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283)
# 90장 뇌기(雷氣) (1) #
비처럼 쏟아져 내리는 투명한 얼음검들.
그것이 붉게 물들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동굴을 가득 매우는 검들로 인해 극도육무문의 도살대 대원들은 파죽지세로 목숨을 잃어가고 있었다.
-촤촤촤촤촥!
“크아아악!”
“커억!”
비명 소리가 아비규환처럼 동굴에 메아리가 되어 울렸다.
도살대가 절정의 고수들이라고는 하나 얼음검 하나하나가 검초를 펼치니, 수백 명의 절세고수들이 몰려온 것과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물론 모두가 무력하게 이기어검에 당하는 것은 아니었다.
-채채채채챙!
남은 한 팔로 힘겹게 얼음검들을 막아내는 벽리우.
평소에 왼팔로 도법을 펼치는 연마를 하지 않았더라면 큰일날 뻔했다.
하지만 버티는 것도 시간 문제였다.
-푹!
“크헉!”
바닥에 차가운 주검이 되는 자들이 속출하고 있었다.
벌써 서른 명이 넘는 도살대의 대원들이 얼음검으로 펼쳐지는 이기어검의 세례를 견디지 못하고 죽어나갔다.
그나마 얼음검이 아니라 보검들로 이루어진 공격이었다면 금방 전멸했을 지도 모른다.
‘그건 다행이긴 한데, 어째서 천공섬광을 펼치지 않는 거지?’
문득 벽리우는 의구심이 들었다.
이미 마교주 천여운의 절대초식이라 명성이 자자한 천공섬광.
다수를 상대로는 그 초식만큼 최악의 공격도 없다.
전 태상교주에게 그 자신을 죽이라고 한 것 때문에 분노했으면서도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
-슈슈슈슈슉!
그러다 벽리우의 눈에 얼음검들이 움직이는 경로가 보였다.
얼음검들은 도살대 대원들을 압박하면서도 절묘할 만큼 공동의 천장을 비롯해 벽면에는 조금도 흠집 하나도 주지 않고 있었다.
‘괴물 같은 놈! 아무리 생사경의 고수라고 한들 이 많은 검들을 이기어검으로 다루는 것도 모자라서 이렇게 정교하게 다룰 수….잠깐! 혹시 동굴이 무너지는 것을 우려해서 저러는 것인가?’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벽리우의 시선이 천여운이 서있는 곳으로 향했다.
기절해 있는 조부를 왼손으로 안고서 오른손의 검결지 만으로 이기어검을 제어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서있는 위치의 바닥이 도흔들로 가득했으나, 움푹 패어있다거나 한 큰 여파의 흔적들은 없었다.
그 많은 기(氣)로 인한 공격을 당했는데도 말이다.
‘뇌기로 도기와 도강의 여파를 분산시켰구나.’
모든 것이 확실해졌다.
천여운이 얼음검으로 이기어검을 펼치는 것은 빠른 시간 내에 동굴에 충격을 주지 않고서 자신들을 처리하기 위함이었다.
-삐삐삐삐!
물론 그 예상은 정확했다.
동굴에 들어와서 바닥에 착지한 순간부터 증강현실에 공동의 몇몇 위치들이 붉은 색으로 위험하다고 표기가 되어 있었다.
지금 그들이 있는 위치에서 조금만 더 들어가면 호수로 통하게 된다.
충격을 가할수록 그것이 현실화되는 것은 머지않았다.
‘빨리 해결한다.’
파괴력보다 정교함으로 승부를 내야만 그것이 가능했다.
아비규환으로 얼음검들을 피하고 막는데 여력이던 도살대의 인원이 어느새 절반 채도 남지 않았다.
고작 서른여섯 명 정도만 겨우겨우 버티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하압!”
-쾅!
-쿠르르르르르르!
큰 굉음 소리와 함께 공동 전체가 흔들렸다.
천여운의 시선으로 동굴의 벽면 끝에 서있는 도달문주 벽리우가 보였다.
벽리우의 도에 푸른빛 도강이 발산되고 있었는데, 그것으로 전력을 다해 벽면을 공격한 듯 했다.
-쾅! 쿠르르르르!
벽을 내려친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도형문주 우진창 역시도 그의 의도를 알아차렸는지, 곧장 동쪽 끝 벽면에 탄도강을 날렸다.
덕분에 동굴 천장에 균열이 일어나며 파편들이 후두둑 떨어졌다.
위험한 조짐이 시작된 것이다.
“마신! 어차피 이곳이 무덤이 될 거라면 네놈을 저승으로 같이 끌고 가겠다!”
“같이 가자꾸나! 흐아아압!”
벽리우와 우진창이 다시 한 번 도강으로 동굴 벽면을 내리치려 했다.
‘나노!’
[집중 타깃 모드 발동]-삐삐삐삐삐삐삐삐!
속으로 외치는 천여운의 부름에 증간현실에 붉은 입자의 과녁들이 벽리우와 우진창에게로 집중되기 시작했다.
-휘리릭!
그러더니 주변에 있던 얼음검들이 회전하며 벽리우와 우진창을 향해 일제히 쇄도했다.
“큭!”
“안 돼!”
그러나 다른 문주들이 이를 내버려 둘리가 없었다.
도살대의 두 문주와 북해빙궁의 간자인 원상오가 앞을 가로막으며 촘촘한 도막을 만들어내, 얼음검들을 부수는데 주력했다.
“우리가 막겠네! 어서 벽을 부숴버리게!”
-촤촤촤촤촤촤촤촥!
그들이 펼치는 도막에 막혀버린 얼음검들이 으스러지며 부서져나갔다.
얼음검으로 만든 이기어검의 유일한 단점이었다.
화경 이상의 고수들의 공력을 견딜만한 강도가 아니었다.
“마, 마신을 막아랏!”
“목숨을 걸고 사수해랏!”
-파파파파팟!
세 문주들이 두 사람을 보호하는 사이에 남은 도살대의 문도들이 죽을 각오를 했는지, 얼음검에 찔리든 말던 상관하지 않고 천여운을 향해 달려들었다.
‘나노. 진기를 얼마든지 끌어써도 되니까. 막아!’
[알겠습니다.]-쩌저저저적!
체내의 진기가 빠르게 소모되며 더욱 많은 얼음검들이 생겨났다.
“헉! 아, 아직도?”
“괴물 같은 놈!”
죽음을 각오하고서 달려드는 도살대의 문도들조차 아연실색할 정도였다.
수백 자루의 이기어검을 다뤄서 진기에 슬슬 한계가 올 것이라고 여겼는데, 전혀 아니었다.
-쾅! 쾅! 쾅!
그 틈에 벽리우와 우진창이 어떻게든 동굴 벽이 부서져서 호수로 통하게 하기 위해 미친 듯이 벽면을 도강으로 내리쳤다.
“칫.”
-팟!
안되겠다고 판단한 천여운이 서둘러 조부인 천인지를 내려놓고서 앞으로 신형을 날렸다.
극성의 풍신보를 펼치며 발밑에 자기장이 발동하자 그의 신형이 순식간에 땅을 접듯이 거리를 좁혀왔다.
“헛?”
순식간에 앞으로 나타난 천여운의 모습에 문주들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갑옷 같은 것을 걸치고서 무슨 경공이 이렇게?’
무겁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질적으로 나노 슈트는 굉장히 가볍다.
천여운이 움직이는데 전혀 지장을 줄 수 없고 오히려 전투를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보조하는 역할이 나노 슈트였다.
그보다 놀라운 것은,
‘말도 안 돼…..이 많은 이기어검을 펼치면서 어떻게 움직이는 거지?’
그들이 알기로는 이기어검을 펼칠 때 정신력의 소모가 커서, 다루는 숫자가 늘어날 수록 움직이는 것조차 어렵다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천여운은 이기어검과 별개로 움직이니,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존재였다.
‘저, 정말 마신이 현세에 강림한 것이라도 했단 말인가?’
어찌 되었든 그를 막아야만 했다.
“빌어먹을! 방해하게 내버려둘 것 같으냐!”
“동시에 합공하세!”
“네놈이 아무리 마신이라고 해도!”
세 문주가 동시에 극도신무에서 가장 자신 있는 절초를 펼쳤다.
아무리 마신이라고 해도 합공을 한다면 적어도 두세 초식 정도는 버틸 수 있으리라 여겼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무위의 격차가 너무 컸다.
게다가 천여운은 극도신무를 익히고 있었기 때문에 그 약점을 잘 알고 있었다.
-화르르르륵!
-쩌저저저적!
천여운의 오른손에 검은 불꽃의 흑염검과 왼손에 흑색 얼음 결정으로 이루어진 흑빙도가 생겨났다.
“우검좌도?”
“무, 무형검!”
제각각 놀라는 것도 잠시였다.
순식간에 천여운의 양손에 발휘된 천마검공의 검초와 극도신무의 도초가 맞물리듯이 교묘하게 어우러지며 그들을 뒤덮었다.
모든 것을 태울 듯한 흑염검의 뜨거운 궤적과 허공에 얼음 결을 만들어내는 흑빙도가 무차별적으로 그들의 초식을 파훼하고서 그들의 몸을 베었다.
-촤촤촤촤촤촤촤촥!
“끄아아아아아악!”
“으아아아악!”
-투투투투툭!
비명 소리와 함께 그들의 몸이 순식간에 수십 조각으로 나뉘어버렸다.
베인 단면은 타들어가서 익은 냄새가 흘러나왔고 흑빙도의 도초에 당해서 잘린 단면은 얼어붙어 얼음조각이 되었다.
그들을 일순간에 죽인 천여운이 벽면을 부수려는 자들을 처리하려던 순간이었다.
-콰앙!
-쩌저저저저적!
동굴 벽면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일부 갈라진 벽면에서 물줄기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투투투투툭! 푸슈슈슈슈슈!
-쿠르르르르르!
물줄기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자, 공동이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벽면이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부서지려는 징조였다.
“이런…..”
천여운이 인상을 찡그리며 물이 터져 나오는 벽면을 쳐다보았다.
드디어 붕괴하려는 동굴을 바라보며 희열에 차오른 벽리우가 고개를 돌려 천여운을 향해서 미친 듯이 웃어대며 소리쳤다.
“크하하하하하하핫! 늦었다. 마신! 같이 가자꾸나!”
아무리 괴물이라 불리더라도 자연재해마저 막을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동굴 벽면이 호수의 수압을 이기지 못하고 완전히 무너져 내린다면 천여운 역시도 물살에 휩쓸려서 죽고 말 것이다.
“상위 육문주 누구도 해내지 못한 것을 바로 이 몸…”
-서걱! 데굴데굴!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벽리우의 목이 갈라지며 머리통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자신이 어떻게 죽은 것인지도 모르는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죽었다.
“개소리는 저승에서 해라.”
“벽 문주우우우! 크윽! 마신 이노오오오오옴!”
-탓! 촤촤촤촤촤촥!
죽은 벽리우의 머리통을 보고서 놀란 도형문주 우진창이 천여운을 향해 도초를 펼쳤다.
하지만 상위 육문주 세 명이 합공해도 통하지 않는데, 그 혼자서 어찌해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촥!
“컥!”
천여운은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우진창을 단숨에 반으로 쪼개버렸다.
진기가 유형화된 무형검은 응집된 강기로도 어찌 막을 수 있는 유형의 힘이 아니었다.
이 자들을 죽이는데 소모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막아야 해!’
-푸슈슈슈슈슈!
천여운이 빠른 속도로 갈라지는 동굴의 벽면을 향해 두 손바닥을 가져다대었다.
그리고 극한의 음기를 끌어올렸다.
완전히 막지는 못하더라도 자신과 수하들이 동굴을 빠져나갈 수 있는 시간은 벌어야 했다.
“후우……”
-쩌저저저저저적!
벽면 전체에 하얀 서리 결정이 생겨나더니, 이내 균열이 간 벽면이 빠르게 얼어붙기 시작했다.
덕분에 여기저긴 갈라진 틈 사이로 뿜어져 나오던 물줄기들도 얼어붙었다.
이 광경을 북해빙궁의 궁인들이 보았다면 놀라워했을 것이다.
그러나 천여운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엄청난 압력이다.’
벽면에 손을 대고 있는데 확연하게 느껴지는 수압에 확신할 수 있었다.
얼려버리는 것은 아주 잠깐의 임시조치에 불과하다.
얼마 버티지 못하고 이것은 수압에 의해 완전히 부서질 것이다.
-쩌저저저저저적!
천여운이 더욱 강한 한기로 벽면에 두터운 얼음 벽을 만들어냈다.
‘최대한 얼려놓고 진원을 가지고 동굴을 빠져나가야 해.’
그러지 않는다면 극도육무문의 문주인 벽리우가 했던 말처럼 모두가 수장당해서 죽을 지도 모른다.
그때 천여운의 귓가에 다수의 기척들이 달려오는 것이 들렸다.
벽면에 손을 떼지 않은 상태로 뒤를 돌아보니, 허봉을 비롯한 백기, 문규 등이 육검단의 오십여 명을 이끌고 왔다.
“교주니이이이임! 헉! 이, 이건?”
“요, 용귀다!”
“엄청 큰데?”
공동으로 들어온 그들은 거대한 용귀의 사체를 발견하고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혼자서 적진으로 들어가는 천여운을 우려한 그들은 급히 병력을 이끌고 온 것이었는데, 바닥에 널브러진 시신들을 바라보니 그런 걱정은 무의미한 듯 했다.
“교주님?”
그런 그들의 눈에 동굴 끝의 벽면을 얼리고 있는 천여운이 보였다.
그들이 가까이 다가오려 하자 천여운이 다급히 외쳤다.
“오지마랏! 곧 동굴이 무너진다!”
“네, 넷?”
-쿠르르르르르르!
천여운의 말대로 동굴 전체의 진동이 강했다.
천장에서 계속 파편들이 떨어지는 것을 보면 그리 오래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당혹스러워하는 그들을 향해 천여운이 손가락으로 바닥에 눕혀 있는 전 태상교주 천인지를 가리키며 말했다.
“전 태상교주님이다. 그분을 모시고 당장 동굴 밖으로 빠져나가랏!”
“하, 하지만 교주님은요!”
문규가 울상을 지으며 소리쳤다.
동굴이 무너진다는데 천여운을 내버려두고 갈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이에 천여운이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옅게 웃으며 소리쳤다.
“모두 빠져나가면 곧장 진원을 가지고 올라갈 거다. 계속 남아있으면 이곳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교주님……”
그것은 천여운의 말이 맞았다.
벽면을 계속 얼리고 있는 것을 보면 그들이 이곳에서 같이 기다리는 게 더욱 민폐였다.
결국 그들은 쓰라린 마음을 안고 퇴각해야만 했다.
“교주님! 빨리 퇴각할 터이니, 부디 오래 있지 마시고 바로 오십시오!”
허봉의 그런 외침에 천여운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전 태상교주 천인지를 데리고 경공을 펼쳐 서둘러 공동을 빠져나가자, 천여운은 계속해서 한기로 얼음의 층을 두껍게 만들었다.
-쩌저저저저적!
‘나노. 수압이 느껴지지? 이 정도 두께의 얼음이면 얼마큼 버틸 수 있을까?’
[일각(一刻-15분)이 한계입니다. 밀려들어오는 수압에 휩쓸리기 전에 서둘러 빠져나가야 합니다.]나노의 경고에 천여운이 쓴 웃음을 지었다.
아무리 강해져도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재해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반각만 버티고 바로 빠져나간다.’
그 정도만 버텨도 모두가 경공을 펼쳐서 동굴의 높은 지대로 올라갈 수는 있을 것이다.
천여운은 최대한 균열이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얼음벽에 한기를 주입했다.
이윽고 정확히 반각이 되었을 때,
‘이제 나가자.’
아무리 한기를 주입해도 얼음벽에 일어나는 균열을 막기 어려웠다.
정말 한계였다.
서둘러 빠져나가지 않으면 정말 붕괴하는 동굴과 호수의 물살에 빨려 들어갈 지도 몰랐다.
-탁!
얼음벽에서 손을 뗀 천여운이 용귀의 등껍질로 올라갔다.
이곳에서 진원을 흡수하는 것은 무리였으니, 가지고 나갈 수밖에 없었다.
-파치칙! 파치치치칙!
용귀의 등껍질 한 가운데가 뚫려 있었는데 그곳에서 푸른 섬광이 번쩍이고 있었다.
극도육무문에서 진원을 가져가기 위해 뚫어놓은 구멍인 듯 했다.
‘잘됐군.’
천여운이 구멍으로 뛰어내리려 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응?”
-파치치치치치치치칙!
갑자기 뚫려 있는 등껍질에서 전격이 솟구치며 강렬한 뇌전(雷電)의 기둥을 만들어냈다.
알 수 없는 현상에 천여운이 뒤로 물러섰다.
-파치치치치치치칙!
그때 뇌전의 기둥 속에서 광오한 외침이 들려왔다.
“크하하하하하하핫! 드디어 본 문주가 용귀의 뇌기를 흡수했도다!”
-파칙! 파칙!
뇌전의 기둥이 서서히 걷히면서, 마치 뇌신(雷神)이 강림한 듯이 전신에 푸른 섬광의 뇌기로 둘러싸인 젊은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모습에 천여운의 눈빛에 강한 짜증의 감정이 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