우려 들겠느냐?”
그것이 대족장 아사라의 진정한 계획이었다.
그 말에 소라추가 안심했다는 듯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과연 대족장이십니다! 말씀대로 하신다면 저희 부족에는 아무런 피해도 없이 양 삼천 마리를 공으로 얻겠군요.”
강소아의 부탁을 들어주는 대가로 약조 받은 양 삼천 마리였다.
금은보화도 좋지만 유목 생활을 하는 대평원의 야만족에게 진짜 재산의 가치가 있는 것은 양이었다.
“하하하하하핫! 이걸 두고 일석이조라고 했던가.”
호탕하고 웃는데 전령으로 보이는 노랑 깃을 꽂고 있는 말이 다가왔다.
말에서 내리지 않은 상태로 대흉족의 전령이 고개 숙여 보고했다.
“대족장. 지금 남서쪽 방향에 이십 리(里) 정도 떨어진 곳에서 육백 명 정도에 이르는 무장 병력이 초원을 가로질러 북상해오고 있습니다.”
“다른 부족들이느냐?”
“아닙니다. 복장을 보아하니, 중원인들인 것 같습니다.”
그 말을 들은 대족장 아사라와 대흉족 전사들의 눈빛이 반짝였다.
예상보다 빠르게 그들이 오고 있었다.
* * *
노을이 지던 태양이 지평선 너머로 넘어가고 어둠이 찾아왔다.
횃불을 밝히고 있는 육백여 명의 군세가 오 열을 맞춰서 북쪽으로 진군하고 있었다.
깃발에 당당하게 마(魔)라 적혀 있는 그들은 마교의 파병단이었다.
진군해 나가는 기세를 보아서는 파병이 아니라 출정이라도 나가는 듯이 눈빛에 사기가 넘쳤다.
백 명으로 이루어진 각 단의 선두에서 늠름하게 말을 몰고 있는 자들은 호위전 육검단의 단주들이었다.
제대로 된 첫 출진에 단주인 그들의 눈빛도 전의로 가득했다.
사흘이나 쉬지 않고 북상했는데도 흐트러진 기색은 없고 더욱 눈빛이 살아났다.
그때 북상하던 마교의 파병단이 일제히 멈춰 섰다.
“엇?”
“이게 무슨?”
그들이 멈춰설 수밖에 없던 이유는 간단했다.
-두두두두두두!
대지를 울리는 말발굽 소리.
북상하는 그들의 시야로 수를 헤아릴 수 없는 횃불들이 지평선을 가득 매우고서 서서히 가까워져가고 있었다.
얼핏 보아도 수만 명에 이르는 대군세.
그들은 북쪽 대평원의 지배자인 대흉족의 군대였다.
대흉족의 군대의 선두에 서있는 대흉족의 대족장 아사라와 부족장 소라추, 그리고 군단장들의 입가에 미소가 감돌았다.
“하루 사이에 와주다니, 수고를 덜어주었구나. 하하하핫.”
“공교롭군요. 저들이 차라리 정도 무림맹의 그 자들보다 먼저 왔더라면 적당한 공물을 바치고 지나갔을 수도 있었는데요.”
“하하하핫, 제 놈들의 복이 없음이다. 다시 왔던 곳으로 돌려보내야지. 부초이!”
“넵! 대족장!”
대족장 아사라의 부름에 호위전사 부초이가 앞으로 나섰다.
부초이에게 아사라가 명했다.
“녀석들에게 이곳을 통과시킬 수 없음을 알리고 중원으로 돌아가라고 해라. 만약 돌아가지 못한다면 대흉족 위대한 전사들의 칼에 목숨을 잃게 될 거라고도 잘 알려주어라.”
“넵! 대족장!”
그는 이곳에 있는 전사들 중에서 몇 안 되는 중원의 언어를 말할 수 있는 자였다.
명령을 받은 부초이가 말을 몰고서 앞으로 나와 멀리서 보이는 육백여 명의 마교의 파병단을 향해 외쳤다.
“들어라아아아아아아!!!”
내공을 실은 전사 부초이의 목소리가 대평원을 크게 울렸다.
이에 기세를 실어주기라도 하듯이 대흉족의 전사들이 바닥을 창으로 내려찍으며 함성을 질렀다.
-쿵!!! 쿵!!! 쿵!!!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엄청난 대군이 함성을 지르자, 그들의 포효가 천지를 뒤집을 듯이 사방에 퍼져나갔다.
충분히 적들의 사기를 저하시켰다고 생각한 부초이가 대족장의 말을 전달했다.
“중원인들이여! 우리는 대평원을 지배하는 위대한 전사들인 대흉족이다. 본 전사는 그 중에서도 위대한 패자이신 대족장 아사라님을 모시는 부초이라고 한다!”
“와아아아아아아아!!!”
자신의 소개를 마친 부초이가 본론에 들어갔다.
“이곳은 우리 대흉족의 땅이다! 이방인들이 함부로 돌아다닐 곳이 아니란 말이다. 지금 당장 네놈들이 살던 곳으로 돌아가라! 경고는 단 한 번뿐이다. 만약 돌아가지 않는다면 위대한 대흉족 전사들의 칼에 목숨을 잃을 것이다!”
“와아아아아아아아!!!!”
중원의 말이라 잘은 알아듣지 못했지만 대흉족의 전사들이 함성으로 그를 도왔다.
어찌나 함성이 컸는지 고막이 찌릿찌릿할 지경이었다.
충분히 그들에게 두려움을 주었을 거라고 확신한 부초이가 흡족한 얼굴로 말을 뒤로 돌려, 대족장에게로 돌아오려는 순간이었다.
“대흉족은 들어라!!!”
‘!?’
바로 그 순간 사방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목소리에 부초이가 놀란 눈으로 고개를 돌렸다.
목소리가 커서 놀란 것이 아니었다.
지금 그 말은 자신들의 대평원 야만족의 언어였던 것이다.
-웅성웅성!
대흉족의 전사들도 술렁였다.
그가 들은 것을 그들이 듣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저들 중에도 우리의 말을 할 줄 아는 자가 있던가?’
그런데 그런 것치고는 생각보다 발음이 또렷했다.
그때 예의 목소리가 이어서 들려왔다.
“나는 대 천마신교의 교주 천여운이다!”
‘!!!’
정확하게 원어민 수준의 발음을 구사하는 목소리에 부초이를 비롯해 대족장 아사라와 부족장 소라추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불과 한 시진 전까지 그 이름을 거론했는데 모를 리가 없었다.
“천여운?……서, 설마 마신?”
중얼거리는 소라추의 말에 대족장 아사라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마교의 파병단 쪽을 철퇴로 가리키며 소리쳤다.
“이게 무슨 개소리야! 분명 없다고 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