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36)
# 13장 열한 명의 인재를 모으라(1) #
시조에 숨겨진 비밀을 알아낸 천여운은 들뜬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천마 조사의 심득인 절세검초의 일 초식의 기수식을 취했다.
이번에는 운기 경로에 내공을 순환시키면서 초식을 펼쳐보았다.
-촤촤촤촤촥!
천여운의 검지가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경쾌하게 공간을 울렸다.
운기 경로를 통해서 내공이 순환하면서 검 초식을 펼치자 어색하게 이어졌던 식들이 힘을 되찾으며 부드럽게 동작이 연결되었다.
찰나의 순간에 천여운이 펼친 절세검초가 끝이 났다.
놀라운 것은 입체영상으로 보았을 때는 시각적인 전율만이 남아있었으나, 초식을 전부 펼쳤을 때 천여운의 검지가 그렸던 궤적에 미묘한 예기(銳氣)의 여운이 남았다.
‘날카롭다.’
방 한 가운데의 허공에서 느껴지는 예기에 천여운이 놀라워했다.
이것은 검법에 있어서 최고의 경지에 이른 고수가 남긴 심득이었기에 수중무검 심중유검(手中無劍 心中有劍)이라는 지고의 묘리를 담고 있었다.
‘검초를 더 연마해야 겠구나.’
아직까지는 천여운의 깨달음과 경지가 한참은 모자라기에 그것까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나노의 도움을 통해서 검흔을 남긴 천마조사와 동일한 수준으로 검초를 펼칠 수 있게 된 천여운이었다.
“아아아.”
드디어 검 초식을 완성한 천여운은 감격을 금치 못했다.
천마 조사의 심득을 얻게 된 것이 훗날 어떤 영향을 가져올지 짐작할 수 없지만, 무인으로서 자신이 이런 절세초식을 익히게 된 것에는 큰 행운이라 여겼다.
첫 번째 초식을 완성했으니 두 번째 초식을 완성할 차례였다.
‘나노, 저장한 데이터에서 비급 서재의 이 층에 있던 청옥석 비석의 앞면을 검색해줘.’
[알겠습니다.]두 번째 시조를 검색하는 것이 살짝 불안했다.
이 층에 있던 비석은 뒷면은 자세하게 보았지만, 앞면은 책장을 돌아다닐 때 스쳐지나갈 때만 몇 번 얼핏 본 기억밖에 없었다.
그러나 나노의 시각 정보 저장 능력은 놀라웠다.
[저장된 프로그램 데이터에서 이 층 청옥석 비석에 새겨진 앞면을 검색했습니다.]‘휴우.’
다행이었다.
정말 나노가 없었다면 이런 기연을 쉽게 놓칠 뻔했다.
‘시조에다가 운기경로를 남겨놓다니 천마 조사님은 정말…..’
악취미를 가졌다고 할 수 있었다.
누구도 자신의 심득을 쉽게 얻을 수 없도록 시조를 통해 운기 경로를 남겼으니 말이다.
하지만 만약에 뒷면을 가득히 메운 검흔들이 없었고 서재를 시간제한이 없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다면, 누군가는 운이 좋게 절세초식의 비밀을 알아냈을 수도 있었기에 지금의 기연은 오롯이 천여운 만의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천여운은 일 층의 청옥석 비석과 마찬가지로 입체영상으로 시조를 구현하게 하여 운기 경로를 알아냈다.
“한 번 펼쳐볼까?”
두 번째 절세초식의 운기 경로로 내공을 순환하며 검초를 펼쳐보았다.
첫 번째 초식보다 훨씬 복잡한 식을 가진 두 번째 초식이 화려한 궤적을 그리며 허공을 가르고 찔렀다.
-촤촤촤촤촥!
운기 경로로 내공을 순환하기 전만 하더라도 이런 느낌을 받을 수가 없었다.
초식을 펼치는 순간 천여운은 마치 자신이 검(劍)과 하나가 되어 궤적을 그리는 것만 같았다.
찰나의 순간에 초식의 식은 끝이 났지만 그 여운은 오래갔다.
일 초식 때와 마찬가지로 허공으로 날카로운 예기가 남아 연공실 전체를 휘감았다.
깨달음과 무공의 경지만 갖춰진다면 그 예기는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더 날카로워지리라.
‘조사님의 심득을 얻게 된 것을 감사히 여기자.’
이렇게 두 절세초식을 완벽하게 익혀낸 천여운은 천마 조사의 은덕에 감사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전반부의 두 초식도 이렇게 강하다면 후반부는 대체 어떨까?’
절세초식의 전반부인 두 초식을 익히고 나니, 후반부의 초식들도 궁금해졌다.
그러나 지금 당장에 남은 초식들을 익힐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남은 초식들을 익히기 위해서는 마도관의 육 단계 시험까지 전부 통과해야만 오층 비급 서재까지 열람할 수 있었다.
‘반드시 육 단계를 통과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구나.’
천마 조사가 남긴 모든 심득을 얻게 된다면 천여운은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무위를 얻게 될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증이 있었지만 그것은 지금 당장에 풀 수 없기에 머릿속으로 묻어둬야만 했다.
‘조사님이 남기신 절세초식은 운기 경로가 있어야만 제대로 펼칠 수 있었는데, 이 대단한 초식을 파훼한 초식은 어째서 운기 경로가 없이도 가능할까?’
그 이유를 깨닫기에는 아직 천여운의 무위로는 한계가 있었다.
초식을 익히지 못한 것은 아니었기에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자고 다짐하는 천여운이었다.
이렇게 네 초식을 얻게 된 천여운은 나노에게 시간을 물었다.
‘지금 시간이 어느 정도 되었어?’
[유시(酉時) 초입니다.]‘벌써 그렇게 되었나?’
벌써 저녁 무렵이 되었다.
점심식사까지 거르고 훈련을 해서 그런지 배가 많이 고파졌다.
저녁식사까지 거르기에는 체력적으로나 심력 면으로 지쳐있던 천여운은 식사를 위해 개인 연공실을 나왔다.
어두운 지하층은 사용하는 생도들이 아무도 없는지 아무런 기척도,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러다 지하 연공실은 나만 사용하는 거 아냐?’
농담으로 생각한 것이었지만 천여운은 삼 단계 시험이 끝나고부터는 마지막까지 지하 연무실을 혼자 사용하게 되었다.
조별 시험이 끝나면서 한 가지 좋은 점이 더 있었다.
스물하루 동안은 조별 시험을 위해 모든 생도들이 같이 식사를 했지만, 이제는 정해진 시간에 식당으로 가서 개별적으로 식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아.’
맛있는 냄새가 식당 바깥의 연무장까지 퍼져 나와 천여운의 코를 자극했다.
식당으로 들어가 보니, 평소와 달리 오늘은 특식이 나왔다.
‘면이구나!’
오늘 나온 음식은 면 음식이었다.
먼저 와서 줄을 서고 있는 생도들이 국물을 담는 넓은 그릇을 집어 들고 배식하는 숙수들에게 면과 국물을 받고 있었다.
천여운도 따라서 줄을 서서 면과 소고기 육수를 받았다.
항상 장 호위가 해주는 음식을 먹다보니 면 음식은 거의 먹어본 적이 없는 그였다.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니 육수를 부어주던 배불뚝이 숙수가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우육납면이라네.”
“우육납면이요?”
“소를 해체해서 통째로 뼈와 고기를 푹 고아서 만든 육수로 만든 면이지. 하긴 난주에서는 흔하지만 여기서는 보기 힘들지.”
쇠고기 뼈와 고기를 푹 고아서 만든 면 음식의 이름은 우육납면이었다.
우육납면은 회족의 요리로, 감숙성의 중부인 황하강 유역인 난주시에서는 흔히 먹을 수 있는 면 요리였다.
마도관의 식당에는 중원 각지에서 초빙된 숙수들이 있기에 때때로 여러 지방의 특산 음식들을 먹어볼 기회들이 많았다.
“고명은 자리에 있으니 간은 그걸로 맞추게. 다음!”
배불뚝이 숙수의 말대로 긴 식탁 위로 붉은 양념과 야채 고명들이 올려 있었고, 배고픈 사람들은 더 먹으라고 마른 면 사리까지 수북이 쌓여있었다.
-후루루룩!
여기저기서 면을 후루룩 빨아들이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천여운도 젓가락을 가져가 면을 떠서 후루룩 빨아들이며 먹어보았다.
진한 소고기 육즙이 면에 묻어서 입안과 혀를 적시며 면의 풍미를 더했다.
‘맛있다.’
처음 먹어보는 면 요리의 매력에 빠진 천여운이 허겁지겁 면을 흡수하듯이 먹기 시작했다.
면 사리를 추가해가며 식사를 하던 와중에 누군가 그의 옆에 앉았다.
모든 생도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먹는 식탁이었기에 별 다른 신경을 쓰지 않고 식사에 열중하는데, 옆에 앉은 누군가가 천여운에게 말을 걸었다.
“팔 조의 새로운 조장, 칠 번 생도 맞으시죠?”
“음?”
왼쪽 가슴 쪽에 달려있는 검은 명찰을 본다면 알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팔 조 조장이라는 것을 물어본다는 것은 무언가 용무가 있다는 의미였다.
천여운이 의아한 눈빛으로 옆을 바라보았다.
오똑한 콧날에 날카로운 턱선을 가진 잘생긴 청년이었다.
흠이 있다면,
‘실 눈?’
잘생긴 외모의 정점이 될 수 있는 눈이 거의 감은 것처럼 보일 만큼 가늘고 작았다.
안타까운 흠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그 눈이 잘 어울리긴 했다.
“운이 좋군요. 찾아뵈려고 했었는데, 마침 여기서 뵙게 되다니.”
공손한 말투였지만 그 태도가 수상했다.
“나에 대해서 물어보는 거라면 먼저 자신을 밝히는 게 예의가 아닐까?”
천여운의 질문에 실눈의 생도가 입가에 미소를 띠며 답했다.
“아아, 그렇군요. 제 소개가 늦었습니다. 저는 십구 조의 이백 번 생도인 염파라고 합니다.”
“천여운이다.”
경계심이 담긴 천여운의 목소리에 실눈의 생도 염파가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초면부터 이런 말씀을 드리긴 뭣하지만 저와 겨뤄주실 수 있겠습니까?”
뜬금없는 염파의 말에 천여운이 눈살을 찌푸렸다.
식사 도중에 대련신청을 받았으니 말이다.
“무슨 소리지?”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대련을 신청하는 겁니다.”
“…..내게 원한이라도 있나?”
여섯 종파 이외에도 멸시를 담아서 바라보던 이들이 종종 있기는 했지만, 특별히 다른 종파나 생도들에게 원한을 살 만한 짓을 했던 기억은 없었다.
물론 본인은 모르겠지만 이 층 서재에서 대담한 민폐를 저지르긴 했다.
“아닙니다. 원한 같은 게 있을 리가요.”
“그럼 왜 내게 겨루자고 하는 거지?”
“흐음, 일종의 제 나름대로의 자격을 확인하기 위해서라고 할까요?”
“자격?”
알 수 없는 염파의 말에 천여운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것이 염파 자신을 의미하는 자격인지 아니면 천여운 본인의 자격을 의미하는 것인지 두루뭉술했다.
염파와 겨룬다고 해도 아무런 득이 될 것이 없기에 천여운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거절한다.”
“……예상은 했지만 바로 거절하시네요.”
“알면서 왜 물은 거지?”
거절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염파는 실망한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천여운이 솔깃할 만한 제의를 꺼낸다.
“그렇다면 제가 준비한 대가를 먼저 말씀 드리는 게 좋겠네요. 저와 대련을 해서 이기신다면 다음 삼 단계 시험에 관한 좋은 정보와 선물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삼 단계 시험을 거론할 때는 다른 사람이 듣는 것을 우려했는지 속삭이듯이 말했다.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천여운의 눈에 흥미가 감돌았다.
하지만 대놓고 내색을 하진 않았다.
“일개 생도인 네가 어떻게 삼 단계 시험에 대한 정보를 준다는 거지?”
“흠, 제 부탁을 들어주시기도 전에 밑천부터 밝히라고 하시는 것 같긴 하지만, 정보의 신뢰성을 위해 말씀은 드려야 겠네요. 제 아버님도 마도관의 사 단계까지 통과하셨던 적이 있기 때문에 사 단계 시험까지는 알고 있습니다.”
‘상위 종파인가?’
마도관에 입학했던 전적이 있는데다가 사 단계 시험까지 통과했었다면 상위 종파 출신일 확률이 높았다.
장 호위가 마도관을 나오지 않았기에 시험에 대한 정보가 전무했던 천여운과 다르게 상위 종파 출신의 생도들은 그들의 부모를 통해서 시험에 대한 정보를 일부 귀띔 받았다.
하지만 이 같은 염파의 말에도 허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천여운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말했다.
“각 기수별로 시행되는 시험은 매번 바뀌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네 아버님이 통과했다고 해서 정보가 정확할 리는 없을 텐데.”
“……뭐, 그건 맞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삼 단계 시험까지는 일반 무가의 생도들도 포함되기 때문에 시험의 난이도나 방식은 조금 차이가 있을지는 몰라도, 그 성격은 비슷하게는 진행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 단계 시험까지도 거의 그랬고요.”
염파의 눈빛은 확신으로 차있었다.
그 모습에 천여운은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무슨 의도일까? 굳이 정보를 걸고서까지 나와 대련을 할 이유가 있을까? 아니면 나와 겨뤄도 이길 자신이 있다는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굳이 대련을 해서 손해볼 것은 없었다.
비록 대가에 있어서 이긴다는 전제가 걸려있었지만 상위 종파라고 해도 지지않을 자신이 있었다.
결국 천여운은 염파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좋다.”
“후후후,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난 그들은 인적이 드문 숙소 뒤편의 숲 쪽으로 향했다.
아무도 없는 수풀이 우거진 숲에 도착하자 이백 번 생도 염파의 눈빛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미 이 단계 시험에서 천여운이 음마종의 소교주 후보자인 천원려를 상대로 고절한 도법을 보여주었다.
검으로 도법을 펼쳤음에도 그런 고절한 초식을 펼친다는 것은 일류 고수임을 뜻했다.
하지만 염파 역시 쉽게 지지 않을 자신이 있기에 대련을 신청한 것이었다.
‘시험에서 보여줬던 것이 전부라면 실망스러울 겁니다.’
그렇지만 이 말은 도발이 될 수 있기에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다.
염파가 천여운과 간격을 벌린 후에 대치 상태가 되자 공손히 포권을 하며 말했다.
“파월도종의 염파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염파가 손날을 펴서 앞으로 뻗으며 기수식을 취했다.
천여운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뭔가 자신하고 있는 바가 있으니 대련을 신청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도법을 사용할 줄은 몰랐다.
천여운도 가볍게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천여운이다. 덤벼라.”
아무 종파에 속해있지 않기에 이름만 밝혔다.
염파가 평소의 웃음기를 지우며 진지한 눈빛으로 천여운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그 움직임은 천무금과 비교한다면 약간은 모자랐지만 쾌속하면서도 강한 기세를 가지고 있었다.
파월도종의 도법인 파월도법의 삼 초식인 호월도섬이었다.
-촤촤촤촥!
‘일류 고수의 실력이로구나.’
천여운은 염파가 펼치는 도법만으로 그 실력을 바로 유추할 수 있었다.
여타의 생도들보다 강한 조장 급의 무위를 지녔기에 천여운에게 자신감 있게 도전을 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천여운의 실력은 어제와는 판이하게 달라졌다.
천여운이 큰 움직임이 없이 가볍게 보법을 펼치며 염파가 펼치는 파월도법의 초식을 피해냈다.
‘대단하지만 그게 끝이 아닙니다!’
염파가 몸을 빙그르 회전하며 파월도법의 다음 초식을 펼치려 했다.
그 순간 빠르게 회전하는 염파의 손목을 천여운이 낚아챘다.
-꽉!
‘엇?’
당황한 염파의 두 눈이 커졌다.
도법을 펼치기 직전이었기에 팔목에 십성의 공력이 실려 있었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낚아챘다. 미처 대응하기도 전에 천여운이 염파를 가벼운 주머니 자루를 휘두르듯이 들어 올려 내리찍어버렸다.
-쾅!
“쿠웩!”
그 위력이 어찌나 강했던지 내리꽂힌 염파의 등 뒤 쪽의 땅바닥 움푹 파였다.
염파는 고통도 잊은 채,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적어도 수십 초식 이상의 대결을 예상했던 것과 다르게 한 초식도 아닌, 고작 한 수만에 결판이 나고 말았다.
‘어, 어제의 실력이 아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