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309)
# 98장 마신(魔神) 대 투신(鬪神) (1) #
죽립인은 북쪽으로 향하는 내내 멀리서 느껴지는 강대한 기운들에 내심 경탄했다.
그 놈은 인간이 상대할 수 있는 영역의 존재가 아니었다.
설사 무림에서 손꼽히는 고수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어떻게 대적하고 있는 것이지?’
지금쯤 놈을 상대하는 자가 죽었으리라고 여겼다.
그런데 아직도 싸움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 존재는 시간이 흐를수록 자연적으로 영력이 강해지는데, 그것이 절정에 이른 것도 모자라 근 백이십여 년 동안이나 동쪽 반도 최고의 무공을 연마했다.
얼마나 강한 지는 십 년에 한 번씩 겨루면서 누구보다 잘 알았다.
‘……등선했어야 할 존재를 이렇게까지 상대할 수 있는 자가 존재했단 말인가.’
그런 자라면 자신과 마찬가지로 무의 극(極)에 가까운 자이리라.
죽립인의 가려진 얼굴에 근심이 서렸다.
혹여 그때 ‘그 자’가 다시 나타난 것이 아닐까 우려되었다.
-팟!
드디어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부근에 도달했다.
만약 ‘그 자’라면 어떤 식으로든 이 자리에서 죽여야만 할 지도 몰랐다.
-부웅!
죽립인의 신형이 허공을 박차 오르며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심후한 진기로 허공에 멈춰 선 그가 안력을 집중해서 겨루고 있는 두 사람을 내려다보았다.
‘응?’
그런데 놈과 겨루고 있는 것은 ‘그 자’가 아니었다.
‘그 자가 아닌데 어떻게 녀석을 이 정도까지 몰아칠 수 있는 것이지? 아!’
죽립인의 눈에 놈과 겨루는 자의 검에 치솟은 흑기(黑氣)가 보였다.
흉흉한 저 기운은 내공이 아니었다.
‘영물의 영력을 흡수했구나.’
이제야 납득이 갔다.
그러지 않고는 저 존재를 상대할 수 없을 터였다.
영물의 기운을 흡수한 자가 이곳 장백산에 침입한 목적이 극명했다.
‘풍백호의 진원을 노린 자였군.’
그렇다면 더더욱 놈이 죽게 내버려둘 수 없었다.
저 긴 머리카락의 사내 이외에 다른 자들은 크게 성가실 만 한 자가 없으니, 단번에 무형의 권압으로 짓눌러 쓰러뜨린 후에 쫓아내면 될 듯 했다.
라고 여겼는데,
“교주니이이이이임!!!”
두 번이나 공허권(空虛拳)을 썼는데, 기운이 줄지 않았다.
타격을 입었다면 풍겨지는 기운이 조금이라도 소실되었을 만도 한데, 줄기는커녕 오히려 상승했다.
‘뭐지?’
먼지 속에서 검은 인영이 보였다.
죽립인이 가볍게 손을 휘젓자, 먼지가 가시면서 그 자의 모습이 보였다.
한 손을 앞으로 뻗고 있었는데 그 자의 정면에 커다란 무형의 검이 방패처럼 가로막고 있었다.
‘두 번이나 내 권격을 막다니?’
죽립인의 눈이 의아함으로 물들었다.
이십 년 만에 자신의 권을 두 번씩이나 막은 자가 나타났다.
그것도 무형검(無形劍)으로 말이다.
“……생사경의 고수였나.”
자신의 권을 막아냈으니 적어도 완숙한 경지 그 이상인 듯 했다.
“후우.”
천여운의 눈매가 날카롭게 가늘어졌다.
방금 전의 검은 무복의 사내를 상대할 때만 하더라도 천마기를 이용한 강기를 강화한 정도면 충분했는데, 무형검까지 만들어내서 방어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대도 마찬가지군.”
눈앞의 죽립인은 생사경의 고수였다.
그것도 극(極)에 이른 자였다.
공간을 비틀 만큼 강력한 권격을 날릴 정도의 고수는 처음 겪어 본다.
“트, 틀림없다. 저 자는…”
손자인 천여운이 무사한 것을 확인하고서 안도한 전 태상교주 천인지가 굳은 인상으로 죽립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투신 악의!”
오직 두 주먹만으로 오랫동안 오대고수의 일인으로 군림한 자였다.
어쩌면 그야말로 진정한 천하제일일지도 모른다는 소문은 오래전부터 접했지만 이 정도로 상상을 불허하는 고수일 줄은 몰랐다.
현경의 고수인 자신이 한없이 낮아 보일 만큼 전율적인 무(武)를 지녔다.
“저런 자가 존재했단 말입니까?”
근방에 있던 대호법 마라겸이나 대장로 단주천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떨리는 눈으로 죽립인을 바라보았다.
이 자리에서 저 괴물을 상대할 수 있는 자는 오직 교주인 천여운 한 사람뿐일 것이다.
‘두 신(神)이 한 자리에 모였구나.’
오대고수 중에서 신의 칭호를 가진 두 사람의 만남이었다.
천여운이 보통 상대가 아니라고 판단한 죽립인은 기운이 더욱 올라갔다.
-고오오오오!
“으윽!”
“무, 무슨 진기가?”
그의 엄청난 진기가 사방으로 퍼져나가자, 교인들 중에 내공이 낮은 자들이 하나 둘씩 호흡이 거칠어져서 비틀거렸다.
아마도 그들은 진기로 가득한 방 안에 갇혀있는 느낌일 것이다.
숨이 턱 막힐 것 같은 느낌은 화경의 고수인 고왕흘이나 허봉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이, 이거 완전 괴물인데요.”
풍기는 기운만으로 좌중을 압살시킬 만한 절대고수였다.
확실히 오천여 명이나 되는 정도 무림맹의 총력을 단신으로 막았다는 말이 허언이 아닌 듯 했다.
이 정도 고수라면 막는 게 아니라 몰살도 가능하리라.
모두가 긴장된 얼굴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천여운이 입을 열었다.
“두 번이나 기습에 가까운 권을 날렸다는 것은 대화할 생각 따윈 없다는 뜻이겠지?”
어지간하면 적대 관계가 아니었기에 대화를 먼저 시도했을 것이다.
하지만 두 번이나 공격한 시점에서 상대가 그런 의사가 전혀 없다고 판단한 천여운이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죽립인이 입을 열고 답변을 하려던 찰나였다.
-꿈틀!
그의 발밑에 깔려 있던 몸이 들썩였다.
죽립인에게 당하기 전만 하더라도 변이가 진행되던 몸이 어느새 원상복구 되었다.
이에 죽립인이 뒤로 세 발자국 정도 물러나자, 놈이 거칠게 일어섰다.
“크으으윽! 간나 새끼. 감히 나를 깔아 뭉갔어?”
불쾌함이 가득한 목소리로 놈이 죽립인을 노려보자, 그가 장백산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맹약을 먼저 어기려고 한 것은 너다. 당장 돌아가라.”
그 말에 놈이 살의가 가득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내래 님자의 말대로 할 것….쿨럭!”
상의가 찢어진 사내의 입에서 피가 한 움큼 흘러나왔다.
방금 전 죽립인의 권격에 의한 내상인가 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사내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다시 원상복귀 된 자신의 몸을 살펴보고는 인상이 굳어졌다.
‘상처가 완전히 아물지 않았어?’
변이하면서 완전히 재생되었을 거라 여겼던 스물세 개의 요혈들이었다.
그런데 그 부분들이 검게 피멍이 들어서 욱씬거렸다.
사내가 이를 갈면서 천여운을 노려보았다.
-으득!
“역시 이 간나 새끼! 타락한 영물의 진원을 흡수했구나. 기래.”
‘타락한 영물?’
알 수 없는 그의 말에 천여운이 인상을 찡그렸다.
그저 네 종의 기운 중에서 천마검과 가장 융화가 잘 되는 천마기를 끌어올렸을 뿐인데, 대체 무슨 의미일까?
“타락했다니 그게 무슨 뜻이지?”
“어디서 시치미를!”
천여운의 물음에 사내가 살의를 내뿜으며 앞으로 걸어가려 했는데, 죽립인이 어깨를 붙잡고서 만류했다.
“멈춰라.”
“……어깨에서 날래 손 떼지 않으면, 내래 그 손모가지를 꺾어 버리갔어.”
묘한 분위기가 되었다.
사내는 당장에라도 죽립인에게 출수할 기세였다.
그러나 그런 살의가 넘치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죽립인은 손을 떼지 않고서 자신의 할 말을 했다.
“지금 그 기운을 몰아내지 않는다면 맹약을 지킬 수 없을 터인데, 상관없는 것이냐?”
-흠칫!
맹약이라는 말에 사내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대체 그것이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일종의 제약과도 같았다.
-팍!
당장에라도 출수할 기세였던 사내가 거칠게 어깨를 붙잡고 있던 손을 뿌리치면서, 한풀 살의를 가라앉히고 투덜거렸다.
“빌어먹을 간나 새끼. 내래 반드시 님자를 죽일 기야.”
그 말과 함께 사내가 천여운을 한 번 노려보고는 분하다는 듯이 장백산 쪽을 향해 신형을 날리려했다.
하지만 이것을 그냥 내버려둘 천여운이 아니었다.
“누구 마음대로 보내준다고 했지?”
아직 질문에 답변도 듣지 못했고, 놈의 정체를 파악하지도 못했다.
천여운이 움직이려 하자, 죽립인이 신형을 날리는 사내의 앞을 마치 방해하지 말라는 듯이 가로막았다.
-쾅!
이에 천여운이 한 발로 세차게 진각을 밟았다.
그 순간 진각을 중심으로 파문과 함께 바닥에서 서리가 일어날 만큼 극한의 음기가 치솟으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쩌저저저적!
장백산 쪽으로 향하려던 사내의 앞을 거대한 빙석이 바닥에서부터 일어나며 막아 세웠다.
겨우 마음을 접고서 돌아가려던 사내의 눈동자가 붉은 빛으로 변했다.
“이 간나 새끼가! 고작 얼음 따위로 막아세워?”
어차피 얼음 따위야 부수면 그만이었다.
장도를 뽑아서 도기를 실어서 단숨에 그것을 베려했다.
-깡!
“이게 뭐라니?”
당연히 보기 좋게 갈라질 거라 생각했던 빙석은 부서지기는커녕 오히려 장도를 튕겨냈다.
사내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쾅쾅!
두 주먹으로 빙석을 때려 보았다.
‘얼음이 뭐가 이렇게 딴딴한 기야?’
아까 전에 돌풍에 대항할 때 만들어낸 얼음검들은 그렇게까지 강도가 단단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 빙석은 마치 격세석이라도 되는 마냥 굉장히 단단했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얼음검들과 다르게 지금 이 빙석은 오한빙천공의 정수로 만들어낸 것으로 그 강도가 살아있는 영물인 용귀를 얼음 속에 수백 년이나 가둘 정도였다.
‘저 간나 새끼! 진원을 흡수했다고 하지만 정말 인간이 맞는 기야? 본신으로 화(化)하지 않으면 깨지 못할 듯 한데.’
-욱씬욱씬!
게다가 천여운에게 당한 요혈들이 원활한 운기를 방해하고 있었다.
그냥 빙석을 피해서 이동해도 되었지만, 홧김에 무리해서라도 이것을 부숴버릴까 고민하던 찰나에 뒤쪽에서 날카로운 예기가 느껴졌다.
‘응?’
뒤를 돌아보자 천여운이 검결지를 뻗고 있었다.
“안 보내준다고 했을 텐데.”
-슉!
천여운의 앞에서 방패처럼 버티고 있던 커다란 무형검이 이내 겨냥하고 사내를 향해 빠르게 쇄도했다.
그러나,
-우우웅!
죽립인이 무형검이 날아오는 궤도를 막고서, 손을 회전시키듯이 돌리자 공간이 일그러지며 일직선으로 뻗어나가던 무형검이 막히고 말았다.
‘무형검을 막아?’
그게 끝이 아니었다.
-쾅!
죽립인의 일권이 바닥을 강타하자, 한기가 이어지던 파문이 끊겨버리고 말았다.
빙석에 한기가 이어져야 그 단단함이 유지된다는 사실을 짧은 찰나에 파악한 그였다.
“서둘러라.”
“칫!”
죽립인의 짧은 외침에 사내가 인상을 찡그리더니, 이내 빙석을 밟고서 위로 뛰어올라 장백산을 향해 다시 신형을 날렸다.
-팟!
“누구 마음대로!”
천여운이 손을 들어 올리자, 허공에서 수많은 얼음검들이 생겨났다.
그리고 얼음검들에 강기(罡氣)를 일으키려 하자, 어느새 죽립인의 신형이 그의 앞을 파고들었다.
죽립인이 천여운을 향해 주먹을 내뻗었다.
-파아아앙!
공기가 찢겨져 나가는 소리가 고막을 울려 퍼졌다.
‘이건?’
가볍게 내지른 일권처럼 보였지만 그런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수많은 권의 투로가 하나로 합쳐진 것처럼 뻗어오는 주먹은 그 일권만으로도 완전무결한 형태에 가까웠다.
일권에 담긴 역량은 마치 폭발하기 직전의 화산과도 같은 기세를 담고 있었다.
‘무의 극에 이를수록 쓸데없는 초식보다 단 일권에 그 역량을 집중시킨다. 어설픈 공수로는 막을 수 없다.’
이 권을 완벽하게 완성한 후로 누구도 제대로 막지 못했다.
아까 전의 권격과 달리 이 정도 근접거리라면 더더욱 대응하는 것이 어렵다.
눈앞의 청년이 생사경의 고수라면 그 차이를 확실하게 알 수 있으리라 여겼다.
그러나,
‘웃어?’
당황해서 일단은 피할 거라 생각한 천여운의 입 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그러더니 이내 독특한 기수식을 취했다.
천여운의 검결지에서 흉흉한 검은 무형검이 생겨나며 천마검공의 스물네 개의 검식이 하나로 일원화되더니, 일점에 모든 검력이 집중되었다.
‘!?’
죽립인의 두 눈동자가 처음으로 흔들렸다.
그가 수십 년에 걸쳐서 겨우 완성시킨 일원화의 깨달음이 청년의 손에서 펼쳐지는 것이었다.
순식간에 두 절대고수가 펼친 일권과 일검이 동시에 한 점에 부딪쳤다.
-콰아아아아앙!
마치 폭탄이 터진 것처럼 한 점에 집중된 두 사람의 역량이 강한 폭발을 일으켰다.
권과 검이 부딪친 점을 중심으로 퍼져나온 여파에 떨어져서 대결을 지켜보고 있던 마교인들마저 밀려날 정도였다.
-촤아아아아!
“무, 무슨 여파가 이렇게?”
“으아아악!”
심지어 공력으로 대항했음에도 튕겨나가는 이도 있었다.
그 만큼 두 절대고수의 역량은 기존의 무인들의 싸움을 압도했다.
여파가 어느 정도 가시고 두 사람이 부딪친 곳에 반경 오 장이 넘는 커다란 구덩이 생겨났다.
“교, 교주님은?”
교인들이 그가 무사한지를 살폈다.
커다란 구덩이에서 먼지가 가시며 중심부에 한 인영이 보였는데, 천여운이었다.
천여운의 상반신의 세 부위에서 아지랑이 같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는데, 운기로 상대방의 기운을 몰아내는 듯 했다.
세 보 정도 뒤로 밀려있는 것을 보면 그 짧은 새에 몇 차례의 격돌이 더 있었던 것 같았다.
“교주님이 당하신 건가? 아!”
교인들의 중심부에서 열 보 정도 떨어진 곳에서 한 남자를 발견했다.
죽립이 부서지면서 얼굴이 드러났는데, 새하얀 백발에 강인한 얼굴을 하고 있는 중년인이었다.
중년인의 가슴 정중앙에서 마찬가지로 아지랑이 피어올랐다.
입가에 흐르는 핏물을 보면 내상을 입은 게 틀림없었다.
-슥!
중년인이 입가에 흐르는 피를 소매로 닦아냈다.
몸속을 뒤흔드는 기운을 몰아내느라, 순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초식의 운용이 떨어져서 단숨에 제압하려 했는데, 오히려 반탄력에 밀려난 것도 모자라 일격을 허용했다.’
그것이 그 짧은 사이에 벌어졌던 일이었다.
천여운의 일원화된 무형검과 부딪치는 순간에 그의 발차기가 우측 어깨를 노렸다.
그것을 천여운이 피했고 그 틈에 그의 좌권의 삼연격이 상체에 적중했다.
-퍼퍼퍽!
‘아니?’
일권만으로도 엄청난 위력을 자랑하는 권에 당연히 내상을 입고서 튕겨나갈 거라 여겼는데, 엄청난 반탄력에 주먹이 시큰해졌다.
잠시 멈칫하는 찰나에 천여운의 검결지가 그의 가슴을 관통했다.
그 결과 열 보씩이나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체내에 지니고 있는 진기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다. 녀석이 밀릴 만도 했구나.’
방금 전 짧은 겨룸으로 확실하게 파악했다.
-스르르르륵!
체내로 파고드는 중년인의 권력(拳力)을 몰아낸 천여운이 날카로운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모든 권을 일원화해서 역량을 집중시킬 수 있는 것인가?’
감탄이 나올만한 경지였다.
그로 인해 천여운은 깨달을 수 있었다.
천마검공의 마지막 초식은 천마조사가 생사경의 극(極)에 기반해서 만든 초식이었다.
저 자는 그것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것이었다.
‘일격이 전부 필살의 권초로군.’
여태껏 만난 상대 중에서 가장 까다로운 적수였다.
과연 최강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닌 자였다.
‘진원이 없이도 순수한 인간의 역량으로 이렇게까지 강해지다니, 적으로 대치했지만 정말 대단한 자다.’
네 영물의 진원을 얻은 천여운의 진기가 그를 훨씬 상회한다.
그런데 눈앞의 중년인, 아니 투신 악의는 무를 집대성하여 이만큼의 역량을 발휘한 것이다.
‘얼마나 오랫동안 수련하면 저 정도까지 가능한 것이지?’
어쩌면 천마 조사에 버금가는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자일 지도 몰랐다.
서로에 대한 실력 파악은 어느 정도 마쳤다.
투신 악의가 가볍게 목을 돌리며 몸을 풀고서 앞으로 걸어 나왔다.
“오랜만이군. 제대로 된 적수는.”
그가 두 주먹을 쥐고서, 지금까지와 달리 제대로 된 기수식을 취하며 말했다.
“그대 정도 되는 무인을 상대로 전력을 다하지 않는 것은 모독이겠지. 무극공허권을 펼치게 만든 것은 몇 십 년 만이다.”
투신 악의가 천여운을 적수로 인정했다.
장백산에서 내쫓아야 할 불청객이 아닌 한 사람의 대적자로 말이다.
-고오오오오!
악의는 두 주먹에 강대한 역량을 일으키며 경고했다.
“지금부터는 조금만 방심해도 죽을 것이다.”
오랜만에 제대로 대결을 펼치는 만큼 그에 합당한 실력을 보여주길 원했다.
경고는 그런 의미에서 한 말이었다.
이에 천여운이 그를 향해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 그대로 돌려주지.”
말이 끝남과 동시에 천여운의 주변의 공간이 일렁이며 방대한 진기가 응집했다.
응집한 진기는 이윽고 세 개의 무형검으로 변화했는데, 그것은 단순히 무형의 진기가 유형화된 것이 아니었다.
-파치치칙! 쩌저저적! 화르르륵!
흑뇌(黑雷), 흑빙(黑氷), 흑염(黑炎)의 무형검들이었다.
일반적인 무형검과는 완전히 궤를 달리하는 그것들은 전율 그 자체였다.
천여운이 검결지를 가볍게 휘젓자 세 무형검이 그를 겨냥했다.
“방심하면 죽는다. 투신.”
나지막한 그 경고는 절대로 허언이 아니었다.
‘……전력을 숨기기는 피차 매한가지였나.’
흉흉한 기운을 머금은 세 속성의 무형검에 전의만 가득했던 투신 악의의 눈빛에 처음으로 긴장감이 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