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318)
# 101장 생사의 경계 (1) #
-쏴아아아아아!
거세게 내려치던 빗줄기가 차츰차츰 그쳐가고 있었다.
믿어 의심치 않았던 자신들의 수장인 도주를 잃은 여덟 문주들은 망연자실해할 수밖에 없었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그가 이렇게 허무하게 당할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흑뇌의 광선에 의해 일직선으로 파괴된 공간에는 어떠한 잔재도 남아있지 않았다.
마치 처음부터 아무 것도 없었던 것처럼.
‘안 돼. 저 괴물은 인간이 아니야.’
‘대적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어.’
승부라는 것은 어느 정도 승산이 있을 때나 가능한 일이었다.
수장을 잃은 박탈감은 어느새 사라졌고 그들의 머릿속은 공포에 사로잡혔다.
천여운이 자신을 바라보는 여덟 문주들과 붕대의 사내 황헐을 바라보았다.
“이제 네놈들뿐이로군. 어설프게 도망치는 것보다 깨끗하게 덤비거나 투항하는 걸 권유하고 싶다만.”
-으득!
그의 경고에 황헐이 분노했는지 이를 갈았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한 법이었다.
화가 난다고 해서 뒤집을 수 없는 상황이 반전되는 것은 아니었다.
황헐이 안색이 창백하다 못해 식은땀을 흘리면서 눈치를 보는 문주들을 향해서 소리쳤다.
“전부 다른 방향으로 산개 해!”
유일하게 살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은 그것 하나뿐이었다.
그의 외침이 끝나기가 무섭게 기다렸다는 듯이 문주들이 전부 다른 방향으로 신형을 날렸다.
-탓! 타타타탓!
어느 한 명이라도 살아야만 했다.
그래서 근거지로 돌아가 마교에서 침공하는 것을 방비하지 않으면 그들이 쌓아왔던 모든 것들이 사라지고 만다.
‘쉽게 포기할 리가 없지.’
천여운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수장이 죽었다고 모든 것을 손 놓는 수준의 조직이라면 벌써 망했을 것이다.
‘이 할 정도 남았나.’
비기를 세 번이나 쓰면서 더 이상은 무리였다.
남은 진기를 전부 끌어낸다면 한 번 정도는 더 쓸 수 있지만 그렇게 된다면 만약을 위한 방비를 할 수 없다.
‘저들 정도라면 이 정도로 충분하다.’
문주들의 무위는 화경의 경지에 이른 자들이었다.
비기가 아니더라도 천공섬광이면 충분했다.
-팟!
천여운의 나노 슈트의 발바닥에서 흰 빛의 입자가 출력되면서 허공으로 떠올랐다.
높은 상공으로 뻗어 올라온 그가 양손을 들어 올리자, 극음의 한기가 주위에서 일어나며 서리들이 응집했다.
-쩌저저저적!
응집한 서리들은 검의 형태로 바뀌었다.
오한빙천공의 극성의 경지에 이른 천여운은 한철에 버금가는 얼음검을 만들 수 있다.
스물일곱 자루의 얼음검들이 형성되었다.
‘지금은 이게 한계로군.’
더 이상의 진기 소모는 최대한 자제해야만 했다.
‘추적해.’
[알겠습니다. 사용자의 명령에 의거하여 판넬 원격 시스템을 가동합니다.]나노의 목소리가 끝나자 세 개의 얼음검들이 각자 도망가는 자들이 있는 방향으로 뻗어나갔다.
도망가는 그들의 상공으로 뻗어나가는 얼음검들에 푸른빛이 일렁였다.
-우웅!
푸른 강기로 뒤덮인 이기어검강이 형태가 되었다.
‘나노!’
[멀티 록 온 시스템(multi lock on system)을 가동합니다.]나노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울리며, 흰 빛의 입자들이 선을 그리고 있는 시야로 보이는 증강현실에 십자 형태의 붉은 과녁들이 형성되었다.
-삐삐삐삐삐삐삐삐!
사방으로 흩어져서 도망가는 문주들이 타깃으로 지정되자 천여운이 검결지를 밑으로 뻗었다.
그러자 얼음검의 탄검강들이 푸른 빛줄기가 되어 도망가는 그들을 향해 쇄도했다.
-촤촤촤촤촤촤촤촤!
있는 힘을 다해서 도망치는 문주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뒤에서 날아오는 빛줄기를 모를 리가 없었다.
“처, 천공섬광! 빌어먹을!”
“이런 미친! 아직도 이런 여력이 남았단 말인가?”
모두에게로 날아오는 줄도 모르고 쇄도해오는 이기어탄검강에 운이 없다고 생각한 그들이 도강을 일으켜 이를 막아보려 했다.
하지만 단순한 도강과 속도가 붙은 이기어탄검강의 위력은 격이 컸다.
-채챙!
-푸슉!
“끄아아아악!”
두 번의 이기어탄검강의 빛줄기에 도가 부러지고, 하나의 빛줄기가 문주의 가슴을 관통했다.
다른 문주들이라고 다를 바가 없었다.
그들이 막기에는 이기어탄검강의 위력은 너무 강했다.
“끄아아악!”
“커억!”
푸른 빛줄기들이 그들에게 난사되며 증강현실에 표기된 그들의 타깃 표시가 하나둘씩 사라져갔다.
붉은 십자 표시가 단 하나로 바뀌었다.
가장 마지막까지 버틴 것은 붕대의 사내인 황헐이었다.
-촤촤촤촤촤! 채채채채챙!
난사되는 세 줄기의 이기어탄검강을 보도가 부러지고서, 맨손으로 펼치는 도강으로 막아내가며 분전했지만 소용없었다.
-콰직!
“끄아아아악! 내 손!”
탄검강에 버티지 못한 도강을 펼치던 그의 손이 통째로 날아갔다.
손이 날아간 고통을 참아내고서 이기어탄검강에서 피하려고 했지만, 그것은 정확하게 그의 가슴을 관통해버렸다.
-콰직! 쾅!
“크헉! 이, 이렇게…..내가…..”
-주르륵!
황헐의 입가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머리만큼 휑하게 뚫린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본 황헐이 온몸을 파르르 떨더니, 그대로 숨이 끊어지고 말았다.
“후우.”
허공에 떠있는 천여운이 깊은 숨을 내쉬었다.
이로써 극도육무문의 총력이 전부 전멸한 것이었다.
‘수뇌부들은 전부 처리한 건가.’
이제 남은 것은 절강성 항주 황산에 있는 그들의 근거지뿐이었다.
그곳만 전멸시킨다면 수백 년 동안이나 뒤에서 암약하며 풍파를 일으키려던 극도육무문이 완전히 사라진다.
물론 그 전에 할 일이 있었다.
‘조부님께서 기록을 필사했다고 하니, 남하하기 전에 그것을 확인해봐야겠구나.’
하북성에 숨겨둔 그 기록을 보게 된다면, 극도신의 비밀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일단 투신에게로 가볼까.’
천여운이 장백산 쪽으로 신형을 돌리려던 순간이었다.
-오싹!
‘방금…..그건 뭐지?’
순간 굉장히 날카로운 예기가 느껴졌다.
아주 짧지만 확실히 그의 기감을 자극할 만큼 예리한 기운이었다.
천여운이 장백산 위쪽을 바라보았다.
착각이었나 싶을 정도로 장백산 쪽은 고요했다.
‘극히 찰나였다. 하지만….’
장백산의 정상에는 투신 악의가 있었다.
도주조차도 쉽사리 어찌 하지 못하는데,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일단은 서둘러 올라가보기로 했다.
-스스스스!
나노 슈트의 투구 부분이 착용되더니, 발바닥에서 흰 입자가 강하게 뿜어져 나오며 천여운의 신형이 장백산을 향해 빛줄기처럼 뻗어나갔다.
-슈우우우우우!
천여운의 신형이 장백산 쪽으로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죽어있는 황헐의 시신이 있는 곳에 잔상이 일렁이며 한 인영이 나타났다.
-스륵!
새빨간 머리카락에 훤칠한 외모의 청년이었다.
청년은 굉장히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조용히 엎어져 있는 황헐의 시신으로 다가오더니, 그의 몸을 뒤집었다.
황헐은 두 눈이 뒤집혀서 꼭 죽은 것처럼 보였다.
몸은 차갑게 식어갔다.
-탁!
청년이 황헐의 목에 있는 맥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아주 미약한 박동이 점차 느려져가고 있었다.
가슴이 뚫려서 심장마저 없어진 자가 어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용케 버텼군.”
입 꼬리가 올라간 청년이 서둘러서 그의 단전 쪽의 혈도들에 진기를 모은 손가락으로 타혈하기 시작했다.
-타타타타타탁!
몇 번의 타혈을 하던 그가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주먹만 한 작은 옥병이었는데, 그것의 뚜껑을 열자 역한 냄새가 흘러나왔다.
청년이 옥병을 황헐의 입가에 갖다 댔다.
-주르륵!
옥병에서 검붉은 액체가 흘러나와 황헐의 입 안으로 들어갔다.
청년은 그것이 목구멍을 타고 들어갈 수 있도록 황헐의 목을 받쳐서 들어올렸다.
검붉은 액체가 그의 식도를 타고 들어갔다.
옥병에 있는 그것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털어 넣은 새빨간 머리카락의 청년이 긴장된 눈으로 그를 지켜보았다.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뭐야? 정말 죽은 것이냐?”
청년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바로 그때였다.
눈이 뒤집혀 있던 황헐의 동공이 움직이며 원래의 위치를 찾더니, 거친 호흡을 내뱉었다.
“흐허어어어어억!”
그와 동시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츄르르르륵!
머리 만하게 뚫려있는 그의 가슴에 핏줄들이 일렁이며 징그럽게 엉켜 붙더니, 이내 실처럼 이어져갔다.
그렇게 이어지던 것은 핏줄만이 아니라 근육과 살점으로 이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뚫려있던 가슴이 완전히 재생했다.
-츄르르르륵!
가슴이 완전히 재생하자, 팔목까지 날아가있던 오른팔의 재생도 진행되었다.
가슴만큼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헉…헉….헉….”
변화는 재생에 그치지 않았다.
-푸스스스!
붕대로 감싸고 있던 그의 머리 부근이 불룩해지더니, 이내 머리카락들이 삐져나왔다.
그것은 흑발이 아닌 검푸른 빛깔을 띠었다.
누워있던 붕대의 사내 황헐이 벌떡 상체를 일으키며 거친 숨을 내쉬었다.
“하아….하아…..”
그런 그에게 새빨간 머리카락의 청년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고생했다. 그래 죽을 뻔했다가 살아난 기분은?”
그런 청년을 어이가 없다는 눈빛으로 바라보다 황헐이 입을 열었다.
“네놈도 죽어보면 그 소리가 나올까?”
“죽다 살아났다고 까탈스럽기는. 영력을 금제를 당했다고 완전히 너덜너덜하게 당했군.”
그 말에 황헐이 떨리는 눈동자로 중얼거렸다.
“……금제? 그게 아니더라도 놈은 완전히 괴물이다.”
“사령인의 두 번째 서열인 황헐 네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다니. 놈의 성장이 우리의 예상을 넘어섰나 보군.”
의아해하는 새빨간 머리카락의 청년에게 황헐이 심각하게 말했다.
“너무 빨라. 마치 숨을 쉬는 매순간 강해지는 속도로 놈은 강해지고 있어.”
“……그 정도란 말이냐?”
“그 도주가 압도적으로 패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천재라는 말이 부족할 만큼 너무 빠르게 강해졌다.
기존의 역사를 한참 앞당길 만큼 말이다.
“아!”
문득 황헐은 뭔가를 떠올렸는지 다급하게 말했다.
“막아야 해. 놈은 지금 오령 중에 네 개의 진원을 취했다. 여기서 하나를 더 취했다간 감당할 수 없는 영역으로 들어설 것이다!”
오령의 진원을 취한 자.
불멸의 힘을 얻는다고 알려져 있다.
“진원을 네 개나 취해? 보고 받기로는 분명 세 개라고 들었는데.”
“아니다. 녀석은 분명 대붕의 진원도 취했다. 나는 확실하게 놈에게서 대붕의 영력을 느꼈다.”
“…….네 녀석이 하는 말이라면 확실하군.”
정말로 네 개의 진원을 얻었다면 심각한 상황이었다.
반드시 막아야 할 만큼 말이다.
“사령인 중에 혹시 다른 녀석들은 오지 않은 것인가?”
심각하게 우려하는 황헐의 말에 새빨간 머리카락의 청년이 입 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다른 녀석들은 필요없다.”
“뭐?”
“네 말대로라면 오히려 잘됐군. 그 분이 몸소 행차하셨으니.”
‘!?’
의미심장한 청년의 말에 황헐의 두 눈이 커졌다.
* * *
전투가 벌어졌던 장백산의 정상으로 다급히 날아온 천여운.
-슈우우우우!
나노 슈트의 발바닥의 흰 입자가 줄어들면서, 얼어붙은 호수의 앞으로 내려서는 그의 투구가 해체되었다.
‘이건 대체……’
그의 눈앞에 믿기지 않는 광경이 벌어져 있었다.
투신 악의가 양팔이 잘린 상태로 숨을 거뒀는지, 고개를 떨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런 악의의 앞에 서있는 한 사내가 있었다.
“대단하군. 끝내 무릎을 꿇지 않다니.”
감탄하는 말투와 다르게 목소리는 무미건조했다.
어떠한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검은 무복을 입고 있는 사내의 가슴 부근이 움푹 들어가 있었는데, 그것이 부풀어 오르더니 이내 원래대로 돌아왔다.
-터벅! 터벅!
사내가 꼿꼿이 선 채로 죽어있는 그를 지나치더니, 천여운을 바라보며 무표정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오랜만입니다. 아니, 이곳에선 처음 뵙겠습니다가 맞겠군요. 마신.”
천여운의 눈동자가 떨려왔다.
짙은 눈썹에 강인한 인상의 얼굴.
그것은 나노의 영상 기록에서 보았던 그 자의 얼굴이었다.
“극도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