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278)
# 88장 진원 쟁탈전 (3) #
벽면 전체가 처음 보는 재질로 가득하다.
돌도 아니고 나무도 아닌 차가운 철로 만들어진 벽은 처음 본다.
게다가 반대편이 비춰지는 투명하고 얇은 벽도 있었는데, 천여운은 본능적으로 이 장소가 현 중원 무림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상에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그가 보았던 것을 3D 입체 영상으로 구현했을 때는 덜컹거리면서 자연스러웠는데, 한 곳에 고정시켜놓은 느낌이었다.
‘이것도 락이 걸려있던 기록인건가?’
나노에게 뭔가를 물어봤을 때 시스템에 락(lock)이 걸려있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그런데 아까 전에 오류로 락이 해제되었다니, 그에게 밝히지 않았던 숨겨진 영상임이 분명했다.
‘이 상태로 움직일 수 있을까?’
하고 정신을 집중했지만 여전히 시야가 고정된 상태이다.
‘나노! 나노!’
몇 번이나 나노를 불렀지만 아무 대답이 없다.
오류 때문에 보여주는 것 같은데 그저 이 공간만 계속 보인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답답해하던 차였다.
-위잉!
‘엇?’
좌측 벽면의 문이 좌우로 갈라지며 자동으로 열렸다.
그러더니 괴상한 복장에 눈에 뭔가를 쓰고 있는 한 삼십대 초반의 청년과 백의의 중년인이 들어왔다.
그런데 저 괴상한 복장이 눈에 익다.
오래 전의 일이라 기억이 흐릿한데 분명 본 적이 있다.
그때 백의의 중년인이 입을 열었다.
“천 이사도 고집이 대단하군. 눈에 나노 머신을 이식했으면 시력문제로 그런 안경 따위는 굳이 쓰지 않아도 되지 않은가. 쯧쯧.”
“에이 박사님도 참. 안 그래도 신분칩도 위험한데, 나노머신까지 이식받으면 T.P의 추적이 빨라질 거라는 거 아시잖아요?”
그 말에 박사라 불린 중년인이 혀를 내둘렀다.
이를 지켜보는 천여운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분명 알아들을 수는 있는데, 그들이 나누는 대화의 내용이 뭔가 어렵다.
‘나노머신이라면 나노를 말하는 건가? T.P는 대체 뭐지?’
그런 의문과 별개로 그들의 대화는 계속되었다.
“백 박사님. 몸속에 신분칩은 제거할 방법이 없을까요?”
“자네한테 몇 번이나 설명했지 않나. 칩이 정지하면 주민자치센터에서 사망 확인에 들어온다고. 그리고 혈액을 타고 흐르는 칩을 제거하려면 모든 혈액을 투석해야 하는데, 그리 하면 자네의 무공을 상실할 수도 있는데 괜찮나?”
“아…..”
그 말에 괴상한 복장의 청년이 인상을 찌푸렸다.
무공을 잃는다는 말이 신경 쓰인 모양이었다.
“꼭 혈액 투석이 아니더라도 일렉트릭 쇼크나 혹은 EMP(Electromagnetic Pulse, 전자기펄스)로 정지시키는 방법도 있지 않을까요?”
“신분칩에 EMP 캔슬러가 장착되어 있는 걸 알면서 그러나? 그리고 천 이사도 알다시피 일렉트릭 쇼크로 칩의 고장을 유도하려면 천만 볼트가 넘어야 할 텐데……후, 죽고 싶다면 말릴 생각은 없네만, 마도 연수원에 가있는 자네 동생이 참 좋아하겠군.”
“으으으으, 이래저래 쉬운 방법이 없네요.”
“듣기로는 오 단계 테스트도 통과했다던데, 자네 자리가 공석이 되면 육 단계 테스트도 치루지 않고 이사진에 합류할 수 있겠군.”
“…….그렇게 쉽게 이사진에 들어오게 할 순 없죠. 저도 겨우 몽 전무를 꺾고 들어왔는걸요.”
자신의 고집이 아무 소용이 없음을 받아들인 천 이사라 불린 괴상한 복장의 청년이 천천히 공간을 돌아다니다가, 이내 천여운의 시야가 보이는 쪽으로 다가왔다.
‘아….’
그런데 시야에 떨어져있을 때는 몰랐는데, 청년의 얼굴이 묘하게 자신과 닮았다.
새하얀 얼굴에 날카로운 눈매하며 모르는 이가 본다면 친형처럼 볼 지도 몰랐다.
‘엇?’
청년이 갑자기 천여운의 시야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더니 그의 시야가 손가락 틈 사이에 갇혀서 허공으로 들려졌다.
마치 물건을 들 듯이 손에 쥐고서 자신을 이리저리 살펴보는 것에서 이질감을 느꼈다.
‘뭘 하는 거지?’
의아해 하는데 천 이사라 불린 청년이 고개를 돌려서 백 박사에게 말했다.
“이 액체가 최초의 7세대 나노머신이라…..노벨 과학상이 날아가서 어떡하죠? 박사님.”
“…..그러게 말일세. 그놈의 종신 연구 계약서만 아니면 단번에 스웨덴으로 샘플을 들고 포탈을 탔을 텐데 말이야.”
“푸하하핫, 그런 농담도. 어차피 게이트에서 추출된 불법 금속이라 구할 수도 없고, 법적으로 안 되는 거 아시잖아요.”
“복수하는 겐가?”
천 이사의 말에 백 박사가 못마땅했는지 절레절레 흔들었다.
“박사님. 혹시 해서 하는 말인데, 7세대를 양산할 만큼 게이트 금속이 남아 있던가요?”
“그리 많았다면 이미 게이트 키퍼들이 영장을 들고 오지 않았겠나. 아니면 게이트 저 편의 놈들이 들이닥쳤을 지도.”
“하긴…..쩝 아쉽네요. 고작 한 명분이라니.”
아무리 집중하고 들어봐도 그들의 대화는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대화에 섞여있는 영어 단어들의 뜻으로 풀이 해봐도 뭔가를 지칭하는 단어들이라 연결해서 해석하기 힘들었다.
“추적이 불가능한 나노머신을 양산화할 수 있다면 대박인데.”
“그리된다면 스카이 코퍼레이션이 그날부로 탈법 회사로 등극하게 되겠지. 후우, 솔직히 말하면 나는 자네의 의중을 모르겠네.”
백 박사가 그를 향해 다가오며 계속 말을 이어갔다.
“7세대 나노머신의 시스템 대부분에 락을 걸어두었기는 하지만 타임포탈의 자기장에 견딜 수 있고, 추적이 불가능한 기기를 먼 과거의 인물에게 넘기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지 않나?”
“어차피 시간 축이 달라져서 다른 차원이 된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럼 굳이 현 세계에 영향을 받지 않을 텐데 왜 그렇게 걱정하시나요?”
천 이사라 불린 청년이 별 걱정을 한다며 손을 휙휙 휘저었다.
그러나 백 박사는 여전히 염려가 되는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도 남마주, 완절마제의 집권기 때, 극도육무문의 개파를 막으면 블레이드 식스 그룹이 없어질 거라 믿나? 그들이 정부와 손을 잡은 초기업인 이상 어찌할 수 없다는 것 정도는 자네도 알지 않나?”
유일하게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 나왔다.
‘남마주?’
남마주는 태상교주 천유종의 별호였다.
그런데 완절마제(腕絶魔帝)는 대체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
‘완절마제? 팔을 자르는 마제라는 말인가?’
처음 들어보는 별호인데 묘하게 익숙하게 들렸다.
그런데 이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마치 이곳이 현재가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만류하는 백 박사의 말에 지금까지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일관하던 천 이사가 다소 냉담해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박사님은 늘 시간 축이 달라져서 막지 못할 거라고 했죠. 하지만 히스토리언 극도신은 어찌 설명하실 거죠?”
“……그게 무슨 말인가?”
-부시럭!
천 이사가 자신의 좌측 허리춤에 차고 있는 가방에서 작은 기기를 꺼냈다.
그리고 작은 기기의 어딘가를 가볍게 누르자, 강렬한 빛과 함께 홀로그램이 형성되었다.
-위잉!
홀로그램에는 짙은 눈썹에 강인한 인상의 중년인의 얼굴이 나타났다.
그 옆에는 증강현실에서 구현된 것처럼 흰 입자가 글씨를 그렸다.
[극도신(極刀神)출생: AD 1967.XX.XX ~
학력: 북경 무술 대학 도법학 박사
수상: 중화인문공화국 주석상: AD.2018.XX.XX
유엔 평화공로 표창: AD.2352.XX.XX
아시아 게이트 키퍼 공로상: AD.2380.XX.XX
……………….
경력: AD 2013. 북경 무술 대학 도법학 교수.
AD 2025. 북경 무술 대학 총장.
.
.
AD 2134. 블레이드 식스 그룹 1대 총수.
AD 2225. 블레이드 식스 그룹 명예 회장.]
그 외에도 수많은 정보들이 나왔다.
천여운은 이것을 보면서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극도신이라고 하면 극도육무문의 전신이자 과거 검마 공과 싸우다 사라진 자가 아닌가.
그런데 여기에 적혀 있는 것을 보면 근 천 년이 넘게 살아온 인간이다.
‘대체 이게 무슨 말이지?’
혼란스럽기마저 했다.
그저 동명의 누군가를 기록한 자료일지도 몰랐지만 가슴이 진정되지 않았다.
이런 그의 감정과 별개로 천 이사라 불린 청년이 홀로그램을 보면서 말했다.
“인류의 재앙이라 불리는 디멘션 게이트를 혼자서 여섯 개나 부순 영웅, 천 년을 넘게 살아온 역사의 도표, 지상최강의 생명체. 온갖 수식어가 붙은 이 자가 정말 순수한 무공만으로 이 긴 세월을 살아왔다고 생각하나요?”
천 이사가 이렇게 말을 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있었다.
“무공이 퇴화한 현재에 의학이나 기술의 도움없이 오래 산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많은 키퍼들과 무의 종맥을 이어나가시는 분들이 그분께서는 자연경(自然境)의 경지에 오른 전설이라고 인정하지 않았나?”
“누구도 오르지 못했으니 제대로 증명할 길이 있나요?”
백 박사의 말에 천 이사는 대번에 부정했다.
이 시대의 무공은 과거와 비교해 매우 퇴화한 듯 했다.
그렇게 무공이 퇴화한 시대에서 자연경의 경지에 오른 극도신은 전설이자 살아있는 신적인 존재였다.
“크흠, 그렇게 따지자면 본사에서 유일하게 초절정의 경지에 오르신 회장님께서도 인정하신 일인데 납득하지 못하겠는가?”
“…………”
“나노머신이나 신분칩을 체내에 지니고 있으면 타임 패트롤의 추적을 받는 것을 자네도 알지 않나? 그래서 7세대 나노머신 개발을 부탁해놓고서 그런 지나친 억측을 하는 것은…..”
“억측이 아닙니다.”
-위잉!
천 이사라 불린 청년이 기기의 다른 곳을 눌렀다.
그러자 극도신의 정보가 적혀있던 홀로그램이 사라지고 수많은 사진들이 나타났다.
이것들은 굉장히 오래된 사진들을 스캔해서 웹상에 올린 자료들이었다.
[극도신 그는 정말로 1967년에 태어난 것일까?]라고 의문을 제기한 사진들이 몇 개 있었다.
놀라운 것은 사진들의 밑에는 1870.XX.XX 라고 현상되어 있는데, 그 안에는 홀로그램에서 보았던 극도신이 우연히 찍혀 있었다.
“이건 어떻게 설명할 겁니까? 그저 웹상에 떠도는 괴소문이라고요? 그리고….”
-위잉!
또 다시 홀로그램이 전환되었다.
그런데 이번에 나타난 스캔된 자료는,
‘천마신교 사기(史記)?’
그것은 역대 천마신교의 역사를 기록한 서적이었다.
서적에 뭔가 금제가 걸려있는지, 천 이사가 망막 스캔부터 시작해 비밀번호를 치면서 복잡한 과정을 거치자 홀로그램의 책이 펼쳐졌다.
“자, 잠깐 기다리게. 천 이사. 히스토리 자료는 천 가 직계만 볼 수 있지 않나?”
백 박사가 당혹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돌렸다.
이에 천 이사라는 청년이 괜찮다는 듯이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상관없습니다. 필요한 부분만 보여드릴 거니까요.”
‘천 가의 직계라니?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지? 그리고 어째서 본교의 사기가 이런 3D영상으로 남겨져 있는 거야?’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십만대산의 만년한철로 만들어진 금고에 보관되고 있어야 할 천마신교의 사기가 한 개인이 3D영상으로 보관하고 있었다.
게다가 기존의 서적보다도 훨씬 낡아보였다.
그때 천여운의 눈으로 활짝 펼쳐져 있는 사기의 기록 중에서 낯익은 이름이 보였다.
-이십사대 교주. 완절마제 천여운.
‘완절마제 천여운?’
어안이 벙벙해졌다.
어디선가 익숙하다고 느낀 그 별호의 뒤에 자신의 이름이 붙여져 있었다.
천여운은 떨리는 눈으로 그것을 살피려고 하는데, 청년이 손으로 홀로그램을 휘젓자 한참 뒷장으로 사기가 넘겨졌다.
‘젠장!’
굉장히 궁금하던 차였는데, 굉장히 아쉬웠다.
하지만 확실하게 알게 된 것이 있었다.
많이 혼란스럽기는 해도 지금 보고 있는 이 영상은 어쩌면 먼 훗날의 미래일지도 모른다고 여겨졌다.
‘미래…..라고? 이게 정녕 가능한 일인가?’
이렇게 되자 나노의 존재가 점점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대체 어떻게 그가 자신에게 들어온 것인지는 몰라도 현 시대의 물건이 아닐 지도 몰랐다.
수많은 정보부터 시작해 신체의 자가 복구 등 여러 신기한 능력들로 의구심을 품기는 했었지만 그 비밀이 점차 드러나고 있었다.
-칠대 교주. 마검제 천무휘.
‘아!’
천여운이 속으로 탄성을 내뱉었다.
그것은 극도신이 최초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 적혀 있는 시기였다.
처음에는 좌호법 이화명에게 이야기를 들었지만 후에 교주로 취임하고 나서 금고에 보관된 사기를 통해서 자세히 알게 되었다.
“이게 어떻게…..”
천 이사라 불리는 청년이 보이는 홀로그램 사기의 내용을 살피던 백 박사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칠대 교주께서 극도신에게 살해당했다니? 어찌 이런 일이…..허어….”
천가의 직계 이외에는 누구도 보지 못하는 사기였기 때문에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다.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하는 백 박사에게 천 이사가 말했다.
“……..만약 지금의 시간축이나 현실이 블레이드 식스에서 과거를 조작한 것이라면요? 현 무림에서도 퇴화한 무공이 어째서 블레이드 식스에서만 원형 그대로 유지가 될까요?……백 박사님은 이 같은 일들이 전혀 의심가지 않나요?”
진지한 그의 물음에 백 박사가 한참을 떨리는 눈동자로 멍하게 있다가 입을 열었다.
“이게 사실이라면…..가능성이 없지 않군. 어째서 이 정보를 공개하지 않은 건가?”
“박사님이 말씀하신 이유 때문이죠.”
“설마…..시간 축 때문인가?”
“네. 시간 축으로 일어난 일이라면 어차피 지금 이 현실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이고…..게다가 설사 시간 축이 아니라 정말로 과거를 바꾸게 되는 것이라면 이 현실이 사라지거나 바뀔 테니까요.”
나비 효과라는 말이 있다.
작은 간섭으로도 훗날에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
천가의 직계들은 의구심을 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쉽게 바꿀 생각을 하지 못했다.
자신들이라는 존재가 어찌 바뀔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잠깐 기다리게. 그렇다면 자네는 이걸 전부 감안하고도 타임포탈을 타겠다는 것인데, 정말 자네의 목적이 그것뿐인가?”
“네?”
“그런데 어째서 자네의 슈트 케이스에 타임포탈팩이 다섯 개씩이나 있는 겐가?”
백 박사가 가리킨 곳은 그의 허리춤에 있는 주머니였다.
홀로그램을 형성하는 기기를 꺼내느라 열려있는 주머니 속에 들어있는 무언가를 발견한 모양이었다.
“왕복만 할 것이라면 두 개만 있으면 되는데 어째서 다섯 개를 구한 건가? 설마 자네 단순히 나노머신을 주입하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라…”
바로 그 순간이었다.
-픽!
증강현실로 구현되었던 영상이 중지되었다.
앞이 온통 캄캄해졌다.
‘뭐, 뭐야?’
굉장히 중요한 말을 하려던 것 같았는데 중간에 멈추는 바람에 천여운이 멍하게 어둠을 바라보았다.
완전히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뭔가 과거에 관련된 내용을 말하는 것 같았다.
알아야만 할 것 같은데 끊겼으니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그의 머릿속으로 나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락(lcok)이 걸려있는….영상….기록이 공개….되는 것을 중지시켰…습니다. 빠르게 오류를 복구하….]-파치치치치칙!
‘크윽!’
다시 전신을 타고 흐르던 뇌기가 발작했다.
그와 동시에 나노의 목소리가 다시 끊겨버렸다.
-부르르르르! 픽!
‘엇?’
눈앞이 푸른 섬광이 번쩍이더니, 중지되었던 증강현실이 다시 제멋대로 발동되었다.
그런데 하얀 입자가 선을 그리고 표기된 것에 비해 앞은 여전히 깜깜하고 시야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대신 소리는 들렸다.
-탁탁탁!
뭔가 달리면서 이리저리 부딪치는 소리였다.
그것이 한참 유지되던 차에 익숙한 목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분명 이쯤일 텐데.”
천 이사라 불렸던 그 삼십대 초반 청년의 목소리였다.
어째서 목소리만 들리는지는 모르겠지만 청년은 무언가를 찾는 것 같았다.
그때 허공을 가로지르는 파공음이 들렸다.
-푸슉! 번쩍!
“끄아아아악!”
파공음이 한 번 날 때마다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대략 여섯 명 정도는 죽은 것 같았다.
그들을 해결했는지 바스락 거리는 소리와 다시 천 이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으음, 패에다 신분을 새겼구나. 보자……호위전? 아…..이런! 잘못 짚은 건가? 이 자들은 완절마제를 보호하려던 자들이었나? 젠장!”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자책하던 천 이사가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가까운 곳에서 병장기 소리가 들려왔다.
-챙! 챙!
“찾았다.”
또다시 어두운 시야로 바스락 거리는 소리와 함께 예의 파공음이 들렸다.
이번에는 제대로 죽인 것인지 비명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그러다,
“으아아아아아악!”
누군가 도망치는 소리가 들렸는데, 또다시 파공음과 함께 그 소리가 멎었다.
죽은 모양이었다.
그때 아주 작은 소리로 들리는 목소리에 천여운의 눈동자가 심하게 떨려왔다.
“꼴좋다.”
익숙하다 못해 변성기가 오기 전까지 한참은 들어왔던 목소리다.
설마 하는 생각에 천여운은 답답해지기마저 했다.
이 어둠이 가셔서 앞을 보고 싶었다.
그때 천 이사라 불렸던 청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야. 우리 조상님은 죽어가는 마당에 기분이 좋으신 가봐.”
그 순간 천여운은 충격이라도 받은 것처럼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을 느꼈다.
익숙한 모습, 익숙한 목소리라고 생각했던 것은 착각이 아니었다.
‘서…..설마?’
-삐빗삐빗!
뭔가 알림음과 함께 천 이사가 당혹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벌써 발견한 거야? 젠장! 별 수 없네. 좀 더 일찍 와서 사용 방법도 알려주려고 했는데.”
-달칵!
그 말과 함께 어두웠던 시야가 밝아졌다.
드디어 소리뿐만이 아니라 앞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밝아진 시야로 천천히 누군가가 자신을 손으로 쥐고서 들어 올리는데, 손가락 틈 사이로 보이는 광경에 천여운은 충격을 금치 못했다.
‘마…..말도 안 돼!’
그것은 출혈로 죽어가고 있는 어릴 적의 자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