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44)
# 15장 될 때까지 때려 박아주마(2) #
스무 명이나 되는 생도들이 천여운에게 볼일이 있는 것처럼 그를 에워싸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적대감이 아니었다.
무언가를 바라는 눈빛과 그런 표정들을 하고 있었다.
‘생도들이 이렇게 모여들다니…’
그들 중에서 네 명은 이십삼 번 생도인 허봉을 포함한 팔 조의 생도들이었다.
천여운의 수하가 된 그들은 자율적인 훈련 기간이 주어졌으니, 어떻게 할지 주군인 천여운의 의견을 듣기 위해서 남은 것이었다.
‘아!’
허봉은 본능적으로 이들이 왜 모여들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삼 단계 시험에서 조장의 자격을 얻은 천여운의 조원이 되기 위함인 듯 했다.
단 두 명만이 조장의 자격을 가졌으니 생도들의 주목을 받는 것은 당연했다.
눈치가 빠른 허봉이 세 명의 생도들에게 눈짓을 하자, 그들이 천여운의 주위를 호위하듯이 서서 다가오는 생도들과의 거리를 벌리게 했다.
‘뭐야?’
‘벌써 네 명이나 구했나?’
이 모습에 일부 생도들의 얼굴에서 실망감이 흘러나왔다.
허봉의 예상대로 그들은 천여운의 조원이 되기 위해 모여든 생도들이었다.
생도들은 허봉과 수하들의 호위에 천여운에게 네 명의 확정된 조원이 있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주군을 따르길 잘했다!’
허봉 이외에 마칠, 웅천, 호대명은 자신들의 선택이 옳았다는 사실을 새삼 뿌듯해졌다.
그들은 마교 내의 중소 종파들 중에서도 여섯 종파에 밉보여 크게 등용되지 못하는 종파 출신의 생도들이었다.
소년들은 꿈을 가졌지만 마교의 근간을 이루는 여섯 종파의 위세에 눌려 힘을 기르지도, 높은 곳으로 향할 수 없는 약소 종파의 숙명에 절망했었다.
그러나 그들은 천여운의 빠른 성장을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그와 함께 걸어가면 숙명을 부술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어쩌면…..그가 바꿀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아무 힘도 없고 멸시를 당해왔던 천여운이 빠르게 강해지면서 여섯 종파의 소교주 후보자들을 꺾어가는 모습에 그들은 점점 그에게 빠져들었다.
그런 그들이 결정적으로 천여운을 따르게 만든 것은 허봉의 설득 때문이었다.
‘너무 위험한 도박이라 생각하지 않나? 여섯 종파가 두렵지도 않아?’
‘두려워. 두렵지만 평생 이렇게 약소 종파로 비굴하게 따까리처럼 살아갈 바에야 나는 도박을 해보겠어. 그와 함께라면…..어쩌면 우리 같은 자들한테도 희망이라는 게 있을 지도 모르니까.’
처음에는 도박과도 같은 마음으로 천여운에게 충성 맹세를 했지만 허봉은 점점 그를 진심으로 주군으로 생각하고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그 말에 고민을 하던 마칠, 웅천, 호대명은 그 길을 동참하기로 결정했다.
“나의 주군께 무슨 용무인가?”
허봉이 자신감에 가득 찬 목소리로 천여운을 대변해서 주변을 에워싼 생도들에게 물었다.
그 모습에 천여운마저 내심 피식하고 웃음이 나왔다.
수하가 되기로 한 후로 허봉은 생각 이상으로 그 역할을 잘 해주고 있었다.
적응이 되지 않을 만큼 말이다.
“우린 칠 번 생도에게 볼 일이 있는 거지. 그 수하들에게 용무 따윈 없다.”
생도들 중에서 덩치가 크고 입고 있는 옷이 근육으로 울퉁불퉁한 생도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허봉은 물러서지 않고 그에게 다가오지 말라는 표시로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서 천여운에게 물었다.
“주군, 어찌하시겠습니까?”
허봉의 호위가 기특했지만 여기선 자신이 나서는 것이 맞았다.
“…..괜찮으니 잠시 물러서 있어.”
“알겠습니다.”
천여운의 명에 허봉이 옆으로 물러나자, 본의 아니게 생도들의 대표가 되어버린 덩치가 큰 생도가 천여운의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그에게 당당하게 포권을 하며 호탕한 목소리로 말했다.
“칠 번 생도의 용맹한 무위는 잘 보았소.”
상대가 호의적인 태도로 나오니 천여운 역시도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고맙다.”
짧은 대답이었지만 기분 나쁘게 들리지 않았다.
천여운의 그런 당당한 태도가 더욱 마음에 드는지 생도가 미소를 띠며 말했다.
“나는 팔백오십칠 번 생도인 고왕흘이라고 하오.”
“천여운이다.”
“거두절미하고 본론만 말씀드리겠소. 그대의 조원이 되고 싶소.”
“조원이 되고 싶다고?”
허봉이나 그 수하들도 예상했듯이 천여운 역시도 자신의 주위로 몰려든 생도들이 조원이 되길 원하는 자들일 것이라고 짐작했었다.
무공 교두와의 대결은 많은 생도들에게 천여운의 무위를 증명해보였다.
그들에게 뚜렷하게 각인이 되었기에 이 만큼의 생도들이 몰려들어 그의 조원이 되길 원하는 것이었다.
‘오옷!’
마칠을 비롯한 수하들이 그 말에 기쁜 내색을 숨기지 못했다.
조원이 빨리 구해질수록 더 많은 합을 맞출 수 있기에 삼 단계 시험에 통과할 확률이 높아진다.
더군다나 그 숫자가 열여섯 명에 이르니, 그 중에서 뛰어난 자들로 선별한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현재 천여운이 모집해야 할 인원은 총 일곱 명이었다.
일곱 명을 뽑게 되면 아홉 명은 아무런 소득도 없이 돌아가야 한다는 의미였다.
이것을 의식하기라도 했는지 고왕흘이 천여운에게 자신의 종파와 무위를 밝혔다.
“나는 상위 종파인 마권종의 출신으로 현재 일류의 경지요. 조원으로서 방해가 되지 않을 것이오.”
마권종은 상위 종파 중에서도 권(拳)으로 명성이 두터운 종파였다.
처음부터 꽤 유명한 종파의 출신인 고왕흘이 조원을 신청하자, 다른 생도들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아….한 자리를 이렇게 빼앗기나?’
자신들이 조장이라면 고왕흘을 놓칠 리가 없었다.
그 정도의 인재가 처음부터 기준이 되어버린다면 중소 종파는 기회가 없어진다.
이에 주변에 있던 생도들이 앞 다퉈서 다급한 목소리로 천여운을 향해 외쳤다.
“흑마종의 구백이십 번 생도 혹형이라고 합니다. 아직 이류의 무공이지만 이번에 마룡단을 섭취하면 일류가 됩니다. 절대 발목을 붙잡지 않을 겁니다!”
“유검종의 구십칠 번 생도인 원일이오! 본인 역시도 일류의 경지에 올랐기에 천 공자에게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하오.”
“제 말도 들어 보세요! 금문종의 자우민이라고 합니다. 아직 내공이 모자라지만 창술로는 일류에…”
불이 붙은 생도들의 경쟁에 신이 난 것은 먼저 수하가 된 이들이었다.
열여섯 명의 생도들이 조원으로 뽑히기 위해 자신을 소개하는데, 몇몇은 정말 쟁쟁한 상위 종파도 껴있었다.
그들만 전부 뽑아도 천여운의 조는 안정적이게 될 것이다.
열여섯 명 중에서 다섯 명이 상위 종파였고, 열한 명이 중소 종파의 출신이었다.
‘아아…..열한 명이서 두 자리를 놓고 싸워야 하는 건가?’
‘젠장, 이래서 상위 종파 놈들이란.’
열한 명의 중소 종파의 생도들이 불만스러웠지만 속으로 삭히며 천여운의 결정을 기다렸다. 선택권은 그에게 있으니 말이다.
천여운이 고민하는 표정으로 생도들을 둘러보았다.
그의 시선에 눈이 마주친 생도들의 눈빛에는 저마다 간절함이 깃들어 있었다.
모두가 집중하는 상황 속에 드디어 천여운이 입을 열었다.
“이렇게 나의 조원이 되길 신청해준 생도 여러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천여운이 그들을 향해 포권을 취했다.
그 모습에는 절대로 가벼움은 없었고 우두머리로서의 위엄과 무게감이 흘러나왔다.
이에 열여섯 명의 생도들 또한 자신들도 모르게 감화되어 천여운을 향해 포권을 취했다.
모두와 한 명씩 눈을 마주치며 천여운이 말을 이어갔다.
“이렇게 많은 분들이 조원으로 신청해주셨지만 그 전에 먼저 할 말이 있습니다.”
무언가 기준을 제시하려는 것 같은 느낌에 생도들이 집중했다.
“나는 지금 삼 단계 시험만을 통과하기 위한 조원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
‘응?’
생도들이 일제히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삼 단계 시험을 통과하기만이 아니라면 대체 어떤 조원을 구한단 말인가?
일부는 천여운의 의도를 파악했는지 미묘한 표정들이 되었다.
“마도관을 떠나서 본교에서 내가 걸어갈 험난한 길을 함께 걷고, 함께 피를 흘리며, 이겨낼 동료를 찾고 있습니다.”
‘설마? 소교주…..쟁탈전?’
천여운의 말에 모든 생도들은 그의 진정한 의도를 알 수 있었다.
천여운은 지금 자신만의 세력을 구축하기 위한 수하들 그리고 동료를 모으는 것이었다.
본교에서 험난한 길을 걷는다는 것은 소교주를 목표로 하고 있음을 의미했다.
‘하아….’
‘이거 어쩌지?’
지금까지 천여운의 조에 들기를 바랐던 생도들의 표정이 달라졌다.
삼 단계를 안정적으로 통과하기 위해 스스로의 실력을 증명한 천여운을 택한 것이긴 하지만 소교주 쟁탈전까지 끼어들기는 부담감이 컸다.
소교주 쟁탈전을 위해 천여운의 산하로 들어간다는 것은 마교의 근간인 여섯 종파와 대적을 해야 할 수도 있었다.
‘역시 두려워하는군.’
천여운이 그런 분위기의 흐름을 파악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천여운은 삼 단계 시험뿐 만이 아니라 소교주 쟁탈전에서 자신과 함께 피를 흘리고 싸워줄 동료, 그리고 수하들을 원했다.
하지만 모두가 사람이기에 아무런 대가가 없이 따를 리가 없었다.
천여운이 망설이는 생도들을 향해 말했다.
“나는 함께 하고자 한다면 상위 종파든 중소 종파든 그 규모는 상관없습니다. 나와 함께 걸어가는 그 길의 끝에는 지금의 규모나 명성 따윈 의미가 없을 겁니다. 나는 본교의 여섯 근간을 바꿀 거니까요.”
‘헉?’
천여운의 마지막 말에서 생도들이 충격을 받았는지 표정이 굳어졌다.
지금의 발언은 만약 여섯 종파의 후보자들이 들었다면 선전포고와도 같은 말이었다.
단순히 소교주 쟁탈전을 넘어서, 마교의 근간이라 불리는 여섯 종파를 바꾼다는 말은 참으로 대담하면서 광오한 표현이었다.
‘이 녀석이 정말 제정신인 건가?’
‘아무리 소교주의 자격을 가졌다고 해도 아직까지 아무 것도 없을 텐데?’
‘아아….아쉽지만 다른 조장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천여운이 걸어가는 길은 당연히 압도적인 무력을 가져야 했지만, 그에 못지않은 세력이 뒷받침되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여섯 종파가 아닌 천여운과 함께 걸어간다는 것은 승률이 낮은 도박 그 자체였다.
조원이 되기를 바라던 분위기는 이미 포기하는 방향으로 바뀌어갔다.
그런 생도들을 향해 천여운이 다시 한 번 포권을 취하며 마지막으로 말했다.
“나와 함께 걸어갈 동료가 되어 천마신교의 새로운 종파의 근간이 되어주십시오. 그게 이 천여운이 바라는 조원의 조건입니다.”
그 목소리에는 천여운의 간절함과 진심이 담겨 있었다.
잠시 할 말을 잊고 이 모습을 바라만 보던 생도들 중에 몇 명이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거절의 의사를 밝혔다.
“미안합니다. 천 공자. 나는 그저 삼 단계 통과를 위한 조장을 원할 뿐입니다.”
“안타깝소. 공자의 조원이 되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연이 아닌가 보오.”
그렇게 한두 명이 먼저 나서자 다른 생도들 역시 우르르 앞으로 나서서 정중하게 거절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조원이 되길 간절히 바랬다고는 믿기 힘들 만큼 태세 변화에 천여운의 네 명의 수하들이 당혹스러울 지경이었다.
‘아아…..이를 어쩌나.’
‘큰 일이다.’
‘차라리 조원으로 받고 나중에 얘기했어도….쩝.’
그렇다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었기에 더욱 안타까웠다.
생도들의 입장에서는 위험을 자처할 필요가 없었다.
소교주 쟁탈전에 참여한다는 것은 그와 같은 길을 걷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자신이 지지한 후보자가 소교주가 되지 못한다면, 종파의 규모가 커지고 명성을 떨치기는커녕 좌천되거나 도태될 것이 틀림없었다.
“미안합니다.”
떠나가는 생도들이 하나 같이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이탈했다.
‘엇?’
모두가 떠날 거라는 생각에 침울해하던 네 수하들의 눈이 커졌다.
놀랍게도 모두가 떠나간 자리에 세 명의 생도가 남아있었다.
더욱 의외인 것은 상위 종파의 생도인 마권종의 고왕흘이 이 자리에 있다는 것이었다.
“아아아!”
모두가 떠날 것 같은 분위기 속에 세 명의 생도가 남아있자 괜히 허봉은 뭉클해지는 느낌마저 받았다.
상위 종파인 팔백오십칠 번 생도 마권종의 고왕흘.
중소 종파인 칠십칠 번 생도 금문종의 자우민.
중소 종파인 구백구십구 번 생도 호가검종의 오종.
이 유일하게 남아있는 세 명의 생도들 역시도 다른 생도들처럼 조원이 되는 것을 포기할까 고민했었다.
그러나 누구보다 빛나는 눈빛으로 자신의 포부를 밝히는 천여운의 모습에서 지금껏 느껴본 적이 없는 위엄과 패도의 기운을 느꼈다.
다른 여섯 종파의 소교주 후보자들도 보았지만 이렇게까지 사람을 감화시키는 느낌을 주는 사내는 처음이었다.
“천…”
“천…”
“아! 먼저 말하시오.”
동시에 두 사람이 입을 열었으나 자우민이 양보하면서 고왕흘이 먼저 말했다.
“천 공자. 그대가 말한 그 길은 너무 위험하고 어쩌면 그대를 비롯한 동료들 전부를 사지로 몰아넣을 수도 있소.”
고왕흘의 말에 다른 두 명도 수긍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큼 절대자로 향하는 패도의 길을 따른다는 것은 그 산하에 있는 수하들의 명운도 전부 걸어야 할 만큼 위험한 일이었다.
“솔직히 말한다면 나도 포기하려 했소.”
충분히 납득이 갈 만했다.
마권종의 고왕흘 정도라면 더 안정적인 소교주 후보를 지지할 자격이 있었다.
담담하게 듣고 있는 천여운을 향해 고왕흘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나, 무인으로 태어난다면 응당 패권을 꿈꾸기 마련이오. 무인으로서 그대의 포부를 듣게 되니 나도 모르게 끌리고 있음을 깨달았소.”
그 말과 함께 고왕흘이 한 쪽 무릎을 꿇었다.
“아직은 부족하지만 절대로 그대 이외의 누구에게도 무릎을 꿇지 않겠소. 이 고왕흘을 천 공자의 첫 번째 검으로 써주길 바라오.”
-탁!
그리고는 두 손을 모아, 힘이 담긴 목소리로 외쳤다.
“천여운 공자님께 충성을 맹세합니다!”
훗날 마신(魔神) 천여운의 여섯 검 중 하나로 중원에 명성을 떨치게 될 권일검(拳一劍) 고왕흘이 이렇게 마도관의 대연무장의 한복판에서 그에게 충성맹세를 했다.
천여운의 앞에 무릎을 꿇고 절도 있게 맹세하는 고왕흘의 모습에 이를 지켜보는 생도들마저도 심장이 떨릴 만큼 감정적으로 격앙되었다.
‘아…..첫 번째 수하는 나인데….’
유일하게 허봉만이 뭔가 아쉬워하는 눈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