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4)
장 누가 책을 외우라 했던가(2) #
십만대산에 자리한 마교(魔敎).
무(武)와 마도를 숭상하는 마교 내에는 수많은 무공 종파들이 존재하지만 그 중에서도 마교의 근간을 이루는 여섯 종파가 있다.
현마(玄魔), 검마(劍魔), 복마(伏魔), 독마(毒魔), 도마(刀魔), 음마(音魔)로 이루어진 여섯 종파는 대대로 교주를 배출한 외가 종파였다.
맹약에 의거해 교주는 여섯 종파의 규수를 처로 맞이해 그 후손을 낳게 되는데, 일정 나이가 될 때까지 외가에서 자라나게 된다.
외가에서 자라온 여섯 후계자들은 십 년마다 한 번씩 열리는 후기지수 및 고수를 육성하는 마도관에 입문하게 된다.
마도관은 마교에서 세대별로 새로운 고수를 배출하기 위해 만든 연무관이다.
평소에 마도관의 연무관은 오 년 주기로 상중하급 무사육성을 하게 되는데, 십 년마다 이루어지는 이 시기에는 마도관과 맞물려서 같이 진행하게 된다.
마도관은 마교 내에 있는 뛰어난 고수들을 교두로 배치하여 입문 생도들의 무공을 한계까지 끌어올리는 것이 목적이다.
이것은 교내에서 공식적으로 드러난 목적이었다.
십 년의 주기로 행해지는 마도관이 유독 가장 격렬한 경쟁이 일어나는 시기가 있다.
그것은 소교주 후보들이 참여하게 되는 시기의 마도관이었다.
이 시기의 마도관을 일컬어 마교인들은 소교주 쟁탈전이라고 불렀다.
이때의 마도관으로 입문한 여섯 종파의 소교주 후보자들이 서로 대립하면서 승부를 겨루고, 자신들만의 세력을 구축해나가는 발판을 만들기 때문이었다.
마도관에는 여섯 종파 외에도 마교 내에 있는 수많은 종파들과 무가들이 참여하기 때문에 소교주 후계자들은 여기서 자신의 종파 외의 조력자들을 키워나가게 된다
오랜 세월 동안 이렇게 이뤄진 소교주 쟁탈전에서 승리한 자는 소교주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슥슥!
목욕을 마친 천여운이 물기를 닦으며 동경(銅鏡)에 비친 자신의 나체를 바라보았다.
잦은 암살 시도로 인해서 집밖으로 제대로 나갈 수 없었던 천여운은 제대로 된 무공조차 배우지 못하고 집안에서 팔굽혀펴기와 같은 기본적인 운동만 해왔다.
그런데 지금 그의 육신을 보면 상당한 외공 훈련이라도 한 것처럼 균형 잡힌 근육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나노 머신. 이게 말이 되는 거야?’
[주인님의 육신을 재구성한 것입니다.]‘재구성?’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것은 과학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지만, 기존의 육신과 근맥을 재구성해서 다듬은 것이기에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어려운 말만 골라서 잘 하네.’
무공을 제대로 익히진 못했어도 학문을 익히는 것을 게을리 하진 않았다.
그런데도 나노 머신이 그에게 하는 말들은 일반적인 학문에서는 배울 수 없었던 어렵고 다양한 언어 표현을 자랑했다.
옷을 입은 천여운이 말끔해진 모습으로 욕실을 나가 숙소 내에 있는 서재로 향했다.
‘너를 부를 때마다 나노 머신이라고 하니까 발음도 하기 힘들고 좀 긴데, 다른 이름은 없어?’
[주인님께서 원하시는 호칭을 지어서 불러주셔도 됩니다.]‘…..특별히 생각나는 건 없는데 그냥 나노라고 할까?’
생각해보니 틀린 말도 아니었다.
나노를 한자로 바꾸면 말할 나(喇)와 일할 노(勞)인데, 그가 자신의 몸에서 하는 것이라고는 말을 하고 일을 하는 것이니 가장 어울리는 호칭 같았다.
[나노라는 호칭으로 등록하겠습니다.]‘내가 이름도 지어줬는데 뭐 감사하다는 말도 없나?’
뒷글자만 떼고 앞의 글자로 이름을 지어놓고 감사를 바라는 천여운이다.
하지만 인간이 아닌 나노 머신이 그런 농담을 이해할 리가 없기에 기계적으로 답변했다.
[감사합니다.]‘……그래.’
이름을 얻게 된 나노 머신, 나노는 희노애락의 감정이 없어서 대화를 나눌 때마다 그가 인간이 아닌 기계라는 것을 점점 익숙해지는 천여운이었다.
그의 전용 서재에는 그리 많은 책들이 있지 않았다.
대다수가 학문에 관련된 것들이었고 무공 비서들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유일한 관련 서적은 혈도(穴道)에 관한 서적과 삼재심법(三才心法)의 운기법을 적어놓은 서적 정도만 있는데, 중원 무림인들 모두가 알고 있는 기본 토납법에 불과했다.
삼재심법은 도가에도 능통한 귀곡자가 창안한 가장 기초적인 도가 토납법으로 이 심법을 평생 동안 연마해도 쌓을 수 있는 내공은 몇 년에 불과했다.
애초부터 무공 연마보다는 심신 단련을 위해 만들어진 토납법에 불과하니 삼재심법으로는 삼류고수에 오르기도 힘들었다.
‘빌어먹을 놈들.’
이것도 전부 여섯 종파의 부인들의 농간이기도 했다.
여섯 종파 외의 여시종의 태생인 천여운에게도 소교주 후보로써의 자격이 있기에 그녀들에게 있어서 더욱 눈에 가시와도 같았다.
하지만 비록 태생이 그렇다고 하여도 천여운 역시도 교주의 피를 이어받았기 때문에 대놓고 해코지를 할 수 없었던 그녀들은 마도관에 입문하여 후계자 쟁탈전이 있기까지를 기다려야만 했다.
하지만 그 십 년이라는 세월을 여섯 종파의 부인들이 마냥 기다릴 리가 만무했다.
여섯 종파의 부인들은 음모를 꾸며 미독으로 죽어가는 천여운의 모친 화 부인 앞에서 그가 마도관으로 입관하기 전까지 무공을 익히지 않겠다는 맹약을 맺게 만들었다.
그 덕분에 천여운은 열다섯의 나이가 되도록 삼재심법 외에는 어떠한 것도 익힐 수가 없었다.
이것도 교주가 몰래 사람을 보내서 가져다 놓은 것이었다.
열다섯이 되도록 기본 토납법이라도 익히지 못한다면 근맥과 혈맥이 전부 굳어져서 마도관에 입문해도 어떠한 내공심법도 익힐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천여운의 숙소를 수시로 감시하는 여섯 종파에서도 삼재심법 만큼은 별달리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기에 그냥 내버려두었다.
‘자 이제 한 번 해볼까.’
천여운이 서재의 책장에서 혈도를 정리한 서적을 꺼내었다.
‘어떻게 하면 되는데?’
[책을 정면으로 보시면서 한 장씩 해서 끝장까지 넘겨주시기 바랍니다.]‘그냥 훑어보기만 하면 되는 거야?’
[네. 시작해 주십시오.]주객이 전도한 느낌이었지만 천여운은 미덥지 못한 눈빛으로 혈도 관련 서적의 책장을 하나씩 넘겼다.
읽지도 않고 넘기기만 하니 금방 마지막 장까지 왔다.
그런데 여기서 천여운은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의 동공의 초점이 굉장히 빠른 속도로 흔들리고 있었다.
‘다 넘겼는데?’
[혈도(穴道) 서적의 내용 스캔을 완료하였습니다.사용자의 뇌로 전이하려고 합니다.
승인하시겠습니까?]
‘스캔? 아! 내용을 복제했다는 말이지?’
[그렇습니다. 그럼 전이를 승인하시겠습니까?]‘승인한다.’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아까 전, 숙소에서 나노 머신 사용설명서를 전이 받았을 때와 같은 느낌이 엄습해왔다.
-파칙!
머리속이 전격이 튀는 것처럼 따끔거리기 시작하더니 천여운의 머릿속에 영상이 새겨지듯 정보가 물밀 듯이 들어왔다.
순간 어지러움을 느낀 천여운이 자신도 모르게 서재의 책상의 귀퉁이를 붙잡았다.
아까 전만큼은 아니었지만 여전히 어지러웠다.
[스캔 내용 전이가 완료되었습니다.]“하아…하아…”
[금방 적응하실 겁니다.]‘혹시 걱정한 거냐?’
기계인 나노가 걱정이라는 감정을 알 리가 만무했다.
그래도 나노의 말대로 아까 전에 전이를 받았을 때보다도 금방 어지러움이 가셨다.
‘이제 끝난 거야?’
[사용 설명서 전이를 받으셨을 때처럼 관련 정보를 생각하듯이 시도하시면 됩니다.]나노의 말대로 천여운은 혈도에 관한 생각을 시도해보았다.
그 순간 놀랍게도 그의 머릿속에 읽지도 않았던 혈도에 관한 정보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혈도는 인체를 흐르는 경락과 락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지점으로 혈(穴)이라고도 부른다. 대표적으로 점혈(點穴)과 극혈(郄穴)이 있다. 점혈은 손가락으로 찔렀을 때 일시적으로 마비가 된다고 하여, 마혈(痲穴)이라고도…..말도 안 돼! 하하?’
믿기 힘들었다.
읽지도 않은 서적의 내용을 통째로 머릿속에 집어넣은 것이었다.
그냥 단순히 전이된 것이 아니라 그 내용 자체가 완전히 이해가 될 정도였다.
[서적 내용 중에서 오류가 된 부분은 자동 수정해서 전이해드렸습니다.]‘오류? 틀린 부분이 있었어?’
[혈자리에 관한 오류 정보가 기재되어 있어서 프로그램에 내장되어 있는 정보를 바탕으로 수정하였습니다.]먼 미래에서 만들어진 나노 머신에는 수많은 정보가 저장되어 있다.
천여운이 그에게 시험 삼아서 스캔해서 전이하라고 한 혈도 서적 중에는 인체 해부가 완전하게 완료되지 않은 미래보다도 정확하지 않았기에 나노 머신이 임의로 수정을 한 것이었다.
“이거 완전 사기잖아. 하?”
천여운은 나노 머신이 잘못된 혈도 정보를 수정한 것보다도 너무 쉽게 서적 내용을 익힐 수 있게 만드는 전이 능력이 사기적이라고 생각했다.
학문을 수양하고 익히기 위해선 통째로 이해하고 외워야 했는데, 이런 방법이라면 고생해서 뭔가를 익힐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었다.
‘통째로 집어넣기만 하면 되잖아!’
직접 몸으로 나노 머신의 엄청난 능력을 체험하게 되자, 천여운의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지금 자신의 서재에는 아무 것도 없지만 마도관에 입관하게 되면 다르다.
마도관의 무고 서재에는 기존의 마교에 있는 모든 무공 관련된 서적들과 정파와 사파에서 약탈해온 무공 서적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입관했을 때 여섯 종파의 후계자들이 방해를 하겠지만 무고 서재에만 들어갈 수 있게 된다면 누구보다도 빠르게 무공 비서들을 외우고 습득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였다.
‘마도관에서 누구보다 빠르게 강해져서 살아남는다! 지금은 그걸 목표로 하자!’
지금 당장에 후계 서열 전쟁에서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제 막 시작 단계인 그와 다르게 그들은 입에 젖을 물 적부터 벌모세수 등을 비롯해 각종 상승무공을 익혀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빠르게 강해지는 것만이 천여운이 여섯 종파의 후계자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었다.
이때 천여운은 알지 못했다.
나노 머신의 진정한 능력은 단순히 정보 전이 능력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