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313)
# 99장 타락한 영물 (3) #
“녀석을 정화시키기 위해 근 백 년을 공들였다. 벗의 유지대로 녀석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 등선하도록 말이다. 하지만…..더는 무리인 듯하다.”
굳은 의지로 백 년이나 되는 세월을 희생한 투신 악의였다.
그러나 풍백호의 증오와 원념은 약해지기는커녕 갈수록 강해졌다.
지금 저 모습은 백여 년 전보다도 훨씬 더 마물에 가깝게 변했고, 사방으로 전해지는 흉폭한 마성과 증오는 중원으로 향할 것이다.
“맹약의 구속을 벗어던지고 본신으로 화한 녀석은 중원을 피로 물들 것이다. 과거 삼황오제 시절에 머리 여섯 달린 용귀가 중원의 씨를 말려놓았듯이.”
영력의 최고조에 달한 영물은 위험할뿐더러 죽이기도 힘들다.
백 년 만에 본신으로 화해서 아직까지 영력을 발휘하는 게 온전치 않을 때 죽이는 것만이 답이었다.
투신 악의는 쓰라린 목소리로 천여운에게 부탁했다.
“……이것은 원래 내게 주어진 소명이지만 만약 여의치 않다면 그대의 손으로 녀석을 죽여다오.”
몸이 온전해도 녀석을 죽일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오른팔의 부상으로 전력이 감소된 상태에서 녀석을 죽일 수 없을 지도 모른다고 판단한 악의는 결국 천여운에게 부탁했다.
“후회하지 않겠소?”
“정(情)과 대의(大意)를 위해서 녀석을 붙잡고 있었다. 하지만 정만으로 죄 없는 평범한 중원인들마저 피로 물들게는 할 수 없다.”
투신 악의는 단호한 결의를 보였다.
무림인들이나 힘을 가진 자들의 죽음은 개의치 않는다.
하지만 무차별적인 살생이야말로 혈겁이라는 것을 알기에 단호히 정을 떼어내려는 것이었다.
‘진정한 협인(俠人)이로군.’
천여운은 내심 투신 악의에게 감탄하게 되었다.
오히려 어설프게 정의를 내세우는 정도 무림맹의 무인들보다 나았다.
그들이 존경해야 할 대상은 이런 자일지도 몰랐다.
“좋소. 그대의 부탁을 들어주려면 더 서둘러야 겠군.”
“음?”
천여운의 그런 말에 악의가 의아해했다.
비록 오른팔이 다쳐서 균형이 어긋났지만 경공을 펼치는 속도는 전력을 질주하고 있었다.
내공에서 밀린다고 해도 무위가 거의 동등한데 뭘 어떻게 하겠다는 말인가?
그 순간이었다.
-츠츠츠츠츠!
천여운의 전신에서 무언가가 생성되면서 검은 철갑주의 형태로 바뀌었다.
뜻밖의 현상에 악의의 눈의 휘둥그레졌다.
아무 것도 없었는데, 갑자기 얼굴까지 완전히 가려진 철갑주를 입었으니 놀랄 만도 했다.
“먼저 가겠다.”
“?”
-우우웅!
그 순간 천여운의 철갑주의 발에서 흰 입자가 나오더니, 공기를 밀어내듯이 엄청난 속도로 앞으로 뻗어나갔다.
-푸슈우우우우!
“이건 대체?”
악의는 어안이 벙벙해져서 점이 되어가는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장백산 위로 단숨에 날아오른 천여운의 시야로 거대한 흑범과 겨루고 있는 누군가가 보였다.
투신과 마찬가지로 역량의 일원화마저 구사하는 전율적인 고수였다.
게다가 그 자는 순식간에 광활한 호수의 오분지의 일가량을 얼게 만들었다.
극음의 한기를 지닌 대붕의 진원을 흡수한 자가 틀림없었다.
‘설마 저 자가 극도육무문의 수장인가?’
천여운은 조부인 전 태상교주 천인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극도육무문의 수장인 도주가 전력을 이끌고 포달랍궁에 대붕의 진원을 얻으러 갔다고 했었다.
‘도주!’
그 동안 그렇게 궁금해 하던 극도육무문의 수장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리고 그 수장인 도주는 타락한 풍백호의 진원을 노렸다.
‘지금 누구의 것을 노려. 나노. 저 거대한 흑범의 몸에서 영력이 집중된 곳을 찾아봐.’
[알겠습니다.]나노의 목소리와 함께 증강현실에서 흰 입자들이 분석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십자 형태의 과녁이 가슴을 가리키며 말했다.
[흑범의 목을 타고 내려가는 흉부 쪽에서 많은 에너지가 집중되어 있습니다.]‘좋아.’
저들의 손에 풍백호의 진원을 빼앗길 순 없었다.
마침 녀석의 도주의 일격에 약해져 있을 때가 기회였다.
‘어차피 중간에 개입하면 이도저도 할 수 없고 풍백호와 도주의 사이에 껴지겠지.’
그럴 바에는 다소 간단한 방법이 있었다.
자신이 먼저 풍백호의 진원을 얻는 것이었다.
한참 동안 거대한 흑범과 사투를 벌이는 극도육무문의 입장에서는 화가 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천여운의 시도는 보기 좋게 성공했다.
“크워어어어어어어어!”
가슴이 관통당한 것도 모자라 진원을 빼앗긴 흑범이 온몸을 비틀며 울부짖었다.
영력이 집중되어 있는 진원을 빼앗겼으니 아마도 무림인으로 치면 단전이 파괴된 것과 같은 현상이 일어났을 것이다.
‘이 자들에게 빼앗기는 것보다는 나을 거다.’
천여운이 자신의 손에 쥐고 있는 휘황찬란한 빛을 내뿜는 진원을 바라보았다.
굉장한 영력이 느껴졌다.
허공에 떠있는 천여운을 보면서 처음에는 당혹스러워하던 극도육무문의 황헐이 노기가 치솟아서 소리쳤다.
“마신! 부끄럽지도 않은 것이더냐! 비겁하게 저잣거리의 소매치기들이나 할 법한 짓거리를 하다니!”
그런 그와 달리 양 옆에 있는 두 태상들의 반응은 달랐다.
중간에 난입해서 진원을 강탈한 것 자체는 화가 났지만 압도적인 무위는 절대로 거짓이 아니었다.
‘방금 전 그 일격에 담긴 역량은 가히 전율적이었다.’
도주조차도 수 차례 공방전을 했음에도 흑범의 몸을 관통하지 못했다.
그런데 마신 천여운은 기습이라고는 하나, 단 한 번의 일격으로 거대한 흑범의 가슴에 구멍을 만들어버렸다.
“듣던 것보다 더 괴물일세.”
“허어, 도주가 아니면 상대할 수 없을 듯 하네. 상위 육문주들이 감당할 수 없는 게 당연해.”
도주를 제외하면 극도육무문에서 최고 전력이라 불리는 두 태상의 평가에 붕대의 사내 황헐이 인상을 찡그렸다.
설사 그가 그 정도 괴물이라고 해도 더 이상 진원을 빼앗길 수 없었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이 자리에서 저 자를 죽여야 합니다. ‘그 분’께서 남기신 기록대로라면 반드시…”
황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극도육무문의 문도들이 소리쳤다.
“도주!”
“도주께서 나서셨다! 와아아아아!!!”
-슉!
어느새 허공에 떠있는 천여운의 앞으로 도주의 신형이 뻗어오고 있었다.
죽립이 부서져서 드러난 도주는 찢어진 눈매에 짧은 턱수염의 얼굴을 가진 중년인이었다.
무섭게 굳어있는 인상은 그가 얼마나 분노했는지 알려주었다.
“마신!”
도주가 손날을 휘두르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그의 앞으로 날카로운 예기를 발하는 무형의 도가 생겨나, 천여운을 두 동강 낼 기세로 휘둘러졌다.
-채애애애앵!
그러나 무형의 도는 그를 베지 못했다.
허공에서 생겨난 무형의 검에 막혀버린 것이었다.
-촤촤촤촤촤촥!
다만 두 무형의 도검이 부딪치는 여파에 날카로운 예기가 사방으로 튀어나가면서, 근방에 있던 극도육무문의 문도들이 이리저리 피해야 했다.
“어, 엄청나다!”
“피해랏!”
“전부 거리를 벌려라!”
-콰콰콰콰쾅!
여파로 나무와 풀이 베여나가고, 빗물에 젖은 땅바닥에 파였다.
절대고수 두 명이서 전투를 벌인다면 그곳은 위험한 전장터나 마찬가지였다.
주변에 있던 극도육무문의 무사들이 일제히 그들에게서 거리를 벌렸다.
무형의 도검을 부딪친 상태로 도주가 입을 열었다.
“마신. 진원을 넘겨라.”
그의 시선은 천여운의 왼손에 들려있는 진원으로 향해 있었다.
자신이 노리던 것을 빼앗겨서 그런지 여전히 험악한 표정으로 일관했다.
그런데 천여운의 관심은 다른데 있었다.
“네놈…..누구지?”
영문을 알 수 없는 천여운의 질문에 도주가 의아했는지 눈썹을 치켜 올렸다.
그 정도라면 서로의 존재를 당연히 알아차릴 것이라 여겼다.
“본좌는 모든 도의 정점에 서있는 자다.”
-슉!
도주가 무형도를 유지한 상태로 앞으로 날아, 천여운을 향해 도초를 펼쳤다.
극도신무의 제 오 초식인 극쾌살도(極快殺刀)였다.
원래는 발도술을 통해 극쾌를 추구하는 도초였지만 그는 그런 일련의 과정이 없이도 초식을 펼칠 수 있었다.
-촤촤촤촤촤촤촤촤촥!
눈에 보이지 않는 날카로운 예기가 천여운을 휘감았다.
이에 천여운이 가볍게 검결지를 휘저었다.
그러자 무형의 검이 허공에서 촘촘한 검망을 만들어내며, 극쾌살도의 도식들을 막아냈다.
“훔쳐간 것을 돌려받으마.”
어느새 도주의 신형이 뒤에서 나타났다.
굉장한 경공 실력이었다.
진원을 받을 생각이었는지 보도가 천여운의 왼팔을 베려들었다.
이에 천여운이 취한 행동은,
‘이 녀석이?’
도주가 인상을 찡그리며 휘두르던 보도의 방향을 옆으로 틀었다.
설마 진원을 도가 들어오는 궤적으로 향할 줄은 몰랐다.
진원이 손상이 가게 되면 영력이 전부 빠져나가서 아무 의미가 없게 되어버린다.
“그렇다면 목을 베어주마.”
옆으로 틀어진 도가 천여운의 목을 노렸다.
-흠칫!
거의 목에 닿으려던 찰나에 도주가 허공에서 발을 튕기며 거리를 벌렸다.
-슈우우욱!
그가 비켜서자마자 허공에서 푸른 빛줄기가 땅으로 떨어졌다.
그것은 탄검강이었다.
누가 자신에게 이것을 날렸나 싶어서 그곳을 바라보았는데, 푸른 빛 강기로 뒤덮인 얼음검이 허공에 떠있었다.
“얼음검으로 이기어탄검강을?”
도주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그 역시도 대붕의 진원을 통해서 극한의 음기를 얻었다.
그래서 얼음검을 만드는 것은 일도 아니었지만 아무리 그 한기를 집중해도 강기를 버티게 할 수는 없었다.
“놀랍구나. 이십 년 전 이후로 너 같은 고수는 처음이다.”
도주가 진심으로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에 대한 보고를 지속적으로 받아왔기에 강할 거라고는 여겼다.
하지만 여전히 자신이 우위라고 여겼는데, 예상보다 훨씬 까다로운 상대였다.
“역시 더욱 네놈에게 진원을 빼앗길 수 없구나.”
도주가 중단전에 자리 잡고 있는 극한의 음기를 끌어올렸다.
-쏴아아아아아! 쩌저저저적!
그러자 사방에 차가운 서리가 일어날 만큼 한기로 가득해지더니, 이내 내려치는 빗줄기들이 얼어붙어서 날카로운 흉기처럼 떨어져 내렸다.
-촤촤촤촤촤촤촥!
“강기는 아니더라도 본좌 역시도 이 정도는 할 수 있지.”
천여운이 있는 상공 부위만 얼어붙은 빗줄기들이 도주의 진기마저 더해져 떨어졌다.
그런데 화살 비처럼 떨어지는 수많은 날카로운 얼음덩어리가 도중에 허공에서 멈춰 섰다.
도주가 인상을 찡그렸다.
“진기를 침식해?”
천여운이 손을 들어서 도주를 향해 뻗었다.
그러자 허공에 멈춰 섰던 수많은 얼음 덩어리들이 옆으로 회전하며, 이내 도주를 향해서 쇄도했다.
‘이런 잔재주를?’
-팡!
도주가 더욱 높은 허공을 향해 뛰어올랐다.
그러자 얼음 덩어리들이 도중에 방향을 틀어서 그를 따라갔다.
‘이 많은 얼음 덩어리들을 조정한다고?’
아무리 높은 경지에 오른 고수라고 해도 단순한 움직이 아니라, 정교하게 이기어검술을 펼치는 데는 그 숫자에 한계가 있었다.
그런데 천여운이 움직이는 숫자는 굉장히 많았다.
“하지만 그래봐야 얼음 조각일뿐이다.”
-우우우웅!
도주가 거대한 무형도를 만들어내 한 번에 얼음 조각들을 베어버렸다.
-콰콰콰콰콰콰콰!
“역시 마신 네놈과는 잔재주로 대결하는 것은 무의미한…”
말을 하던 도주가 입을 다물고 말았다.
얼음 조각을 없애던 사이에 어느새 수많은 푸른빛 강기로 뒤덮인 얼음검들이 그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천여운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천공섬광이 꼭 광역 공격만을 위한 초식은 아니지.”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도주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수많은 얼음검들에서 푸른 빛줄기가 뿜어져 나오며 한가운데에 있는 그에게 쇄도해왔다.
-슈슈슈슈슈슈슉!
틈이 없이 사방에서 날아오는 이기어탄검강의 빛줄기에 도주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이노오오옴!”
도주가 보도에 역량을 집중하여 공간을 일그러뜨렸다.
역량의 일원화였다.
-우우우웅!
그러자 공간에 일그러지듯이 파문이 일어나며 그를 향해 한 점으로 쇄도해온 수많은 빛줄기들이 그곳에 빨려 들어가더니, 이내 흩어져 사라지고 말았다.
“……이걸 이런 식으로 막는군.”
천여운 또한 도주의 무위에 놀라워했다.
투신 악의와 비교해도 절대로 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대붕의 진원마저 흡수하여 진기의 보유량이 컸기 때문에 더욱 상대하기 까다로운 적수였다.
“이, 이게 정녕 인간들의 대결이 맞나?”
“이런 고차원적인 승부는 처음이네.”
두 절대고수의 대결을 지켜보는 두 태상이 연신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 짧은 공방 속에서 너무도 고절한 수위의 기술들이 향연을 이루면서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와, 완전 괴물들이야.”
“도주를 저렇게 밀어붙이다니?”
다른 극도육무문의 문도들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두 사람의 엄청난 공방은 한 치에 물러섬도 없었다.
그런데 그들의 대결에 하나의 변수가 생겼다.
“크워어어어어어어어어!”
고막이 나갈 듯이 엄청난 포효를 내뿜는 거대한 흑범이었다.
진원을 잃었기 때문에 비틀대다가 결국은 쓰러질 거라 여겼는데, 오히려 아까보다 훨씬 분노했는지 이글거리는 붉은 안광으로 포효를 해댔다.
“아니?”
도주 또한 이것은 예상하지 못했는지 미간을 찡그렸다.
분노한 놈이 뚫어지게 노려보고 있는 자는 당연히 자신의 진원을 들고 있는 천여운이었다.
‘어째서 죽지 않은 거지?’
의문이 들었지만 일단은 피해야 할 것 같았다.
흑범이 거대한 앞발을 휘둘러 허공에 떠있는 천여운과 도주를 동시에 후려치려 했다.
두 사람이 동시에 몸을 뒤로 빼려던 순간이었다.
-콰아아아아앙!
“크워어어어어어어!”
앞발을 휘두르려던 거대한 흑범의 몸이 엄청난 중압감에 눌려서, 무릎을 굽히며 얼어버린 호수의 바닥에 처박히고 말았다.
육중한 흑범의 거대한 몸이 박히면서 사방으로 얼음 조각들이 튀어 올랐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의아해하는데, 도주의 두 눈에 거대한 흑범의 등 위로 주먹을 내리 꽂은 인물이 보였다.
“투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