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293)
# 93장 장백산으로 (2) #
“은자림!”
천여운과 대호법 마라겸이 동시에 놀라워했다.
은자림(隱玆林).
그것은 풍문으로만 들리는 전설의 문파였다.
은자림은 말 그대로 숨겨진 흐릿한 수풀이라는 의미이다.
읽는 그대로의 의미가 다가 아니라 림은 무림(武林), 즉 숨겨진 무림의 단체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전설에 따르면 은자림은 무림에 큰 혈겁이 일어나면 나타난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오백 년의 세월 동안 한 번도 이면에서 드러낸 적이 없기 때문에 무림인들은 그저 허황된 소문에 불과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은자림은 실제로 존재하는 단체다. 구중 대사는 그곳에 속해있지.”
놀랍게도 은자림은 존재했다.
그리고 그들의 목적은 전설처럼 뜬 구름 식의 혈겁이 아닌, 먼 훗날에 나타날 극도신의 후예들을 찾아서 막기 위한 비밀 단체였다.
“당시의 정파인들 중에 검마 공처럼 사라진 극도신을 우려하는 이들이 있었지.”
그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한 사람의 손에 오대고수 대부분이 살해당했다.
여느 무림인들 간의 싸움이나 무자로서의 승패를 가르기 위한 대결과는 완전히 양상이 달랐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이 전대미문의 피살 사건은 경각심을 일깨우기에 충분했다.
“그들은 본교와 준비하는 방법이 달랐다.”
검마가 극도신을 이길 수 있는 무인을 양성하는 방향으로 초점을 맞춘 것과 달리 은자림은 그의 존재를 은밀히 추적하는데 초점을 두었다.
그러나 이것에는 크나큰 문제가 있었다.
행방불명된 극도신은 마치 땅으로 꺼지거나 하늘로 치솟은 것 마냥 흔적조차 남기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포기할 법도 하겠지만 은자림은 그 자가 반드시 나타날 거라 확신했지. 검마 공이 먼 훗날을 예견한 것처럼 말이야.”
그리고 그 예상은 들어맞았다.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도 그 맥을 이어온 은자림의 고수들은 처음으로 극도신의 흔적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것은 극도신이 사라지고 나서 이백여 년이 흘러서였다.
“그럼 삼백여 년 전에 극도육무문을 찾았다는 겁니까?”
“……찾았다기보다는 흔적에 불과했단다.”
은자림은 강소성의 남단에 있는 백양산에서 극도신의 도법으로 추정되는 일부 도흔들을 발견했다.
드디어 그의 흔적을 찾았다고 좋아했지만 기이한 점이 있었다.
그들이 발견한 도흔들은 극도신이 살해한 소림 신승이나 무당검선의 시신에 남아있던 것에 비해서 완성도가 굉장히 떨어졌다.
“마치 그것은 극도신의 무공을 이어받은 것이 아니라, 흉내 내는 수준에 불과했다고 전대 은자림의 선배들이 기록을 남겼더구나.”
‘은자림의 선배?’
선배라는 말에 천여운은 뭔가 묘한 의구심이 들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천인지가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찾았던 흔적을 끝으로 또다시 행방이 묘연했는데, 오십여 년이 지나 강서성 북쪽에서도 그 흔적을 발견했지.”
굉장히 오랜 후에서야 발견한 흔적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발견한 흔적은 백양산에서 발견했던 도흔보다 훨씬 발전해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극도신 본인이 남겼던 것에 비하면 굉장히 부족했지만 장족의 발전을 이루었다.
“그럼 그때 은자림은 놈들과 조우한 겁니까?”
“아니다. 마치 놈들은 철저히 모습을 숨기는지 몇 개의 도흔 이외에는 아무 것도 남기지 않았지. 은자림이 그렇게 은밀하고 조심스럽게 추적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랜 세월의 격이 존재했지만 흔적이 남아있다는 것은 극도신의 후예들이 언제라도 다시 나타날 확률이 높아진다는 의미였다.
그렇기에 은자림은 계속해서 맥을 이어가며 그들의 흔적을 추적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처음 은자림이 생긴 후부터 지금까지 많은 극도신의 도법 흔적을 찾아냈다. 그러나 정작 그들은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 하지만 그 흔적들을 통해서 하나의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단다.”
“사실이라면?”
“그 후예들이 남긴 도법의 흔적이 갈수록 극도신 본인이 남긴 것과 동일해져 간다는 것이다.”
“아!”
발견된 흔적은 시대를 더해갈수록 그 완성도가 높아졌다.
그리고 마지막에 와서는 완전히 극도신의 도법과 동일하다고 보아도 무방했다.
“은자림에서는 이를 바탕으로 한 가지 가설을 내세웠지. 이들은 극도신의 후예가 맞지만 어쩌면 극도신 본인에게 도법을 전수받은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 말에 동의하는지 천여운도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일리가 있는 가설이다.’
비록 극도신무가 통상적인 무공보다 익히기 어렵다고 하나, 극도신 본인이 익혔다는 말은 이것의 수련법도 존재할 것이다.
그런데 계속해서 발전해나갔다는 것은 그 수련법이 단절되거나, 혹은 그 후예들이 정식으로 극도신에게 무공을 사사받은 것이 아닐 수도 있었다.
“하나 중요한 건 그게 아니란다. 본교에서도 그렇고 은자림에서 우려했던 일이 점차 기정사실화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검마도, 은자림도 극도신의 후예가 나타나는 것을 우려했다.
만약에 극도신의 도법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무인들이 단체를 이뤄서 나타나게 된다면 삼대 세력이라고 해도 막기 힘들 거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와중에 드디어 우려했던 일이 터졌단다.”
극도육무문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아무리 은밀히 추적한다고 해도 꼬리가 길면 밟히기 마련이었다.
극도육무문에서는 무림에 숨겨진 단체가 자신들을 추적하고 있음을 알아채고 역으로 그들을 찾아내기 위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이를 눈치 챈 것은 은자림에 소속된 고수들이 한 명씩 행방불명되어서였지.”
은자림은 숨겨진 비밀 단체답게 극소수의 고수들로 이루어졌다.
그러다 보니 은자림의 고수들이 셋 이상 행방불명되자, 극도육무문이 태동하고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은자림에서는 역으로 그들을 추적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아아!……그게 소림의 주암 선사로군요?”
천여운의 물음에 전 태상교주 천인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추측대로 주암 선사 역시도 은자림에 속해있었는데, 그가 직접 미끼를 자처한 것이다.
극도신무의 흔적들은 주로 안휘성, 강소성, 강서성, 절강성을 중심으로 나타났는데, 이들을 꾀어내기 위해 주암 선사가 움직였다.
“네 말대로 주암 선사의 공이 컸지. 그의 희생으로 처음으로 놈들과 조우하게 되었다.”
이 같은 이야기를 해준 것이 바로 구중 대사였다.
구중 대사를 통해 은자림에 대해서 알게 된 천인지는 검마 공의 유훈을 떠올렸다.
어쩌면 그들을 도와서 극도육무문의 실체를 밝히고 맞서는 것이야말로 훗날의 마교를 위한 길일지도 모른다고 여겼다.
“사실 선택권이 없었지. 구중 대사가 이 사실을 밝힌 것은 이 할애비에게도 함께 하자고 권유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고민은 길게 할 수 없었다.
구중 대사는 생포한 극도신의 후예들을 데리고 은자림의 근거지로 향한다고 했기에 공조를 위해선 그들에게 합류해야만 했다.
“…….그것이 본교를 위한 길이라 생각했다.”
짧은 시간 안에 여러 고민을 했다.
타초경사(打草驚蛇)라는 말이 있다.
풀을 두드려 뱀을 놀라게 한다는 말인데, 안 그래도 무림을 상대로 철두철미할 만큼 스스로를 감추는 자들을 더욱 꽁꽁 감싸게 할 순 없었다.
“그렇게 이 할애비는 은자림의 일원이 되어 그들과 공조하게 되었지.”
그것이 이십오 년 전의 일이었다.
전대 태상교주인 천인지의 숨겨진 비밀이 반 이상 밝혀졌다.
마라겸은 그 이야기에 내심 씁쓸해졌다.
‘교주님, 아니 어르신께서 그런 사명감을 가지시고 혼자서 이 커다란 짐을 짊어지셨단 말인가.’
무림을 삼분 하는 단체의 수장이 그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단신으로 희생을 하는 것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마땅히 교인들로부터 존경받아야 할 일이었다.
“……그런데 조부님께서는 어떻게 극도육무문에 사로잡히시게 된 겁니까?”
천여운의 질문에 천인지가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사로잡은 후예들에 대해서는 궁금해 하지 않는 구나?”
“암시나 머릿속에 고(蠱)가 들어있는데 뭔가를 크게 불었을 리가 없을 테니까요.”
몇 차례나 그들을 생포하고도 큰 정보를 얻지 못했던 천여운이다.
경험을 비추어 봤을 때, 은자림이라고 크게 다를 바가 없을 거라 생각했다.
이에 천인지가 감탄했다는 듯이 말했다.
“하! 여운이 네가 이 할애비보다도 낫구나. 그래. 네 말이 맞다. 그들은 뭔가를 불기도 전에 머리가 터져 죽어버렸지.”
칭찬을 했지만 목소리는 씁쓸하기 그지없었다.
십계승 중 한 사람인 주암 선사의 희생이 무색해 지는 순간이었으니 말이다.
천인지가 합류하게 되면서 더욱 추적에 박차를 가한 은자림은 몇 차례나 극도육무문의 문도들을 생포했지만 번번이 정보를 색출하는데 실패하고 말았다.
“은자림의 고수들과 이 할애비는 이런 식으로는 안 될 거라 생각했다.”
그러던 차에 이십여 년 전, 그들은 뜻밖의 적들과 조우했다.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무위를 지닌 적이었다.
“그 사내는 오대고수와 겨뤄도 떨어지지 않는 무위의 소유자였지.”
그는 네 명의 철가면을 쓴 자들과 나타났었는데, 당시에 운이 좋게도 구중 대사를 비롯해 은자림의 고수들이 모여 있는 은신처를 습격한 덕분에 겨우 대응할 수 있었다.
[옛 동료들이다. 해후를 즐겨라. 크크큭.]처음에는 그자가 한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었다.
뛰어난 무위를 지닌 사내는 결국 놓치고 말았지만 다른 자들을 붙잡는 데 성공했다.
겨우 제압하고서 그들의 철가면을 벗겼는데,
“…….팔구 년 전에 극도육무문의 손에 죽었다고 생각한 은자림의 고수들이었다.”
어떤 연유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은 암시에 걸려있었다.
암시를 풀기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했으나, 시도하는 도중에 머릿속에 있던 고가 터져서 죽어버렸다.
그런데 네 명 중에서 유일하게 다른 죽음을 맞이한 자가 있었다.
그는 극도육무문을 끌어내는데 희생을 자처했던 소림의 주암 선사였다.
“놀랍게도 주암 선사는 죽기 전에 암시가 일부 풀렸었다.”
암시로 대부분을 기억이 온전치 못했지만 주암 선사는 죽기 전에 자신이 납치되어 알게 된 중요한 사실을 하나를 알려주었다.
“놈들이 하나의 거대한 세력을 갖추었고, 그것은 능히 무림 전체를 상대할 만큼의 수준에 이르렀다고 했지.”
그것을 알려준 주암 선사는 오래 버티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
사실 그는 철가면을 쓰고 습격했던 당시에 중상을 입었기에 살릴 방도가 없었다.
하지만 죽은 그는 다른 세 명과 달리 머리가 터지지 않았다.
“연유를 알기 위해 구중 대사의 허락 하에 머릿속을 해부했을 때 우리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단다.”
주암 선사의 머릿속에 있던 고는 수축되어 가사 상태에 빠져있었다.
마치 동면에 들어간 것처럼 활동이 멈춰진 상태였다.
“여기서 고의 상태를 살피면서 한 가지 사실을 알았는데, 고의 활동이 멈추는데 역근경의 불도의 기운이 영향을 끼친 듯 하더구나.”
이야기를 듣던 도중 천여운이 떨리는 눈으로 천인지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궁금해 하던 한 가지 의문점이 풀렸기 때문이었다.
“조부님!……역근경을 익히신 연유가 설마?”
“……그래. 네 생각이 맞다. 놈들의 근거지에 이 할애비가 직접 잠입하기 위해서였다.”
손자인 천여운의 짐작에 그는 부정하지 않았다.
보리달마 조사가 창안한 역근경은 내가 심법의 정점이라 불린다.
이 심법은 여타의 것들과 다르게 심신을 안정케 하는데 큰 효능을 지녔는데, 역근경이 암시나 고를 막는데 큰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낸 구중 대사와 천인지는 이를 역이용하면 극도육무문에 침투할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
“어르신께서 폐관에 들어가셨던 이유가 역근경을 익히기 위해서였던 겁니까?”
지금까지 천마검공을 복원하기 위한 것인 줄로만 알고 있던 마라겸이었다.
이에 천인지가 반만 수긍하면서 답했다.
“물론 그 이유도 있지만 대호법에게 말한 대로 천마검공의 운기법을 창안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천인지는 극도신무에 대항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천마검공뿐이라 여겼다.
그러나 운기법이 없이는 완전한 검초를 펼칠 수가 없기에 어떻게든 그것을 복원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소요했다.
“역근경을 극성으로 익힐 때까지 본교에 머물러 있으려 했다. 하나….”
역근경을 익힐수록 원래의 천마심법의 진기보다 불도의 기운이 강해졌다.
이 기운이 강해질수록 여섯 종파를 비롯해, 교주의 자리를 물려준 천유종이 눈치 챌 수도 있다고 판단한 그는 원래 예정되었던 것보다 서둘러 본교를 빠져나왔다.
-털썩!
마라겸이 무릎을 꿇고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찌 이 같은 일을 혼자서 안고 가셨던 겁니까? 속하에게 알려주셨다면….”
-탁!
이에 천인지가 그의 어깨에 부드럽게 손을 올리며 달래듯이 말했다.
“대호법. 자네에게는 검마 공이 맡긴 유지와 천마령의 수호자로써의 사명이 있는데, 어찌 노부가 이를 간과한단 말인가.”
“아아아! 어르신……”
‘조부님…..’
천여운 또한 조부인 천인지의 희생에 감격했는지 말문을 잃고 말았다.
그들과의 접전으로 납치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잡혀 들어가 적들의 정보를 알아내려 한 것이었다.
일종의 고육지책(苦肉之策)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