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317)
# 100장 네놈이 아니야 (4) #
마신 천여운의 입에서 거론된 극도신이라는 말에 반응을 보인 것은 도주뿐만이 아니었다.
붕대의 사내 황헐부터 문주들까지 전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극도신(極刀神).
그것은 그들이 숭상하는 전신이었다.
문제는 그 이름을 알고 있다는 것이 아니었다.
무림인들 역시도 과거 천하제일의 무인이라 불리는 극도신을 알고 있는 자들이 많았다.
게다가 정파 무림과 마교에서는 자신들이 극도신의 후예임을 눈치 채고 있다는 사실도 간자들을 통해서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다였다.
극도육무문에 숨겨진 진정한 비밀을 아는 자는 존재할 수가 없었다.
“가…..짜 극도신?”
그런데 어째서 마신 천여운은 도주에게 가짜 극도신이라고 지칭한 것일까?
그들의 비밀을 알고 있을 리가 만무했다.
도여문주의 등에 업혀 있는 도주가 분노에 차서 떨리는 눈빛으로 말했다.
“아직까지 그 분의 칭호를 승계 받지 못했지만 마신 네놈은 거론할 자격은 없다.”
‘승계 받아?’
천여운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도주의 그 말로 인해 극도신이라는 이름이 극도육무문에게 있어서 마교의 ‘천마’라는 상징성과 동등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의도하지 않은 단 한 번의 자극으로 생각지도 못한 정보를 얻어냈다.
천여운은 나노의 영상 기록에 남겨져 있던 그 얼굴을 떠올렸다.
‘역시 달라.’
짙은 눈썹에 강인한 인상의 극도신의 얼굴은 저 도주라는 자와는 완전히 달랐다.
저 자가 먼 훗날을 좌지우지하는 극도신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이렇게 생각하니 뭔가 혼란스러운 느낌을 들었다.
‘그렇다면 천 이사라고 했던 후손이 했던 말처럼 과거로 미래의 누군가가 간 것이 아니라, 저 도주라는 자의 말처럼 훗날 극도육무문의 누군가가 극도신이라는 이름을 승계받은 것인가?’
이런 추측도 해볼 수 있었다.
먼 옛날인 검마 공이 있던 시절에 등장한 극도신과는 별개의 인물일 확률도 높았다.
굳이 복잡하게 연결 짓는 것보다 그 편이 현실적이기도 했다.
확실한 것은,
“네놈은 아니로군.”
천여운의 단정짓는 말투에 도주는 강한 불쾌감을 느꼈다.
“……마신 지금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 것이냐?”
“알 필요 없다.”
“이놈이 감히!”
붕대의 사내 황헐이 오히려 더 열을 냈다.
이에 천여운이 냉담하게 현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패배해서 수하들을 희생시켜가며 겨우 도망치는 주제에 내게 물을 자격이 있다고 착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부들부들!
‘도주…..’
도주를 업고 있는 도여문주가 등에서 떨림을 느꼈다.
자신들 또한 치욕스러운 감정 때문에 저 자에게 강한 분노와 증오심을 느꼈는데, 도주라고 다를까?
다만 도주는 억지로 분노를 억제하고 있는 듯 했다.
-스스스스!
도주는 지금 체내에 있는 흉흉한 흑기운을 내보내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이것만 체외로 내보내면 몸이 빠르게 회복된다.
여기서 모두 죽게 되면 극도육무문은 회생 불가의 타격을 받고 만다.
‘마신 이 놈은 분명 근거지까지 노리겠지?’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놈이 출수하는 것을 지연시켜야 했다.
원래라면 놈이 하는 말에 대답하지 않겠지만 최대한 끌어야만 이 위기를 타개할 수 있다.
“……본좌에게 무엇이 알고 싶은 것이냐?”
그런 도주의 물음에 천여운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순순히 대답해줄 리가 없어서 놈을 제압하고서 암시나 약물 등을 이용해서 알아낼까 했다.
[부상당해서 업혀있는 자의 체내 에너지 활동이 활발합니다.]천여운의 머릿속으로 나노의 목소리가 울렸다.
‘나도 알아.’
굳이 알려주지 않아도 도주의 몸에서 기운이 고양되는 것이 느껴졌다.
게다가 긴장된 눈빛을 보면 더욱 알 수 있었다.
‘…..수작을 부리는군. 시간을 끌어서 체내에 파고든 기운을 내보내려하는 것인가.’
단번에 그의 속셈을 알아차렸다.
찰나에 고민을 하던 천여운은 이것을 역이용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
지금 마교에 구류되어 있는 도염문주를 암시와 약물로 정보를 캐려고 했더니, 몇 마디도 하지 않고서 이지를 상실해버렸다.
‘수장이라 그런 확률은 적겠지만….’
수뇌부들마저 금제를 가할 만큼 철저한 조직이기에 단정내리기는 어려웠다.
그렇다면 적당히 속아 넘어가주는 편이 나았다.
천여운이 도주를 바라보며 입을 뗐다.
“네놈은 나를 죽이고 미래를 바꾸겠다고 했다.”
‘이런!’
도주의 눈빛이 흔들렸다.
하필 물어봐도 그 부분을 파고들 줄은 몰랐다.
최대한 내색하지 않으려고 해도 증강현실이 개안되어서 그의 안면 근육 하나부터 동공의 수축까지 보이는 천여운이었다.
“…..역시 네놈들 미래를 알고 있는 것이냐?”
‘!!!’
단도직입적인 물음에 도주뿐만이 아니라 붕대의 사내 황헐까지도 눈빛이 변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물었는데 생각 외의 정보였다.
‘…..정말인 건가?’
천여운은 이것을 일말의 가정을 두고서 물었다.
만약 자신이 과거로 돌아가게 된다면 기존의 역사를 바꾸기 위해서 어떻게 할까?
자신의 후손은 나노 머신을 주입했다.
그렇다면 극도신의 후예를 자처하는 이들 역시도 미래에서 온 그로부터 무언가를 받았을 확률이 높았다.
‘이, 이게 대체 어찌된 영문이지? 마신이 어떻게 그것을….’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자는 극도육무문 내에서도 극소수에 불과했다.
도주가 눈을 부릅뜨고서 황헐을 쳐다보며 전음을 보냈다.
[황헐!] [저, 저도 이게 어찌된 영문인지?] […..그 분이 남기신 기록이 유출된 것이더냐?]그러지 않고서야 마신이 저런 말을 할 리가 없었다.
이에 황헐이 당혹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도주! 여태껏 본문의 근거지로 침입한 자는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게다가 설사 그것이 유출되더라도 제대로 읽을 수 있는 자들이라고 해봐야, 저와 두 태상 밖에 없습니다.]그것은 황헐의 말이 옳았다.
유출된다고 해도 읽을 수 있는 자들은 극도육무문에서도 도주를 포함해 고작 네 명에 불과했다.
시험 삼아서 그것을 모르는 문주들에게 읽어보게 했지만 해석 자체가 힘들었다.
왜냐하면 간자체 이외에도 중간 중간에 현재에 존재하지 않는 대명사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결국 배우지 않고는 전혀 읽을 수 없다는 의미였다.
‘기록?’
천여운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전음을 엿들을 수 있는 기능이 활성화되어 있던 덕분에 그들의 대화를 들을 수 있었다.
문득 전 태상교주인 천인지가 했던 말이 기억났다.
[참으로 대단한 자들이더구나. 그들은 한자의 획을 간결하게 만든 글씨로 암호를 만들어서 사용했기에 큰 정보를 얻지 못했다.]그때 천여운은 그것이 간자체로 적힌 것이라 추측했었다.
저들의 대화가 맞다면 전 태상교주 천인지는 그 분의 기록이라고 지칭한 물건을 필사한 게 틀림없었다.
천여운이 전음을 엿듣는 지도 모르고 황헐이 계속 부정했다.
[마신이 그것을 안다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세상에 절대라는 말은…..잠깐!]도주의 눈동자가 심하게 떨려왔다.
그저 그 분의 기록이 유출된 것이 아닐 거라만 생각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생각해보면 그 분이 남긴 기록대로라면 마신은 아직 마교의 소교주로 있어야 할 시기였다.
애초에 소교주 자체도 되지 못하도록 전대 교주인 천유종에게 손을 썼다.
‘그 분께서 과거에 개입했기 때문에 남겨놓은 기록들 모두가 완벽하게 들어맞진 않을 거라고 하셨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기록에 적혀있는 역사보다는 빠르긴 하더라도 마신은 행보대로 움직였다.
다만 자신들이 계획대로 그것을 저지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기록에서도 천마의 재림이라 불리는 괴물인 만큼 절대로 방심하지 말라는 경고 때문에 서둘러 진원을 얻어내려 했다.
그런데 공교로울 정도로 놈은 번번이 대계를 방해했다.
덕분에 직접 움직인 대붕 이외의 불기린, 용귀, 심지어 풍백호의 진원마저 빼앗겼다.
‘애초에 추측의 방향이 잘못되었다. 놈이 천마의 재림이기에 본좌의 예상을 넘어선 것이 아니다.’
도주가 굳은 얼굴로 천여운을 노려보며 말했다.
“네놈도 미래를 알고 있구나. 마신!”
그러지 않고는 이렇게까지 대계를 수포로 만들 수는 없었다.
도주의 외침에 황헐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듯 한 눈빛으로 천여운을 쳐다보았다.
그들의 반응에 천여운의 눈빛이 무거워졌다.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짚었군.’
자신은 미래를 알지는 못한다.
미래인들이 과거에 개입했다는 것만을 알뿐이었다.
저들이 헛다리를 짚기는 했지만 이것을 굳이 부정할 필요가 없다고 여겨졌다.
‘좀 더 끌어낼 수 있겠어.’
어쩌면 이들에게서 진정한 극도신이 누구인지 알 수 있을 지도 몰랐다.
천여운이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제법 눈치가 빠르군. 그렇다면 속일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겠지?”
추측이 맞다는 식으로 말하자 그들이 흔들렸다.
특히 황헐이라는 자의 반응이 가장 빨랐다.
[도, 도주!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 분의 기록에는 분명 몸 안의 무언가를 제거하지 못하면 T.P가 개입하기 때문에 본인 이외에는 누구도 과거에 개입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T.P?’
중원의 언어도 아니고 이 시대의 무언가를 지칭하는 말도 아니었다.
천여운은 이 말을 전에 들어본 적이 있었다.
분명 이것 역시도 나노의 영상 기록에서 후손인 천 이사라는 자가 거론했었다.
[에이 박사님도 참. 안 그래도 신분칩도 위험한데, 나노머신까지 이식받으면 T.P의 추적이 빨라질 거라는 거 아시잖아요?]자신의 후손인 천 이사라는 자 역시도 그것을 우려했었다.
저 자의 말과 조합해서 생각해보면, T.P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몰라도 미래인들이 과거에 개입하는 것을 막는 존재인 듯 했다.
후손 역시도 그것 때문에 자신에게 나노머신을 주입하고 급히 사라졌다.
이것을 연관 지어 생각하던 천여운의 두 눈이 커졌다.
‘잠깐 그 말은 저들이 말한 그 분이라는 자는 미래에서 저들에게 도움만 준 것이 아니라, 계속 과거에 머물렀다는 말인가?’
자신의 후손처럼 다시 돌아간 게 아니었다.
줄곧 과거에 머문 것이다.
생각해보면 처음 검마 공의 시절에 모습 드러낸 극도신이라는 자의 흔적이 폐검곡에서 더 옛날인 천마 조사 시절로도 남겨져 있던 것을 의아하게 여겼었다.
게다가 극도신무의 도초가 더욱 발전해서 말이다.
‘잘못 생각했었어. 그래. 그거야. 놈은 더욱 과거로 거슬러 올라갔던 거야!’
천여운이 상기된 얼굴로 그들에게 말했다.
“네놈들이 말하는 그 분이 바로 극도신…”
바로 그때였다.
-솨아아아아!
도주의 몸에서 검은 아지랑이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체내에 있던 천마기를 완전히 배출시킨 것이다.
그와 동시에 다 죽어가던 도주의 눈빛이 되살아나더니, 이내 천여운을 향해 엄청난 속도로 신형을 날렸다.
-슉!
“역시 마신 네놈은 이 자리에서 죽여야 해!”
-우우웅!
도주의 손날을 중심으로 공간이 일그러지며 강대한 역량이 응집했다.
그것은 역량의 일원화였다.
대붕의 진원에 담겨 있던 극음의 한기부터 모든 진기를 한 점으로 끌어올린 도주는 천여운을 향해 최고의 일도를 날리려 했다.
녀석이 방심하고 있는 지금이 유일하게 죽일 수 있는 기회였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파치치치치칙!
‘이건?’
천여운의 앞으로 전격이 뿜어져 나오는 흑뇌의 무형검이 형성되었다.
자신의 부상이 심하기 때문에 방심할 거라는 것은 오산이었다.
천여운은 계속 만전 상태였다.
“자충수를 던지는군.”
그 말과 함께 천여운이 검결지를 앞으로 뻗었다.
-파치치치칙! 우우웅!
흑뇌의 무형검의 검 끝으로 역량이 일원화되면서 공간이 일그러졌다.
“여, 역량의 일원화?”
도주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 지고의 비기를 익히기 위해 이십여 년이나 폐관을 했던 그였다.
아까 전에 마신과 겨룰 당시에도 이것을 끝까지 숨기고 있었던 것은 만약을 위한 비장의 한 수였다.
“말도 안 돼. 네, 네놈은 대체…”
-파치치칙! 콰콰콰콰콰쾅!
그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검은 뇌기가 가득한 광선이 바로 도주를 덮쳤다.
도주가 일도에 모은 역량의 일원화로 다급히 이에 대응했다.
-파아아앙!
“크헉!”
도주의 입에서 선혈이 솟구쳤다.
죽을 힘을 다해서 버텨내려 했다.
“끄으으으으으!
단순히 역량을 일원화 한 수준을 넘어서 흑뇌의 무형검으로 역량을 일원화시킨 초식을 막을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천여운이 그런 그를 향해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재생은 꿈도 꾸지 마라.”
-파치치칙! 콰콰콰콰콰콰콰쾅!
“마, 마신! 이노오오오끄아아아아아악!”
도주가 만들어낸 역량을 일원화한 일도가 파훼되며 순식간에 그의 몸이 광선에 휩쓸렸다.
악을 지르는 소리도 어느새 비명이 되었고 그 마저 찰나에 그쳤다.
흑뇌의 광선이 스쳐간 자리에는 오직 파괴의 흔적뿐이었다.
“어…..어떻게 이런 일이!”
“도주우우우우!!!”
붕대의 사내인 황헐과 문주들이 믿기지 않는지, 고함을 지르며 그를 찾으려 했으나 어떠한 흔적도 존재하지 않았다.
도주는 사라졌다.
문자 그대로 세포하나 남기지 않고 완벽하게 사라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