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270)
# 85장 북해빙궁(北海氷宮) (3) #
선박 위에 있던 모두가 상황이 원만하게 해결된 줄 알았다.
비록 사령관이 자신의 팔을 자르는 등의 치욕을 감수하긴 했지만 여기서 마교주 천여운과 대적하게 되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그러나,
-촥! 데굴데굴!
바닥을 뒹굴고 있는 사령관 강소아의 목을 보면서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설마 이 자리에서 그의 목을 벨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서로 적이라면 모를까 동맹 관계인데다가 정도 무림을 상징하는 무림맹주 이목의 둘째 아들인데도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강 단주!”
“사령관!”
선박에 타고 있던 모든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울부짖듯이 외쳤다.
파병단의 사령관이자 흑영단의 단주가 어이없게 목숨을 잃은 것에 대한 경악과 울분이 동시에 담겼다.
무림맹의 제 이 군사인 제갈소희가 붉어진 눈시울로 천여운에게 소리쳤다.
“처, 천 교주님! 이건 너무 지나친 처사가 아닌 가요?”
“지나친 처사?”
“강 단주는 스스로 팔까지 잘라가면서 죄를 청했어요. 게다가 다른 걸 다 떠나서 귀 교와 본 맹은 동맹 관계인데 이렇게까지 하는 것은 과하지 않나요?”
원래의 제갈소희라면 군사답게 이렇게 흥분하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약혼자인 연부소가 반쯤 폐인이 되어 돌아왔을 때 가슴 속에 품고 있던 분노가 강소아의 죽음이 계기가 되어 폭발하고 말았다.
-팟!
그때 선박의 바닥을 뚫고서 떨어진 황보능이 위로 올라왔다.
창백한 얼굴에 입가에 묻은 핏자국을 보면 오장육부로 침투한 기운을 겨우 해소하고서 올라온 듯 했다.
“어, 어찌 이런 짓을!”
황보능 역시도 바닥을 뒹굴고 있는 강소아의 잘린 머리를 보면서 충격을 금치 못했다.
아무리 그래도 죽일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한 그였다.
-으득!
“감히 단주를 죽이다니!”
“용서할 수 없다!”
강소아의 머리를 망연자실하게 쳐다보던 흑영단의 대주들과 단원들이 더 이상 화를 참지 못하고 전부 병장기를 겨냥하며 달려들려고 했다.
어차피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았는데, 무위에서 밀린다는 이유만으로 참는 것은 죽은 강소아에 대한 모욕이나 다름없었다.
-슉!
흑영단의 대주 두 사람이 동시에 천여운을 향해서 신형을 날렸다.
분노가 담긴 패도적인 도초를 펼치는 그들의 도세에 실린 전의가 보통이 아니었다.
“죽여버리겠어!”
그러나 그들의 신형이 미처 천여운에게도 닿기 전이었다.
-슉!
“아닛?”
언제 나타났는지 흑색 장포에 독특한 문양의 가면을 쓴 정체불명의 괴인이 나타나 그들의 도를 가볍게 막아냈다.
그것도 모자라 그들의 신형을 튕겨 내버렸다.
-파팡!
“크헉!”
“끄윽!”
-풍덩!
가슴에 일장을 맞고서 동시에 튕겨나간 두 대주들이 선박 바깥으로 날아가 차가운 호수에 빠지고 말았다.
모용세가주 모용강이 굳어진 얼굴로 소리쳤다.
“명왕!”
정체불명의 가면을 쓴 남자는 마교의 대호법 마라겸이 틀림없었다.
마교주 천여운을 상시 호위해야 할 자가 당연히 떨어질 리가 없었다.
“하아….하아….”
가면 속에서 들리는 거친 호흡소리.
그 역시도 현경의 고수이긴 했지만 이 광활한 호수의 절반을 가로지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는지 상당히 지친 모양이었다.
[하아…..교주님.]“흠흠.”
전음으로 나지막하게 부르는 마라겸의 목소리에 천여운이 헛기침을 했다.
미안한 마음에서였다.
잠시 볼 일을 보고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서 느닷없이 등평도수를 펼친 그였다.
다른 이들은 애초에 등평도수의 경공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지만 호위나 다름없는 마라겸은 따라잡느라 꽤나 고생했다.
본인은 그렇다고 해도 다른 사람들의 눈을 그러지 않았다.
‘저 자도 이 넓은 호수를 주파했단 말인가? 하아…..현 마교는 정말 괴물들 투성이구나.’
속으로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선박 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눈빛에 긴장으로 물들었다.
마교주 천여운 하나도 감당하지 못할 지경이었는데, 그도 모자라 악명 높은 명왕마저 등장했으니 정말 답이 없었다.
모두가 망설이고 있는데 천여운이 죽은 강소아의 머리통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확실하게 해두지. 이번 일은 이 자가 자초한 일이다. 하지만 동료를 잃은 것이 그리 억울하다고 생각된다면 덤벼도 좋다.”
담담한 목소리였지만 오만함이 깃들어 있었다.
물론 그 자격은 충분했다.
천여운은 혼자서 이 선박 위에 있는 모든 자들을 전멸시킬 수 있는 절대고수였다.
분한 듯이 피가 날 정도로 주먹을 쥐고 있던 모용강이 말했다.
“천 교주! 공은 정녕 본 맹과의 관계는 전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오? 시시비비(是是非非)를 떠나서 동맹을 맺은 이상 정도라는 것이 있지 않소!”
이 말에 답변한 것은 천여운이 아니었다.
어느 정도 호흡을 가다듬은 마라겸이 허리춤의 검집에 있던 검을 뽑으며 말했다.
-챙!
“그 말은 본교에서 반대로 묻고 싶은 내용이구려. 동맹의 관계를 중요시 한다는 자들이 야만족에게 본교를 치도록 부탁한 것이오?”
“그, 그것은……”
정곡을 찌르는 말에 모용강이 입을 다물었다.
순간의 노기로 잊었지만 어디까지나 원흉은 강소아 본인과 자신들에게 있었다.
막을 수 있었지만 자신들도 방관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마신에다 명왕이라….’
마라겸의 검 끝에서 느껴지는 예기에 더욱 난처해졌다.
여기서 더 따지고 들어가 봐야 결말은 저들과의 사생결단뿐이었다.
‘아아……애초에 주도권 자체가 본 맹에 없구나.’
방금 전까지만 해도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던 제갈소희가 내심 탄식했다.
이미 어찌할 수 없는 상황임을 받아들여야 했다.
냉정히 말한다면 흉계도 실력이 뒷받침 되어야 수습이 가능하다.
‘이게 힘이 없는 자의 기분인가.’
지금까지 정도 무림맹은 무림을 이끌어가는 입장이었다.
황실뿐만 아니라 전 무림에 그 위세를 떨쳤다.
오랜 세월 동안 사마와 대립했어도 한 번도 밀린 적이 없었는데, 마교에 압도적인 역량의 절대고수가 탄생하면서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누구도 천 교주를 막을 수 없단 말인가. 하아…..’
쓸쓸했지만 그것이 현실이었다.
어쩌면 진정 그들이 걱정해야 하는 적은 극도육무문이 아니라 마교일 지도 몰랐다.
[모용 가주님…..]‘제갈 군사.’
전음을 보내며 고개를 좌우로 젓는 제갈소희의 모습에 모용강이 두 눈을 감았다.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던 강소아가 죽으면서 모든 권한은 이 중에서 직위나 배분이 가장 높은 모용강이 수습할 수밖에 없었다.
-으득!
분한 마음을 이를 가는 것으로 죽인 모용강이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본 파병단은 천 교주와 대립할 생각이 없소이다. 그리고…..이 정도면 충분히 대가를 치렀소. 부디 동맹의 관계를 봐서라도 이쯤에서 끝내길 바라오.”
모두가 긴장된 얼굴로 천여운의 대답을 기다렸다.
모용강의 말대로 이쯤에서 마무리 지으려 했던 천여운이었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휴.”
이런 태도에 모두가 치욕스러워하면서도 내심 안도하고 말았다.
그만큼 마신 천여운의 존재감은 정사마를 떠나서 무서울 정도로 커졌다.
‘이 정도에 안도하는 것인가.’
이런 정도 무림맹 파병단의 반응에 천여운이 속으로 비웃었다.
지금 당장에 강소아가 희생하면서 모든 일이 끝났다고 여기겠지만, 대흉족이 그들을 벼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굳이 알려줄 필요는 없겠지.’
어차피 그들이 결자해지(結者解之)해야 할 일이었다.
강소아가 없으니, 두 팔을 잃은 대흉족의 대족장 아사라의 분노를 파병단이 사이좋게 감당해야할 것이다.
[가시죠. 대호법.]‘!?’
천여운의 전음에 가면 틈새로 비춘 마라겸의 동공이 흔들렸다.
그가 향한 방향은 육검단이 배를 몰고 오는 쪽이 아니었다.
[여기까지 왔으니, 이왕 이렇게 된 김에 먼저 섬으로 가서 기다리는 편이 낫습니다.] [……충!]분명 맞는 말이었지만 마지못해 대답하는 마라겸이다.
겨우 숨을 돌렸는데, 다시 이 광활한 호수를 등평도수로 건널 생각을 하니 까마득하다.
-슉!
먼저 선박의 앞쪽으로 신형을 날리는 천여운을 뒤따라 마라겸도 사라졌다.
배를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점이 되는 그들을 정도 무림맹의 사람들이 한바탕 폭풍이라도 겪은 얼굴로 바라보았다.
모두가 그러고 있을 때 누군가 잘린 강소아의 머리를 두 손으로 들어올렸다.
죽어서도 부릅뜬 그의 눈꺼풀을 감겨주고는 소리 없이 입을 벙긋거리며 묵념을 취했다.
아무도 보지 못한 그의 벙긋거림은,
‘양주여. 그대의 창천을 위한 숭고한 희생은 영원히 기억하겠다.’
놀라운 진실이 드러났다.
무림맹주의 둘째이자 흑영단의 단주 강소아의 숨겨진 정체는 창천회의 다섯 간부 중 한 사람인 양주(陽主)였다.
묵념을 하고 있는 그에게 흑영단의 대주들이 강소아의 시신을 수습하면서 나온 흑영단의 단주패를 제갈소희가 들고 와 넘겼다.
“맥 부관. 힘드시겠지만 파병 임무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그대가 강 단주를 대신하여 흑영단을 이끌어주세요.”
“……알겠습니다.”
냉정한 눈빛으로 단주패를 받아드는 반백의 머리카락에 처진 눈매의 장년인은 흑영단의 부관인 맥위종이었다.
* * *
섬의 남동쪽에 있는 부둣가의 망루 위.
호수 건너편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궁주 대리 단주천이 갑자기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일 장로 설영귀에게 말했다.
“설 장로. 지금 당장 부둣가로 내려가야 할 것 같소.”
“갑자기 어찌?”
그 말에 단주천이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설영귀가 의아한 마음에 그가 가리킨 곳을 쳐다보았는데, 아까 전만 하더라도 보이지 않던 무언가가 보였다.
부둣가에서 충분히 보일 정도의 호수 쪽이었다.
물 위를 평지 달리 듯이 엄청난 속도로 경공을 펼치며 다가오는 인영이 있었다.
“저, 정말 등평도수로 이곳을?”
이에 설영귀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단주천에게 들었을 때는 약간은 허황된 이야기를 듣는 느낌이었는데, 두 눈으로 직접 보게 되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엇?”
그런데 이 고절한 경공을 펼치는 자가 한 명이 아니었다.
약간은 뒤쳐져 있었지만 그럭저럭 속도를 맞춰서 누군가 한 사람이 더 있었다.
“하, 한 사람이 아닙니다. 대…..대체 저 자들은?”
북세외 최고의 고수라 불리는 단주천도 겨우 성공할까 말까한 경공 기예를 두 사람이나 보인 셈이었다.
“일단 저들을 맞이하러 가야 할 것 같소.”
“알겠습니다!”
정확한 정체는 알 수 없었지만 일단은 그들을 맞이하러 가야 했다.
분명한 것은 마교로 추측되는 무리에서 나온 자들이었다.
그들이 서둘러 언덕을 내려와 부둣가에 도착하자, 미리 대기하고 있던 백여 명의 북해빙궁 궁인들이 가슴에 오른손 주먹을 얹고서 고개 숙여 인사했다.
“오셨습니까? 궁주 대리!”
이들은 북해빙궁의 다섯 전투단 중 하나인 설검단(雪劍團)의 무인들이었다.
설검단주 백고중이 궁주 대리에게 아직까지 정도 무림맹의 배가 도착하지 않았다고 보고하려는데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저, 저길 봐!”
“세상에! 호수 위를 뛰어오고 있어.”
“서, 설마 이곳까지 경공으로 넘어왔단 말인가?”
‘요 근래 빙장석에 내력 소진이 많았다고는 해도 무슨 헛소리들을 하는 것이지?’
들려오는 설검단 무인들의 소리에 황당해진 설검단주 백고중이 고개를 돌려 호수 쪽을 바라보았다.
그랬더니 정말로 보였다.
“드, 등평도수?”
놀랍게도 두 명의 인영이 호수를 밟고서 경공을 펼치며 다가오고 있었다.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배를 타고서 건너야 할 거리를 경공으로 건넌 것이다.
“말……도 안 돼.”
입까지 벌어져서 놀라하고 있는데, 어느새 호수 위를 달려오고 있던 두 인영이 부둣가의 정착장을 밟고서 그들이 있는 앞으로 다가왔다.
-웅성웅성!
부둣가가 소란스러워졌다.
정도 무림맹의 파병단이 도착하기도 전에 나타난 이 정체불명의 두 사람은 누구란 말인가?
단주천이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가면을 쓴 사내였다.
‘이 독특한 문양의 가면?’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었다.
중원 무림에 진출하려던 시절, 위협이 될 만한 자들을 알아보기 위해 무림인들 중 가장 명성을 떨치는 무인들에 관한 조사를 했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명왕?”
마교와 관련된 자들 중에서 가면을 쓴 자는 단 한사람뿐이었다.
전장에서 죽음을 주관한다고 알려진 그 남자.
마교의 대호법 마라겸이었다.
‘명왕이라니? 정말 마교에서 파병단을 보냈단 말인가?’
검은 깃발에 적힌 붉은 글씨만으로 마교일지 모른다고 짐작하긴 했지만, 마라겸을 보게 되자 그것은 현실이 되었다.
소궁주 단백현이 정말로 지원요청을 하는데 성공한 모양이었다.
‘잠깐!……마교의 대호법은 분명 교주를 호위하는 자일 터인데?’
옆에 서있는 자는 고작해야 약관에 불과한 청년이었다.
그가 알고 있는 마교주 천유종은 못해도 오십대의 장년인일 터인데, 그러기에는 너무 젊었다.
의아해하는 그에게 청년이 가볍게 포권을 취하며 인사했다.
“대 천마신교의 교주 천여운이라고 하오.”
‘뭐어어어!!!’
주위에 있던 궁인들 모두가 두 눈이 휘둥그레져서 놀라움을 숨기지 못했다.
수뇌부들과 달리 아무 것도 모르던 그들의 입장에서는 당연했다.
-웅성웅성!
‘지금 우리가 잘못 들은 게 아니지?’
‘마교주라니?’
‘마, 마교에서 파병 나온 거야?’
부둣가가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물론 놀란 것은 궁주 대리 단주천 역시 마찬가지였다.
북해빙궁을 대표하는 입장에서 위엄을 지키려고 했지만, 떨리는 두 눈동자를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이럴 수가…..’
망루 위에서 혹시나 했던 예측.
반은 틀렸지만 반은 맞았다.
그가 알고 있던 남마주 천유종은 아니었지만 중원 무림을 삼분하고 있는 마교의 당대 교주가 친히 북해빙궁에 강림한 것이었다.
“어, 어떻게 천마신교의 교주께서 이곳까지?”
놀라서 말까지 더듬는 일 장로 설영귀를 향해 천여운이 쇄기를 박듯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귀 궁에서 보낸 소궁주의 파병 요청을 받고 왔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