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46)
6장 내가 짓밟아 주마(1) #
미독(微毒).
그것은 미세한 양이 쌓여 사람을 서서히 죽게 만드는 독이었다.
음식이나 혹은 특정 물건에 접촉함으로써 독과 접촉하게 만드는데, 미량인 처음에는 괜찮지만 시간이 흘러 체내에 쌓이게 된다면 치명적인 결과를 낳게 된다.
백기의 목 전체로 퍼져나간 붉은 반점들은 분명 미독이 쌓였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질끈!
천여운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어머니…..’
어머니인 화 부인은 미독으로 고통스럽게 돌아가셨다.
그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았던 천여운은 천추의 한으로 남았다.
힘이 없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지켜본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어린 나이에 깨닫게 되었다.
‘미독에 중독되다니.’
영상에서 보이는 백기의 증상은 미독에 중독된 현상이 틀림없었다.
문제는 그의 증상이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점이었다.
화 부인이 돌아가기 몇 달 전부터 목에 붉은 반점들이 생겨났었는데, 백기도 그것과 동일했다.
‘오랜 세월 동안 쌓여야 그 같은 증상이 나타날 터인데…’
백기가 오랜 세월 동안 독에 노출되어 있었다고 보기에는 의문점이 있었다.
‘천종섬!’
그것은 바로 독마종의 소교주 후보자인 천종섬이다.
천여운은 십이 조의 뒤편에서 백기를 향해 음흉한 미소를 드러내는 천종섬을 보았다.
거기에서 매우 악의적인 뭔가가 숨겨져 있다고 생각한 그는 혹시 하는 마음에서 백기의 영상을 확인하게 된 것이었다.
‘그 외에 백기에게 악의를 품고 독을 쓸 사람이 있었나?’
십이 조는 전 조를 통틀어 유일하게 일반 생도가 소교주 후보자를 꺾고 조장이 되었다.
실제로 절정의 초입에 이른 백기의 실력을 보고나니 납득이 갈 만 했다.
하지만 소교주 후보자들 중에서 혼자만이 일반 생도에게 패배한 천종섬의 수치심은 말로 이룰 수 없을 것이다.
원한 관계로 보았을 때는 천종섬이 확실했지만 그가 마의 백종우에게 들었던 미독은 몇 년에 걸쳐서 사용해야만 효과를 본다고 알고 있었다.
‘둘 중 하나인가. 마도관에 들어왔을 때부터 독에 중독되어 있었거나……혹은 미독의 양을 훨씬 늘렸던가.’
전자도 가능성이 높았지만 천여운의 마음은 후자 쪽에 기울었다.
미독이 오랜 기간 동안 서서히 쌓아서 효과를 보게 한다면 그 양을 늘려서 더욱 기간이 짧아지게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쓰레기 자식….’
약육강식의 마도관에서 경쟁 상대를 없애기 위해 수작을 부리는 것이 옳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러나 미독으로 어머니를 여읜 천여운에게 독은 경멸의 대상이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천여운은 고민이 되었다.
미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에 걸려서 확인한 것이었지만 엄밀히 얘기한다면 백기와 천종섬 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로서는 굳이 간섭하지 않아도 될 문제였다.
하지만 미독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부터 마음 속 깊이에서부터 치밀어 오르는 분노가 이것을 용납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백기가 아니더라도 계속해서 또 다른 누군가에게 독으로 수작을 부리겠지. 네놈이 여기서 살아남는 방식을 옳다 그르다 판단할 생각은 없다만…..내가 그 꼴은 못 보겠다!’
고민을 거듭하던 천여운은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천종섬이 독으로 부리는 간악한 수작을 부숴버리기로 말이다.
한편, 대연무장의 한쪽 편에서는 격렬한 대결이 벌어지고 있었다.
-파파팍!
한 명은 노란 명찰을 달고 있는 무공 교두였고, 또 한 명은 검은 명찰을 달고 있는 생도였다.
검은 명찰에는 오(五)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는데, 그는 도마종의 소교주 후보자인 천유찬이었다.
천유찬을 상대하는 무공 교두 홍두위의 손은 쉴 틈 없이 움직이며 칠마검의 초식들을 펼치고 있었다.
-파파파파팍!
홍두위의 손에서 펼쳐지는 변화가 많은 칠마검의 초식들을 천유찬은 신중하게 도초를 펼치며 막아냈다.
‘이 녀석도 생도의 실력을 넘어섰구나.’
대결을 펼치는 내내 홍두위는 내심 감탄을 금치 못했다.
두 사람의 대결은 거의 백중세에 가까웠다.
서로가 동등한 절정의 완숙한 경지였기 때문이었다.
‘칠마검만으로 상대할 녀석이 아니다.’
처음에는 노련한 경험을 바탕으로 상대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가 펼치는 칠마검의 초식들이 파훼되어 가고 있었다.
천여운처럼 식을 완전히 파훼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적절한 초식을 사용하며 그 변화의 틈을 노리고 있었다.
‘고작 그 짧은 시간 안에 칠마검을 잘도 분석했구나.’
오늘 당장에는 생도들 중에 노란 명찰을 빼앗기 위한 도전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불과 두시진 만에 나타나서는 대결 신청을 했다.
자신감이 넘치는 태도에 설마 하고 여겼는데, 아니나 다를까 칠마검을 완전히 파악하고 있었다.
‘이놈도 앞의 두 녀석들 못지않은 천재로구나.’
이 정도라면 더 겨뤄볼 필요가 없었다.
이미 대다수의 초식들이 파훼되었기에 식을 섞어서 변화를 일으킨다고 한들 몇 초식 이내로 승부가 날 것이다.
원래의 본신 절기로 겨뤄보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훌륭한 실력을 지녔다.
조장으로서 충분한 역량을 갖추고 있었다.
-타타탁!
홍두위가 빠르게 보법을 펼치며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는 손을 들어서는 대결의 중지 의사를 밝히자, 다음 공격을 이어나가려던 천유찬이 특유의 미소를 띠며 내공을 거둬들였다.
“그만해도 될 것 같구나.”
“그렇다면?”
“내 명찰을 주마.”
홍두위가 가슴에 부착하고 있던 노란 명찰을 떼어서 천유찬에게 넘겼다.
생도들 모두가 지켜보는 곳에서 대결을 하는 것도 아니었기에 굳이 실력도 확인했는데 자존심을 차릴 필요는 없었다.
노란 명찰을 받아든 천유찬이 신난다는 듯이 말했다.
“하하핫, 이제 조장 자격이 생긴 것이로군요.”
“그래. 축하한다. 조원들을 모아서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라마.”
“감사합니다.”
천유찬이 홍두위에게 공손히 포권을 취한 뒤에 헤어졌다.
홍두위가 본관 건물로 들아가는 것을 확인한 천유찬이 이죽거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후후후, 이제 하나. 다음은 누구로 해볼까나.”
하나의 명찰로 얻은 것으로 만족하지 않는 그였다.
날은 그렇게 빠르게 흘러 유시(酉時) 중반이 되었다.
해가 저물어 가며 노을로 인해 하늘이 붉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마룡단의 섭취 때문에 점심시간 때는 한적했던 마도관의 식당이 생도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마룡단을 섭취하고 내공이 늘어난 생도들은 한층 밝아진 얼굴이 되었다.
물론 모두가 즐거운 것은 아니었다.
마룡단을 섭취했는데도 반 갑자의 내공을 달성하지 못한 생도들의 얼굴은 근심으로 물들어 있었다.
내공이 최소한 일류 수준에는 이르러야 칠마검을 펼칠 수 있기에 그들로서는 조원도 구하지 못하고 탈락할 거라는 불안감에 밥알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못했다.
-웅성웅성!
그때 식당에서 식사를 하던 생도들의 일부 시선이 입구 쪽으로 들어오는 누군가에게로 향했다.
그는 십팔 번 생도인 백기였다.
비록 무공교두에게 패배하기는 했으나 다른 생도들의 눈도장은 확실히 찍은 그였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다면 백기의 주변에는 누구도 없었다.
대부분의 조장 급의 생도들은 자신들을 따르는 무리를 이끌고 식사를 하는 반면에 백기는 유일하게 홀로 식당에 나타났다.
특유의 강인한 인상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무뚝뚝함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홀로 식당으로 들어온 그는 생도들이 아무도 없는 구석에 앉아 식사에 집중했다.
-끼릭!
그런 백기의 앞으로 누군가 의자를 당겨서 자리에 앉았다.
앞으로 한 번쯤 쳐다볼 만도 했지만 백기는 자신의 식사를 하는 것 외에는 아무 관심이 없었다.
“이봐. 십팔 번 생도.”
명찰의 번호를 직접 거론하는 상대의 목소리에 그제야 앞으로 시선이 향했다.
백기의 맞은편에 앉은 상대는 다름 아닌 검마종의 소교주 후보자인 천경운이었다.
한 번도 부딪칠 일이 없었던 그가 자신에게 말을 거는 것이 의아했는지 백기가 무덤덤한 표정으로 물었다.
“무슨 일이지?”
“아까 전에 있었던 무공 교두와의 대결은 잘 보았다.”
이미 패했던 대결을 거론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백기는 무표정하게 젓가락을 밥그릇 위에 올려놓고 천경운을 노려보았다.
‘이 녀석 봐라?’
천경운은 그런 백기의 태도에 내심 빈정 상했다.
보통 생도들은 자신의 무위와 상관없이 여섯 종파의 소교주 후보자들에게 어느 정도 공손하게 대하곤 했는데, 이 녀석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식사 중이다. 내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
천경운이 그리 생각하건 말건 백기는 심기가 불편하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모습에 더욱 기분이 상하는 천경운이었지만 애써 내색하지 않고 태연한 척 대답했다.
“급한 녀석이로군. 좋아 본론만 얘기하마.”
“본론?”
“그래. 네 실력을 잘 보았다. 절정의 초입에 이르렀더군.”
백기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짧은 순간에 발차기에 실렸던 기를 보았던 모양이었다.
그렇다는 것은 천경운 역시도 절정의 초입 이상에 해당하는 무위를 지녔을 확률이 높았다.
천경운이 백기를 향해 입 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네 실력이 마음에 들었다. 조장의 자리에 욕심이 있는 것 같다만, 그보다 더 높은 곳으로 향하고 싶지 않나?”
“하아…..”
그제야 천경운의 의도를 파악했는지 백기가 한숨을 내쉬었다.
요지는 자신의 조원으로 들어오라고 제안하는 것이었다.
한숨을 내쉰 백기는 관심이 없다는 듯이 다시 젓가락을 들고는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이 녀석이?’
자신을 무시하는 태도에 천경운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어이가 없었지만 식당 한복판에서 화를 낼 만큼 생각이 없는 그가 아니었다.
여기서 화를 낸다면 현마종이나 도마종의 소교주 후보자들처럼 뛰어난 인재를 모집하려는 계획이 흐트러진다.
“꽤 도도하구나. 좋다. 한 번 고려해봐라. 네게 전혀 나쁠 게 없으니.”
천경운은 애써 화를 가라앉히고 태연하게 고려해보라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백기는 개의치 않는지 계속 식사에 집중했다.
‘벌써 두 번째…..여섯 종파 놈들이란.’
이번이 벌써 두 번째였다.
대결이 끝나고 연공실을 향하는 자신을 찾아온 이가 있었다.
그는 도마종의 소교주 후보자인 천유찬이었다.
시종 경박해 보이는 태도를 취하는 그는 백기에게 자신의 오른팔이 되어 볼 생각이 없냐고 파격적인 제안까지 하며 회유했지만 단박에 거절했다.
조장이니 위로 올라가는 것에 큰 관심도 없었지만 여섯 종파의 후보자들 밑에 들어갈 생각 따윈 더더욱 없는 그였다.
오직 그의 관심사는 강해지는 것뿐이었다.
-탁!
짜증이 섞여서 신경질적으로 젓가락질을 해대는 백기의 앞으로 누군가가 또 앉았다.
앞에 앉은 생도가 백기를 향해 말을 걸었다.
“식사 중에 미안한데, 잠시 이야기를 해도 괜찮을까?”
‘하아…..또 인가.’
백기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모든 생도들이 보는 앞에서 무공 교두에게 도전하지 않았을 것이다.
백기는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눈앞에 앉아 있는 생도를 향해 말했다.
“관심 없다. 꺼져.”
“……..음.”
백기의 맞은편에 앉아있는 생도가 난처한지 신음성을 흘렸다.
그는 바로 천여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