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295)
# 93장 장백산으로 (4) #
전 태상교주 천인지가 깨어난 지 닷새째 되는 날,
천여운과 마교인들은 북해빙궁으로의 여정을 마치고 다시 중원으로의 남하를 시작했다.
원래는 천인지가 깨어난 다음날에 곧장 출발하려고 했지만 두 가지 문제로 인해 사흘 간의 준비 과정을 거쳤다.
첫 번째는 원기의 손상이 컸던 천인지의 몸이 어느 정도 회복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다면 조부님. 천마검공의 심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라고 했지만 원기를 회복하는데는 역근경이 낫다고 거절했다.
그래도 천인지의 말처럼 역근경의 뛰어난 효능 덕분에 사흘 만에 운신이 자유로울 정도로 회복되면서 출발을 결정하게 되었다.
두 번째는 식량의 수급 때문이었다.
육검단은 용귀 그리고 정도 무림맹, 북해빙궁과의 전쟁으로 일부 희생이 있었지만 여전히 오백 명이 넘는 적지 않은 전력이었기에 식량이 필요했다.
북해로 올라오는 과정에 개봉에서 준비했던 식량은 전부 소요했기에 이를 채워야 출발이 가능했다.
북해빙궁이 무너지지 않았다면 수월하게 식량을 채웠을 것이다.
“스승님. 조금 더 머물다 가시지 않고요.”
신임 궁주인 단백현이 그에게 더 머물기를 권했지만 이미 빙궁에서의 모든 볼일을 마쳐 더 이상 여유를 부릴 시간이 없었다.
천인지의 말대로라면 서둘러 ‘요녕성’으로 향해야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마교인들이 계속 섬 내에 머물고 있으면 궁주로 부임한 단백현이 궁인들을 규합하는데도 좋지 않았다.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는군.”
“아, 아닙니다. 그럴 리가 없지 않습니까? 아직 배워야 할 것도 많고….”
“가르칠 수 있는 것은 전부 가르쳤다. 오한빙천공의 구결도 전부 전수했으니, 후에 제대로 익혔는지 확인하겠다.”
“넷?
그런 천여운의 말에 궁주 단백현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내심 그가 떠난다고 해서 드디어 자유를 만끽한다고 좋아했었는데,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았다.
“확인을 말입니까?”
“첫 제자인 셈인데 얼렁뚱땅 넘어갈 것 같으냐.”
비록 북해의 무공만을 전수하긴 했지만 직접 제자로 받아들인 건 단백현이 처음이었다.
원활하게 북해빙궁을 산하로 두기 위한 계책이었지만 자신의 제자라는 호칭을 달고 있는 이상 어영부영 넘어갈 생각은 없었다.
“육검단원 다섯 명이 이곳에 상주할 테니, 그들을 통해서 수련을 게을리 하는지 주기적으로 확인 하겠다.”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대답은 했지만 단백현의 얼굴은 시무룩해졌다.
‘쯧.’
천여운이 속으로 혀를 찼다.
그를 가르치면서 천여운이 한 가지 공감한 것이 있었다.
단백현이 기본적인 재능이 떨어지는 것도 있었지만 그는 애초에 무가의 혈족임에도 불구하고 무공을 익히는데 큰 관심이 없었다.
이제는 마교의 대장로가 된 단주천이 그의 전 스승임에도 실망할 만도 했다.
정통성이나 명분은 단백현이 가지고 있기는 했지만 훗날이 북해빙궁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확실히 그보다 단주천이 궁주로서 자격이 있었다.
‘뭐, 운도 하나의 자격이 되나.’
다만 단백현의 운이 더 좋았을 뿐이었다.
그가 전 태상교주 천인지와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쯤 주검이 되었을지 누가 알겠는가.
“교주님. 준비가 끝났습니다.”
“수고했습니다.”
육검단 전부가 선박에 올랐음을 대호법 마라겸이 알렸다.
시무룩해진 궁주 단백현에게 누차 수련을 게을리 하지 말라고 당부한 천여운은 배 위로 올랐다.
배에 올라서 선박의 머리 쪽으로 걸어오는 천여운에게 육검단의 부관 허봉이 아쉽다는 듯이 말했다.
“교주님, 이왕 산하로 거두셨는데 북해빙궁의 이름을 바꾸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요? 예를 들면 천마신교 북해지부 같은 이름요. 캬~죽이지 않습..”
-딱!
“으헉!”
뒤통수를 얻어맞은 허봉이 고개를 돌려보니, 육검단주 중 한 사람인 호상화가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제, 제 머리가 동네 북인가요?”
울상을 짓는 그에게 호상화가 속삭이듯이 경고했다.
“다 좋은데, 제발 입조심 좀 해. 허.부.관!”
“……예이.”
호상화가 고개 짓으로 가리키는 사람들을 의식한 허봉도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호수를 건너는 배 위에는 마교인들 이외에도 새롭게 합류한 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대장로가 된 단주천과 그를 따르는 궁인들이었다.
북해빙궁의 장로들 중에서 일 장로 설영귀를 비롯한 두 사람이 함께 하기를 원했지만, 천여운은 그것은 허락하지 않았다.
[장로들이 셋이나 빠지면 북해빙궁은 어떻게 통제하지?] [……알겠습니다. 태상궁주님의 명에 따르겠나이다.]물론 그 외에도 막 입교한 대장로 단주천에게 쓸 만한 심복을 붙여줄 생각은 없었다.
어느 정도 신뢰할 수 있게 될 때까지는 말이다.
그래도 단주천의 체면을 살려주기 위해 그를 따르는 백여 명의 궁인들은 따라올 수 있게 허락했다.
그런데 이런 북해빙궁 출신들 이외에도 두 명의 타인들이 있었다.
[군사. 우린 어찌되는 걸까요?]불안한 목소리로 전음을 보내는 이는 모용세가주의 아들인 모용유다.
모용유가 전음을 보낸 사람은 바로 옆에 서있는 무림맹의 제 이 군사인 제갈소희였다.
그들이 어째서 사흘 전에 먼저 떠난 정도 무림맹의 파병단과 같이 돌아가지 않고 그들과 함께 있는 것일까?
[너무 불안해하지 마요. 모용 공자. 볼모라고 칭한 이상 아무리 천 교주라고 해도 우릴 쉽게 해하지 않을 거에요.] […..저 냉혈한 같은 자가요?]모용유가 몸서리를 쳤다.
그들은 정도 무림맹의 파병단을 돌려보내주는 대가로 붙잡힌 볼모였다.
처음에는 용귀의 진원을 노렸던 그들을 전부 처리하려 했던 천여운이었지만 아직까지는 정도 무림맹과 부딪치기는 이르다 판단하여 볼모를 받고서 풀어주었다.
‘극도육무문을 해결하고도 늦지 않으니까.’
선택권이 없었기에 모용강은 치욕스러웠어도 이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파병단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그나마 다행은 천여운이 후에 정도 무림맹과 협의를 통해 볼모를 풀어줄지에 대한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말을 들었다는 것 정도였다.
[제갈 군사. 제 생각에는 기회가 있으면 탈출해야 합니다. 저 냉혈한 괴물은 제 마음에 들지 않으면 팔을 자르거나 전부 죽여 버리는데 우리도 그 꼴이 될 수 있습니다!]이번 일을 겪으면서 마교주 천여운을 극단적으로 두려워하는 모용유였다.
첫 만남 때만 하더라도 자신보다 좀 더 강한 후기지수라 여겼지만, 지금은 언감생심 그런 생각은 털끝만큼도 하지 않았다.
제갈소희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모용유의 심경은 이해했지만 과연 저 괴물의 손에서 무슨 수로 벗어날까?
[포기하면 안 됩니다. 군사!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하는데, 어떤 식으로든 기회가 생기면 시도는 해봐야 하지 않…]“모용 공자.”
“힉!”
전음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모용유가 경기를 일으켰다.
그의 뒤에 언제 다가왔는지, 육검단의 단주 중 한 사람인 백기가 담담한 얼굴로 서있었다.
탈출을 꿈꾸던 모용유가 괜히 찔려서 말을 더듬으며 답했다.
“왜, 왜 그러십니까?”
“교주님께서 부르시오.”
“처, 천 교주님께서요? 어….어째서 입니까? 여기서 아무 짓도 안하고 얌전히 있었습니다.”
잔뜩 겁에 질린 모용유를 보면서 제갈소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휴, 무슨 배짱으로 탈출할 건가요? 모용 공자.’
상대가 마신 천여운인 만큼 이해 못할 것도 없었지만, 이렇게 겁에 질려서야 탈출을 계획하는 것은 요원한 일이었다.
“가보면 알 것이오.”
하얗게 질려서 천여운의 앞에 불려온 모용유는 그의 눈치를 보았다.
그런 그에게 천여운이 물었다.
“모용세가가 요녕성에 있다고 들었다.”
“그, 그렇습니다만.”
“요녕성 출신이라면 그곳의 지리는 잘 알겠군?”
알 수 없는 질문에 모용유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혹시나 그가 요녕성의 패권을 가진 모용세가를 노리는 것인가 괜한 걱정마저 들었다.
그런 우려와 달리,
“요녕성에 도착하면 장백산으로 가는 길을 안내해라.”
“네? 장….백산이요?”
천여운이 그를 부른 목적은 바로 길 안내였다.
* * *
그날 저녁 십만대산의 마교 성.
내성에 있는 태상교주 전에는 많이 회복하여 이제는 운신이 자유로워진 태상교주 천유종이 거처를 옮겨서 생활하고 하고 있었다.
최근 그의 일과는 오전에는 신의의 치료를 받고, 오후에는 운기하여 원기를 회복하는 일이었다.
꾸준한 노력으로 원래의 몸 상태를 되찾아가고 있었다.
태상교주전의 연공실에서 운기조식을 취하고 있는 그에게 손님이 찾아왔다.
우호법 섭맹이었다.
평소와 다르게 화색이 감도는 얼굴의 섭맹은 희소식을 전하기 위해서 태상교주전을 방문한 것이었다.
“아, 아버님을 찾았단 말인가?”
천유종은 그가 알려준 소식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자그마치 이십여 년 전에 행방불명되어 이제는 죽었다고 생각했던 그였다.
그런데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놀라지 마십시오. 클클, 교주께서는 전 태상교주님을 찾은 것뿐만이 아니라, 북해빙궁을 본교의 산하로 거두셨다고 합니다!”
“뭐라?”
놀라지 말라고 예고했지만 그러지 않는 게 더 이상했다.
천유종이 집권한 이래 수많은 전쟁을 겪었지만 실질적으로 큰 성과를 거둔 적이 없었다.
“북해빙궁을 손에 넣어? 하!”
그런데 천여운은 그가 생각해도 정말 대단했다.
교주에 부임한지 얼마 되지 않아 국교를 바꾼 것부터 시작해, 황도인 개봉을 마교의 영역으로 만드는 쾌거를 이루었다.
그게 얼마나 되었다고 북해빙궁마저 손에 넣었다니 혀가 내둘릴 정도였다.
“떡잎부터 알아보고 소신이 이래서 당대 교주님을 마도관에서 제자로 받은 게 아니겠습니까? 본교의 감축입니다! 클클클.”
우호법 섭맹이 신이 나서 떠들어댔다.
그런 그를 보면서 태상교주 천유종은 오히려 죽은 아내를 떠올렸다.
‘화연…..당신의 아이가 나보다 훨씬 낫군.’
이렇게 교주로서의 자질이 뛰어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녀가 살아있었다면 같이 좋아했을 텐데 씁쓸했다.
그래도 오늘 같이 기쁜 날이라면 오랜만에 술을 한 잔해도 좋을 것 같았다.
“기쁜 날이로군. 우호법. 좋은 소식을 전해주었으니, 본좌와 술이라도….!!!”
-촥!
미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천유종이 창가 쪽에 검결지를 뻗었다.
급하게 운기 한 상태라 강기는 아니더라도 천유종의 검결지에서 날카로운 검기가 발산되어, 반쯤 열려있던 창문을 뚫고 지나갔다.
“태, 태상 교주님?”
-탓! 콰직!
우호법 섭맹이 의아해하는데, 그가 곧장 창문을 부수고 밖으로 나아갔다.
벽에 붙은 횃불이 밝히고 있는 태상교주 전의 정원을 기감을 넓혀 이리저리 둘러보던 천유종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어찌 그러시는 겁니까?”
뒤따라온 섭맹의 물음에 천유종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답했다.
“누군가 대화를 엿듣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본좌의 착각이었던 것 같소.”
“네? 이곳 태상교주전을 말입니까?”
호위단인 육검단이 부재중이기는 했지만 이곳은 마교 내에서도 가장 경비가 삼엄한 내성이었다.
게다가 비록 완전히 회복된 것은 아니라도 전 오대고수의 일인이었던 천유종의 기감을 속이고 접근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원기가 손상되었다고 이런 착각을 하다니. 후우. 들어가세나.”
“흐음….그리하시지요.”
천유종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섭맹과 함께 다시 숙소로 들어갔다.
같은 시각,
마교의 성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십만대산의 봉우리들 중 하나인 오현봉의 꼭대기.
-우웅!
오현봉의 꼭대기에서 푸른빛과 함께 공간이 일렁였다.
-치치치칙!
일렁인 공간이 있던 곳에서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다.
아무 것도 없는 허공에 독특한 소재의 옷감으로 보이는 것이 사라졌다가 나타나길 반복하고 있었다.
-달칵!
“젠장.”
그러더니 이내 누군가 아무 것도 없는 그곳에 독특한 복색의 사람이 나타났다.
뭔가 원래부터 있었는데, 보이지 않다가 보이게 된 느낌이었다.
-주르륵!
그의 허리춤에 옷이 베여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분명 육안으로는 전혀 보이지 않았을 텐데 그걸 눈치채다니, 말도 안 되는 괴물이잖아.”
최대한 조심해서 다가갔는데 곧바로 들켜버렸다.
독특한 복색의 그 자가 자신의 베인 상처를 살펴보다가, 허리에 차고 있던 네모난 가방 같은 것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발견했다.
“헉!”
그 자는 가방에서 부서져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원형의 그것을 꺼내들었다.
그리고는 다급히 있는 힘을 다해 그것을 던져버렸다.
-쾅! 우우웅!
연기가 피어오르는 원형의 물건이 허공을 날아가다 이내 굉음소리와 함께 공간의 일렁임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것을 망연자실하게 쳐다보던 독특한 복색이 사내가 중얼거렸다.
“젠장, 이런 식으로 하나를 날리다니.”
-털썩!
바닥에 주저앉아서 어쩔 줄 몰라 하던 사내가 주머니 속에 있는 아까 전에 던졌던 물건과 동일하게 생긴 원형의 물건 두 개를 쳐다보았다.
원래의 계획이 완전히 틀어졌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한참을 탄식하던 사내가 중얼거렸다.
“…..아아, 당초의 계획은 물 건너갔네. 여기서 저 먼 곳까지 걸어갈 순 없는 노릇이잖아. 들킬 지도 모를…”
-삐삐삐!
그때 사내의 손목에 차고 있는 기계식 팔찌에서 묘한 경고음이 울렸다.
사내가 짜증을 냈다.
“칫…..두 개나 써서 벌써 감지한 건가? 빠르기도 하네!”
사내가 다급히 주머니 속에서 원형의 물건을 꺼내서, 무언가를 조작하더니 이내 푸른빛과 함께 공간이 일렁이며 그의 모습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