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277)
# 88장 진원 쟁탈전 (2) #
폐허가 된 북해빙궁의 바닥에 죽은 듯이 쓰러져 있는 용귀의 거대한 몸체.
머리가 소멸한 몸체의 절단된 부위에서 검은 피가 흘러나왔다.
특이한 것은 이 검은 피에서 전류가 흐르는지 푸른 불꽃이 조금씩 튀어 오르고 있었다.
-파칙! 파칙!
쉽게 다가가기 힘든 느낌에 모두가 그것을 멍하게 쳐다보았다.
일단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용귀의 피를 취하려고 했는데, 어떤 식으로 건드려야 할지 망설여졌다.
하지만 그보다 더욱 그들을 심란하게 하는 것은,
‘이게 용귀의 피!’
‘영물의 피나 진원을 취한 자는 공력이 폭증한다고 하였다. 이런 기회가 쉽게 오지 않을 텐데.’
이를 바라보는 정도 무림맹의 무인들 중에서 탐욕의 눈빛을 보이지 않는 자가 없었다.
물론 그것은 당연한 반응들이었다.
소림사의 진귀한 영단인 대환단만 무림에 풀어놔도 쟁탈전이 벌어지고 난리가 날 터인데, 눈앞에 영물의 피가 넘쳐나는데 탐나지 않는 것이 이상했다.
묘한 눈치싸움만 계속 유지되던 차였다.
“일단 용귀의 피를 시험 해보는 것이 어떤지요? 전설로는 공력을 늘릴 수 있다고 했지만 실제로 그런지는 알 수 없지 않습니까?”
흑영단의 삼 대주 절이명의 말에 다른 이들도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분위기로 몰아간다면 대부분이 용귀의 피를 섭취하는 것이 가능할 지도 몰랐다.
이에 모용강이 반대했다.
“안 되네.”
딱 잘라서 거절하는 말에 분위기가 묘해졌다.
대부분이 용귀의 피를 섭취하고 싶어했는데, 그것을 혼자 반대한 꼴이니 말이다.
이에 모용강이 진지한 목소리로 경고하듯이 말했다.
“영물의 피는 단순히 섭취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닐세.”
“그게 무슨 소리인지?”
“그저 이것을 복용한다고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 본데…”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파치치치치치치칙!
“끄아아아아아아아악!”
북해빙궁 측이 모여 있는 용귀의 몸체 쪽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정도 무림맹의 사람들이 의아한 눈빛으로 그곳을 바라보았는데, 모용강은 당연히 벌어질 일이 벌어졌다는 듯이 말했다.
“들었나?”
“이게 대체 무슨?”
“무슨 소리이겠나? 누군가 죽은 게지. 영물의 피는 희석하지 않은 상태로 그냥 복용하면 육신이 견디지 못하네. 자네들도 저 비명소리처럼 되고 싶지 않겠지?”
마침 북해빙궁 쪽을 살피던 흑영단의 단원 한 명이 다급히 달려와 알렸다.
“바, 방금 들으셨습니까? 북해빙궁 측의 누군가 용귀의 피를 복용했다가 온몸에 뇌기가 잠식해서 새까맣게 타버렸습니다.”
“이럴 수가!”
-웅성웅성!
정말로 모용강의 경고대로 되었다.
모두가 놀랍다는 듯이 그를 바라보았다.
모용강이 이렇게 영물의 피를 복용하면 부작용이 일어나는 사실을 아는 것은 당연했다.
연나라가 건재하던 시절, 그들 모용세가에서 머리가 둘 달린 용귀를 처치한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모용가주께서는 알고 계셨군요?”
“……먼 옛날 본 세가의 선조들이 용귀를 잡았던 적이 있지.”
“아! 그렇다면 가주께서는 이 영물의 피나 진원을 섭취할 방법을 알고 계시겠군요?”
모두가 기대감이 어린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모용강이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당시에 취했던 용귀의 진원을 모용세가의 누구도 섭취 못했다.
“모르신다고요?”
“…..안타깝지만 본 가주 역시도 모르네. 왜냐하면 진원을 본 가로 미처 옮기기도 전에 도둑맞았네.”
“도둑을요? 하!”
기록에는 용귀의 진원은 뇌기의 덩어리 그 자체라 하였다.
푸른 불꽃으로 가득하여 건드릴 수조차 없었기에 사기의 기록에는 이를 옮길 방법을 모색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얼마 있지 않아 한밤중에 뇌기로 덮여 있던 진원이 사라졌다.
“모용세가에서 범인을 놓친 겁니까?”
“……천라지망까지 펼쳤는데, 범인을 끝내 잡지 못했지.”
오히려 범인의 손에 일, 이차 추적단이 모두 전멸 당했다.
그래서 요녕에 있는 모든 군 병력을 동원하여 범인을 험준한 능봉산의 계곡까지 몰아넣었는데, 귀신이 곡할 노릇인지 흔적이 끊겨버렸다.
마치 하늘로 증발한 것처럼 말이다.
사기에는 유일하게 남긴 놈의 흔적은 기존의 중원 무림에서는 본 적이 없는 절세도법의 고수였다는 것만 적혀 있었다.
도법의 고수였다는 말에 모두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꼭 극도육무문이나 극도신의 이야기 같군요.”
그들을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에는 더욱 오래 전의 일이네.”
그 시절은 극도육무문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극도신이 나타나기도 전의 훨씬 예전의 일이었다.
“굳이 따지자면 극도신이 아니라, 천마신교의 개파 시기와 비슷하겠군. 여튼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네. 그보다 어서 이것을 옮기는 방법을 찾는 편이….응? 맥 단주가 보이지 않는군.”
흑영단의 임시단주 맥위종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모용강의 물음에 흑영단의 삼 대주 절이명이 천여운의 절대초식으로 생겨난 거대한 구멍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맥 임시 단주께서는 지하에서 용귀의 진원을 가져오신다고 대주 몇 명을 이끌고 저기로 내려갔습니다.”
“뭣? 언제 말인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대주 절이명의 말에 모용강이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기대로라면 용귀의 진원은 분명 뇌기로 가득할 것이다.
머리 둘 달린 것보다도 훨씬 강한 뇌기를 뿜어댈 것이 뻔한데 무슨 수로 네다섯 명이서 진원을 가져온단 말인가.
‘어쩌자고 본 가주에게 보고하지 않고서.’
그것이 의아했지만 일단은 서둘러 그들을 따라가야 했다.
괜히 섣불리 진원에 손을 댔다가 북해빙궁과 같은 사달이 날 수도 있었다.
“안 되겠군. 서둘러 내려가야 겠네. 제갈 군사!”
“네. 가주님.”
“진법가들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네. 같이 내려가세.”
제갈세가의 진법가들은 기문이서(奇文異書)에 통달하고 박학다식(博學多識)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들이라면 뇌기로 가득한 진원을 옮길 수 있는 방법을 같이 모색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
“모용가주님……정말 괜찮을까요?”
제갈소희는 호법을 서고 있는 마교인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우려가 되는 것은 당연했다.
모용강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후우. 천 교주의 손에 저것이 들어가는 것보다 본 맹에서 진원을 취하거나, 없애는 편이 낫네. 군사도 그의 전율적인 힘을 보지 않았나.”
그 말에 제갈소희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지금도 마교주 천여운의 무공은 천하제일에 가까웠다.
그런데다 용귀의 진원마저 얻어서, 마교의 전력이 더욱 강해진다면 현 중원 무림의 균형은 완전히 무너질 것이다.
머지않아 마교의 천하가 될 지도 몰랐다.
“……알겠습니다.”
고민하던 제갈소희가 결국 모용강의 말에 동의했다.
당장에 문제가 생길지언정 훗날을 위해서라도 진원을 없애는 편이 좋다고 생각했다.
“서두르세.”
모용강은 서둘러 파병단을 이끌고 거대한 구멍으로 향했다.
한편 북해빙궁 측,
-파치치치치치칙!
“끄아아아아아아아악! 사, 살려….”
-파스스슥!
온몸이 뇌기로 푸른 불꽃에 뒤덮인 사내가 검게 그을려 죽음을 맞이했다.
모두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이를 망연자실하게 바라보았다. 한 번의 실패를 겪고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호기를 부린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말았다.
“어째서?”
궁주 대리 단주천조차 이를 이해할 수 없었다.
용귀의 피에서는 영단에서 느껴질 법한 강한 진기의 유동이 느껴졌다.
이것을 복용한다면 공력을 올릴 수 있을 거라 여겼는데, 뇌기조차 이기지 못하고 두 명이나 죽고 말았다.
“공. 아무래도 무리해서 섭취하는 것은 삼가야 할 것 같습니다. 차라리 피를 얼려둬서 뇌기를 분산시키는 편이 어떻습니까?”
일 장로 설영귀의 말에 다른 이들도 공감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두 사람을 통해서 확인되었다.
피를 섭취하기 이전에 뇌기부터 해결하는 편이 낫다고 여겼다.
“…..그 편이 낫겠군. 다른 장로들도 동의하나?”
“저도 그렇습니다.”
“일 장로님의 말이 맞습니다.”
단주천의 물음에 다른 장로들도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런데 한 사람의 대답이 들리지 않았다.
“원 장로?”
의아한 마음에 주위를 둘러보았는데, 육 장로 원상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죽은 장로 두 명과 오 장로 설이정이야 빙장석 봉인을 지키고 있다지만, 아까 전까지 멀쩡히 용귀와 싸우던 이가 사라졌다.
수상쩍게 여기고 있는데 설검단의 백고중이 달려와 다급히 보고했다.
“궁주 대리. 지금 정도 무림맹의 파병단이 뚫려 있는 지하로 내려가고 있습니다.”
“이런!”
그들이 지하로 향한다는 것은 그 목적이 뻔했다.
“용귀의 진원을 노리고 있구나.”
용귀의 피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이 진원이었다.
영물의 모든 영력이 모여 있는 진원이야말로 진정한 보물이다.
“공! 저들에게 진원을 빼앗기면 안 됩니다.”
“저희도 지하로 가야 합니다.”
사태가 급박하다고 여긴 장로들이 시급함을 알렸다.
같은 생각이었던 단주천이 주위에 있는 모든 장로들과 단주들에게 당장 지하로 향할 채비를 하게 했다.
그리고 설검단의 단주 백고중에게 명했다.
“백 단주. 지금 당장 빙장석 봉인이 있는 지하 동굴로 가서 오 장로에게 전력이 무사하다면 용귀가 이곳까지 뚫은 통로를 따라서 오라고 하게.”
“알겠습니다!”
오백여 명이나 되는 전력이 무사함을 단주천은 다행스럽게 여겼다.
자신들이 정도 무림맹을 따라서 지하로 들어가고, 오 장로 설이정이 오백여 명을 이끌고 반대편을 압박한다면 진원이 탈취되는 일은 막을 수 있을 것이다.
* * *
궁주 대리의 명을 받은 설검 단주 백고중과 부단주 오영은 서둘러 빙장석 봉인이 있는 민둥산으로 경공을 펼쳤다.
얼마 있지 않아 그곳에 도착한 백고중은 가장 높은 민둥산의 동굴 입구로 들어갔다.
그런데 밑으로 내려갈수록 뭔가 이상했다.
“뭐지?”
“단주…..왠지 피 냄새 같습니다.”
코끝을 자극하는 역한 냄새가 동굴 지하 깊은 곳에서 풍겨졌다.
묘한 불안함에 사로잡힌 백고중이 서둘러서 내려갔는데, 지하 공동에 도착한 그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어, 어떻게 이런 일이?”
빙장석 봉인을 지키고 있어야 할 오백 명의 전력이다.
그런데 넓은 공동에 격렬한 싸움의 흔적과 함께 수많은 시신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얼핏 보아도 오백 여구의 시신이다.
이것은 용귀가 빙장석을 깨고 나와서 벌어진 전투의 흔적이 아니었다.
“대체 누가 여길 급습했단 말인가?”
시신들의 자상을 보면 분명 무력 단체와 부딪쳐서 죽음을 당한 것이 틀림없었다.
“단주 여길 보십시오!”
대체 누가 습격한 것인지 시신들을 살피던 오영은 수많은 피가 묻은 발자국들이 어딘가로 향하는 것을 발견했다.
그곳을 따라가자,
“이런……”
빙장석을 깨고서 깊은 지하로 들어가는 길이 열렸다.
누군가 용귀와 전투가 벌어지는 틈에 이곳을 급습하고 지하로 들어간 듯 했다.
-으득!
“대체 누가 이런 본 궁의 뒤통수를 쳤단 말인가!”
분노를 참지 못한 백고중이 이를 갈았다.
그러다 이럴게 아니라고 여겼는지 다급히 말했다.
“자네는 당장 돌아가서 궁주 대리께 보고하게!”
“다, 단주께서는?”
“나는 이들의 흔적을 따라서 추적하겠네. 서두르게. 그래야 궁주 대리께 보고할 수 있을 걸세.”
“알겠습니다!”
오영이 출구로 나가는 것을 확인한 설검단주 백고중이 서둘러 깨져 있는 빙장석의 틈으로 들어갔다.
* * *
-파치치치치칙!
전신의 경맥을 타고흐르는 뇌기(雷氣).
그것을 제어하기 위해 천여운은 운기조식에 집중했다.
가장 효율적인 운기 방식은 천마검공의 운기법이었지만 이것은 몸을 움직여가며 식(式)을 펼쳐야 했기에 이십사마검에 수록된 운기법을 택했다.
천마검공만큼은 아니었지만 좌식 심법 중에서는 가장 탁월한 효과를 지녔다.
뇌기로 몸을 가누기 힘든 상황에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후우!”
-파치치치치칙!
호흡을 들이쉴 때마다 전신에서 뇌기로 인한 푸른 불꽃이 번쩍거렸다.
익숙하지 않은 뇌기가 경맥을 자극하며 내기의 흐름을 방해했으나, 이를 천마기가 보호하고 있었다.
중단전에 자리 잡고 있는 천마기만 아니었다면 뇌기를 완전히 통제하지 못해서 전신의 경맥이 터졌을 지도 몰랐다.
‘나노가 자가수복으로 경맥을 보호해준다면 더 빠르게 회복할 텐데.’
천마기만으로는 속도를 박차할 수가 없었다.
자칫 서둘렀다가 뇌기에 경맥이 손상되어 진기가 폭주할 수도 있었다.
나노에게 이상이 생긴 것이 이렇게 아쉽게 다가올 줄은 몰랐다.
그렇게 뇌기를 잡는데 집중하던 순간이었다.
-파치치치칙!
[오류! 오류! 시…스템…에 오류….가 발생했….습니다.]‘나노!’
갑자기 머릿속에 들려오는 나노의 목소리에 천여운은 다급히 그를 불렀다.
그러나 나노는 그의 말에 답하지 않고 계속 오류를 반복했다.
‘나노. 상태가 많이 안 좋은 거야?’
걱정스러운 마음에 물었는데, 눈을 감고 있는 천여운의 시야로 변화가 일어났다.
눈꺼풀로 덮여 있는 동공이 빠르게 흔들리며 흰 빛의 입자가 선을 그리더니, 이내 증강현실이 개안되었다.
‘어째서 증강현실이?’
-치치치치칙!
[오….류로 영상 저….장…장치의…락(lock)이….일시적으로…..해제 되었습니다. 서둘러 시스템 오류를…자가…복구…..]-치치치치칙!
나노의 목소리가 끊기더니, 이내 증강현실에 지금까지는 보지 못했던 공간이 생겨났다.
그것은 예전에 나노가 천여운이 보았던 과거를 영상으로 녹화해두어서 3D(Three D imensional) 증강현실로 구현한 것과 같은 현상이었다.
‘여긴 대체?’
천여운의 눈앞에 지금까지와는 다른 세계가 펼쳤다.
주변에 수많은 입체 영상을 띄우는 기기들이 놓여 있었고, 그 공간에는 알 수 없는 기계들로 가득했다.
유일하게 한 가지 익숙한 것이 있었는데, 벽면에 그려진 천마신교를 상징하는 검은 배경에 붉은 글씨로 적힌 천(天)이라는 그림이었다.
그 밑에 한자가 아닌 나노가 머릿속에 주입해주었던 영어로 글씨가 적혀 있었다.
[SKY Corporation, development room](스카이 코퍼레이션, 연구실)
천여운은 이해할 수 없는 이 영상에 떨리는 눈으로 증강현실의 상단 부분에 흰 빛의 입자가 그리는 숫자를 쳐다보았다.
[AD.year.2940.12.24]‘대체……이 영상 기록은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