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326)
# 103장 마인 (1) #
-타타탁!
붕대의 사내 황헐은 쉬지 않고 경공을 펼쳤다.
전력을 다해서 펼친 덕분에 어느새 장백산에서 북서쪽으로 이십 리가 넘게 이동했다.
주군을 살려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쉬지 않고 달려온 결과였다.
등 뒤에 업혀있는 극도신은 고요했다.
그것은 체내로 파고든 흑기운을 몰아내는데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체 저 기운은 뭐 길래 도주도 그렇고 주군께서 저리 애를 먹으신단 말인가.’
확실한 건 하나였다.
저 흉흉한 기운이 재생력을 방해한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출혈이 그치고 몸통이 재생한 것을 보면 흑 기운을 많이 배출한 듯 했다.
‘그나저나 늦군.’
새빨간 머리카락의 사내 굴원이 늦었다.
중간에 추적자들을 막는다고 먼저 가라고 했는데, 반 시진이 넘게 따라오는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바로 그때였다.
-흠칫!
“하아…..하아…잠깐!”
“주군?”
극도신의 목소리에 황헐이 멈춰섰다.
왜 그러는가 싶었는데 극도신이 동남쪽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티 없는 하늘에는 날아다니는 새조차 없었다.
극도신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하늘을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충혈 된 두 눈으로 한 사람의 칭호를 곱씹었다.
“마…..신!!!”
* * *
분노한 풍백호의 영력으로 인해 비가 내리며 우중충하던 하늘이 어느새 맑게 개였다.
해가 반쯤 지평선 너머로 지면서 황혼으로 하늘이 붉게 물들었다.
수많은 시신들로 넘쳐나던 장백산의 정상.
그곳에 있는 시신들이 마교인들에 의해서 한 곳으로 옮겨지고 있었다.
“이제 몇 구 남았지?”
“많이 남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해가 지기 전에 빨리 옮겨라.”
“충!”
백기나 채택겸과 같은 육검단주들의 지휘 하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이렇게 시신들을 모으는 것은 한 번에 화장하기 위함이었다.
그런 그들을 언덕 위에서 바라보고 있는 천여운에게 전 태상교주인 천인지가 말했다.
“무자로서의 도의를 갖추었구나. 여운아.”
그 말에 천여운이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저들에 대한 도의가 아닙니다. 투신을 위해서입니다.”
“허허허.”
이에 천인지가 너털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장백산의 정상에서 있었던 일을 들었기 때문에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다.
천여운이 극도육무문의 시신을 처리하는 것은 평생을 장백산에서 의를 지켜온 투신 악의를 기리기 위해서였다.
-휘이이이잉!
서늘한 바람이 부는 장백산 정상의 언덕 위에 하나의 비석이 있다.
비석에는 투신 악의라고 적혀 있었다.
그의 비석은 천여운이 직접 천지호에 있던 바위로 만들었다.
천여운이 고개를 돌려, 등지고 있던 투신을 묻은 비석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대는 최고의 무인이었소.’
투신 악의는 마지막에 와서 자신과 극도신마저 능가했다.
진원도 나노 머신의 도움도 없이 오직 인간으로서의 기백과 전의만으로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다.
진정한 이 시대의 천하제일이라는 칭호를 가질만한 무자였다.
천여운은 이번 장백산 행을 통해서 진원을 얻은 것보다도 투신이라는 불굴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이 가장 뜻 깊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시신들을 전부 처리하고 나면 이제 본교로 돌아가서 토벌 준비를 할 것이냐?”
천인지가 물었다.
이곳에서 도주와 극도육무문의 정예를 전멸시켰다.
그리고 그들의 배후라고 할 수 있는 극도신이 큰 부상을 당하고 도주했다.
극도신이 어디로 향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당장에 해야 할 일은 단 하나였다.
수뇌부와 주력진을 잃은 극도육무문의 본거지를 치는 것이다.
악의의 비석을 쳐다보던 천여운이 입을 열었다.
“그 전에 들릴 곳이 있습니다.”
“들릴 곳?”
“조부님께서 극도육무문의 본거지에서 필사하셨다는 극도육무문의 암호가 적혀 있다던 책자를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 책자는 분명 극도신이 저술한 것이었다.
도주나 붕대의 사내가 했던 말을 떠올려보면 그것에 극도신이 미래를 어떻게 바꾸려고 했는지에 관한 비밀들이 적혀 있으리라 여겼다.
‘놈의 목표를 알아야 확실하게 잡을 수 있다.’
부상을 입고 떠났지만 그 정도로 죽을 극도신이 아니었다.
극도신이 죽지 않는다면 이 전쟁은 절대로 끝났다고 할 수 없었다.
“어차피 돌아가는 길에 있을 터이니, 경유해서 가면 되겠구나.”
“오늘은 곧 해가 저물 터이니, 시신을 화장하고 장백산을 내려가서 밤을 보내고 내일 일찍 출발하면 될 것…”
-콰앙!
“끄아아아악!”
그때 어디선가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
천여운과 천인지가 동시에 그곳을 바라보았다.
아직까지 얼어붙어 있는 장백산 정상의 호수가 있는 곳에서 들린 비명이었다.
-웅성웅성!
얼음 파편들 사이에 쓰러져 있는 목이 잘린 거대한 흑범의 사체 쪽에 난리가 났다.
흑범은 영물인 풍백호였다.
타락했다고 하나 그 피에는 여전히 강한 영력이 남아 있었다.
그것을 전부 뽑게 하고 육 장로 몽무를 비롯한 육검단주인 고왕흘과 호상화 등에게 흑범의 배에 있는 진원으로 짐작되는 것을 수습하게 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긴 듯 했다.
“끄으으윽!”
-털썩!
비명을 지른 자는 다름 아닌 육 장로 몽무였다.
한쪽 무릎을 꿇고서 자신의 복부를 오른손으로 움켜잡고 있었는데, 출혈이 어찌나 심했는지 얼굴이 창백해져 있었다.
그런 그의 목을 내려치려는 자가 있었다.
오른손이 붉은 피로 물들어 있는 그는 바로 호상화였다.
-팍!
“큭! 호, 호상화! 왜 그러는 거에요?”
목이 날아갈 뻔 한 절묘한 순간에 허봉이 그것을 막아냈다.
-부들부들!
‘무슨 힘이 갑자기 이렇게?’
호상화의 손목을 잡고 있는 허봉의 눈동자가 떨려왔다.
순수한 힘이라면 거대한 도끼를 병장기로 사용하는 그녀가 세기는 했지만, 내공에서는 화경의 경지인 그가 우위였다.
그런데 그녀의 공력이 굉장히 폭증해 있었다.
“호상화! 정신 차려요!”
허봉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호상화는 멈추지 않고 더욱 공력을 끌어올렸다.
의아한 마음에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았는데,
‘눈이?’
호상화의 두 눈동자에 흰자가 사라져서 검게 물들어 있었다.
그 모습이 섬뜩하기마저 한데, 그녀의 전신에서 검은 아지랑이 같은 흉흉한 기운이 풍겨졌다.
‘이 기운은 꼭!’
-슉! 착!
바로 그때 호상화의 반대 손으로 그녀의 독문병기인 거대한 도끼가 빨려 들어왔다.
“헉! 서, 설마 그거 휘두르려고요?”
그녀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허봉을 향해 도끼를 휘두르려 했다.
당황한 허봉이 다급히 옆에 있던 육 장로 몽무의 가슴으로 내공을 실은 일 장으로 멀리 날려버렸다.
“육 장로님! 죄송합니다!”
-퍽! 부웅!
“크헉!”
육 장로가 날아가자마자 허봉이 재빨리 강기를 실은 손으로 도끼를 막아냈다.
-까앙!
“으윽!”
한철로 만든 도끼에 실린 공력은 굉장했다.
강기로 손을 보호했는데도 통증이 느껴질 정도였으니 말이다.
‘안되겠다. 일단 제압하자.’
호상화가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고 판단한 허봉은 방법을 바꾸었다.
그녀의 도끼날을 붙잡고 있는 허봉의 왼손의 강기가 붉게 물들기 시작하더니, 이내 불꽃으로 감싸졌다.
-치이이이익!
불꽃을 일으키자 도끼의 날이 서서히 달아오르며 손잡이까지 열기가 올라갔다.
당연히 부병을 놓을 거라고 여겼는데,
-치이이이이익!
“호상화!”
손바닥이 타는지 매캐한 냄새와 함께 연기가 흘러나오는데도 고통을 전혀 느끼지 않는 것처럼 호상화는 그것을 절대로 놓지 않았다.
어찌해야 하나 황당해하고 있던 찰나였다.
-퍽! 우드득!
“끄헉!”
허봉의 왼쪽 갈비뼈를 누군가 걷어찼다.
어찌나 강한 일격이었는지, 허봉의 몸이 순식간에 삼 장이 넘게 날아가 버렸다.
바닥을 뒹굴은 허봉이 겨우 자세를 잡았다.
“으윽!”
하지만 갈비뼈가 부러졌는지 곧장 움직일 수가 없었다.
“고, 고 단주님도 눈이?”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웅성웅성!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마교인들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허봉을 발로 걷어찬 것은 바로 고왕흘이었다.
-고오오오오!
거구의 고왕흘은 자신의 머리통만한 짙은 흑빛을 내뿜고 있는 구체를 오른손에 쥐고 있었다.
그것은 풍백호의 뱃속에 들어있던 또 다른 진원이었다.
휘황찬란한 빛을 내뿜던 가슴의 진원과 달리 그것에서는 흉흉하면서도 사악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팍!
“대체 무슨 일이냐? 앗! 고왕흘?”
근방에서 시신을 모으는 것을 지휘하던 사마착도 두 사람의 변화에 당혹스러웠다.
흉흉한 기운을 내뿜고 있는데 그것을 통제하지 못하는 듯 했다.
원인은 고왕흘이 들고 있는 저 검은 구인 듯 했다.
‘저것과 접촉한 것인가?’
화경의 경지에 오른 고왕흘이 검은 구에서 나오는 기운에 잠식되어,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것을 보면 굉장히 위험해 보였다.
“고왕흘 정신차리…헛!”
-파팍!
사마착이 다급히 뒤로 신형을 날렸다.
거구의 고왕흘이 전광석화와 같은 속도로 그를 공격해온 것이었다.
어찌나 빨랐는지 고왕흘의 좌권이 그의 가슴을 뚫을 기세로 단숨에 파고들었다.
“제, 젠장!”
바로 그 순간이었다.
-쿵!
주먹을 휘두르던 고왕흘이 바닥으로 두 무릎을 꿇었다.
그것은 그에게만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
도끼를 쥐고 있는 호상화 역시도 바닥에 두 무릎을 꿇고서 일어나기 위해 아등바등 거렸다.
-탓!
“교주님!”
그런 그들의 앞으로 천여운이 나타났다.
두 사람을 방대한 진기로 억누른 것은 바로 그였다.
‘조심하라고 했는데, 저것과 접촉했구나.’
천여운이 고왕흘이 들고 있는 검은 진원을 보면서 인상을 찡그렸다.
타락한 진원에 담긴 마성이 두 사람에게 침투한 듯 했다.
“헉! 이, 일어나려 한다.”
고왕흘과 호상화가 조금씩 무릎을 펴려고 했다.
진원 자체의 영력과 마성이 동시에 흘러들어갔는지, 폭증한 공력이 영물의 피를 흡수한 것을 훨씬 상회했다.
‘마성이 위험하긴 하군.’
그러나 그들을 제압하고 있는 것은 마도를 이룬 천여운이었다.
천여운이 가볍게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그러자,
-콰앙!
억지로 무릎을 펴려고 했던 두 사람이 바닥에 엎어지고 말았다.
진기로 억누르는 힘이 어찌나 강했는지 전신이 바닥을 파고들면서 바닥에 균열이 일어났다.
천여운이 왼손을 뻗었다.
-휘리릭! 탁!
그러자 고왕흘이 쥐고 있던 검은 진원이 빨려 들어왔다.
“교, 교주님 위험합니다!”
갈비뼈를 붙들고 있던 허봉이 놀라서 외쳤다.
진원을 손에 쥐자 흉흉하면서도 사악한 기운이 요동을 치면서 천여운의 손바닥으로 파고들려고 했다.
이에 천여운의 입 꼬리가 비릿하게 올라갔다.
“미쳐서 날뛰는 구나.”
-고오오오오!
천여운의 몸에서 흉폭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검은 진원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성과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오령의 영력이 하나로 합쳐져 대자연의 묘리를 깨닫고 마도를 이룬 천여운의 힘은 영물의 한계조차 넘어섰다.
-슈우우우욱!
격이 다른 기운에 두려움을 느낀 것처럼 마성을 내뿜던 검은 진원이 점차 진정되어갔다.
이윽고 강하게 발하던 검은 빛이 줄어들었다.
마성이 완전히 제압된 것이다.
“오오오!”
“마성을 저리도 쉽게!”
주위에 있던 마교인들이 감탄을 금치 못했다.
교주인 천여운은 격이 달랐다.
-쩌저저저적!
천여운이 검은 진원을 얼려버렸다.
극성의 오한빙천공의 얼음에 가뒀기 때문에 더 이상 마성이 방출되지 않았다.
이제 남은 것은 마성이 사로잡힌 고왕흘과 호상화였다.
“크으으으으!”
천여운이 내뿜는 흉폭한 기운을 느꼈는지, 두 사람은 마성에 홀렸음에도 불구하고 두려움을 감추지 못했다.
바닥에서 몸을 일으키지 못하는 고왕흘의 기맥에 손을 갖다 댄 천여운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교주님. 이게 어찌된 일이죠?”
사마착의 질문에 천여운이 말했다.
“진원에 있던 마성의 기운이 내공을 잠식하고 있다.”
마치 천마기가 탐욕스럽게 다른 진기를 흡수하던 것과 같은 현상이었다.
호상화 역시도 이미 단전으로 마성의 기운이 침투했다.
“빨리 배출시켜야 하는 게 아닙니까?”
그것은 단순한 일이 아니었다.
“마성이 침투한 내공을 없애려 든다면 단전이 손상될 것이다.”
그리 된다면 무인으로써 치명적이게 된다.
“그, 그렇다고 이대로 내버려둔다면 고왕흘이나 호상화가 마성에 사로잡혀서 사악한 마인(魔人)이라도 되는 게 아닙니까?”
사마착의 그 말에 천여운의 눈빛이 묘해졌다.
의아해하는데 이내 천여운이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거 좋은 방법이군.”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