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281)
# 89장 나노 마신 강림 (2) #
쥐도 막다른 골목에 막히면 고양이를 문다고 했던가.
당혹스러워하던 궁주 대리 단주천의 눈빛에 어느새 짙은 노기가 서렸다.
실질적으로 두려운 것은 마교주 천여운 한 사람뿐이었다.
아무리 중원에서 삼대 세력의 하나라고 할지라도, 북해빙궁 역시도 북세외의 패권을 쥐고 있었고 그 자신은 북세외 무림의 정점이라 불리는 사내였다.
‘어지간히 본좌를 우습게 보았구나.’
단주천의 시선이 단 한 사람에게 꽂혔다.
저들 중에서 자신의 상대가 될 만 한 자는 명왕 마라겸뿐이었다.
[모용가주. 명왕은 본인이 상대하겠소이다. 그대가 저기 보이는 세 사람 중에 한 사람을 상대할 수 있겠소?]단주천의 전음에 모용강이 그가 시선이 닿는 곳을 쳐다보았다.
그곳에는 근육질에 굉장한 거구의 턱수염 사내가 있었는데, 마교주의 육검들 중에서 한 사람인 마권일검 고왕흘이 틀림없었다.
‘고작 저 나이에 화경의 경지에 오르다니.’
그뿐만이 아니었다.
옆에 두건을 쓰고 있는 청년 역시 마찬가지였다.
둘 다 많이 봐줘도 이십대 초중반에 불과했는데, 화경의 고수들이었다.
‘저들도 그렇지만 저 자가 문제다.’
모용강이 경계하는 자는 푸른 갑주에 건장한 중년인이었다.
저 자는 들어본 적이 있었다.
마교와 사파의 접전지인 귀주성 서부 전선에서 명성이 드높은 몽환검수 몽무였다.
‘저 둘은 갓 화경 초입에 불과하지만 몽무 저 자가 정말 상대하기 까다롭다.’
상대를 한다면 자신이 저자를 맡는 편이 나았다.
다른 두 화경의 고수들은 북해빙궁의 장로들이 힘을 합치면 견제할 수 있으리라.
다만 여기서 부딪친다면 마교주와 확실하게 척을 지게 될 것이다.
조심스럽게 제갈소희를 바라보았지만, 그녀 역시도 당장에는 방도가 없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뜻대로 하라는 의사를 밝혔다.
이에 모용강이 단주천의 전음에 화답했다.
[좋소. 어떻게든 귀 궁과 본 맹이 힘을 합쳐서 이 난관을 풀어봅시다.] [알겠소이다!]관건은 단 하나였다.
마교주 천여운이 극도육무문의 적들을 전부 처리하기 전에 승부를 봐야 했다.
-챙!
“두려워하지 마라! 본좌가 앞서가겠다!”
-솨아아아아!
단주천이 검을 뽑자 강렬한 한기가 사방으로 퍼져 나왔다.
재앙이라 불리는 영물 용귀를 상대하고 괴물 같은 마교주가 있어서 상대적으로 묻혔지만 그는 빙백신공을 극성으로 익힌 현경의 고수였다.
오대고수들과 비견해도 절대로 밀리지 않는 절세고수인 것이다.
-팟!
양 진영의 가장 최고 고수인 대호법 마라겸과 단주천의 신형이 동시에 서로를 향해 뻗어나갔다.
두 사람이 앞서 선두를 달리자 뒤에 있던 양 진영의 무인들이 일제히 진격했다.
“와아아아아아!!!”
용귀가 만들어놓은 동굴이 어느새 전장터가 되어버렸다.
격렬한 싸움이 시작되었다.
‘단백현이라는 소궁주와는 비교도 안 되는구나.’
단주천의 검이 허공을 스칠 때마다 빙결이 생겨날 만큼 강렬한 한기였다.
그가 놀란 것처럼 단주천 역시도 내심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촥!
먼저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빙백신검(氷白神劍)의 절초를 펼쳤는데, 그것을 코앞에서 바람과도 같은 경공으로 피해버렸다.
그러더니 어느새 등뒤의 요혈을 찔러왔다.
‘풍신이라고 불린다더니. 굉장한 경공이다!’
-쩌저저적!
등 뒤에 검이 닿기도 전에 그의 주변에 얼음으로 만들어진 반탄강기가 생겨났다.
빙백신공의 경지 중에 육층 이상을 이루게 되면 반탄강기에 한기를 실어서 일시적으로나마 한철방패에 버금가는 방어를 해낼 수 있었다.
-차차차차창!
마라겸이 펼치는 이십사마검의 검초가 애꿎은 얼음 방패만 부쉈다.
그 사이에 단주천이 보법을 펼쳐 몸을 돌린 후에 그를 향해 왼손으로 빙백신장으로 심장 쪽을 노렸으나,
-휘익!
마라겸의 허공을 박차며 공중제비를 돌며 이를 피해냈다.
단주천이 인상을 찡그렸다.
‘이걸 피해? 성가실 정도의 경공 실력이다.’
확실히 현경의 경지에 오른 후부터 제대로 된 상대를 만나지 못했던 그였다.
그런데 이렇게 동급의 실력자를 만나니 어중간한 공격으로는 일격을 먹이는 것조차 힘들었다.
‘빨리 제압해야 하건만.’
생사의 대결인 만큼 조급해지면 안 되는데, 마교주 천여운 때문에 쉽지 않았다.
결국 단주천은 쓸데없는 탐색전은 피하기로 마음먹었다.
‘팔층 신공!’
빙백신공에서 지고의 영역이라 불리는 팔층의 경지로 끌어올렸다.
-쩌저저저저적!
단주천의 몸에서 하얀 김이 서리며 그의 전신에 서리 회오리가 일어났다.
닿기만 해도 모든 것을 얼려버릴 기세였다.
“명왕! 제대로 해봅시다!”
단주천의 검이 촘촘한 하얀 서리 검결을 만들어내며 신형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마라겸을 압박하려들었다.
‘흠!’
상대가 전력으로 나오자 마라겸 역시도 경신술로 피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는지, 십성 공력으로 끌어올려 이십사마검의 절초를 펼쳤다.
-채채채채채채챙!
두 사람의 절세검초가 허공에 부딪치며 불꽃이 튀겼다.
이들의 격렬한 대결처럼 모용강 역시도 견제하던 몽무와 대결을 펼치고 있었다.
서로가 경험이 많은 정마의 수뇌부들이었지만 각자 주 전장지가 완전히 떨어져있던 차라 겨루는 것은 처음이었다.
늘 사파의 고수들만 상대해왔던 몽무는 이번 대결에 고양 되었다.
“하하하핫! 아주 좋아!”
-채채채채채챙!
호탕하게 웃으면서 검초를 펼치는 것이 호쾌했다.
‘신이 났군. 큭!’
전의가 잔뜩 오른 그와 달리 모용강은 조급해져 있었다.
단주천과 마찬가지였다.
서둘러 승부를 내지 못한다면 마교주가 개입하게 될 테고, 그리 된다면 전황은 순식간에 뒤집힌다는 압박감이 그를 초조하게 만들었다.
‘전력은 거의 비등하다.’
인원은 양대 세력을 합친 자신들이 앞선다.
북해빙궁까지 합쳐서 육백 여명을 넘어서니 말이다.
‘문제는 간부급이다.’
마교 측은 육검을 비롯해 단주 급 이상의 고수들이 건재했다.
간부급 대결을 이겨야만 승기를 잡을 수 있다.
예측한대로 북해빙궁의 남은 장로들은 화경의 고수인 고왕흘과 허봉을 제압하기 위해서 합공을 가하고 있었다.
‘이들을 제압하지 못하면 우리가 불리해진다.’
무림인들의 전장에서는 뛰어난 고수를 먼저 제압해야 한다.
그들로서는 빨리 적을 제압하고서 도망가야 하는 입장이었기에 물불을 가릴 수가 없었다.
‘크윽, 팔만 멀쩡했어도 이런 애송이를 상대로 고전하지 않을 터인데.’
일 장로 설영귀가 창백한 얼굴로 고왕흘을 상대하고 있었다.
한쪽 팔이 잘리면서 공력의 손실이 컸다.
원래라면 완숙한 화경의 경지인 자신이 그를 압도했겠지만 움직임에 균형이 무너지면서 동등한 대결로 이어졌다.
‘이 자가 멀쩡했다면 내가 밀렸을 지도 모르겠구나.’
고왕흘 역시도 이 점은 확실하게 느끼고 있었다.
한 손만으로 자신을 능수능란하게 상대하는 설영귀의 무공은 보통이 아니었다.
그가 온전했다면 위험할 뻔했다.
-쩌저저적!
‘반탄강기로 막았는데 한기가 체내로 침투하다니.’
한기를 다루는 고수와 겨루는 것은 처음이기에 확실히 상대하는 것이 까다로웠다.
권강으로 최소한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상대를 제압해야만 했다.
‘교주님께서 개입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힘으로 이들을 제압할 수 있음을 보여야 한다.’
북해빙궁과 정도 무림맹이 어떻게든 그들을 뚫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듯이 마교의 고수들도 교주의 힘이 되기 위한 사명감으로 싸움에 임하고 있었다.
서로 간에 탐색전도 없었다.
처음부터 전력을 다하면서 동굴 내 전장은 갈수록 격렬해졌다.
한편,
‘무, 무슨 이런 괴물이 있단 말인가.’
한쪽 팔이 잘려서 창백한 얼굴의 극도육무문의 중년인, 아니 도달문주 벽리우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현실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콰직!
나노 슈트를 입은 천여운의 손이 머리통에 닿자, 철가면 채로 그대로 일그러졌다.
머리가 터져서 죽은 철가면의 고수들만 벌써 다섯 명이 넘었다.
오래 상대하지도 않았다.
반복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는데, 천여운은 그들을 상대함에 있어서 세 초식 이상을 넘기지 않았다.
-채채채챙!
“네놈도 아니군.”
-콱! 콰지지직!
“크허어억!”
세 초식을 확인하고 나서 천여운은 망설임 없이 철가면의 고수를 죽였다.
마치 확인 작업이 끝난 것처럼 말이다.
물론 철가면의 고수들 중에서 모두가 헛되이 당하고 있지는 않았다.
-쾅!
바닥이 크게 울릴 만큼 진각을 밟은 철가면의 고수의 주먹에서 일직선으로 뻗어나온 권강이 세 명을 동시에 상대하고 있는 천여운의 등에 꽂혔다.
-까아아아앙!
쇳소리와 함께 권강이 꽂힌 부근이 검붉게 물들며 강기가 흩어졌다.
“가, 강기가 흩어지다니? 저 갑옷은 대체 뭐야?”
강기마저 막아내는 나노 슈트에 도달문주 벽리우가 어이없어했다.
설사 강기를 견뎌냈더라도 충격을 받을 만도 했는데, 꿈쩍도 하지 않고 여전히 철가면의 고수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응집된 에너지 공격이 주는 충격을 분산시켰습니다.]‘좋아.’
나노의 목소리에 천여운이 흡족해했다.
용귀가 뿜어대는 엄청난 뇌기마저도 흡수하며 견딜 수 있는 게이트리윰 금속이다.
당연히 권강으로 뚫릴 리가 없었다.
“크으으!”
자신의 권강이 막힌 것이 분했는지, 철가면의 고수가 다시 예의 권강 초식을 펼치려했다.
하지만 이를 천여운이 내버려둘 리가 만무했다.
천여운이 자신에게 권강을 날리려는 철가면의 고수를 향해 검결지를 뻗어 들어 올리자, 허공에서 흑염도가 생겨나 그를 베려들었다.
-촤악! 타타탁!
철가면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축에 속하는 고수답게 뒤로 신형을 날리며, 이를 가까스로 피해냈다.
-탓!
급히 뒤로 몸을 날린 탓에 철가면 고수의 신형이 한참 격렬히 싸우고 있는 정도 무림맹과 마교인들의 사이에 안착했다.
“헉?”
싸우던 중간에 끼어든 탓에 놀란 모용세가의 장로 모용연이 다급히 뒤로 물러섰다.
하나 같이 절세고수들인 철가면의 고수들은 자신들이 상대할 수 있는 자들이 아니기에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였다.
-촤악! 댕그랑!
철가면이 반으로 갈라지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다급히 신형을 날렸지만 흑염도를 완전히 피하지 못한 철가면의 고수였다.
그런데 그의 얼굴이 드러나자 모용연의 눈동자가 떨려왔다.
“이, 이럴 수가….”
헝클어진 흰 머리카락에 주름으로 가득한 얼굴에서 피가 흘러내렸지만, 이마에 찍힌 여섯 개의 계인을 보는 순간 그가 누구인지 단번에 알아챘다.
“구중 대사!”
철가면에 감춰진 노인의 정체는 소림사의 전대 방장인 구중 대사였다.
십팔 년 전에 자취를 감춘 명망이 두터운 고승이었다.
오랫동안 무림을 활보한 모용연은 구중 대사와 인연이 있기에 단번에 그 얼굴을 알아볼 수 있었다.
“구중 대사! 어찌 극도육무문과 함께….헛?”
-슈슈슉!
구중 대사에게 다가가 말을 걸려고 하는데, 그의 손에서 펼쳐지는 소림 용조수에 모용연은 다급히 보법을 펼치며 신형을 벌려야만 했다.
‘어째서 내게 공격을?’
구중 대사는 선천적으로 선한 사람이었다.
소림칠십이종예(少林七十二種藝) 중에 절반이나 익혔을 만큼 오대고수급의 출중한 무공 실력을 지녔음에도 불법과 민초에 매진한 자였다.
그런 자가 갑자기 살초를 날리니 당혹스러웠다.
“구중 대사! 이게 무슨 짓이오? 본인을 몰라보겠소? 모용연이올시다.”
“……….”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 것인가 싶어서 자신을 알렸으나,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처럼 멍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았다.
‘아!’
횃불에 일렁이는 눈동자에 초점이 없었다.
감정도 생각도 하지 않는 존재처럼 멍한 눈빛이 이상했다.
불안한 마음에 경계심이 가득해진 모용연이 검을 들어 올리는데, 구중 대사가 이내 고개를 돌리더니 마교주가 있는 곳으로 신형을 날렸다.
“엇? 구중 대사!”
오직 관심사는 마교주 천여운뿐인 것 같았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구중 대사가 극도육무문을 따른단 말인가?’
그런데 문득 마교주가 싸우는 것을 보게 된 자들 중에 모용연만큼이나 당혹스러워 하는 이들이 속출했다.
“이럴 수가! 저건 매화십사검법이잖아!”
“아니. 저 철가면의 고수가 펼치는 무공은 점창파의 사일검법이야!”
“무, 무당파의 태극검결도 쓰는데?”
놀라운 것은 철가면의 고수들 중에는 구파일방의 무공을 쓰는 이들이 더러 있었다.
게다가 그들이 펼치는 무위는 정파 내에서도 수위권에 속할 만큼 뛰어났다.
“저건 사왕문의 사왕도법인데?”
심지어 사파 중에서도 명문가로 유명한 사왕문의 도법을 쓰는 자도 있었다.
문제는 이들이 펼치는 무공들은 그 문파 내에서도 극소수, 즉 장문 직계들만이 익히는 비전 무공들이었다.
외부인들이 훔쳐 배울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다.
“대, 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