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322)
# 102장 자연경(自然境) (1) #
“구….굴원.”
굴원이라 불린 새빨간 머리카락의 미남자가 쓰러지려 하는 극도신을 부축했다.
만신창이가 되어서 죽어가는 극도신을 보면서 굴원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당연히 한참 전에 마신을 세상 속에서 지워버린 후, 여유롭게 풍백호의 진원을 가져올 거라 여겼던 그가 이 꼴이 되어 있을 줄은 몰랐다.
“주군. 괜찮으십니까?”
“끄으으윽.”
이상했다.
오령의 진원을 전부 흡수하여 불멸체가 된 극도신의 몸이 재생하지 않고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흉흉한 흑기운이 이를 방해하는 것 같았다.
굴원이 다급히 이를 도우려했다.
“제가 돕겠습니다.”
이에 극도신이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말했다.
“그, 그를 죽여라. 그를 죽이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지금 당장 회복하지 않으시면 위험하실 수도…”
“하아….하아…당장 행해라!”
단호한 극도신의 명령에 결국 굴원이 인상을 찡그렸다.
‘주군?’
평소에는 감정조차 드러내지 않던 극도신이 강한 살의마저 보이고 있었다.
그만큼 마신 천여운은 무위의 격차마저 뛰어넘고서 극도신을 한계까지 몰아치게 만들었다는 의미였다.
‘그렇다면 정말 이 자리에서 죽여야 겠구나.’
극도신의 명대로 더 이상 후환이 되지 않도록 죽이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극도신을 조심스럽게 앉혀둔 굴원이 앞으로 한 발자국 걸어 나왔다.
“오랜만이군. 전투는.”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전신이 붉은 화염으로 뒤덮였다.
그 모습이 마치 마교의 대장로 란영을 보는 듯 하다.
-화르르르르륵!
비가 내리는데도 그 불꽃은 어찌나 강렬했는지 더욱 위로 치솟았다.
불꽃 인간으로 화한 굴원이 날카로운 안광을 내뿜으며 천여운을 향해서 신형을 날렸다.
-팟!
일직선으로 뻗어나가는 굴원은 단숨에 천여운을 불 태워 재로 만들 기세였다.
‘주군의 말대로 마신 네놈은 이 자리에서 죽어줘야 겠다.’
흐릿한 시야로 빠르게 다가오는 불꽃에 천여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아무리 몸을 움직이려고 해도 심장이 갈가리 찢겨나간 격통에 발가락조차 움직이지 않았다.
‘…..이대로 끝인가.’
바로 그때였다.
천여운의 살결로 차가운 한기가 느껴졌다.
‘이건?’
그 순간,
-쩌저저저저저적!
굴원의 신형이 고작 삼 장 거리를 앞두었을 때, 일직선으로 뻗어나가던 그의 앞으로 거대한 빙석(氷石)이 일어났다.
‘!?’
그와 동시에 그의 앞을 한 은발의 중년인이 가로막았다.
-쾅!
순식간에 뜨거운 열기가 차가운 한기가 부딪치며 수증기를 만들어냈다.
-치이이이익!
굴원이 이를 단숨에 제쳐보려 했으나, 상대가 보통이 아니었다.
짧은 순간에 두 초식 가량을 공수가 교환되었으나 뚫기는커녕 오히려 서로의 신형이 뒤로 밀려났다.
-타타탁!
뜻밖에 방해를 받은 굴원이 심기가 불편해진 눈빛으로 그 자를 노려보았다.
“네놈은 누구냐?”
그 질문을 받은 은발의 중년인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외쳤다.
“본좌는 천마신교의 대장로 단주천이다.”
‘마교?’
그는 바로 북세외의 정점이자 마교의 신임 대장로인 단주천이었다.
굴원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마교에 이 정도의 고수가 있었나?’
처음 들어보는 자였다.
척 보기에도 오대고수 급에 비견되는 짙은 무(武)의 기운이 느껴졌다.
북세외에 대한 정보가 없었기도 했고 최근에 영입된 단주천을 그가 알 리가 만무했다.
굴원이 잠시 인상을 쓰다가 말했다.
“제법 강해보이는군. 하나 아쉽게도 네놈과 싸울 시간이 없구나.”
천여운만 제거하면 모든 것이 정리된다.
다 죽어가는 그의 목을 베기만 하면 되는데, 굳이 일일이 싸울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굴원이 신형을 틀어서 단숨에 그를 제치고 천여운에게로 향하려 했다.
그러나,
-촤촤촤촤촥!
“아닛?”
그의 앞을 누군가 맹렬한 검초로 막아섰다.
굴원이 기묘한 몸놀림으로 이를 피해냈지만 상대의 경신술 또한 엄청났다.
-휘리리릭!
‘무슨 경공이 이리도?’
바람과도 같은 경공으로 그를 따라잡은 사내의 검이 결국은 불꽃을 관통해 그의 뺨을 스치고 말았다.
-촥!
“큭!”
-타타타탁!
결국 천여운에게 가지 못하고 굴원은 여덟 보 이상이나 거리를 벌려야 했다.
그를 막아선 자는 독특한 가면을 쓰고 있는 사내였다.
다른 자들은 모르겠지만 이 자에 관한 정보는 워낙 유명하기에 잘 알고 있었다.
“명왕?”
그는 마교의 대호법인 명왕 마라겸이었다.
“교주님을 건드리는 자는 나의 손에 죽는다.”
‘이 자까지 이곳에 왔다는 것은?’
검을 겨냥하는 그를 보면서 굴원의 표정이 굳어졌다.
천여운을 죽이는 데만 신경 쓰느라 미처 몰랐는데, 수많은 기운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천여운의 뒤편의 산 능선에서 또 다른 인물들이 나타났다.
“교주니이이이임!”
그들은 천여운을 보필하는 오른팔들인 육검대주들이었다.
뒤에 이어서 수많은 마교인들이 산을 타고 올라왔다.
가장 먼저 도착한 허봉이 놀란 눈으로 전신이 불꽃으로 타오르고 있는 굴원을 바라보았다.
“앗! 저 불꽃은?”
그것은 매우 익숙한 느낌의 불꽃이었다.
마치 란영을 보는 듯 했다.
강한 동질감에 사로잡혀 있던 허봉이 일단은 천여운에게로 달려갔다.
쓰러지려하는 그를 급하게 부축했다.
“교주님! 괜찮으십니까?”
“하아….하아…..”
천여운은 격통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거친 호흡만을 내뱉었다.
뒤늦게 도착한 문규가 눈물을 글썽거리며 천여운의 반대쪽을 부축하며 말했다.
“교주님! 어쩌다가 이 지경이….”
그들은 천여운이 이렇게까지 당한 모습은 처음 보았다.
잘려있는 왼쪽 손목에 울컥하기마저 했다.
그러나,
-슈르르르륵!
“소, 손이!”
천여운의 핏줄이 얽히고설키며 빠른 속도로 잘려나간 손이 재생을 시작했다.
경악해하는 문규에게 허봉이 설명했다.
“교주님께서는 기린과 용귀의 진원을 복용해서 빠르게 재생하는 걸 거에요.”
“아!”
허봉 역시도 기린의 피를 복용했기 때문에 영물의 영력이 얼마나 사람의 재생력을 빠르게 촉진시키는지 잘 알고 있었다.
‘칫.’
자신을 가로막은 마교인들에 굴원이 짜증을 감추지 못했다.
처음 나타났던 대장로 단주천만 있었다면 어떻게든 뚫고서 천여운을 처리하는 게 가능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들 모두를 처리하려 들었다간 자신도 위험해질게 뻔했다.
그렇게 되면 극도신을 보호할 수가 없었다.
‘…..안타깝지만 퇴각해야 한다.’
명을 어기는 것이 되지만 이 정도라면 극도신도 이해해줄 거라 생각했다.
그러던 찰나였다.
“아닛!”
굴원의 두 눈에 극도신을 향해서 빠른 속도로 뻗어나가는 자가 보였다.
짧은 백발의 노인이었는데 그는 바로 전 태상교주인 천인지였다.
단주천과 마라겸과 거의 비슷하게 장백산의 정상에 오른 그는 극도신을 발견하고서, 본능적으로 놈을 향해 신형을 날린 것이었다.
‘여운이를 이렇게 만든 자라면 당장에 죽여야만 한다.’
오랜 무림에서의 경험이 만들어낸 날카로운 통찰력이었다.
“안돼에에에에!”
굴원이 당장 이를 막기 위해서 극도신이 있는 방향으로 경공을 펼쳤지만, 이미 천인지의 신형은 거의 앞까지 도달해 있었다.
‘저 지경이 되고도 살아있다니….인간이 아니란 말인가. 허어, 단번에 죽인다!’
신체의 사분지의 일이 날아갔는데도 숨이 붙어있는 것에 경악했다.
그의 앞까지 도달한 천인지가 검강을 일으킨 검으로 천마검공의 삼 초식을 펼치려 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팍!
‘!?’
천인지의 검초가 미처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극도신을 낚아챘다.
엄청난 속도로 극도신을 낚아챈 그 자가 천인지를 향해 손을 뻗자, 엄청난 한기가 일어나며 바닥에서 뾰족한 얼음창들이 튀어나왔다.
-파파파파파파팍!
“이런!”
천인지가 검강을 일으킨 검으로 그것들을 베어냈다.
-촤촤촤촤촤촥!
서둘러서 얼음창들을 베어냈지만 어느새 극도신을 낚아챈 자는 한참이나 멀어져 있었다.
그 뒷모습만이 보였는데, 전신에 붕대를 메고 있는 자였다.
‘황헐!’
이를 발견한 새빨간 머리카락의 미남자 굴원이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가 제 때 나타나지 않았다면 극도신이 도리어 위기에 처할 뻔했다.
굴원이 뒤에 있는 마교인들을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으득!
“마교……”
오직 마신 천여운만을 신경 쓰고 있었는데, 이런 식으로 당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게 끝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팟!
그 말을 내뱉은 굴원이 극도신이 있는 방향으로 신형을 날렸다.
어찌나 빨랐는지 순식간에 점이 되어서 사라지려했다.
“어딜!”
이를 대호법 마라겸과 대장로 단주천이 뒤쫓았다.
그러는 사이에 찢어질 듯한 여인의 목소리가 장백산 전체를 울렸다.
“교주니이이이이임!!!”
그것은 문규가 오열하는 소리였다.
그녀의 외침에 모든 마교인들이 몰려들어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웅성웅성!
“이, 이게 무슨 일이야?”
“어…..찌 이런…..일이…..”
자신들의 교주인 천여운이 두 눈을 뜬 상태로 동공이 풀려서 몸이 추욱 늘어진 것이었다.
그것뿐이었다면 문규도 이렇게 눈물을 흘리며 오열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휘황찬란하게 빛났던 천여운의 흑철갑은 어느새 빛을 잃었고, 당연히 숨을 쉬어야 하는데 콧김조차 나오지 않았다.
“교주님! 교주님!”
“으아아아아아아!!!”
허봉을 비롯해 고왕흘, 백기, 사마착, 호상화, 채택겸 누구 하나할 것 없이 죽은 듯이 두 눈을 뜨고서 누워있는 천여운의 모습에 비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어째서? 어째서 교주님…..”
손이 재생할 때만 하더라도 빠르게 털고 일어날 줄 알았다.
그런데 천여운의 숨이 갑자기 끊어졌다.
그것은 흑철갑이 빛이 완전히 사라지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탓!
“이게 어찌된 일이느냐?”
오열하는 소리에 놀라서 도착한 전 태상교주 천인지가 당혹스러운 목소리로 천여운의 곁에 있는 칠검주들에게 물었다.
이에 문규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교, 교주님의 숨이 갑자기…..흐윽.”
그녀는 차마 뒷말을 잇지 못했다.
자신의 입으로 천여운의 숨이 끊어졌다고 말 할 수가 없었다.
천인지가 다급히 죽은 듯이 고요하게 누워있는 천여운의 곁으로 다가가 그의 인중에 손가락을 가져다댔다.
‘!?’
주름으로 가득한 천인지의 얼굴이 굳어졌다.
정말로 호흡을 하지 않고 있었다.
순간 억장이 내려앉는 충격에 천인지가 몸을 비틀거렸다.
“사, 상 태상교주 어른!”
곁에 있던 고왕흘이 이를 부축하려 했지만 천인지가 그것을 거부했다.
설마 자신이 오자고 주장했던 장백산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여, 여운아…..”
그렇게 괴물 같은 무위를 자랑하는 손주가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대체 어떤 괴물과 마주했기에 이런 일이 벌어졌단 말인가.
그를 비롯한 모든 마교인들이 눈물을 흘리며 망연자실하게 천여운을 바라보았다.
“아니야. 교주님이 이렇게 돌아가실 리가 없습니다.”
허봉이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외쳤다.
“그냥 부상을 당하신 거라구요! 부상을….”
그의 말처럼 모두가 이것이 거짓말이라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눈앞에 일어난 일을 어찌 현실이 아니라고 치부할 수 있겠는가.
“맞아요. 이대론 보낼 수 없어요!”
문규는 포기할 수 없었는지, 천여운의 몸에 자신의 진기를 불어넣어보려고 했다.
이를 전 태상교주 천인지가 만류했다.
“아서거라. 함부로 진기를 불어넣는 게 아니다.”
정말로 숨이 끊어진 것이라면 진기는 오히려 시신을 상하게 만든다.
이에 문규의 상기된 두 뺨 위로 뜨거운 눈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슥!
문규가 아직까지 온기를 잃지 않고 있는 천여운의 뺨을 매만지면서 흐느끼며 말했다.
“흑…..교주님. 이렇게…..이렇게 가시면….저와…..”
문규가 뒷말을 잇기도 전이었다.
-고오오오오오!
“아앗!”
그 순간 뺨을 매만지던 천여운의 몸에서 변화가 생겨났다.
갑자기 그의 몸에서 휘황찬란한 빛이 일어나더니, 허공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를 둘러싸고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뒤로 물러섰다.
“이, 이게 대체 무슨?”
모두가 당혹스러워하는데, 천여운의 몸에서 여러 가지 기운이 동시에 일어났다.
-화르르륵!
-쩌저저저적!
-파치치치칙!
-휘이이잉!
-고오오오오!
그것은 화기(火氣), 한기(寒氣), 뇌기(雷氣), 풍기(風氣), 그리고 흉흉한 검은 기운이었다.
갑작스럽게 천여운의 몸에서 일어난 이 오종의 기운들이 공명을 일으켰다.
이 기이한 광경에 전 태상교주 천인지가 두 눈이 왕방울 만하게 커져서 중얼거렸다.
“오령의 기운!”
그것은 다섯 영물의 영력이 한 자리에 어우러지면서 일어나는 기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