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290)
# 92장 오령(五靈) (2) #
많은 학자들에게 삼대 괴서(怪書)라 불리는 책들이 있다.
그 중 하나가 선백진경(仙白眞經)이다.
괴서라 불릴 만큼 먼 옛날부터 내려오는 전설이나 혹은 괴이한 이야기들을 백팔 장에 달하는 장수에 서술해놓은 책이다.
유교의 경전인 오경(五經)의 예기(禮記) 예운편에서 거론되는 린본귀용은 사령이라 하여 응룡, 기린, 봉황, 영귀를 말한다.
이들은 전설로만 들려오고 실질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거나 발견했다는 이야기는 없다.
하지만 선백진경에서 거론하고 있는 오령(五靈)은 다르다.
마치 신원미상의 저자가 오령을 직접 본 것처럼 생생하게 그 생김새부터 어떠한지를 자세히 서술해놓았다.
오령은 삼황오제 시절부터 중원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 영력을 지닌 영물들은 보통은 잘 발견되지 않았지만 하나의 시대가 지고 일어날 때면 새로이 나타나곤 했다.
용귀나 불기린처럼 사나우면서 인간을 학살하는 영물들이 있는 반면에 대부분의 오령들은 선계로 올라가는 것이 목적이기에 일생의 대개를 영력을 쌓는데 집중한다고 한다.
오령에 대한 것을 상세히 서술해 놓은 이 선백진경의 오령 편, 마지막 문구에 의미심장한 정보가 적혀 있었는데, 대부분이 우스개로 넘어갔다.
하지만 이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인 자가 나타나, 이로 인해 한때 중원 전체가 발칵 뒤집힌 적이 있다.
그 자는 최초로 중원을 일통한 진의 시황(始皇)이다.
멸망한 진의 사기를 보면 서복(徐福)이라는 신료가 시황의 소원을 이루기 위하여 오령을 찾기 위해 수천 명의 동남동녀(童男童女)를 이끌고 중원 방방곳곳을 탐색하였다고 한다.
사기에는 서천으로 향했던 서복이 행방불명되면서 시황의 바람은 끝내 무산되고 말았다고 적혀 있다.
하지만 들려오는 풍문에 서복은 실제로 오령 중 하나인 대붕을 찾아냈지만 말년에 들어 폭군으로 변한 시황의 바람을 들어주면 인세가 엉망이 되리라 여겨, 이를 숨기기 위해 몸을 감췄다고 전해졌다.
포달랍궁의 백궁에 위치한 달뢰라마의 집무실.
집무실의 책상 위에 네 장의 각기 다른 장보도가 놓여 있었다.
그 중에 하나는 정확히 이곳 포달랍궁을 가리키는 지도가 그려져 있었는데, 우측 하단 부분에는 군방(君房)이라 적혀 있다.
군방은 사기에 적혀 있는 서복이라는 관료의 자이다.
-고오오오오!
집무실 전체가 진기로 가득하여 무겁기 그지없었다.
죽립을 벗은 붕대의 사내는 속이 들끓어서 죽을 것 같았지만 애써 내색하지 않았다.
도주의 분노가 말을 이룰 수 없기 때문이었다.
‘끄으으, 죽을 것 같다.’
근래에 들어서 연달아 대계가 실패하면서 도주의 심기는 최악으로 불편해져 있었다.
지금 같아서는 홧김에 자신을 죽여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때 도주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황릉의 불기린에 이어 북해빙궁의 용귀의 진원까지 빼앗겼다. 황헐.”
“………”
아무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변명을 해봐야 더욱 심기를 자극할 게 뻔했다.
도주가 손을 가볍게 들어 올리자, 책상 위에 있던 장보도 중 하나를 제외한 모든 것이 떠올랐다.
나머지 장보들의 지도를 살펴보면 황도인 개봉과 북해가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오령의 위치를 알리는 장보도들이었다.
“전부 쓸모없게 되었구나!”
-꽉!
도주가 손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화르르륵!
허공에 떠오른 세 장의 장보도가 도주의 삼매진화로 불타올랐다.
재가 되어 흩날리는 장보도를 바라보는 도주의 눈빛이 분노로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히익!’
두려워하고 있는 붕대의 사내 황헐에게 도주가 말했다.
“마지막 기회를 주겠다. 본좌가 진원을 마저 흡수할 동안 먼저 장백산으로 향해라.”
“자, 장백산이라 하면….”
“놈의 손에 남은 오령의 진원을 넘겨줄 것 같으냐!”
-쾅! 파스스스!
도주가 책상을 내려치자, 균열이 일어나더니 이내 그것이 재처럼 으스러졌다.
책상 위에 있던 장보도에 흠집 하나 나지 않을 만큼 내공을 다루는데 있어, 최고의 경지에 이른 그였다.
“도주…..장백산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그 자’가 지키고 있습니다. 그의 무공은 도주께서도 보셨다시피…..”
차마 뒷말을 잇지 못했다.
처음 그들이 중원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이십여 년 전.
가장 먼저 노렸던 진원이 바로 동북쪽 장백산의 신령이라 불리는 풍백호(風白虎)의 것이었다.
그러나 장백산에 들어가기는커녕 초입에서 극도육무문은 패퇴해서 돌아와야만 했다.
그날 후로 도주는 이십여 년 간 폐관에 들어갔었다.
폐관에 나온 도주의 무공은 신의 경지에 이르렀지만 그날의 패퇴를 의식해서인지 유일하게 장백산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고 있었다.
-휘리릭! 콱!
“켁켁!”
폐관실에 이어 또 다시 목을 붙잡힌 황헐이 괴로워했다.
괜히 사족을 붙였다가 심기를 거스르고 말았다.
“누가 네놈더러 ‘그 자’를 없애라고 하더냐.”
“켁켁….네넷?”
“오령의 진원 두 개를 얻었다는 것은 마신도 영생불멸의 힘을 노리는 것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놈도 필시 장백산으로 향할 것이다!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그 말에 황헐의 두 눈동자가 흔들렸다.
도주가 한 말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들었기 때문이었다.
* * *
북해빙궁의 임시 구금실.
-촤촤촤촤촥!
황금빛 지팡이가 분해되며 상체의 가슴과 등을 완벽하게 가리는 갑주가 되었다.
신기한 현상에 전 궁주 대리 단주천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황금빛 상체 갑주는 북해빙궁의 신물인 오한빙장이 분해되어 변한 모습이었다.
“이, 이게 신물의 숨겨진 힘?”
그의 물음에 천여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참을 놀라하던 단주천이 혀를 내둘렀다.
그는 천여운이 신물 오한빙장을 얻은 것은 단순히 우연에 불과하고, 신물의 주인이 된 것도 가장 먼저 이것을 얻었기 때문이라 주장했었다.
‘궁주전의 사기도 그렇고 구전으로조차 신물에 이런 힘이 있다는 것은 듣지도 못했다.’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역대 궁주들이 남긴 유지에도 신물에 이런 힘이 있다고 기록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누구도 일대 조사가 남긴 진정한 힘을 얻지 못했다는 의미였다.
이것은 당연했다.
역대 궁주들 중에서 누구도 신물을 무구로 사용한 자는 없었다.
그들은 신물의 숨겨진 힘이 지팡이에 새겨져 있는 오한빙천공과 오한빙천장법으로만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녕 개파 조사님의 선택을 받았단 말인가……당신의 혈족이 아닌 자를 선택하셨단 말입니까? 조사이시여.’
-털썩!
다리에 힘이 풀린 그가 무릎을 꿇었다.
천여운이 신물의 선택을 받았다는 것을 처음 알았을 때보다도 충격적이었다.
그는 일대 조사인 단영의 혼령이 후손들에게 실망하였기에 이런 사달이 일어났다고 여길 수밖에 없었다.
‘뿌린 대로 거둔 것인가.’
어쩌면 혈족을 외부인의 손에 죽게 했을 때부터 정해진 수순일지도 몰랐다.
허탈해진 단주천은 넋을 놓고 황금빛 갑주를 바라보았다.
그런 그에게 천여운이 말했다.
“그대가 마지막까지 목숨을 져버리겠다면 이 자리에서 참수하도록 하지. 하지만 마지막으로 제안하겠다.”
“제안?”
“그대는 북해빙궁이 종착지일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이곳은 시작에 불과하다.”
‘!?’
시작이라는 말에 단주천의 두 눈이 커졌다.
그 말의 의미는 극명했다.
‘설마…..이 자는 무림 일통을 꿈꾸는 것인가?’
마교주 천여운의 진정한 목적.
패왕의 위엄과 그 자질을 갖춘 천여운이 그저 오대고수에 머무를 리가 만무했다.
놀라하는 그에게 천여운이 말을 이어갔다.
“고작 북해빙궁의 궁주로 만족하나?”
“그건…..”
궁주는 그가 오래전부터 꿈꿔왔던 미래였다.
단지 둘째라는 이유만으로 전대 궁주에게 자신의 자리를 빼앗겼다고 생각해온 단주천이 가져온 평생의 소망이었다.
그러나 천여운의 입에서 나온 말은 더욱 파격적이었다.
“나를 따른다고 충성을 맹세한다면 본교의 북세외 총령의 자리를 주도록 하지.”
“북세외 총령!”
북해빙궁에 그치지 않고 북세외의 책임자가 되게 해주겠다는 의미였다.
단순히 따르라는 것도 모자라 그가 움켜쥐려 했던 소망보다 더욱 큰 것을 제안하자 단주천은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북세외의 지배자? 이 내가 북세외 무림 전체를 다스린다고?’
그 정도까지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무공으로는 이미 북세외 정점에 올랐기에 그 명성에 만족했던 그였다.
그러나 사내의 야망이란 그러했다.
불을 지펴주는 것만으로 활활 타오르는 기반이 된다.
-촤촤촤촤촤촤촥!
‘아!’
천여운의 상반신의 갑주로 변해있던 신물이 다시 황금 지팡이의 형태로 바뀌었다.
그것을 잡아든 천여운이 아무렇지 않게 단주천에게 내밀었다.
“이 신물이 그 상징이 될 것이다.”
-탁!
단주천은 홀린 듯이 천여운이 건네는 오한빙장의 손잡이를 움켜잡았다.
놀랍게도 극한의 음기를 내뿜으며 자신을 거부했던 신물, 오한빙장이 더 이상 그를 배척하지 않았다.
“아아아!”
-꽉!
오한빙장을 강하게 움켜잡은 단주천의 눈빛이 점차 되살아났다.
‘……..마신이 내게 불을 지피는 구나!’
눈앞에 사내는 무림에 다시없을 최강자일지도 몰랐다.
그가 만들어갈 무림사의 한 자리를 맡고 싶다는 욕망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다시 한 번 서보겠다!’
더 이상의 미련도 후회도 전부 접고서, 죽음을 받아들이려 했던 단주천의 꺾인 마음이 완전히 부활했다.
눈빛에 생기가 솟아난 그가 한쪽 무릎을 꿇고서 포권을 취했다.
-탁!
“마신께서 주신 기회를 각골난망(刻骨難忘)의 마음으로 받아들이겠나이다! 부족한 몸이지만 부디 신의 충성을 받아주소서!”
천여운이 입 꼬리가 올라가며 말했다.
“그대를 본교의 북세외 총령이자 세 번째 대장로로 임명한다.”
“충!!!”
단주천이 힘차게 대답하며 신물을 다시 움켜잡았다.
-꽉!
그렇게 천여운이 집권하는 천마신교에 첫 번째 대장로 문란영, 그리고 두 번째인 무쌍검 왕전에 이어 세 번째 대장로 단주천이 산하로 들어오게 되었다.
또 다시 오대고수 급에 이르는 절대고수가 천여운이 산하로 들어갔음을 무림인들이 알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굉장히 컸다.
처음으로 천여운이 무림 일통에 대한 야망을 정면으로 드러내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 * *
‘역시 멀쩡하군.’
천여운은 단주천의 손에 무사히 들려있는 오한빙장을 보며 보름 전을 떠올렸다.
수재가 닥쳤을 때 우연하게 발견한 신물.
천여운은 빙장의 봉에 적혀 있는 오한빙천공의 구결을 운기하면서 신공을 일층부터 점진적으로 체화시키기 시작했다.
이미 구음절맥으로 인해 극한의 음기를 얻었기에 신공의 사 층까지 막힘없이 익힐 수 있었다.
이를 신공의 창시자인 일대 조사 단영이 보았다면 경악했으리라.
그렇게 마지막 경지인 오 층을 익히던 차에 전혀 예상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파악!
신물에서 눈부신 빛이 일어나며, 천여운의 정신이 무한한 어둠 속 무상의 공간으로 빨려 들어간 것이다.
이것은 처음 겪는 일이 아니었다.
봉마동에서 천마검을 얻었을 때처럼 예의 일이 벌어졌다.
무상의 공간에서 천여운은 또 다른 환상을 보았다.
-펄럭! 펄럭!
[이럴 수가…..]그것은 북해빙궁의 궁전만큼 거대한 날개를 가진 새를 흰 털옷을 입은 정체불명의 중년인이 절세무공으로 제압하는 광경이었다.
반 시진에 걸쳐서 거대한 새를 제압한 중년인은 놈의 심장에 자신이 가지고 있던 황금빛 지팡이를 꽂아 넣었다.
그러자 죽은 거대한 새의 심장에서 강렬한 영력이 흘러나와 지팡이에 흡수되기 시작했다.
[이건……]천여운은 이것을 보며 전에 보았던 승천하기 전의 이무기를 떠올렸다.
그때 천마 조사로 짐작되는 사내가 이무기의 목을 베고서 그 몸에 천마검을 꽂았었다.
[영물의 영력을 흡수시키는 것인가.]길게 흐른 것 같았지만 환상은 찰나에 불과했다.
그렇게 수재 속에서 탈출한 천여운은 후에 황금빛 지팡이에 숨겨진 힘이 무엇인지 알아냈다.
신물이 무한한 극음의 한기를 내뿜는 비밀은 환상 속에서 보았던 영물의 영력을 흡수했기 때문이었다.
천여운은 그것을 대붕으로 짐작했다.
거대한 새의 형상을 지닌 영물은 오직 대붕뿐이었다.
[이게 신물의 숨겨진 진정한 힘이었구나.]천여운은 용귀에 이어서 오한빙장에 담겨 있는 대붕의 영력을 흡수했다.
수백 년 동안이나 방치되면서 영력의 손실이 컸지만 대붕의 영력은 천여운이 지니고 있는 극음의 한기와 조화를 이루게 되었다.
그렇게 영력을 전부 흡수하자, 놀랍게도 오한빙장은 천마검처럼 분해가 되어 이런 갑주의 형태로 변형시킬 수 있게 되었다.
[…..뭔가 있어.]천여운은 이를 기이하게 여겼다.
그래서 나노에게 황금빛 지팡이의 재질을 분석하게 했다.
여기서 놀라운 결과를 얻게 되었다.
이제는 궁주가 된 단백현에게 듣기로 북해빙궁의 신물인 오한빙장은 운남성에서 떨어진 운석의 조각을 섞어서 만들어졌다고 했다.
그 말은 천마검 역시도 운석의 조각이 섞였을 지도 몰랐다.
‘떨어진 별 조각으로 만든 무구가 두 개나 내 손에 들어오다니, 이것이 단순히 우연일까?’
그런 의문이 들었다.
어찌 되었든 대붕의 영력을 흡수한 덕에 신물을 다른 이들도 만질 수 있게 되었다.
겉면에 새겨져 있던 무공의 구결들은 지움으로서 알자배기를 전부 취한 천여운은 전혀 아까워하지 않고 오한빙장을 단주천에게 넘겼다.
어차피 그에게는 나노 슈트가 있었기 때문에 갑주는 의미가 없었다.
‘껍데기뿐인 신물 하나로 이 정도 인재를 얻는 것이라면 손해볼 것도 없지.’
오한빙장을 들고 있는 단주천의 얼굴에는 기쁨의 화색이 돌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누군가 급히 임시 구금실의 막사로 들어왔다.
“교주님!”
그는 허봉이었다.
천여운이 의아한 눈빛으로 쳐다보자 그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전 태상교주님이 깨어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