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32)
# 12장 천마 조사의 심득(1) #
-사라라라라라라! 탁!
천여운이 책을 넘기는 소리 덕분에 많은 생도들이 괴로워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천여운은 그들이 열람 시간이 끝나기까지 반 시진 정도 남겼을 무렵에 서재로 들어왔다는 점이었다.
이렇게 천여운이 스캔에 매진할 무렵 그를 유심히 지켜보는 눈이 있었다.
그는 도마종의 소교주 후보자인 천유찬이었다.
도법에 관련된 비급서에 집중하고 있던 천유찬이었지만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수많은 책을 뽑아서 훑어보는 천여운의 모습에 눈이 갈 수밖에 없었다.
‘흐음.’
뭔가 그를 바라보는 눈빛이 다른 소교주 후보자들에 비해서 묘했다.
본의 아니게 민폐를 끼치며 책을 스캔하는 사이에 어느새 이 층을 가득 메웠던 생도들의 대다수가 열람시간이 끝나고 나갔다.
물론 그 사이에 여러 생도들이 들어왔지만 백여 명이 있을 때에 비하면 비교적 한적해졌다.
[스캔을 완료했습니다.] [스캔을 완료했습니다.] [스캔을 완료했습니다.]한 시진 반 동안 쉬지 않고 스캔을 하면서 계속해서 울리는 나노의 기계적인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반복적인 작업이었다.
촛불이 초에 그어진 선에 도달해갈 무렵 나노가 알렸다.
[도합 백오십육 권의 스캔이 완료되었습니다.]그것이 한 시진 하고도 반의 시간 동안 천여운이 이층 서재에서 스캔한 이류 무공의 비급서들의 숫자였다.
보통 생도들이 그 시간에 한 권에서 많아도 두 권 이내의 비급서를 외우는 사이에 천여운은 그들의 백배를 상회하는 숫자의 책을 스캔했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충분하다 못해서 넘칠 만큼 비급서를 스캔했다.
정파 무림인들의 명숙이자 무림에서 가장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진 만박자 제갈현조차도 이류 무공에 비급서만큼은 천여운 만큼 알지 못할 것이다.
천여운은 그야말로 움직이는 서재와도 마찬가지였다.
마교에서도 상위 무공에 속하는 접무도법을 익힌 천여운이 이렇게 수많은 비급서를 스캔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나노, 오늘 스캔한 서적들을 전부 분석해서 프로그램 데이터에 저장해놔.’
[알겠습니다.]그것은 단순히 삼류, 이류 무공들을 닥치는 대로 익히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천여운의 스승인 우호법 섭맹은 의무실에서 마지막으로 접무도법의 초식을 보여준 후에 그에게 많은 조언을 남기고 떠났다.
그 중 하나가 경험의 중요성이었다.
‘본문의 접무도법은 감히 자부 하건데, 본교의 모든 무공을 통틀어서 열 손가락 안에 들거라고 자부한다. 클클,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무공을 익혔다고 우쭐해 해서는 안 된다.’
‘네. 스승님.’
‘네 오성이 뛰어나다고는 하나 제대로 무공을 익히기 위해서는 식과 초식을 수 백, 수 천 번의 반복과 연마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무공을 익히는 모든 무림인들이 가장 번거로워하고 힘들어하는 부분이 매일 같이 반복되는 연공 과정이었다.
하지만 천여운은 이런 연공과정을 나노의 전이 능력으로 과감하게 생략할 수 있었다.
무림인이라면 모두가 탐나고 부러워할 만한 능력이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경험이다. 본 스승님 역시도 무공을 배운 이래 그 수를 헤아리기 힘들 만큼 수많은 적과 겨루고 생사를 다투면서 이렇게 무공을 완성해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마도관은 다양한 종파와 무가들과의 승부를 통해 경험을 쌓기 좋은 곳이다.’
라고는 했지만 이 단계 시험까지는 협동을 요했기에 직접적으로 다른 종파의 생도들과 겨룰 일이 없었다.
더군다나 무공이 전무하다고 알려졌었던 천여운을 상대로 싸움을 걸어온 것은 오직 복마종의 소교주 후보자인 천무금뿐이었다.
덕분에 천여운이 유일하게 제대로 싸워본 상대는 천무금이 다였다.
이 대결을 통해서 경험의 중요성을 인지한 천여운은 부족한 경험을 채우기 위해 매 밤마다 증강현실에서 천무금의 아바타와 대결을 펼쳤다.
덕분에 초식을 다루는데 많이 익숙해졌지만 한 가지 단점이 있었다.
단 한 사람과의 반복적인 대결이었기에 천무금의 초식에만 익숙 되어 진다는 점이었다.
여기서 천여운은 나노의 기능을 통해 이 같은 점을 보완할 만한 방법을 떠올리게 되었다.
‘나노, 혹시 장 호위도 아바타로 생성할 수 있어?’
[가능합니다. 단검비술의 정보 분석이 완료되었기에 아바타로 생성할 수 있습니다.]‘오!’
그렇게 천여운은 장 호위의 아바타와 겨룰 수 있게 되었다.
천무금보다 무공이 낮은 장 호위였지만 생각보다 상대하기가 껄끄러웠다.
그것은 세 초식과 기본 식만으로 덤비는 천무금의 아바타와 다르게 장 호위의 아바타는 단검비술의 모든 초식을 활용했기 때문이었다.
‘잠깐만…..그렇다면 더 다양하게 해볼 수도 있는 거잖아?’
이렇게 나노의 증강현실 능력을 더욱 활용하게 되면서 천여운은 한 가지 더 좋은 방법을 떠올리게 되었다.
‘내 생각대로만 된다면 더 다양하게 실전 경험을 쌓게 될 수 있을 거다.’
하지만 그 전에 먼저 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서재의 일 층과 이 층에 있던 청옥석 비석에서 얻게 된 두 초식의 절세초식과 그것을 파훼하는 두 초식을 더 살펴보고 전이 받고 싶었다.
‘이크, 더 타기 전에 내려가자.’
녹아내리는 촛농이 거의 선까지 도달해있었다.
천여운은 서둘러서 계단을 내려와 선에 방문록을 담당하는 무공 교두에게 초를 반납했다.
시간에 늦지 않은 것을 확인한 무공 교두가 방문록의 이름 옆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흠, 늦지 않았군. 가보도록.”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몸을 돌리려는데, 무공 교두가 중얼거리듯이 무언가를 말했다.
“그러고 보니 언제 나오는지 묻던 것 같았는데?”
“네?”
“으음, 아니다.”
반문했지만 무공 교두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식으로 얼버무렸다.
말을 하다가 마는 것이 의아했지만 천여운은 ‘알겠습니다.’라는 대답과 함께 돌아섰다.
‘누가 나를 기다렸나?’
누구인지 묻고 싶었으나 무공 교두의 태도를 보니 알려줄 것 같진 않았다.
궁금한 것도 잠시였다.
어서 빨리 개인 연공실로 가서 절세초식을 전이 받고 싶다는 열망이 강해진 천여운은 경쾌한 발걸음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서재에서 두시진 반이라는 시간을 소요하면서 비급 서재로 들어갈 때는 파랗던 하늘이 어둡게 물들어 있었다.
해정시(10시 30분)까지는 숙소로 돌아가야 하니 시간이 많지 않았다.
마도관의 본관의 우측 편에는 지하 층에서부터 이 층까지 되어 있는 넓은 직사각 형태의 건물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생도들이 사용할 수 있는 이백오십 호실의 작은 개인 연공실이 있었다.
입관식 때 마룡단을 지급하고 이틀 정도 잠깐 개방되었던 연공실이 이 단계 시험을 마치고나서 완전히 개방되었다.
많은 인원을 수용하는 개인 연공실은 넓지는 않지만 생도들이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운기조식 및 가벼운 수련을 위한 공간이었다.
그 동안은 대규모의 생도들을 수용할 수 없었기에 조별 시험이 진행되는 이 단계 시험까지는 개방이 되지 않던 것이 오늘부터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천여운이 개인 연공실 건물의 입구 쪽에 도착하려던 차에 누군가 나타나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숙소에도 없고 계속 찾아다녔는데, 여기에 있었군. 칠.번.생.도.”
‘이 녀석은?’
천여운의 눈에 이채를 띠었다.
그는 다름 아닌 육 조의 조장인 백팔 번 생도 하일명이었다.
하일명의 이글거리는 눈빛을 보니 종일 천여운을 계속 찾아다니면서 벼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왜 날 찾은 거지?”
천여운의 질문에 하일명이 어이가 없다는 투로 말했다.
“몰라서 묻는 거냐? 네 녀석이 내 조원들의 다리를 전부 병신으로 만들어 놓은 걸 내가 눈치 채지 못했을 것 같아?”
덕분에 하일명은 원래 자신이 계획했던 진형의 전략을 전부 포기하고 순전히 자신의 능력만으로 난관을 해쳐나가야만 했다.
‘하아…..바빠 죽겠는데.’
천여운의 모든 신경은 하일명이 아닌 절세초식으로 가있었다.
이 단계 시험 때 왠지 귀찮은 적을 만들었다는 촉이 신기하게도 들어맞았다.
살기를 잔뜩 띠는 하일명의 날카로운 눈매를 보아하니 자신과 여기서 한 판 해볼 작정인 듯 했다.
‘약한 녀석은 아니다. 제대로 붙어야 하나.’
하일명이 귀찮게 느껴졌지만 절대로 그는 약한 상대가 아니었다.
기습이라고는 하나, 소교주 후보인 천무금을 부상 입힐 만큼 뛰어난 무위를 지니고 있었다.
‘좋아.’
어차피 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상대를 도발해서 흩뜨려 놓는 편이 나았다.
천여운이 그를 향해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게 누가 자리를 비우라고 했나?”
“아~! 누구 덕분에 말이지.”
예상과 다르게 하일명은 천여운의 도발에 넘어가지 않았다.
오히려 여유 있게 받아치면서 냉철한 눈빛으로 기수식을 취하고 있었다.
‘누구랑은 참 다르군.’
천무금처럼 모든 사람이 쉽게 도발에 넘어가는 것은 아니었다.
하일명은 이미 이 단계 시험에서 모든 생도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절무도법의 고절한 초식을 펼치는 천여운을 보았었다.
더군다나 방심했다고는 하나 갈비뼈에 금이 갔기 때문에 전투에 있어서 매우 신중했다.
‘제대로 붙어야 겠군.’
상대가 냉철하게 나오자 천여운의 눈빛도 진지해졌다.
천여운도 손바닥을 펴서 도날과 같은 형태를 갖추고 기수식 자세를 취했다.
서로의 허점을 탐색하며 초식을 펼치기 전의 긴장감이 형성되려고 하던 찰나였다.
“어이!”
누군가가 부르는 목소리가 개인 연공실 건물 쪽에서 들려왔다.
일촉즉발의 상황이었기에 천여운과 하일명은 그 목소리에 반응하지 않고 상대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타탁!
그때 가볍게 발바닥이 튀는 소리와 함께 그들을 불렀던 목소리의 주인이 서로가 대치해 있는 한 가운데에 끼어들었다.
“뭐야!”
천여운의 허점을 탐색하던 하일명이 짜증스러운 듯이 외쳤다.
반면 천여운은 중간에 개입한 자의 얼굴을 보자 경계심이 가득 찬 표정이 되었다.
그는 도마종의 소교주 후보자인 천유찬이었다.
“하하하, 집중력들이 좋은데.”
갑자기 나타난 천유찬은 넉살좋게 웃으면서 그 시선을 천여운에게 향하고 있었다.
그 표정을 보아하니 마치 기다렸다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천여운을 향해서 미소를 짓던 천유찬이 고개를 돌려서 하일명을 향해 말했다.
“미안한데, 아까 전부터 꽤 기다려서 말이야. 먼저 양보해줄 수 없을까? 잠깐이면 되는데. 이렇게 부탁할게!”
그렇게 말하고는 고개를 살짝 숙이는 것이 아닌가.
어떠한 소교주 후보자들에게서도 볼 수 없었던 태도가 가벼운 느낌 마저 주고 있었다.
그 모습에 하일명이 어이가 없다는 투로 말했다.
“나도 이 녀석을 종일 찾고 있었다. 그런데 무슨 양보를 하란 소리냐. 괜히 짜증나게 하지 말고 꺼져라.”
“그래? 흐음 어떡하지? 일부러 보고 싶어서 이렇게까지 기다렸는데.”
천유찬은 화를 내는 하일명의 태도에도 불구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신의 할 말만 해댔다.
천여운의 도발에도 넘어가지 않던 하일명이 더는 참을 수 없었는지, 기습적으로 신형을 날리며 천유찬을 향해 손가락으로 검지(劍指)를 만들어 검초를 펼쳤다.
-솨아아아!
손가락으로 만든 검지였음에도 불구하고 검초에서 강한 기세가 느껴졌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파파파팍!
기습적인 하일명의 검 초식을 천유찬이 가벼운 몇 식으로 막아내더니, 이내 천유찬의 손날이 날카로운 도처럼 그의 우측 목에 닿기 전에 멈췄다.
진짜 도였다면 그대로 휘둘렀으면 목이 떨어져나갔을 것이다.
“이….이게….”
자신의 목에 닿을락 말락 하는 그의 손날을 보며 하일명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 하일명을 향해 천유찬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양보해줄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