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33)
# 12장 천마 조사의 심득(2) #
‘단순한 식만으로 초식을 파훼하다니?’
너무도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천여운은 경계심을 떠나서 내심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 동안 증강현실을 통해서 대련을 하면서 안목이 넓어진 그였다.
여러 번의 대결도 아닌 처음 보는 초식을 단순한 식만으로 파훼한다는 것은 압도적인 실력 차이가 없다면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젠장!’
당사자인 하일명은 더욱 어이가 없었다.
제대로 된 자세도 갖추지 않은 상대에게 제압당했으니 말이다.
그런 그를 향해 도마종의 소교주 후보자인 천유찬이 빙그레 웃는 얼굴로 말했다.
“오른쪽 발을 내딛고 나서 말이야. 오른팔이 살짝 경직되고 검지를 내지를 때 균형이 어긋나는 것 같았는데, 오른쪽 갈비뼈 쪽에 부상이라도 입었나봐?”
하일명의 눈이 큼지막하게 커졌다.
단순히 초식을 펼치는 동작을 보고서 부상을 알아냈다.
‘이놈…..절대 생도 수준이 아니야.’
절대 운으로 벌어진 일이 아니었다.
정상적인 몸 상태로도 천유찬을 이길 수 있을지 의문이 들 만큼 격차가 느껴졌다.
심각해 하는 하일명과 달리 천유찬은 여전히 웃는 얼굴이었다.
“어때? 양보해줄 수 있어?”
“칫.”
하일명이 인상을 찡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존심을 살릴 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그러자 하일명의 오른쪽 목에 대고 있던 손날을 다시 회수하는 천유찬이었다.
“잠깐이면 되니까. 여기서 기다려.”
“……됐다. 나는 숙소로 가볼 거니까 잠깐이든 말든 네 맘대로 해라.”
그 말과 함께 하일명은 인상을 굳히며 경공을 펼쳐서 숙소 방향 쪽으로 가버렸다.
자존심에 금이 갔기 때문에 더 이상 천여운을 상대하고픈 마음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에고. 급한 녀석이네. 하하하핫.”
멋쩍었는지 천유찬이 머리를 긁적이면서 천여운에게로 다가왔다.
천여운의 눈빛이 경계심으로 가득해졌다.
복마종의 소교주 후보자인 천무금 이외에 직접적으로 자신에게 접촉해온 여섯 종파의 후보자는 천유찬이 처음이었다.
‘사전에 나를 제압하려는 건가?’
만약에 자신이 성장하기 전에 미리 밟으려고 하는 목적이라면 꽤나 힘겨운 싸움을 해야 할 지도 몰랐다.
방금 전에 하일명을 제압하는 모습에서 아직은 순수한 실력만으로 상대할 수 없다는 것을 여실히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긴장감으로 가득 찬 천여운이 속으로 나노에게 명했다.
‘나노, 증강현실 개안. 전투 튜토리얼 모드. 설정 접무도법.’
[사용자의 시각 정보에 증강현실(增强現實) 개안(開眼) 가동.전투 튜토리얼(tutorial)을 통해 행동지시 모드를 가동합니다. 설정 무공 접무도법.]
천여운의 동공이 빠르게 흔들리며 흰 빛이 스쳐지나가며 증강현실이 개안되었다.
흰 빛의 입자가 선을 그리며 눈앞으로 걸어오는 천유찬의 정보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만반의 준비를 마치는 천여운에게 천유찬이 양손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워워워, 왜 그렇게 경계심이 가득해?”
‘응?’
적의가 없는 말투였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여섯 종파 중의 하나인 도마종의 후보자인 천유찬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자 천여운은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이 되었다.
“하긴, 네 입장에서는 당연한 건가?”
천유찬은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도대체 무슨 의도인지 알 수가 없기에 천여운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내게 무슨 용무인거지?”
“용무라기보다는 흠…..우리 같은 아버지를 둔 배다른 형제끼리의 첫 대면을 위함이랄까?”
그 말과 함께 천유찬이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어보였다.
이에 충격을 받은 것은 천여운이었다.
지금까지 여섯 종파의 사람들에게 천한 핏줄의 소생이라며 온갖 멸시를 당해왔는데, 처음 만나는 천유찬이 자신을 배다른 형제라고 표현한 것이었다.
‘…….지금 나를 놀리는 건가?’
천여운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의심될 수밖에 없었다.
천유찬은 그런 천여운을 향해서 여전히 웃는 얼굴로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반갑다. 형제.”
형제라는 표현에 천여운의 눈빛이 오히려 경계심에서 오히려 노기가 서렸다.
어떤 식으로 웃으면서 포장을 해도 좋게 들리지 않았다.
“으음, 너무 미움 받는 건가?”
그런 천여운의 눈빛을 읽었는지 천유찬이 포권을 풀고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 동안 여섯 종파에서 그에게 어떠한 짓을 해왔는지 알기에 이해할 수 없지 않았다.
“뭐 네가 이런 태도를 보이는 게 당연하지.”
“…..내게서 좋은 태도라도 바란 거냐?”
“아니. 아니야. 단지 우리 사이에 첫 만남은 좋게 해두고 싶었거든. 왜냐하면 나는 네가 좋아졌으니까.”
“뭐?”
천여운이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이젠 하다하다 못해 좋아한다는 말을 하니 어이가 없었다.
그런 천여운의 반응이 재밌기라도 한지 천유찬이 히죽 웃으면서 말했다.
“우린 같은 도(刀)의 길을 걷고 있잖아.”
“……고작 그런 이유로 내가 좋아졌다는 거냐?”
“당연한 거 아니야? 나는 네가 음마종의 그 아이의 팔을 도법으로 베었을 때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는데.”
아직도 그 모습이 잊혀 지지 않는다며 주절주절 말을 하는 천유찬이었다.
모두가 천여운이 펼친 고절한 도초에 경계심을 가졌을 때, 그는 모두와는 전혀 상반된 생각을 했던 모양이었다.
“후후후, 네 열렬한 지지자가 되었다구. 형제.”
“부담스럽게 계속 형제라고 지껄이지 말고 진짜 목적을 말해라.”
여전히 경계심이 가득 찬 천여운의 태도에 천유찬이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에휴, 어쩔 수 없지. 뭐…..친해지는 거야 좀 더 시간이 지나야 할 것 같으니 본론만 말할게.”
‘역시 목적이 있었구나.’
어머니인 화 부인의 임종 때조차도 내공을 익히지 마라는 말도 안 되는 맹약까지 하게 만든 여섯 종파였다.
지금에 와서 어떤 말을 한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두 말하지 않을게. 형제. 도마종으로 들어와라.”
천유찬의 뜻밖의 제의에 천여운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놀랐어? 하긴 놀랄 만도 하지.”
“진심으로 하는 소리냐?”
“당연한 거 아니야. 내가 비급서재 밖에서부터 지금까지 기다리면서 하는 소리인데. 농담 같았어?”
그러면서 천유찬이 손사래를 쳤다.
그는 진심으로 천여운에게 도마종으로 들어오라고 제의하는 것이었다.
천유찬은 계속 해서 말을 이어갔다.
“다른 녀석들은 모르겠는데, 나는 너를 적으로 생각하지 않아. 네가 도마종으로 들어와서 내 옆을 지켰으면 좋겠어.”
‘이 자식……’
그제야 천여운은 그가 무슨 의도로 제의를 한 건지 이해할 수 있었다.
천유찬은 그에게 소교주 쟁탈전에 빠지고 자신의 수하가 되라고 말을 하는 것이었다.
좋게 포장은 했지만 분명 의미는 같았다.
“내게 소교주 쟁탈전을 포기하라고 하는 거냐?”
“아아! 그게 그렇게 들렸어? 하하하하핫.”
무안하다는 듯이 웃어대던 천유찬이 소리 내서 웃던 것을 멈추고 조금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겐 무리야.”
“……그게 무슨 의미지?”
“들리는 그대로야. 네가 도의 길을 걷는다면 필시 나와 부딪칠 텐데. 네게는 가능성이 없어. 하지만 나는 네 열렬한 지지가 되었거든. 우리가 같은 방향으로 나란히 걷는다면 네 앞길은 탄탄대로를 걷게 될 거야. 멋지지 않아?”
손바닥을 이리저리 휘두르며 상상해보라고 말하는 천유찬의 광대 같은 행동에 천여운은 그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확실하게 짐작할 수 있었다.
호적수는커녕 잘해봐야 수하 정도 수준으로 생각하는 것이었다.
‘아직까지 나를 적수로도 생각하지 않는다는 건가.’
모두의 앞에서 자신의 향상된 실력을 보여줬음에도 불구하고 천유찬은 그의 그릇을 낮게 평가했다.
그것이 천여운의 마음속에 지금까지보다도 더 큰 불씨를 지폈다.
여기서 굴복하느냐 아니면 강한 의지를 보이느냐가 앞으로의 좌우를 판가름하는 갈림길일 것이다.
“거절한다.”
“뭐?”
천여운의 단호한 한 마디는 신나서 주절주절 거리던 천유찬의 행동을 멈추게 만들었다.
“네 그릇으로 나를 담기에는 무리다.”
“응?”
“이번에는 반대로 내가 제안하겠다.”
“네가 제안하겠다고?”
천여운의 당돌한 말투에 천유찬이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내 앞 길을 막지마라. 그렇다면 목숨만은 부지하게 해주마.”
그 순간 천유찬의 얼굴에서 지금까지 보였던 여유로움과 경박함, 그리고 웃음기가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방금 전과 같은 사람이라고 믿기 힘들만큼 무섭게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 모습이 마치 흉신악살과도 같았다.
그러자 천여운의 시야로 흰빛이 빠르게 선을 그리며 천유찬의 오른팔과 손 위로 흰 빛으로 된 숫자가 생겨나며 빠르게 상승하기 시작했다.
나노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울렸다.
[적의 오른팔로 빠르게 강한 에너지가 집중되고 있습니다.왼쪽으로 반보 회피해서 접무도법의 제 이 초식 회원접경(回圓蝶警)을 펼치십시오.]
천유찬의 오른팔이 살짝 움직였다.
이에 천여운은 나노의 말대로 재빨리 좌측으로 반보 발을 움직였다.
그 순간 흉신악살과도 같던 천유찬이 아까 전과 같은 얼굴로 돌아와서는 미친 듯이 웃어대기 시작했다.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핫.”
[상대의 공격 의사가 중지되었습니다.오른팔에 집중되던 강한 에너지가 하락하고 있습니다.]
머릿속을 울리는 나노의 말대로 천유찬의 팔의 허공에 떠있던 숫자의 수치가 하락하고 있었다.
한참을 웃어대던 천유찬이 이윽고 멈추더니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조금 화가 나긴 했는데, 생각해보니 웃겼어. 네 앞길을 막지 마라니? 조금은 멋지더라. 정말로.”
말투는 평소와 같은 경박함이 담겨 있었지만 눈빛은 아니었다.
아까 전과 같은 호의는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천유찬은 더 이상 흥미가 없어졌다는 듯이 한숨을 푹 내쉬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몇 발자국 앞으로 걸어가더니, 잠시 멈춰 서서 말했다.
“네가 나와 같은 길을 걷게 된다면 분명 만나게 되겠지. 하지만 그 정도 수준으로 내 목숨을 거론하기에는 아직 멀었어.”
[적의 오른손에 강한 에너지가 집중되고 있습니다.사용자를 향한 공격의사는 없습니다.]
머릿속을 울리는 나노의 목소리가 끝남과 동시에 천유찬이 오른팔을 하늘로 쭉 뻗더니 가볍게 바닥을 향해 휘둘렀다.
-촤아아아악!
뭔가를 가르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파란 불꽃이 튀기며 선명한 선이 생겨났다.
천여운의 시선이 불꽃이 튀는 선을 따라서 선명한 빛이 휘감고 있는 천유찬의 손날로 향했다.
‘도……기?’
천유찬의 손을 휘감고 있는 빛은 분명 도의 형태를 갖춘 도기(刀氣)였다.
절정의 경지에 무공의 고수만이 기를 유형화할 수 있게 된다.
더군다나 도가 아닌 맨손으로 도의 형태인 도기를 발산했다는 것은 완숙한 절정의 경지에 이르렀음을 의미했다.
‘격이 다르다고 보여주는 거냐?’
그것은 일종의 무력 시위였다.
마도관에 입관한지 고작 스물하루 밖에 되지 않았지만, 시작부터 이미 모든 생도들의 정점에 군림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천유찬이었다.
현마종의 소교주 후보자인 천무연과 소교주의 자리를 다투고 있다는 말을 그저 소문만이 아니었다.
“그럼 나중에 보자고.”
천유찬은 도기를 거두고는 유유히 사라져버렸다.
덩그러니 그 자리에 남은 천여운의 움켜쥔 주먹에는 평소보다도 강한 힘이 들어갔다.
복마종의 소교주 후보인 천무금을 꺾고, 천원려를 마도관에서 방출시킨 뒤로 그들과 같은 선상을 밟았다고 생각했지만 아직 갈 길이 멀었다.
‘조급해 하지마라. 천여운. 그들을 따라 잡는 것 따위가 아니라 그들의 위에 군림해야 한다.’
소년은 그렇게 다시 한 번 굳은 결의를 다졌다.
한편 압도적인 무력 시위를 통해 자존심을 지킨 천유찬의 표정은 그리 밝지만은 않았다.
호탕하게 웃으면서 분노를 삭였지만 그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내 공격을 미리 읽었어.’
도기를 일으켜서 단 번에 천여운의 오른팔을 잘라버리려 했다.
자신의 것이 될 수 없다면 평생 도를 들지 못하게 만들어버리려 했으나, 공력을 끌어올려서 도기를 일으키기도 전에 천여운이 자신의 궤적에서 벗어났다.
‘훗, 그냥 어중이떠중이들과는 다르다 이거지.’
원래의 목적과 다르게 오히려 경각심을 가지고 돌아가게 되는 천유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