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3)
# 2장 누가 책을 외우라 했던가(1) #
아직 소년에 불과한 천여운이었지만 절대로 어리숙하지 않았다.
열다섯 해가 되는 동안 수많은 암살 시도를 겪어가며 목숨을 부지해왔기 때문에 자신이 가지게 된 패의 소중함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그리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지게 된 패를 누구에게도 들켜선 안 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감지했다.
‘내 몸 속에 나노 머신이 있다는 것을 숨겨야 돼.’
여기서 천여운은 모르고 있었지만 현 시대의 의학 기술로는 절대로 나노 머신의 존재를 발견할 수 없다.
그걸 모르는 천여운으로써는 자신을 진맥하고 있는 백 의원이 마교의 근간을 이루는 여섯 종파 중의 하나인 독마종 출신이라는 것이 우려가 될 수밖에 없었다.
‘제발 그냥 넘어가야 할 텐데.’
애써 내색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천여운의 얼굴에 긴장감이 돌았다.
그는 비공식적으로 마도관에 입관하기까지 어떠한 무공도 익히지 못하도록 제지당하고 있는 상태였다.
‘흐음, 누군가의 도움을 받은 건 틀림없어 보이는데.’
천여운의 몸에 갑작스럽게 일어난 변화에 마의 백종우는 기이하게 여겼다.
그를 어렸을 적에 보았을 때는 왜소한 체구에 변변찮은 무공조차 익히지 못해서 서열 싸움에 자연스레 도태가 될 것이라 여겼다.
그런데 지금 몸 상태를 보니 다른 여섯 가문에 속하는 천 공자들과 비교해도 무공을 익히기에 부족함이 없어보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불리한 것은 변함없었다.
다른 서열 순위의 천 공자들은 마도관에 입관하기 전부터 미리 무공을 익히고 내공을 쌓아 왔는데 다가, 이미 자신들만의 세력을 차곡차곡 쌓아온 상태였다.
‘관심이 없는 척 하시더니 역시 신경 쓰신 건가.’
여기서 백종우는 본의 아니게 오해를 하게 되었다.
그는 천여운의 이 같은 변화의 원인을 현 마교의 교주인 천유종에게서 비롯되었다고 여겼다.
‘하긴 열손가락 깨물어서 아프지 않을 손가락이 있을 리가 없지.’
교주가 나서서 몰래 도와준 것이라면 그가 굳이 아는 척 할 이유가 없었다.
마의 백종우는 가기 전에 원기를 북돋게 하는 탕약을 처방해주고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돌아갔다.
그과 완전히 돌아가고 나서 천여운은 안도의 숨을 내쉴 수 있었다.
“공자님.”
“장 호위.”
미처 그에게 고맙다는 인사도 건네지 못했다.
나노 머신이 그를 치료해주긴 했지만 장 호위가 제 때에 나타나지 않았다면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짐작하기 힘들었다.
“숙소까지 데려오느라 고마…”
천여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장 호위가 단호하게 말을 잘랐다.
“죄송합니다. 공자님! 그 전에 일단 씻어야 겠습니다.”
“……그렇네.”
자신의 몸에서 배출된 것이지만 냄새가 지독하긴 했다.
장 호위는 시종을 불러서 노폐물로 인해 더러워진 침소의 이불을 갈게 하고, 천여운이 씻을 수 있도록 준비하게 하였다.
욕실에 준비된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근 천여운의 표정은 내내 묘하기만 했다.
‘하늘이 운명을 바꾸라는 건가?’
여시종의 몸에서 태어난 그의 운명은 애초부터 정해져 있었다.
여섯 가문, 즉 여섯 종파로 이루어진 마교는 그들의 가문에서 최강의 후계자를 선출하여 소교주를 옹립해왔다.
하지만 천여운은 여섯 가문의 소속도 아닌 교주전에 속한 여시종의 태생이었기 때문에 아무런 기반도 없이 자라왔다.
그러나 그가 살아온 열다섯 해의 세월은 누구보다도 처절하면서도 살아남기 위한 행보였다.
‘이봐. 나노 머신.’
[네. 주인님.]한 시진 가까이 나노 머신과 대화를 나누지 않은 그였다.
의외로 나노 머신은 천여운이 먼저 말을 거는 것이 아니라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덕분에 왠지 모르게 감시당하는 것 같다는 느낌은 어느 정도 지울 수 있었다.
‘아까 네가 내 몸을 회복시켰다고 했는데, 대체 어느 정도까지 가능한 거야?’
[외부의 충격으로 인한 자상이나 내부의 장기 손상은 금방 자가수복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혈액 손실과 육신이 절단되는 것은 세포 분열을 요하기 때문에 상당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그, 그래?’
나노 머신이 머릿속으로 많은 정보를 보내주었으나 여전히 알아듣기 힘들었다.
그가 이해한 정도로는 살점이 떨어져 나가거나 출혈이 심한 것이 아니라면 금방 치료가 가능하다는 말 같았다.
‘시험해 봐도 상관없겠지?’
[스스로 자상을 내는 것은 비추천 해드리고 싶으나, 시험해보고 싶다면 손상이 적은 상처로 권유해드립니다.]천여운이 벗어놓은 옷가지 위에 올려놓았던 단검을 검집에서 빼냈다.
잠시 망설였지만 이내 날카로운 검신에 손을 가져다가 베어보았다.
-촥!
“윽!”
겁도 없이 손을 베긴 했는데 많이 아팠다.
[왼쪽 손바닥에 대한 자상에 대해 자가 수복 기능을 가동합니다.]나노 머신의 딱딱한 목소리와 함께 피가 흐르는 왼손 손바닥에서 뭔가 간지러움이 느껴지더니 이내 흘러나오던 피가 멎었다.
그러더니 정말 순식간에 상처가 사라져버렸다.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하아. 진짜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가 않네.’
이렇게 빠르게 회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더욱 믿기 힘든 것이 있었다.
그것은 나노 머신이 그의 머릿속으로 전이한 나노 머신의 활용도에 관한 것이었다.
‘회복 능력은 그렇다 치고 정말로 내 머릿속으로 전이한 내용대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게 맞아?’
[전이시킨 내용대로 전부 활용이 가능합니다.]‘좋아. 그렇다면 목욕이 끝나고 한 번 시험해 봐야 겠어.’
[알겠습니다.]나노 머신의 대답이 끝나자 천여운은 다시 따뜻한 물속에 몸을 담그고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정말로 나노 머신이 말한 능력을 사용할 수 있다면, 이때까지 당해온 모든 수모를 갚는 것도 모자라 서열 순위에 속해있는 누구보다도 소교주에 가까운 위치로 올라설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마교의 성내 남동쪽에는 교를 지탱하는 여섯 종파 중 하나인 복마종의 근거지가 자리하고 있다.
복마종의 본단 건물 옆에는 차기 소교주 후보를 위한 거처가 마련되어 있다.
거처의 앞마당에 십육 세 정도로 보이는 얼굴이 주근깨가 가득한 소년이 있었고, 그 앞에는 복면을 쓴 사내가 부복을 하고 있었다.
“되게 웃기는 거 알지? 그게 말이 되는 거라고 생각해?”
소년은 뭐가 그리 화가 나는지 눈썹까지 곤두서서 윽박을 질렀다.
복면의 사내는 그런 소년의 화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절절 매기만 했다.
“기껏 꼴 보기 싫은 녀석을 먼저 치우라고 했더니 다섯 명이 전부 죽었다고? 하아.”
“아무래도 숨겨진 고수가 개입한 것 같습니다. 무금 공자.”
“누가 네놈 멋대로 본 공자의 이름을 부르라고 했느냐!”
“죄송합니다. 천 공자.”
소년의 이름은 천무금.
복마종을 외가로 두고 있는 천무금은 소교주 서열 삼위에 위치하고 있는 자였다.
호전적이고 간교한 성격의 천무금은 마도관 입관을 앞두고 과감하게 천여운을 처리하기 위해 복마종의 암살자들을 동원했지만 뜻밖에도 실패하고 말았다.
“천한 핏줄의 섞인 놈이라 쥐뿔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뭔가 숨겨둔 게 있나보군.”
예상 외였다.
일부러 천여운의 호위 무사까지 따돌리게 만들고 노렸는데 실패했다는 것은 그를 보호하고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의미였다.
‘혹시 아버님이 안배해두신 건가?’
가장 의심 가는 부분이 있다면 교주였지만 아무리 교만하고 위세가 넘치는 천무금이라고 할지라도 함부로 내뱉을 수 없었다.
마교에서 교주는 절대적인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별 수 없군. 입관을 하고나서 노려야 겠어.”
마도관에 입문하고 나서부터는 더 이상의 보호는 사라진다.
지금까지는 교주가 직접 배치해준 호위 무사가 그들을 보호했지만 마도관에 입문하고 나서는 호위 무사들은 동행할 수 없게 된다.
“내 손을 더럽히긴 싫었지만 마도관에서 직접 죽여주마.”
아직은 소년에 불과한 천무금의 눈이 짙은 살의로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