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311)
# 99장 타락한 영물 (1) #
당혹스러워하는 투신 악의.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천여운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여러 깨달음이 중첩된 이 초식은 기존의 진기 소모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훨씬 컸다.
진원 네 개를 흡수하면서 생겨난 진기의 삼할 가량이 순식간에 소모될 정도였다.
‘후우…..무형검에 두 가지 속성을 담은 것도 모자라 역량을 한 점으로 집중시키니, 진기의 소모가 엄청나다.’
현재로서는 세, 네 번 정도가 한계였다.
그러나 그 한 번이 투신 악의마저도 팔 하나를 희생시켜서 빗겨나가는 게 한계일 만큼 상상을 초월하는 위력을 지녔다.
가히 비기(祕技)라고 칭해야 할 만한 초식이었다.
“역시 대단하군. 이것도 막아봐라. 이번에는 동시에 쏴주지.”
천여운이 이런 말을 한 것은 스스로 패배를 인정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평소의 그라면 적을 끝까지 몰아치겠지만 순수하게 인간적인 역량만으로 이런 경지에 올라선 그를 내심 인정했기 때문이었다.
비록 자신이 장백산으로 들어가려하는 것을 막고 있지만, 진정한 무인을 상대로 목숨까지 거두고 싶진 않았다.
천여운의 그런 의도는 어느 정도 먹히는 듯 했다.
‘……또 다시 이런 공세가 가능하다면 막는 것은 무리다.’
게다가 한쪽 팔이 부러지고 근육이 뒤틀려서 제 실력을 발휘하기도 힘들었다.
검사로 치면 검(劍)이 부러진 상태였다.
하지만 이 대결의 목적이 단순히 무림인들 간에 자웅을 겨루는 것이었다면 순순히 패배를 받아들였을 것이다.
“승부는 자네가 이겼다. 장강의 뒷물이 앞물을 밀어낸다고 하더니, 선대인 천마정 교주보다도 훨씬 강하군.”
“천마정 교주?”
투신 악의의 입에서 나온 말에 천여운이 인상을 찡그렸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이었다.
교주전의 사기에서 분명 보았던 이름이 틀림없었다.
‘아니. 투신이 아버님을 알고 있었다니?’
그들의 대결에 집중하고 있던 전 태상교주 천인지의 두 눈이 커졌다.
천마정은 그의 전대 교주이자 부친이었다.
천인지가 한참 현역으로 활동하던 당시 전에도 오대고수였던 것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부친과 인연이 있을 줄은 몰랐다.
‘대체 세수가 얼마나 되기에…..허어.’
비록 머리가 새하얗지만 얼굴만 보면 중년이었다.
환골탈태를 했다고 해도 적어도 백 년은 훌쩍 넘긴 인생을 살아왔을 것이다.
‘증조부님과 같은 세대의 무인이었구나. 그래서 저 자의 무(武)에 수많은 세월이 고스란히 녹아있었군.’
순수한 역량으로 이 경지에 도달할 만 했다.
투신 악의는 확실히 연륜이 깊어서인지 눈썰미가 있었다.
마교인들의 복장과 천여운과 겨루는 것만으로 그가 마교의 교주임을 쉽게 짐작해냈다.
“하아….”
호흡을 고르고 있는 악의는 여전히 투기를 발하고 있었다.
상대의 승리는 인정했지만 여전히 눈빛에는 포기하지 않을 거라는 결의로 가득했다.
대체 무엇 때문에 장백산으로 들어서는 것을 이렇게까지 막으려는 것일까?
“증조부님과 교분이 있으셨소?”
연배가 깊다는 것을 알게 되자 천여운이 어느 정도 예우를 차렸다.
그 말에 악의가 고개를 가볍게 저으며 답했다.
“교분까지는 아니다. 인연이 닿아 두어 번 겨뤄봤을 뿐이다.”
“그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일 수 있겠구려. 그런데 어찌해서 우리가 장백산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으려고 하는지 알고 싶소.”
천여운의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투신 악의가 잠시 입을 다물다가 열었다.
“이곳 장백산에는 범인들이 감당할 수 없는 존재가 살고 있지. 나는 그 존재와 사람들이 조우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이곳을 지키고 있다.”
‘아!’
천여운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소림사의 십계승인 우춘 선사가 했던 말이 사실이었다.
어쩌면 그가 장백산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숨겨진 무언가로부터 보호하는 것일 지도 모른다고 했었다.
“혹시 그 부리부리한 눈을 가진 자를 말하는 것이오?”
확실히 그 자는 굉장히 위험해 보였다.
일반적인 무인과는 전혀 다른 힘을 가졌고, 처음 보는 자들에게 증오가 넘치는 살의를 보이는 자는 처음 겪었다.
흔히 말하는 대살성(大殺星)에 가까운 자였다.
천여운의 그 질문에 악의가 탄식이 섞인 목소리로 답했다.
“하아…..그렇다. 그 존재는 오랜 세월동안 증오와 분노, 살의를 머금고 살아왔기 때문에 매우 위험하다.”
이에 천여운이 예리한 눈빛으로 말했다.
“역시 그 존재라고 하는 걸 보면 인간이 아닌 모양이오?”
그 질문에 투신 악의의 말문이 막혔다.
중간에 멈추게 했지만 그 존재와 싸웠으니 어렴풋이 눈치 챌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갑작스러운 육체의 변이는 인간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혹시…..영물은 아닐까?’
별의별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천여운은 한순간 그렇게 생각했었다.
풍(風)의 기운이라 할 수 있는 바람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것보다 의심할 만한 소지는 굉장히 많았다.
물론 풍백호의 진원을 먹었을 수도 있겠지만, 뭔가 그건 아닌 듯 했다.
천여운이 그 남자가 사라진 장백산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대는 그 존재에 의해 해를 당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라고 하였는데, 내가 위험해 보이시오?”
변이가 일어나는 도중에 싸움이 멈춰졌지만 그 전까지는 천여운의 우위였다.
게다가 천여운 역시도 전력을 다 하지 않았다.
악의가 그 말에 진지하게 고찰했다.
‘……확실히 이 자는 입장이 다르다.’
놈으로부터 보호할 대상이 아니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서 어찌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머릿속에서 사내가 변이하려고 했을 때가 떠올랐다.
‘내가 살아서 이곳을 지키는 동안은 정화(正化)가 되길 바랐건만.’
자신의 눈이 잘못되지 않았다면 여전히 그때와 전혀 달라진 게 없었다.
그렇다면 끝내 자신이 약해지고 그 존재와의 맹약에서 지게 된다면 중원에 걷잡을 수 없는 학살이 일어날 것이다.
‘사경…..내 벗이여. 자네를 생각한다면 녀석을 내 손으로 보내는 편이 자비겠지.’
하지만 이제 그것도 힘들어졌다.
곧 십 년 맹약의 시기였는데, 오른팔이 그 짧은 새에 나을 리가 없었다.
물론 전력을 다한다면 어찌될지 모르겠지만 만의 하나의 경우가 일어난다면, 녀석은 장백산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고 말 것이다.
한참을 탄식을 해가며 생각에 잠겨 있던 투신 악의가 입을 열었다.
“그대의 목적도 혹시 영물의 진원인가?”
정곡을 찔렀다.
장백산을 찾아오는 중원 무림인들의 목적은 단 하나였다.
영물이라 불리는 풍백호의 진원을 얻고서 공력을 폭증시키기 위해서다.
그것은 정파든 사파든 막론하지 않고 진실이었다.
‘그대도 다른 자들처럼 명분을 내세워서 진원을 얻는 타당함을 설명할 텐가.’
진원을 얻으려는 자들은 하나 같이 똑같았다.
마치 타인의 손에 넘어가면 위험하니 그것을 보호하기 위해 왔다는 명분을 내건다.
그것은 무림에서의 지위와 명성이 더 높을수록 더했다.
그러나,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소?”
‘음?’
천여운은 특별히 부정하지 않았다.
정도 무림맹에서 온 것도 있었기 때문에 마교주인 이 자 역시도 특별한 명분을 내세울 줄 알았는데 그런 것은 없었다.
“……그대는 스스로의 탐욕을 억지로 감추지 않는군.”
차라리 그 편이 낫긴 했다.
어쭙잖은 명분을 내세우는 것보다 말이다.
다만,
“그대는 이미 그 많은 진원을 흡수한 듯한데, 어째서 욕심을 부리려고 하는 것인가?”
그 점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풍백호의 존재는 비교적 잘 알려져서 노리는 자들이 많다.
하지만 다른 영물들은 오히려 더 보기 힘들었고, 그것들의 진원을 취했다면 굳이 더 이상은 필요 없어보였다.
“그대 정도면 중원 무림에서 누구도 상대가 없을 텐데, 어째서 진원을 얻으려 하는 것이지?”
게다가 진원을 몇 개씩이나 취했다면 오랜 세월을 살아갈 것이다.
과도한 탐욕을 부릴 필요가 없어 보였다.
투신 악의의 진지한 질문에 천여운이 생각에 잠겼다.
‘미래의 극도신이 영물의 진원으로 영생을 얻는 것을 막기 위해서 라고 말해봐야 믿기지 않겠지.’
이것은 조부인 천인지를 비롯해 수하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누가 그런 허무맹랑한 말을 믿겠는가.
대략적인 것만 말해도 충분할 듯 했다.
“최근 중원에 극도육무문이라는 문파가 창궐했소. 그들의 수장은 영물을 통해서 영생을…..”
-콰아아아앙!
바로 그때 그들의 귓가로 엄청난 굉음 소리가 들려왔다.
투신 악의가 놀란 눈으로 그곳을 바라보았다.
장백산 쪽에서 들려왔다.
장백산의 봉우리에는 광활한 호수가 자리 잡고 있었는데, 그것으로 짐작되는 물기둥이 멀리서 치솟는 것이 보였다.
-쏴아아아아아!
‘지금 건 대체?’
의아해하는데 이어서 고막이 울릴 정도로 강한 포효 소리가 근방 전체를 울렸다.
“크허허허허허헝!”
범이 우는 듯한 엄청난 소리는 마찬가지로 장백산 봉우리에서 들려왔다.
이에 천여운 역시도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곳을 바라보았다.
‘이건…..설마 풍백호?’
인간의 입에서 나올 만한 포효 소리가 아니었다.
“설마 맹약을 어기다니?”
의아해하는데 갑자기 투신 악의가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더니, 이내 장백산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탓!
장백산을 향해서 있는 힘을 다해 경공을 펼치는 그의 표정이 심각했다.
저곳의 정상에는 놈이 기거하는 장소가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울음 소리는 기어코 우려하던 일이 터졌다는 의미였다.
-슉! 슉!
서둘러서 장백산을 향하는데 누군가 옆으로 따라붙었다.
악의가 옆을 힐끔 쳐다보았는데, 역시나 예상한 대로 천여운이었다.
무위만큼이나 경공이 탁월했다.
“풍백호가 맞소?”
천여운의 물음에 악의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천여운이 자신이 짐작가는 바를 말했다.
“아무래도 우리가 싸우는 동안 극도육무문에서 뒤통수를 친 것 같소.”
“극도육무문?”
그러고 보니 정도 무림맹에서 왔던 자들이 그 단체를 거론했던 것이 기억났다.
어차피 누구라도 상관없이 장백산으로 들여보내지 않을 작정이었기 때문에 크게 염려하지 않았던 부분이었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게 되었군. 막아야 한다.”
“놈들의 손에 풍백호의 진원이 들어가면 정말 위험할 수도…”
“그게 아니다.”
“?”
“절대로 놈이 본신으로 화(化)하게 만들어선 안 된다 말이다!”
영물의 진원이 넘어가는 것을 우려할 줄 알았는데, 전혀 예상 외의 말에 천여운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물론 극도육무문을 모르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전력이라면 충분히 영물을 사냥하는 것이 가능했다.
바로 그때였다.
-고오오오오오오!
“이건…..대체?”
천여운이 떨리는 눈으로 장백산을 바라보았다.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티끌 한 점 없던 장백산의 하늘로 먹구름이 몰려들고 있었다.
이변에 가까운 일이 벌어지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에 악의가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놈은 천 년에 가까운 세월을 살다가 등선하기 직전에 타락한 영물. 절대로 세상에 풀어서는 안 될 괴물이다.”
-오싹!
소름 끼칠 만큼 흉흉한 기운이 전신을 사로잡았다.
먹구름으로 뒤덮인 장백산의 산봉우리 위로 한없이 어둡고 거대한 범의 형태가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