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319)
# 101장 생사의 경계 (2) #
실제로 이 얼굴의 사내와 이렇게 빨리 대면하게 될 줄은 몰랐다.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겉으로 느껴지는 기운은 마치 주변의 자연과 동화된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다만 실제로 바라보는 저 얼굴에서 풍기는 강인함은 기존에 만났던 어떠한 자들과는 다른 이질감을 풍겼다.
도주가 강렬한 패자의 기세를 가졌다.
투신 악의는 짙은 무(武)의 향기를 물씬 풍기는 강자 그 자체였다.
그러나 눈앞의 사내는 어딘가 한 가지가 결여된 느낌이었다.
‘흡사 감정이 없는 듯하다.’
그 말이 가장 옳은 표현에 가까웠다.
하다 못해 짐승조차 감정을 지녔는데, 이 자는 일말의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극도신(極刀神).
‘전설의 도객.’
무림에서의 짧은 등장에도 수많은 수식어가 붙었다.
정사마를 떠나서 전설의 검수인 검마와 자웅을 겨룬 자.
천마 조사 이래로 처음으로 천하제일이라는 칭호가 거론된 절대자.
그리고,
‘먼 미래에서 과거로 거슬러 온 자.’
천여운이 짐작하는 바가 맞다면 그는 시간을 역으로 거스른 자였다.
긴장감으로 물드는 와중에 극도신이 입을 열었다.
“잠깐 실례.”
“?”
-쾅!
극도신이 바닥을 향해 가볍게 진각을 밟았다.
그러자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바닥이 흔들리더니, 일순간 그가 있던 중심으로 반경 삼 장(丈) 거리의 바닥이 움푹 파들어 갔다.
-쿠쿠쿠쿠쿵!
“후우.”
극도신이 개운하다는 듯이 숨을 내쉬었다.
무슨 짓인가 싶었는데 패인 바닥에서 익숙한 권력(拳力)이 느껴졌다.
‘이건?’
투신 악의의 무극공허권의 권력이 틀림없었다.
극도신이 넓게 패인 바닥을 슬며시 훑어보고는 말했다.
“체내에서 적당히 분산시키려 했는데, 꽤 성가신 권력이군요. 순수한 권으로 이 정도 경지에 이른 자는 처음 봅니다.”
그 말과 함께 뒤에 있는 투신 악의를 힐끔 쳐다보았다.
권력이 바닥으로 퍼져나가며 강한 진동이 일어났는데도 여전히 꼿꼿이 서있다.
깊이 뿌리박힌 고목처럼 말이다.
그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무자로서의 자존심이 이리도 강한 자는 당신의 조사 이래로 처음이군요. 마음에 듭니다.”
마치 천마 조사를 만나본 것처럼 말했다.
근 팔백여 년을 훌쩍 넘긴 먼 옛날의 조상을 말이다.
‘이놈…..’
그런 의아함보다도 뭔가 모르게 불쾌해졌다.
천여운이 처음으로 인정한 진정한 무인이 투신 악의였다.
“…..잘도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지껄이는군.”
칭찬을 읊조리는 것과 달리 목소리에는 어떠한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것을 듣고 있으면 멋대로 가지고 노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느껴졌다니 유감이군요. 이해는 합니다. 너무 오랜 세월을 살다보니, 감정적으로 많이 무감각해졌습니다.”
그 말과 함께 극도신은 뒷짐을 지고서 먹구름이 낀 하늘을 쳐다보았다.
-쏴아아아아아!
아직까지 비가 내리는 어두운 하늘.
‘아니?’
그런데 미처 몰랐는데, 그의 몸에는 빗방울이 닿지 않고 있었다.
얇은 공기의 막에 빗줄기가 너무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면서 이제야 그것을 눈치 챘다.
‘반탄기가 아니다.’
그랬다면 빗방울이 튕겼을 것이다.
진기를 숨을 쉬듯이 너무도 편안하게 다뤘다.
세상을 다 산 노인처럼 뒷짐을 지고서 하늘을 쳐다보던 극도신이 천천히 고개를 내리며, 천여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세월 혹은 시간이라는 것은 참으로 묘합니다.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하죠. 그런데 그것만이 아닙니다. 감정 역시도 퇴색됩니다.”
“무슨 소리를 하고 싶은 거지?”
“입장이 바뀐 것 같군요. 색다릅니다. 인간적인 감정을 지닌 마신이라…..그때의 당신은 말 그대로 마신, 아니 완벽한 신 그 자체였죠.”
천여운이 인상을 찡그렸다.
대체 이 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마치 말하는 것만 보면 오래 전에 자신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말한다.
먼 미래에서 내려와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 자다.
자신과의 연계점이 일체 존재하지 않았다.
“아까부터 나를 안다는 식으로 말하는데, 나는 네놈을 처음 본다.”
그런 천여운의 말에도 극도신은 자신의 말을 계속 이어갔다.
“완벽했던 당신과 같은 선상에 서게 되면 어떤 기분일지 참으로 궁금했습니다. 확실하게 알겠습니다.”
“?”
“전의라는 말도 우습군요. 날파리가 눈앞에서 날아다닌다고 그것에 전의를 느끼진 않죠. 그저 성가실 뿐.”
“뭣?”
“그때 당신의 기분이 지금의 저와 같겠죠.”
-슥!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뒷짐을 지고 있던 극도신의 신형이 어느새 그의 앞으로 다가왔다.
경공이 빠르다는 그런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마치 공간을 일축한 듯 한 느낌이었다.
‘언제?’
가까이 다가온 극도신이 그를 향해 발차기를 했다.
-슈우우욱!
가볍게 휘두른 발차기처럼 보였지만 공간을 울리는 듯 한 무게감이 전해져왔다.
천여운이 재빨리 왼팔을 들어 올리며 그것을 막았다.
-쾅!
“크윽!”
발차기를 막는 순간 엄청난 파괴력과 함께 그의 신형이 튕겨나갔다.
십여 장이 넘는 거리를 날아가서야 겨우 그것을 멈출 수 있었다.
-치이이이이이익!
‘말도 안 되는 위력이다.’
금강불괴에 이른 육신과 나노 슈트를 입고 있는데도 그 파괴력이 고스란히 팔을 타고 들어와 체내를 울리며 통증을 일으켰다.
“제법이군요. 팔을 부러뜨릴 생각으로 걷어찼는데.”
‘!?’
-슈우우욱!
어느새 뒷짐을 지고 있는 극도신이 그를 향해 발차기로 내려찍기를 가했다.
천여운이 다급히 십성 공력으로 두 팔을 교차했다.
-콰아아앙!
엄청난 파괴력이었다.
방금 전의 발차기의 두 배, 아니 세 배에 가까운 위력이었다.
천여운은 이것을 이화접목의 묘리로 흘려보내려했다.
-콰직!
그 순간 그의 몸이 무릎까지 바닥을 파고들었다.
‘이러면 힘을 완전히 흘릴 수가…’
-콰콰콰쾅!
발목까지 파고들었던 부분을 중심으로 반경 이 장이 넘는 바닥이 산산조각 나듯이 부서지며 내려앉았다.
-주르륵!
내상을 입었는지 천여운의 입에서 선혈이 흘러내렸다.
나노 슈트 덕분에 팔이 부러지진 않았지만 금이 간 듯 했다.
-스스스스!
[양 팔목의 뼈에 금이 갔습니다. 자가 수복에 들어갑니다.]하지만 진원의 영력과 나노 머신들이 있어서 금이 간 것이 빠르게 수복되었다.
극도신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천여운이 자신의 공격을 두 번이나 막았기 때문이 아니었다.
“갑주가 부서지지 않다니?”
그가 의아해 한 것은 자신의 공격에도 부서지지 않은 나노 슈트 때문이었다.
일반적이라면 현철로 만든 방어구조차도 일그러지거나 부서졌을 만큼의 위력을 실은 진기를 가했다.
“단순한 갑주가 아니군요? 아니. 미래의 기술이….”
-화르르르르륵!
그때 천여운의 손에서 뜨거운 열기가 일어났다.
검은 불꽃이 검의 형태로 바뀌었다.
흑염의 무형검이었다.
눈앞의 상대는 진기의 여력을 생각해가면서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역대 만났던 적수들 중에서도 최악의 존재였다.
“호오. 검은 불꽃? 이종의 진기를 동시에 다루다니, 이건 저도 해보지 않았는데, 꽤 흥미롭군요.”
전혀 긴장된 기색도 없었다.
흥미롭다는 말을 하면서도 무감각한 눈빛으로 일관했다.
천여운이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흥미로운지 아닌지 직접 경험해봐라.”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흑염의 무형검이 화려한 불꽃의 궤적을 그렸다.
-화르르륵!
그것은 마신검공의 제 일 초식인 파현무검(波玄舞劍)이다.
검세가 마치 거센 파도가 태양을 집어삼킬 듯이 몰아치는 형태였다.
순식간에 검은 불꽃이 그리는 스물네 개의 완벽한 궤적이 극도신을 휩쓸었다.
‘!?’
천여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뭔가 같은 무형검으로 대응할 거라는 예상과 달리 극도신은 손날로 가볍게 흘러가는 대로 도식을 펼치며 그의 흑염의 검초를 막아냈다.
-화르르르륵! 채채채채챙!
물론 그렇다고 해도 전부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검식이 기이한 궤도로 꺾어 들어오자, 극도신은 그것을 막을 수 없다고 판단했는지 뒤로 보법을 펼치며 피해냈다.
-타타탁! 화르르륵!
“과연 도주가 애를 먹을만하군요. 천마검공에 제 극도신무의 묘리를 섞다니?”
그 말투가 마치 도주와의 대결을 지켜본 듯 했다.
천여운은 그의 그런 말에 개의치 않고 이어지는 검식에 집중했다.
-화르르르륵! 촤촤촤촥!
완벽에 가까운 검세에 극도신이 입 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기대 이상의 검초에 처음으로 흥미를 느낀 듯 했다.
-슈슈슈슉!
끈질기게 요혈을 찔러오는 검식의 극 후반부에 도주가 뒷짐을 지던 남은 왼손을 내밀더니, 즉흥적으로 도식을 펼쳐서 이를 막아냈다.
-채채채채챙!
놀랍게도 그는 두 손으로 다른 도식을 펼쳐서 마신검공의 검초를 기어이 완벽하게 막아내고 말았다.
도주가 왼손의 손날에 피어오르는 흉흉한 흑기운의 아지랑이를 보면서 말했다.
“확실히 실망만 시키지 않는군요. 제가 두 손을 쓰게 만들다니.”
-팍!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도주의 손날이 허공을 일자로 갈랐다.
‘무형도?’
날카로운 예기에 천여운이 다급히 흑염의 무형검에 더욱 진기를 가해서 방패처럼 앞으로 내밀었다.
-촤아아아아아악!
“크헉!”
-타타타타타타탁!
천여운의 신형이 날카로운 예기에 밀려나갔다.
스무 보가 넘는 거리를 계속해서 밀려나가는데, 날카로운 예기를 막아내고 있던 흑염의 무형검에 균열이 일어났다.
‘이런!’
끝내 도주의 무형도를 버티지 못한 것이다.
이종의 진기가 섞인 것을 넘어서는 말도 안 되는 위력이었다.
-화르륵! 파파파파팍!
균열이 가던 흑염의 무형검이 결국은 갈라지며 도주가 날린 무형도가 천여운의 복부를 갈랐다.
-촤아아아악!
무형도에 의해 나노 슈트에 금속성이 울렸다.
그러더니 이윽고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쩌저저적!
[게이트리윰 나노 슈트의 내구도에 9% 손상이 갔습니다.]최강의 금속인 게이트리윰으로 만들어진 나노 슈트에 금이 갔다.
완전히 갈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금이 간 나노 슈트의 틈으로 무형도의 예기가 복부로 파고들었다.
-촤촤촤촥!
파고든 예기가 오장육부를 헤집으며 갈가리 찢겨놓았다.
“끄아아아악!”
천여운의 입에서 선혈과 함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이 정도까지의 심한 내상을 입어본 것은 처음 겪는 일이었다.
“쿨럭…쿨럭!”
진원의 재생력과 나노 머신의 활성화되며 찢겨지고 있는 장기를 빠르게 회복시켰지만, 극도신의 무형도기를 내보내지 못해서 고통스러웠다.
‘도기….도기를 배출시켜야 해.’
겨우 멈춰선 천여운이 체내의 진기를 집중시켰다.
오장육부를 헤집어놓고 있는 무형도기를 배출시키기 위해 남은 진기의 상당량을 소모시킬 수밖에 없었다.
“끄으으으윽!”
고통을 이겨내야만 한다.
그런 천여운을 향해 극도신이 여유롭게 걸어오며 말했다.
“이제 슬슬 진기에 여유가 없을 때가 되었군요.”
자신의 상태를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는 그의 의미심장한 말에 천여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