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269)
# 85장 북해빙궁(北海氷宮) (2) #
섬의 남동쪽에 있는 부둣가의 망루 위.
호수 건너편을 바라보던 단주천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얼굴을 굳히는 정도에 불과했는데, 떨리는 눈을 보면 뭔가 굉장한 것을 발견한 반응이었다.
일 장로 설영귀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공! 무슨 문제라도 생긴 것인지?”
그 물음에 단주천은 믿기지 않는지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마교에 저런 괴물이 있었소?”
“괴물이라뇨?”
“본인의 눈을 의심했소. 호수의 절반가량을 단숨에 주파하다니….”
“그, 그게 무슨?”
“마교의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누군가가 등평도수의 경공으로 호수의 절반을 뛰어넘었단 말이오.”
‘!!!’
바이칼 호의 규모는 호수라고 부르는 것이 우스울 만큼 강이나 바다처럼 광활하다.
물의 유동이 비교적 잔잔하다고는 하나, 이 엄청난 거리의 호수 위를 육지를 뛰듯이 저런 속도로 가로지른다는 것은 북세외의 최강자인 단주천조차도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어찌 그런 일이!”
“설마…..오대고수인 남마주 천유종이 직접 왕림했단 말인가?”
궁주 대리 단주천이 가늘어진 눈으로 중얼거렸다.
현 중원 무림의 소식을 알지 못하는 그로서는 누구인지 짐작할 길이 없었다.
한편 정도 무림맹의 가장 선두를 이동하고 있는 선박 위.
모용세가주 모용강의 옆에 있던 북해빙궁의 사신 단주성이 놀란 눈으로 천여운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봐도 갓 약관이 되었을 법한 얼굴이다.
그런데 모용세가주가 그를 보자마자 천 교주라고 불렀다.
“교주라뇨? 모용가주?”
단주성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모용강이 조용한 목소리로 답해주었다.
“……그대는 모를 수도 있겠구려. 저 자가 바로 마교주요.”
“마, 마교주!”
혹시나 했는데 정말 마교의 교주였다.
새로운 마교주가 젊다고 들었지만 그 말이 사실이었다.
개봉의 마교 지부에 있어야 할 마교주 천여운이 이곳 북해에 나타났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는 극명했다.
‘백현이 정말로 그들을 설득했단 말인가? 대….대체 무슨 수로?’
놀라운 일이었다.
당연히 실패할 거라고 여겼다.
장로들 역시도 그가 쫓겨나거나 최악의 경우에는 마교에 처리될 거라고 예상했었다.
그런데 그냥 파병단을 보낸 것도 아니고 중원 무림을 삼분하고 있는 세 패권자들 중 한 사람이 나타난 것은 충격적인 일이었다.
-웅성웅성!
‘마교주라니?’
‘정말 마신이란 말인가?’
무림인을 떠나서 사람이란 그랬다.
이 광활한 호수의 절반을 등평도수로 주파하는 모습을 본데다가 그 정체가 드러나자, 배 위에 있는 모든 이들의 얼굴은 경계심보다도 두려움이 강해졌다.
특히나 통허현의 진성에서 그 전율스러운 무위를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한 유일한 당사자인 모용강은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식은땀마저 흘러내렸다.
‘기어코 일이 터졌구나!’
모용강이 군사인 제갈소희를 쳐다보았다.
그녀 역시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느닷없이 자신들의 배로 나타난 것보다 천여운이 거론하면서 찾는 자가 문제였다.
‘대흉족과 부딪친 게 틀림없다.’
제갈소희에게서 파병단의 사령관 강소아가 대흉족과 꾸민 흉계를 들었던 모용강이었다.
솔직히 그 자리에서 그들은 고민했었다.
강소아를 만류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 아니면 이것을 방관할지 말이다.
하지만 여러 가지 고민을 해본 결과 마교에서 파병을 보내지 않을 확률도 높았고, 그렇다고 해도 마교주 천여운이 직접 왕림할 일은 없다고 판단했다.
‘좀 더 냉정했어야 했는데.’
동맹이기는 했지만 최근 들어 마교와 무림맹의 사이는 반쯤 틀어진 상태였다.
극도육무문이라는 공공의 적이 없었다면 옛적에 찢어졌다.
연부소의 일을 비롯해 통허현 진성에서 정도 무림맹의 극진주의자들인 창천회 소속의 무인들을 학살 및 국교 교체 사건 등으로 정파인들 모두가 마교라고 하면 치를 떨었다.
‘천 교주가 직접 나타날 줄이야.’
제갈소희는 이 상황을 어찌 해결해야 할지 난감했다.
처음에는 강소아를 만류할까 했던 그녀 역시도 약혼자인 연부소의 일이 떠오르면서 끝내는 그가 하는 일을 내버려두고 말았다.
말 그대로 방관하고 만 것이다.
[제갈 군사! 당장 무슨 수를 강구하지 않으면 강 단주가 위험할 수 있소!] [네?] [그대는 오랜 만에 봐서 모르겠지만 천 교주 저 자는 절대로 자신에게 위협을 가한 자를 살려두지 않소.]무림맹주 이목을 비롯해 무림맹의 인사들이 보는 앞에서도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남궁세가주 남궁경을 죽인 자였다.
지금 당장 강소아를 죽이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제갈소희가 전음을 보냈다.
[일단은 제가 천 교주의 주의를 돌려볼게요.]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아도 강소아는 파병단의 사령관이자, 무림맹주의 자식이었다.
이 자리에서 해를 입게 내버려둘 순 없었다.
그러나,
“네 녀석이군.”
어느새 천여운이 강소아를 찾아냈다.
‘아아!’
제갈소희가 인상을 찡그리며 이마를 짚었다.
강소아가 누구냐고 했을 때, 선상 위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저절로 그에게 향한 덕분에 단번에 발견한 것이었다.
주의를 돌리는 것은 옛적에 실패했다.
제갈소희가 다급히 강소아에게 다가가는 천여운의 앞으로 끼어들었다.
-팍!
그녀가 공손히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천 교주님. 오랜만이군요. 무림맹의 군사인 제갈소희입니다.”
유일하게 기대하는 부분이 하나 있었다.
마교에 사신으로 갔던 시절의 인연이었다.
그 당시에 함정에 빠졌던 사신단을 위기로부터 구해준 것이 소교주 시절의 천여운이었기에 무작정 그가 소문만큼이나 오만무도하고 제멋대로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적어도 말은 통하리라 여겼다.
그런데 적어도 아는 척은 할 거라 여겼던 천여운이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비켜라.”
‘아…..’
짧은 한 마디에 뭔가 실망스러웠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모용강 역시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무림삼미(武林三美)라 불릴 만큼 아름다운 그녀가 나선다면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다.
사신단으로 갔을 당시에 천여운이 자신들을 도와준 것은 어쩌면 제갈소희를 봐서 그랬을 지도 모른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여색이 전혀 없는 자인가?’
남자라면 아름다운 여인의 앞에서 마음이 약해지곤 하는데, 아무래도 미인계로 기대하기는 힘들 듯 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쉽게 비켜줄 생각은 없었다.
“천 교주님. 어째서 저희 파병단의 배를 이렇게 갑작스럽게 방문하신 거죠?”
주의를 최대한 돌려야 했다.
대화를 계속 시도해서 파고들 틈을 찾아야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 방법은 통하지 않았다.
“일부러 모르는 척 하는 것이냐?”
“!?”
그 말에 제갈소희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길게 뭔가를 말한 것이 아니었지만 그 말만으로 천여운이 의도하는 바를 알아차렸다.
‘우리가 방관한 사실을 꼬집는 거다.’
그녀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강소아를 보호하기 이전에 자신들도 똑같다는 것을 꼬집은 셈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광활한 호수를 등평도수로 가로질러 적진 한 가운데인 선박 위로 강림한 것을 보면 작정을 한 모양이다.
어쩔 줄 몰라하는 그녀의 뒤에서 강소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 손님입니다. 옆으로 물러나시죠.”
“하, 하지만 강 단주.”
“방해하지 말고 물러나세요.”
고집이 섞인 목소리에 제갈소희가 미간을 찡그렸다.
‘하아……자존심을 살릴 자리가 아닌데.’
별 수 없었다.
냉정하게 자신의 호의를 몰라주는 강소아의 말에 그녀가 실망스러웠지만 결국 옆으로 비켜섰다.
어차피 지금 상황에서는 강소아 스스로가 이 역경을 극복할 수밖에 없었다.
부디 어리석은 행동만은 하지 않기를 바랐다.
‘…….강 단주.’
상대는 현 중원 무림에서 동투신 악의와 더불어 천하제일인에 가장 가까운 사내였다.
마음만 먹는다면 이 자리에 있는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다.
차라리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사죄를 하는 편이 나을지도 몰랐다.
‘이 자가 마교주 천여운!’
강소아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희대의 천재라 불린 자신의 형제 연부소를 폐인처럼 만든 괴물이었다.
이 자를 처리하기만 해도 현 정파, 아니 전 무림에 자신의 입지를 단번에 무림맹주 이상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지름길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우책을 범하지 않는다.’
물론 실수는 있었다.
설마 마교주 본인이 직접 파병단을 이끌고 올 줄은 몰랐다.
‘쉽게 볼 상대가 아니다.’
강소아가 진지하게 천여운의 눈을 바라보았다.
안광에서부터 느껴질 만큼 강렬한 패왕의 기세가 주는 위압감이 보통이 아니었다.
이런 자에게 허튼 수작 따위는 통하지 않는다.
‘사마를 멸하고 창천을 이룰 때까지 와신상담으로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다. 마교주여!’
-팍!
강소아가 두 손을 모아 포권을 취했다.
“천마신교의 교주님을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무림맹에서 흑영단의 단주를 맡고 있는 강소아라고 합니다.”
강단 있는 목소리.
두려움을 보이지 않고 정면으로 부딪치는 용기를 보였다.
‘제발…..’
제갈소희를 비롯해 모용강이 우려의 눈길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예상외의 일이 벌어졌다.
-쿵!
강소아가 선상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공손하게 두 손을 모으고서 말했다.
“이렇게 저희 파병단을 찾아오신 교주님의 노기가 대흉족의 일이시라면 변명할 여지가 없습니다. 제가 그들에게 저희 뒤를 쫓는 자들이 있으면 막아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아!’
단도직입적으로 자신이 흉수임을 밝히는 강소아의 태도에 모두가 놀라했다.
뭔가 방법을 강구하리라고는 생각했지만 정면으로 부딪칠 줄은 몰랐다.
모용강이 내심 그를 칭찬했다.
‘그래. 차라리 저런 방법이 나을 수도 있다.’
다소 굴욕적일지는 모르겠지만 마교주를 자극하지 않는 편이 안정적인 방법이었다.
이제는 그가 어떻게 나오느냐가 문제였다.
무표정한 얼굴로 일관하고 있는 천여운이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대가는 치러야지.”
-챙!
그 말과 함께 천여운이 허리춤에 차고 있던 도집에서 하얀 도신의 백룡도를 뽑았다.
당당한 태도에 뭔가 연유라도 물어볼 법도 한데 가차 없었다.
당황한 제갈소희가 오히려 외쳤다.
“천 교주! 저희는 동맹이에요. 아무 전후 사정도 묻지 않고서 동맹에서 보내는 파병단 수장을 해하려고 하는 건가요?”
이에 천여운이 가당치도 않는다는 말투로 말했다.
“어떤 이유로 흉계를 꾸몄는지에 대해서도 들어야 하나?”
“그, 그건….”
“괜한 시간 낭비는 그만두고 대가를 받아가겠다.”
그 말과 함께 천여운의 도가 무릎을 꿇고 있는 강소아의 오른쪽 어깨로 내려쳐졌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채애애애앵!
누군가 천여운의 백룡도를 막아냈다.
그는 다름 아닌 황보세가의 가주인 황보능이었다.
-찌릿찌릿!
“큭!”
황보능의 입에서 절로 신음 소리가 튀어나왔다.
혹시나 하는 상황에 대비하고 있어서 절묘한 순간에 막기는 했는데, 검병을 잡고 있는 두 손바닥이 찢겨져나가 피가 흘러나왔다.
‘가볍게 휘두른 것 같았는데 무슨 공력이 이렇게 무지막지하단 말인가.’
잘 보면 그가 밟고 서있는 선상 바닥이 패여 있었다.
막지 않았다면 강소아는 꼼짝없이 오른팔을 잃었을 것이다.
“막는 것이냐?”
천여운의 물음에 황보능이 오장육부가 들끓는 것을 참아가면서 외쳤다.
“강 단주는 북해빙궁을 돕기 위한 파병단의 사령관이오! 어찌 그가 해를 당하게 내버려둘 수 있단 말이오!”
내상을 입었는데도 패기를 잃지 않은 황보능이었다.
천여운의 명성이나 무위를 생각하면 두려울 만도 한데, 이렇게 나선 것을 보면 무림맹의 웅주들 중에서도 호걸이라 불리는 남자다웠다.
“그대가 아무리 마신이라 불린다고 해서 본인이 두려워하기만 할 것 같소! 하압!”
황보능이 십성 공력을 끌어올리며 굽히고 있던 무릎을 펴나갔다.
어차피 이렇게 된 이상 천여운을 밀어낸 후에 모두가 합공을 해서라도 막아야 했다.
그러나 호기가 통할 상대와 그렇지 않을 상대가 있다.
-콰직!
‘이, 이런….’
무릎을 펴려고 했던 그의 다리가 오히려 선상 바닥을 파고들었다.
당연히 밀릴 줄은 알았지만 너무 현격한 차이였다.
“끄으으으으으!”
-불끈! 불끈!
온몸에 핏줄이 설 만큼 무리해서 본원 진기마저 끌어냈지만 통할 리가 만무했다.
천여운이 더욱 공력을 끌어올리자 황보능의 신형이 그대로 바닥으로 꺼지고 말았다.
“으어어어엇!”
-콰지직! 쾅!
선박 위의 모든 사람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황보능은 명색이 명문 무도가인 오대세가의 가주이자 무림맹의 웅주인데, 일방적이다시피 상대가 되지 못했다.
마신이라는 별호대로 과연 명불허전이었다.
“더 이상 방해하면 정말로 죽인다.”
마지막 경고를 한 천여운이 다시 강소아를 향해 다가가는데, 흑영단의 대주들이 병장기를 뽑고서 그를 막기 위해 달려들려 했다.
“마, 막아랏!”
“단주를 해하려거든 우릴 먼저 죽여라!”
아무리 두렵다고는 해도 단주를 내버려둘 수가 없었다.
천여운의 눈빛이 싸늘해지려고 하는 와중에 강소아가 큰 소리로 외쳤다.
“모두 물러나랏!”
“?”
뜻밖의 외침에 흑영단의 대주들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자신들이 물러나게 되면 마교주 천여운이 그에게 해를 입힐 게 뻔한데 대체 왜 그러는 것일까?
바로 그때였다.
-챙! 촤악!
“끄흐으으윽!”
“다, 단주우우우우!!!”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강소아가 허리춤에서 도를 뽑아, 그 자신의 왼쪽 손목을 베어버린 것이다.
제갈소희나 모용강, 단주성조차도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에 너무 놀란 나머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어, 어째서?’
“끄으으으윽! 하아….하아…..”
-타타타탁!
비명을 지르며 고통스러워하던 강소아가 자신의 혈도를 점해 지혈시켰다.
자신의 손으로 벌인 일이지만 너무 고통스러워서 말을 하기도 힘들었지만 겨우 참아가면서 입술을 뗐다.
“하아….하아….이, 이걸로 분노가 가라앉지 않는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이번에 북해빙궁을 돕기 위해 파병을 나왔습니다.”
“………”
“크으윽, 부….부디 그 일을 마무리할 때까지만 시간을 주십시오. 그때도 다시 죄를 물으신다면 대가를 치르도록 하겠습니다!”
강소아의 그 말에 제갈소희가 속으로 그 독함에 감탄했다.
이것은 일종의 고육지책(苦肉之策)이었다.
상대가 압박을 하기 전에 자신의 신체를 일부 희생함으로서 더 밀어붙이지 못하도록 방비를 한 것이다.
‘하아….하아….왼손을 잠시 포기해서 저 자를 보낼 수 있다면 절대 밑지는 장사가 아니다.’
이 정도까지 나온다면 아무리 마교주라고 해도 고민될 것이다.
어차피 그가 아까 전에 자신의 어깨를 노린 걸 보면 팔을 자르려했던 것 같다.
죽이는 것은 목적이 아니라는 의미였다.
‘죽이지 않는 적들은 그 팔을 자른다는 소문이 사실이구나. 그렇다면 내 손으로 하는 편이 피해를 줄일 수 있다.’
강소아는 과감하게 자신의 왼손을 잘랐다.
이것은 완벽하게 계산된 것으로 오른손잡이로서 전투력을 잃지 않는 것과 동시에 왼손 하나로 충분히 죄 값을 스스로 치렀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서였다.
‘그대의 위신을 생각한다면 여기서 그만둘 것이다.’
명색이 삼대 세력 중 하나인 마교의 교주가 여기서 더욱 밀어붙인다면 그 자신이 우스워질 뿐이다.
창백해진 얼굴로 강소아가 천여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이를 바라보던 천여운이 입을 열었다.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군. 후우.”
한숨을 내쉬며 질린다는 듯이 말하는 모습에 강소아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역시 자신의 도박이 통했다.
오히려 천여운 같은 자에게는 변명을 하는 것보다 이런 방법이 나았다.
‘부디 용귀의 진원이나 피가 효능이 제대로 이길 바라야 겠군.’
강소아의 노림수는 용귀의 피에 있었다.
그가 예전에 읽은 신수와 오령에 관한 고문서를 보면 영물의 피나 진원을 복용하게 되면 잘린 신체조차도 복구시킬 만한 재생력을 가지게 된다고 하였다.
이것까지 고려하여 손목을 자른 것이었다.
‘반드시 그것들을 얻어야 해.’
강소아가 파병단에 자원한 진정한 목적은 용귀의 진원이었다.
머리 넷 달린 용귀의 진원만 복용한다면 오대고수의 반열에 오를만큼 공력을 폭증시킬 수 있으리라 믿었다.
천여운이 강소아를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네놈의 팔을 가져가려 했는데, 먼저 손을 쓸 줄은 몰랐군. 참 대단해.”
그 말에 모두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우려했던 마교주와의 일전을 피할 수 있게 된 듯 했다.
‘미련스럽기는 하지만 강 단주의 방법이 통했군요.’
제갈소희가 씁쓸하게 웃으며 다행스럽게 여겼다.
강소아가 잘린 손목의 통증을 참아가며 천여운에게 감사를 표했다.
“천 교주님의 너그러운 자비심에 감사드립니다.”
‘이 치욕은 내가 진원을 얻게 된다면 언젠가는 똑같이 갚아주마.’
겉과 속은 달랐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군자의 복수는 십년도 늦지 않다는 말도 있듯이 사마를 멸하기 위해서 얼마든지 치욕 따윈 참을 수 있었다.
‘미처 몰랐는데 연부소 공자보다 무섭구나.’
모용세가주 모용강 역시도 그 모습에 내심 감탄을 금치 못했다.
어쩌면 앞으로 당금의 마교주를 상대할 수 있는 자는 강한 인내와 영악함을 가진 강소아만이 가능할 지도 몰랐다.
그때 천여운이 안도해하고 있는 강소아에게 다가오며 물었다.
“네놈은 후환이 될 만한 자가 눈앞에서 빠져나가려 한다면 보통 어떻게 처리하지?”
“네?”
“네놈이 어떤 녀석인지 보고서 적당히 한 팔 정도로 끝내려고 했는데, 머리를 굴리는 모습을 보고나니 생각이 바뀌었다.”
천여운의 입에서 나온 의미심장한 말에 강소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전혀 자신의 계획과는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직감했다.
‘서, 설마 이 자가?’
당황한 그가 다급히 뒤로 물러나려했다.
-콱!
그런 강소아의 멱살을 낚아채듯이 잡은 천여운이 냉정하게 선고했다.
“여기서 죽어라.”
“자, 잠깐! 지금 무슨 짓을…”
-촥!
바로 그 순간 천여운의 백룡도가 번개처럼 흰색 궤적을 그리며, 강소아의 목을 스치고 지나갔다.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강소아가 눈을 깜빡이며 입을 벙긋 거렸다.
“비…..빌어…..먹…..을…..”
-서걱!
모든 말을 마치기도 전에 그의 잘린 머리통이 선상 바닥을 나뒹굴었다.
-데굴데굴!
원통하다는 듯이 두 눈을 부릅뜨고 있는 강소아의 머리통을 내려다보며 천여운이 차가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잔머리 굴리기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