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306)
# 97장 장백산에 갇힌 자 (2) #
북해빙궁의 궁인들의 합류로 육백여 명에 육박하는 마교의 육검단의 전력이 남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선두에서 말을 몰고 있는 천여운의 표정은 평소와 다름없이 담담하다.
하지만 전 태상교주인 천인지의 안색은 꽤 어두워져 있었다.
그것은 장백산으로 향하기 전에 주둔지에서 소림사의 십계승 중 한 사람인 우춘 선사에게 들었던 이야기 때문이었다.
소림사에 유일하게 남은 은자림 출신이 바로 탐계승 우춘 선사였다.
그는 천인지의 배려로 소림의 무승들이 무탈하게 벗어날 수 있게 된 것에 대한 보답으로 정도 무림맹이 장백산에서 만났던 투신 악의로 짐작되는 죽립인에 대해서 알려주었다.
[초식도 아니라 단 일수에 웅주들을 쓰러뜨렸단 말이오?]듣고도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전전대 오대고수인 천인지 자신이라도 화경의 고수들을 쓰러뜨리려면 적어도 두세 초식 이상은 겨뤄야만 가능했다.
그런데 화경의 고수들이 칠성북두진을 펼치고도 가벼운 주먹질과 발차기에 깨졌다는 말을 들으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정도라면 이미 오대고수라고 부를 수가 없다.’
천하제일고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무(武)를 지향하는 자들이 최종적으로 목표로 하는 경지가 최소한의 동작으로 최대의 위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투신이 그러한 무위를 보였다면 그는 어쩌면 무의 극(極)에 이르렀을 지도 모른다.
천인지가 옆에서 말을 몰고 있는 손자 천여운을 바라보았다.
‘……내 손자이지만 믿기지 않는 전율적인 무위를 지녔다. 그런데 어째서 일까?’
이번 전쟁에서 그는 두 눈으로 천여운의 무위를 보게 되었다.
이백여 개가 넘는 얼음검들로 이기어탄검강을 부리는 모습은 별호대로 가히 마신과 같은 자태였다.
그런데도 마음 속 깊이 우려감이 드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어쩌면 무의 지향성 때문일지도 몰랐다.
[아미타불. 조심하십쇼. 천 시주. 정도 무림맹에서 투신 악의 공과의 양패구상을 노린 것도 절대로 현 교주인 마신을 가볍게 보아서가 아닙니다.]우춘 선사는 내내 경고했다.
[…..무림맹의 일원으로서는 천 교주 같은 괴물이 투신과 싸워서 패퇴했으면 좋겠지만, 은자림의 동지로서 손자 분이 무리한 싸움을 하지 않길 바랍니다. 아미타불.]그 역시도 천여운의 무위를 직접 보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경고를 남겼다는 것은 투신 악의가 그만큼 위험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듣고도 흔들림이 없구나.’
천여운에게도 우춘 선사의 경고를 알려주었지만 담담하기 그지없었다.
걱정시키지 않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투신의 역량을 감당할 수 있어서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하산하기 전에 우춘 선사는 한 가지를 더 말했다.
[이건…..아닐 수도 있겠지만, 투신 악의 공은 마치 우리들을 보호하려는 듯 했었습니다.] [보호?]그에게 패퇴했다고 들었는데 이건 무슨 말일까?
[괜한 추측일 수도 있겠지만 장백산으로 들어서는 것을 막기보다는 꼭 그곳에 있는 무언가로부터 경고를 하는 느낌이었습니다. 마치 맹수가 있는 곳에 사람이 가까이 가지 못하도록 막는 것처럼 말입니다.]실제로 퇴각하던 정도 무림맹의 사람들 중에는 소름끼칠 만큼 흉흉한 살의를 느꼈던 자들이 꽤 많았다.
대부분은 투신 악의가 내뿜는 살의라고 여겼지만, 우춘 선사는 그것에서 강한 이질감을 느꼈다고 했다.
‘어찌 되었건 우춘 선사의 말대로라면 투신은 반드시 장백산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으려들 것이다.’
오천여 명이나 되는 정도 무림맹의 전력을 막아섰다.
숫적으로는 그에 십분지의 일밖에 되지 않는 마교의 전력을 당연히 아랑곳 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그들은 투신과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풍백호의 진원을 얻기 위해서는 말이다.
“아!”
“장백산이 보인다!”
한참을 이동하던 차에 선두에 서있던 이들이 외쳤다.
멀리서 광활한 장백산맥에 둘러싸인 거대한 산봉우리가 보였다.
높이가 구백 장에 이르는 저 산의 꼭대기에는 하늘에 맞닿고 있는 영험한 호수가 있다고 알려져 있었다.
드디어 장백산의 초입에 들어선 것이었다.
“…..여기서부터는 저도 잘 알지 못합니다.”
선두에서 길을 안내하던 모용유가 불안감에 휩싸인 얼굴로 말했다.
그 역시도 이렇게까지 장백산 가까이로 와본 것은 평생 처음 있는 일이었다.
산봉우리 쪽이 안개로 휩싸여 있는 장백산은 소문으로 들어왔던 것처럼 신령스러운 분위기를 자아해내고 있었다.
‘젠장! 조부님께서 그렇게 가지 말라고 당부했는데.’
이런 식으로 오게 될 줄은 몰랐다.
그저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흠.”
천여운 또한 광활한 장백산맥을 바라보며 감탄했는지 작은 신음성을 흘렸다.
확실히 영험하다는 말이 나올 만큼 장백산으로부터 충만한 기운이 뻗어나고 있었다.
내공 수련을 하기에 적합한 곳이었다.
‘아직까지는 특별한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구나.’
기감을 열고서 넓게 퍼뜨려 확인했지만 근방에서는 투신으로 짐작되는 기운은 감지되지 않았다.
있어봐야 산짐승으로 추측되는 작은 기운들뿐이었다.
본래의 목적은 풍백호를 찾는 것인데, 워낙 투신 악의가 이곳을 지키고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다보니 자연스레 의식할 수밖에 없었다.
‘좀 더 진입하게 되면 알게 되겠지.’
듣던 대로 투신이 장백산으로 들어가는 자들을 막는다면 필연적으로 부딪칠 것이다.
천여운이 손을 들자, 육 장로 몽무가 교인들에게 명했다.
“전진한다!”
“충!!!”
멈춰있던 마교인들이 점차 좁아져 가는 산맥의 길에 맞춰서 전진을 시작했다.
걱정하는 전 태상교주 천인지와 달리 육검단주들을 비롯한 대부분의 마교인들은 누구 하나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들은 오랫동안 천여운을 지켜보았기에 투신 악의라고 한들 이대 천마이자 마신이라 불리는 그를 이길 수 없으리라 확신했다.
말을 몰고 가던 허봉이 문득 궁금했는지 옆에 있던 고왕흘에게 물었다.
“그러고 보면 용귀는 머리가 용 같이 생기고 거북이 등딱지의 몸이었는데, 풍백호는 그럼 하얀 털을 가진 호랑이일까요?”
“아마도 그렇지 않겠나?”
이름 그대로라면 분명 호랑이일 것이다.
그들이 알고 있는 기존의 호랑이라면 누런 빛 털에 줄무늬를 지니고 있다.
“히히, 왠지 풍(風)자가 붙은 게 날개라도 달렸을…”
-오싹!
‘!!!’
허봉이 미처 말을 끝나기도 전에 두 눈을 부릅뜨고서 고개를 돌렸다.
고왕흘 또한 소름 돋는 자극에 놀라서 고삐를 잡아당겼다.
그것은 비단 두 사람에게만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
-히이이잉!
말들이 앞발을 들어 올리며 울어댔다.
선두에 있던 수뇌부들이 느닷없이 멈춰 서자, 뒤에서 따라오던 전열이 앞 열과 부딪쳐가며 멈출 수밖에 없었다.
-푸드득!
수풀과 나뭇가지에 앉아있던 새들이 일제히 날아올랐다.
주변 전체가 묘하게 떨리며 마치 숲 전체가 무언가를 두려워하는 분위기를 연출했다.
어지간한 자들은 이 기운을 눈치 채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무슨 살의가 이렇게까지?’
-고오오오오오!
사방을 잠식할 만큼 강렬한 살의가 요동치고 있었다.
무공이 비교적 낮은 이들에게는 이 살의가 숨이 턱 막힐 것만 같은 공포감으로 변질되어 있으리라.
‘아니나 다를까 나타났구나.’
장백산을 지키는 수호신이라 불릴 만 했다.
‘어디지?’
전 태상교주 천인지가 굳어진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워낙 살의가 짙어서인지 이것을 내뿜는 자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할 수가 없었다.
‘이상하다.’
천인지는 이 소름끼칠 만큼 강한 적대감을 품은 살의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무런 일면식도 없는 자들에게 이러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도 명색이 수십 년 동안이나 오대고수라 불렸던 자인데, 그런 것치고는 적의가 너무 강했다.
“여운아.”
천인지가 고개를 돌려 손자인 천여운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담담하게 말을 몰고 있던 천여운의 표정이 많이 굳어져 있었다.
눈매가 날카로워져서 뭔가에 집중하고 있었는데,
‘설마 긴장한 것이더냐?’
그 예상은 맞았다.
천여운은 지금껏 느껴본 적이 없는 전율을 느끼고 있었다.
극도육무문의 상위 육문주들의 합공을 상대할 때조차도 크게 긴장을 했던 적은 없었다.
그러나 이 살의의 주인은 달랐다.
마치 인간이 아니라 야생의 맹수들이 내뿜을 법한 기운을 보이고 있었는데, 어느 정도 수준의 무위를 지녔는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옵니다!”
“뭣?”
제대로 감지하지 못했던 천인지가 놀라서 쳐다보았다.
천여운의 시선이 향한 곳에서 허공을 가로질러서 날아오는 파공음이 들려왔다.
-슉!
마치 포탄이 날아오듯이 엄청난 속도로 날아온 그 자의 목적은,
‘나로군.’
바로 천여운이었다.
천여운이 오른손을 들어 올리자, 그의 허리춤에 있던 흰 도집에서 백룡도가 뽑혀져나오며 손 안으로 빨려들어왔다.
그러기가 무섭게 그 무언가가 부딪쳐왔다.
-챙! 파아아아앙!
병장기가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강렬한 진기의 폭풍이 일어나며, 주변에 있던 이들이 뒤로 튕겨나가고 말았다.
“흐헉!”
“무, 무슨 위력이?”
전 태상교주인 천인지를 비롯한 대호법 마라겸과 대장로 단주천은 현경의 고수인지라 버텨냈지만, 그런 그들조차 열 보 이상 발바닥이 밀려날 정도의 위력이었다.
-부들부들!
천여운이 자신의 백룡도와 부딪치고 있는 사내를 바라보았다.
검은색 무복을 입고 있는 삼십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부리부리한 눈매를 지닌 자였는데, 독특한 무기를 쓰고 있었다.
‘이게 도라고?’
그것은 중원 무림에서 흔히 쓰이는 도(刀)와는 생김새가 달랐다.
마치 얇기가 검신을 보는 듯한데, 날이 있는 곳은 한쪽뿐인 것을 보면 분명 도는 틀림없었다.
‘힘이 보통이 아니다.’
누군가 힘이 세다고 느껴본 것은 오랜만이었다.
천여운은 내공뿐만이 아니라 외공도 인간의 한계치에 도달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정체 모를 사내는 순순한 외공이 천여운에게 버금갈 만한 신체 능력을 지녔다.
“호오?”
이에 놀란 것은 천여운 본인만이 아니었다.
검은 무복의 사내가 눈에 이채가 띠어서 뭔가 신이 난 듯이 중얼거렸다.
“내래 참 운이 좋아. 기래. 그 간나 새끼보다 더 빨리 움직인 보람이 있구만.”
천여운이 인상을 찌푸렸다.
무슨 말을 하는지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들리는 그대로 중원의 언어가 아닌 듯 했다.
‘나노.’
천여운의 부름에 나노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방언이 많이 섞여있기는 하지만 한국어로 판단됩니다.] [한국어?] [중원 대륙 동쪽의 반도에 자리 잡고 있는 나라의 언어입니다.]이에 천여운이 빨리 머릿속으로 이 한국어라 불린 언어를 전이토록 했다.
찰나의 순간에 머릿속이 찌릿해오며 천여운의 머릿속에 또 다른 외국어인 한국어가 새겨지듯 들어앉았다.
뇌로 전이하는 능력은 이럴 때만큼 최고라고 할 수 있었다.
“그 간나 새끼가 오기 전에 얼른 전부 죽여야…”
“그대가 투신 악의 공이오?”
천여운의 입에서 튀어나온 모국어에 검은 무복의 사내의 두 눈에 이채가 띠었다.
-챙!
뭔가 흥미가 돌았는지 검은 무복의 사내가 도를 밀쳐내고서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서 천여운에게 기대감이 실린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님자는 고려 사람인가?”
‘고려?’
아무래도 동쪽 반도에 있는 나라를 말하는 듯 했다.
이에 천여운이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검은 무복의 사내가 실망스럽다는 듯이 투덜거렸다.
“하긴 고려 사람이 쥐새끼마냥 북쪽에서 슬금슬금 기어올 리가 없지. 기래.”
천여운이 했던 질문에는 답하지 않고 혼잣말을 하는 사내였다.
그런 태도에 그가 투신 악의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었다.
이에 천여운이 한 번 더 물었다.
“혹시 투신 악의공이 맞소? 그런 것이라면 우리는 그대와 싸우려는 게 아니라, 이곳 장백산에 있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
천여운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검은 무복의 사내의 장도가 우측으로 목을 베려들었다.
시선을 떼고 있었다면 당할 만큼 엄청난 쾌도였다.
-챙!
“내 도를 두 번씩이나 막은 건 그 간나 새끼를 제외하고 님자가 처음이군. 기런데 말이야. 장백산이 어째고 저째?”
-파아아아아앙!
‘!?’
검은 무복의 사내에 검에서 엄청난 선천 진기가 솟구치며, 천여운의 백룡도가 뒤로 튕겨나갔다.
그것은 일종의 풍압이라고 봐도 무방한 기운이었다.
아주 날카로운 바람이었다.
‘바람?’
천여운의 눈빛이 흔들렸다.
이에 검은 무복의 사내가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도를 겨냥하며 말했다.
“님자들 같은 떼놈들이 착각하는게 있디 말이지. 여기는 장백산이 아니라 백두산이네. 한 번만 더 장백산이라 탁 없는 소릴 지껄이면….아니지. 어차피 여기에 있는 님자들 전부 죽일 작정이었는데 괜히 실없는 소리를 했구만. 기래.”
웃으면서 말하는 광오한 살해 예고에 천여운이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자신과 검을 부딪쳐보고도 이런 자신감을 보이는 검은 무복의 사내의 진짜 정체가 투신 악의인지 의문이 들었다.
우춘 선사가 말했던 자와는 완전히 거리가 멀어보였다.
바로 그때였다.
“일단 님자는 제법 성가시니까. 뒤에 놈들부터 해결해 보실까나.”
‘!?’
-팟!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검은 무복의 사내의 신형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수 장 높이로 뛰어오른 검은 무복의 사내가 몸을 가볍게 회전하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휘이이이이잉!
그의 몸에서 회오리가 형성되며 이내 엄청난 돌풍으로 바뀌어갔다.
더 경악스러운 것은 이 돌풍에 날카로운 예기가 실려 있어서, 바람에 스치는 곳은 도에 베인 것처럼 잘려나가고 있었다.
-촤촤촤촤촤촤!
“어찌 이런 일이?”
일개 인간이 자연재앙을 일으키고 있었다.
돌풍에 드리워진 거대한 위기의 그림자에 마교인들의 안색이 어두워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