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279)
# 88장 진원 쟁탈전 (4) #
자신의 모습을 눈앞에서 제 삼자의 시점으로 본다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다.
천여운의 지금 기분은 색다른 경험보다 혼돈 그 자체였다.
‘나…..자신이라니…..’
사 년 전 암살자들에 의해 부상을 입고 죽어가던 때였다.
출혈로 정신이 혼미하던 상황이었기에 자신을 구했던 것이 장 호위라고 여겼었다.
그러나 머릿속에 어렴풋이 남아있던 기억은 거짓이 아니었다.
[이야. 우리 조상님은 죽어가는 마당에 기분이 좋으신 가봐.] [우우! 보는 내가 따끔하네. 이제 됐다. 어이 조상님?] [부디 성공해서 이 후손도 덕 좀 봅시다. 사용 방법은 나노 머신이 최신형이라서 쉬울 테니까 알아서 잘 터득해 봐요.]천 이사라고 불리는 이 괴상한 복장의 청년.
그가 했던 말들이 영상의 기록과 겹쳐서 머릿속을 울렸다.
‘조상님…..조상님……’
멍해진 그는 계속 같은 단어만 떠올렸다.
혼돈과 복잡함으로 가득해졌던 머릿속이 어느 순간 맑아졌다.
두 차례에 걸친 락(lock)이 걸린 영상 기록을 통해 확실하게 알 것 같았다.
‘이….자는 내 후손이구나!’
짐작이 아니라 그것은 확실한 사실이었다.
아직까지 기록에 남기지도 않았는데 적혀 있는 천마신교의 사기(史記)부터 시작해 벽면의 천마신교의 문양까지, 모든 정황을 살펴보면 나노는 먼 미래에서 만들어진 존재가 틀림없었다.
‘그런 것이었나.’
믿기지 않지만 현실이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준 나노의 능력은 먼 미래의 후손이 가져다 준 기연인 것이다.
진실을 받아들이자 좁게만 보이던 시야가 넓어진 기분이었다.
‘그렇게 먼 미래에도 본교가 존재했구나. 하!’
탄성이 절로 나왔다.
신기했다.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 속에도 천마신교는 그 맥을 이어온 것이다.
어찌 생각한다면 감격스러운 일이었다.
‘잠깐….그런데 미래의 본교의 사기에는 내 별호가 마신이 아니었어.’
사기에 적혀있는 별호는 완절마제.
왠지 어떤 이유에서 그 별호가 붙었는지 짐작은 갔지만 애써 그것은 무시했다.
‘아아! 별호가 다르다는 것은 미래의 후손이 내게 나노를 주면서 현실이 바뀐 것이로구나.’
이런 생각을 그의 후손이 들었다면 통찰력에 놀라워했으리라.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일지도 몰랐는데 이것을 받아들인 데는 나노를 통해 미래의 기술을 접했던 것과 생사경의 경지에 오르면서 폭이 넓어진 사고관 때문이었다.
‘미래의 후손은 과거를 바꾸려고 한다고 했다.’
영상 기록을 보는 내내 가장 걸려했던 부분이 있었다.
그것은,
‘극도신!’
그가 영상기록에서 보았던 미래가 앞으로 벌어질 사실이라면 극도신이라는 존재의 정체는 대체 무엇일까?
홀로그램의 정보에서 극도신은 천 년을 넘게 살아온 존재였다.
그런데 그들의 대화나 천마신교의 사기에 남겨진 기록을 보면 그보다도 훨씬 오래 전에 나타난 인물이었다.
‘우연히 이름이 같은 것일까?……아니야. 그러기에는 극도신무….아!’
극도신을 생각하던 천여운은 문득 무언가를 떠올랐다.
생각해보니 극도신이 처음 등장했던 칠대 교주 천무휘 시절보다도 훨씬 전에 천마 조사가 폐검곡에서 겨뤘던 극도신무의 흔적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상했다. 마도관의 지하보고에 있던 도흔보다도 폐검곡 낭떠러지 절벽에 있던 도흔들이 훨씬 더 발전해 있었다.’
덕분에 천여운은 약점이 더욱 보완된 극도신무를 익히게 되었다.
사고가 거기에까지 미치자 천여운은 미래의 후손이 제기 했던 부분이 납득이 갔다.
내공 심법도 아니고 초식은 시간이 흐를수록 발전할 터인데 오히려 더욱 과거의 초식이 뛰어나다는 것은 괴리감이 있었다.
‘정말 극도신은 먼 미래에서 거슬러온 자일까? 그런데 어째서 놈은 더욱 과거로 향한 것이지?’
그 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때 천여운이 보이는 시야가 어린 시절의 자신에게 주사기를 통해 주입되려고 하던 차였다.
-픽!
증강현실로 구현되던 영상이 갑자기 끊겼다.
그리고 푸른 섬광이 번쩍거리며 머릿속이 따끔거렸다.
-파치치치칙!
‘큭!’
어지러 우려고 했는데, 아까 전과 같은 소음이 들리지 않고 증강현실 속의 흰빛의 입자가 선을 그리며 글씨를 만들어내더니 익숙한 목소리가 머릿속을 울렸다.
-우우우웅!
[에너지의 과부하와 강한 전류로 인한 칩 손상의 자가 복구가 완료되었습니다.]‘나노!’
드디어 나노가 자신의 수리를 마친 것이었다.
‘나노! 이제 괜찮은 거야?’
그 물음에도 불구하고 나노는 계속해서 자신의 상태보고를 알렸다.
[나노머신을 구성하는 게이트리늄이 현재의 에너지 충전율과 전류를 감당할 수 있도록 업그레이드가 완료되었습니다.]-우우우웅!
‘업그레이드?’
놀라운 성능이었다.
이것을 미래의 과학 기술자들이 들었다면 경악할 일이었다.
물론 일반적인 금속 물질이었다면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나노를 구성하고 있는 게이트리늄이라는 금속은 지구상의 물질이 아니기에 가능한 업그레이드였다.
충격에 대해서 스스로 학습하는 금속.
그것이 유일무이한 칠 세대 나노머신의 핵심 기술이었다.
천여운의 몸속에 존재하는 천마기, 화기, 극음의 기운을 견뎌낸 것도 이 기술이 바탕이 되었기에 가능했다.
[자가 복구를 진행하던 도중 걸려있던 일부 락(lock)이 강제로 해제되었습니다. 다시 락을 지정하시겠습니까? Y/N]‘!?’
락이 풀렸다는 표시에 천여운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어떤 식으로 부탁, 명령을 해도 절대로 풀리지 않은 잠금장치가 풀렸으니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사 년 동안 허락되지 않은 능력에 의구심이 든 그가 물어보았다.
‘락을 굳이 지정하지 않아도 괜찮아?’
무턱대고 풀어달라고 하는 것이 망설여지는 것도 당연했다.
[락을 지정하지 않으면 사용자가 시스템에 잠금 되어 있던 기능들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혹시 어떤 기능들인지 볼 수 있을까?’
[알겠습니다.]나노의 목소리가 끝나자, 증강현실 속에 락이 해제된 기능들이 표기되었다.
어떤 기능들인지를 살피는 천여운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공개된 기능들 중에서는 기존에 천여운이 가능하냐고 물었을 때, 락이 걸려서 사용불가라고 했던 것들이 상당수 껴있었다.
‘이게…..정말 일부야?’
일부라고 하기에는 상당히 많았다.
거의 육십여 가지 기능들의 락이 해제되었는데, 정말 이게 가능한 것인가 의문이 드는 것들이 대다수였다.
[체내에서 생성되는 전류 에너지 이외에 충전이 가능해지면서 사용할 수 없었던 기능들이 활성화되었습니다.]기능들을 살피던 천여운이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명령했다.
‘락을 걸지 않겠어.’
[알겠습니다. 해제된 기능들을 활성화하겠습니다.]-우우우웅!
나노가 보여준 기능들이 적혀있는 뒷부분의 흰빛의 입자가 세모 표시로 되었던 것이 동그라미로 바뀌었다.
나노의 수복이 끝나고 락의 일부가 풀리자, 천여운이 다음으로 시급한 사항을 명했다.
‘나노. 체내에 남아있는 뇌기를 천마기로 흡수해 바로 잡을 테니, 손상된 경맥들을 자가 수복해줘.’
이제 자신의 부상을 해결해야 했다.
[알겠습니다. 사용자의 체내에 손상된 부위들을 자가수복 하겠습니다.]-찌릿! 찌릿!
나노의 목소리가 끝나자, 정지되어 있던 전신의 나노머신들이 활성화되면서 수많은 개미가 몸속을 기어다니는 특유의 느낌이 다시 나타났다.
이로 인해 천여운은 나노가 완전히 부활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 * *
한 편 천공섬광으로 뚫려있는 북해빙궁의 폐허 지하.
절대초식의 위력이 어찌나 강했던지 뚫려 있는 지하 구멍은 아득히 깊었다.
경공을 펼쳐서 내려가는 데도 한참을 내려가야 할 정도였다.
용귀의 진원을 빼앗길까 싶어서 서둘러 내려간 북해빙궁은 그리 오래 추적하지 않고도 정도 무림맹의 파병단과 마주칠 수 있었다.
-쿠르르르르!
땅 위에서는 없던 진동이 넓은 지하 동굴 전체를 울렸다.
횃불로 밝혀져 있는 지하 동굴을 가득 매우고 있는 북해빙궁 측과 정도 무림맹 측은 대치한 채로 그 수장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궁주 대리 단주천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 공격을 당하고도 아직 살아있다니…..허어….”
“본 맹 역시도 혹시나 했는데, 용귀의 시신은 없고 저 뚫려 있는 구멍을 발견했소이다.”
모용강이 우측 방향에 뚫려 있는 거대한 구멍을 가리켰다.
그곳은 동쪽 방향이었는데, 용귀가 갇혀 있던 빙장석 봉인이 있던 북쪽 구멍과 달리 새롭게 생겨난 것이었다.
놀랍게도 모두가 죽었다고 생각한 용귀는 아직 살아있었다.
진원을 탐내던 양측이 이렇게 대치한 채 싸우지 않는 근본적인 원인이었다.
-쿠르르르르!
동굴이 떨리는 것을 보면 놈이 계속해서 땅굴을 파고 있는 것 같았다.
-파파파팍!
천장에 균열이 일어나며 파편들이 떨어졌다.
지지대가 될 기둥을 받쳐서 제대로 만들어낸 동굴이 아니라, 용귀가 도망치기 위해 파내서 그런지 상당히 불안정했다.
제갈소희가 흔들리는 천장을 쳐다보며 말했다.
“모용가주님. 아무래도 퇴각하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만약 동굴 더 깊이로 들어갔는데, 지반이 무너진다면 꼼짝없이 지하에 매장될 수도 있어요.”
그녀의 말대로 용귀를 추적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다.
마교주 천여운으로 인해 천장이 뚫려 있는 구멍은 무너질 일이 없으니 괜찮지만, 이 이상 깊숙이 따라가면 목숨을 보장할 수 없었다.
“크흠.”
양 측 모두가 고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때 북해빙궁의 일 장로 설영귀가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공! 생각해보니, 용귀가 계속 동쪽으로 구멍을 뚫고 들어가게 되면 호수로 통할지도 모릅니다!”
“이런!”
그 말에 모두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용귀가 계속해서 동쪽으로 뚫고 들어가면 부둣가가 있는 바이칼호에 이르게 되어있다.
그만큼 거리가 그리 멀지 않았다.
그리 된다면 호수의 물이 이 뚫려있는 동굴을 타고 들어올지도 몰랐다.
매장 정도가 아니라 모두가 수장될 수도 있었다.
‘이를 어찌해야 하지.’
모용강도 고민에 빠졌다.
용귀를 추적하자니 상황에 제약이 너무 많았다.
그때 북해빙궁의 이 장로 오무방이 지하 동굴 바닥을 가리켰다.
“궁주 대리! 정말 이 기회를 놓칠 겁니까? 보십시오.”
워낙 많은 인파가 군집해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바닥을 보면 끈적거리는 액체들이 사방에 널려 있었고, 약하지만 푸른 섬광이 튀기고 있었다.
-파치치칙!
이것은 용귀의 본체가 흘린 피였다.
동굴의 여기저기서 번쩍이는 푸른 섬광을 보면 많은 피를 흘렸다.
“용귀는 지금 부상을 입고 도망치고 있습니다. 지금 따라가서 죽이지 않으면 향후 후환이 될 겁니다. 이대로 퇴각할 수 없습니다.”
“이 장로. 그대의 말대로 놈이 부상당했다고는 하지만 무리해서 쫓다가 자칫하면 모두 매장되거나 수장당할 수 있네!”
일 장로 설영귀가 그의 말을 반대했다.
이에 이 장로 오무방이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런 제약이나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용귀를 어떻게 제거한단 말입니까? 지금 놓쳐서 후에 용귀가 다시 나타난다면 그때는 무슨 수로 막으실 겁니까?”
“그건……”
뭐라고 확답을 내리기가 어려웠다.
확실히 영물답게 영악한 용귀는 자신을 가둔 북해빙궁에 복수하기 위해 모습을 드러냈다.
그저 자유롭기를 원했다면 그대로 도망갔을 텐데 말이다.
-쿠르르르르!
다시 한 번 땅이 흔들렸다.
더 이상 지체하면 어떤 것도 하기 힘들었다.
-으득!
오무방이 입술을 질끈 깨물며 궁주 대리 단주천을 보챘다.
“이렇게 망설일 시간이 없습니다. 공! 어서 결정하십시오!”
이런 북해빙궁 측의 상황에 제갈소희가 조심스럽게 모용강에게 전음을 보냈다.
[모용가주. 제약이 너무 큽니다. 북해빙궁 측에서 어떤 결정을 하던 간에 본 맹은 퇴각해야 합니다. 진원이 문제가 아닙니다.]이에 모용강 역시도 동의하는지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진원이 탐나는 부분도 있었지만 엄밀히 그것을 취하려던 이유는 마교 측에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용귀가 호수로 도망간다면 무리해서 추격할 필요가 없었다.
퇴각을 결정한 모용강이 궁주 대리 단주천에게 자신들은 물러나겠다고 말하려던 차였다.
멀리서 누군가 다급히 경공을 펼치며 나타났다.
“궁주 대리!”
단주천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그는 북해빙궁 설검단의 부단주 오영이었다.
빙장석 봉인을 지키고 있는 오 장로 설이정과 오백 명의 전사들을 이끌고 오라고 명을 내렸는데, 느닷없이 그들이 왔던 방향에서 나타났다.
“허아….하아….크, 큰일입니다. 궁주 대리!”
얼마나 다급히 왔는지 호흡이 거칠어졌다.
불길함을 느낀 단주천이 인상을 찡그리며 물었다.
“무슨 일이기에 그러는 것이냐?”
“하아….하아…..궁주 대리! 빙장석 봉인을…..하아….지, 지키고 있던 본 궁의 전사들이 전부 전멸했습니다!”
‘!?’
뜻밖의 소식에 단주천이 당황스러운 얼굴로 다급히 물었다.
“뭣?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용귀가 그들을 공격하기라도 했단 말인가?”
“하아…하아….아, 아닙니다! 설검단주와 함께 궁주 대리의 명을 전달하러 갔는데. 그들 모두 정체불명의 단체에 습격을 당한 것 같습니다.”
“정체불명의 단체?”
용귀의 일만으로도 머리가 복잡한 단주천이었다.
그런데 너무 뜬금없는 소리에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심각한 분위기에 빠진 북해빙궁 측을 바라보며 모용강 또한 어찌해야 할지 난감했다.
‘대체 무슨 소리지? 북해빙궁을 습격한 자들이 있는 건가?’
그 말은 자신들과 북해빙궁, 마교 이외에도 제 사의 세력이 섬에 침입했다는 소리였다.
그때 제갈소희가 동굴을 이리저리 살피며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진동이 없어.”
“응? 제갈 군사. 그게 무슨 말인가?”
“보세요. 아까 전까지만 해도 동굴 전체가 흔들렸는데, 지금은 진동이 느껴지지 않아요.”
“아!”
그녀의 말대로 어느새 진동이 그쳐있었다.
땅을 계속 뚫고 가느라 떨리던 동굴이 고요하기만 했다.
‘용귀가 호수 쪽에 구멍을 뚫은 것인가? 아니야. 그러면 이미…’
호수의 물이 파도처럼 동굴 안으로 밀려들어왔을 것이다.
뭔가 상황이 달라졌다고 판단한 모용강이 심각해져 있는 북해빙궁 측에 그 사실을 알리려 했다.
바로 그때였다.
‘응?’
용귀가 도망가기 위해 뚫은 우측 거대한 동굴 쪽에서 다수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모용강이 그곳으로 고개를 돌린 순간이었다.
-촥!
“끄아아악!”
“으악!”
푸른빛 도강이 정도 무림맹의 파병단이 모여 있는 곳을 갈랐다.
기습과도 같은 공격에 순식간에 열 명이나 되는 파병단의 무인들이 반 토막이 나고 말았다.
“적습이다!”
“방비해라!”
-챙! 챙!
갑작스러운 습격에 정도 무림맹의 파병단과 북해빙궁의 궁인들이 일제히 병장기를 빼들었다.
“탄도강?”
도강을 날릴 정도의 실력자라면 적어도 화경에 이른 무위를 지녔다는 소리였다.
당황한 모용강이 떨리는 눈으로 도강이 날아온 방향을 노려보았다.
‘아!’
용귀로 인해 동쪽으로 뚫려 있는 동굴의 입구에 철가면을 쓴 정체불명의 괴인들과 서른 명이 넘는 도를 들고 있는 자들이 서있었다.
하나 같이 범상치 않은 무위를 지닌 자들이었다.
“철가면?”
모용강의 머릿속에 정도 무림맹에 사신으로 왔던 단주성이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북해빙궁의 궁주를 속이고서 용귀를 노렸다는 그 집단이 말이다.
“극도육무문!”
분명 그들은 극도육무문이 틀림없었다.
이에 철가면을 쓰지 않은 무리들 중에 한 중년인이 놀랍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북해빙궁에서 본문을 알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
중년인은 정체를 전혀 부정하지 않았다.
그 말에 모용강이 분노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본 가주는 정도 무림맹의 웅주인 모용강이다! 감히 이런 짓을 벌이고도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을 성 싶으냐!”
그들이 북해에 잠들어 있는 용귀를 깨운 진정한 원흉들이었다.
이렇게 뒤통수를 노렸다는 것은 어부지리를 취하기 위함이 뻔했다.
정도 무림맹이라는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짓던 중년인이 비릿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정도 무림맹이라고? 흐음, 필요한 것만 챙겨서 조용히 물러나려 했는데, 그러지도 못하게 되었군.”
중년인이 왼손에 들고 있던 방울 막대기를 위로 들었다.
그리고는 그것을 가볍게 흔들며 철가면을 쓰고 있는 자들에게 말했다.
“또 일할 시간이다.”
-딸랑!
방울이 울리는 소리와 함께 철가면을 쓰고 있는 자들의 병기에서 선명한 푸른빛 강기가 서렸다.
-우웅! 우웅!
강기에서 풍겨지는 기세를 보면 그 자의 실력을 짐작할 수 있다.
모용강을 비롯한 궁주 대리 단주천과 장로들의 얼굴에 긴장감이 서렸다.
‘…..전부 화경 이상의 고수들이다.’
놀랍게도 철가면의 무인들은 한 사람도 남김없이 화경 이상의 고수들이었다.
몇몇은 무위가 전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긴장하는 정도 무림맹 측과 북해빙궁의 무인들을 바라보며 중년인이 비웃었다.
“후후후, 멍청하게 진원을 탐내서 지하로 내려오지만 않았다면 목숨을 부지했을 텐데 말이야. 응?”
-슈우우우우욱!
그때 중년인이 멀리서 들려오는 어떠한 소리에 그곳을 바라보았다.
굉장히 빠른 속도로 허공을 가로지르는 듯한 소리가 점차 가까워졌는데, 어둠 속에서 안광처럼 보이는 두 눈이 보였다.
‘뭐, 뭐지?’
눈 깜짝할 사이에 안광을 내뿜는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허공을 날아온 존재가 양측이 대치하고 있는 한가운데의 바닥에 안착했다.
-철컹!
머리부터 시작해 전신에 틈도 없이 꽉붙는 검은 철갑을 이어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은은한 빛깔의 매끄러운 검은 갑주를 입은 정체불명의 존재를 모든 이들이 어안이 벙벙해져서 바라보았다.
-웅성웅성!
‘나, 날아왔어?’
‘저게…..사람이야?’
눈 부근에 나오는 흰빛의 안광만 아니었다면 인간이 아니라고 여겼을 지도 몰랐다.
중년인이 인상을 찡그리며 손가락으로 그 존재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네놈은 대체 정체가 무엇…”
-촥!
중년인의 두 눈이 커졌다.
손가락으로 삿대질을 하고 있던 그의 팔이 어느새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내….팔? 끄아아아아아아아악!”
비명을 지르는 중년인의 앞에 서있는 정체불명의 검은 철갑주 안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제외하면 갑주에 어떠한 틈도 전혀 없었는데, 목소리가 들리는 것이 신기했다.
“이거 머리 쪽만 해제할 수 있어?”
-스스스스스!
알 수 없는 말과 함께 갑자기 검은 철갑주의 투구 부분이 흩어지듯이 사라지며, 감춰져 있던 정체가 드러났다.
긴 머리카락을 흩날리는 새하얀 얼굴에 날카로운 눈매의 청년이었다.
그 모습에 제갈소희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처, 천 교주?”
검은 철갑주 괴인의 정체는 바로 마교주 천여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