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51)
# 17장 가슴은 뜨겁되 머리는 차가워져라(1) #
독마종의 독공의 진수를 모은 파마독경(波魔毒經).
파마독경의 사층의 경지에 이르면 체내의 중단전에 일곱 종류의 독을 쌓고 외부로 발출시킬 수 있게 된다.
더 높은 층으로 경지에 올라간다면 독을 쌓을 수 있는 종류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
파마독경을 익힌 무인의 살상 능력은 같은 경지에 이른 무인의 두세 배라고 할 만큼 그 위력이 뛰어났지만 그 만큼 익히기도 힘들뿐더러, 연공 도중에 주화입마를 입기라도 한다면 그 부작용은 죽음과도 직결될 만큼 위험했다.
파마독경의 독단은 중단전에 형성하게 되는데, 이것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하단전에 있는 내공의 흐름과의 긴밀한 유착이 중요하다.
파마독경으로 익힌 내공은 독단이 흐트러지거나 체내로 퍼져나가지 않도록 조절하는 역할을 하는데, 이것이 깨져버리게 된다면 독기가 폭주해버리고 만다.
“끄르르르르!”
단전이 파괴된 천종섬이 입에 거품을 물고서 얼굴색이 보랏빛으로 물들자 천여운은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마도관의 규칙이 있었기 때문에 아직까지 그를 죽일 마음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죽어가는 천종섬을 살리기 위해 천여운은 그를 어깨에 들쳐 메고 마도관의 본관의 의무실로 뛰어갔다.
천종섬의 맥을 짚으며 상태를 살피던 백종명이 심각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세상에……단전이 파괴되었어.”
갑자기 독에 중독된 증상을 보이는지 알 것 같았다.
독공을 익힌 고수들이 주화입마를 입거나, 단전에 손상이 갔을 때 주로 이런 증상을 보였었다.
‘뭔가 일이 벌어질 줄은 알았지만…허어.’
설마 천종섬의 단전을 파괴시킬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무공을 익힌 무인은 아니었지만, 무림인들이 단전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는 잘 알고 있는 백종명이었다.
전신의 뼈가 부러져서 흐느적거리는 천종섬을 쳐다보자니 눈살이 찌푸려졌다.
‘뼈를 부러뜨렸으면 그걸로 끝냈어야지. 왜 단전까지 파괴했니?’
라고 묻고 싶었지만 일단 급한 불부터 꺼야했다.
-푹! 푹!
백종명은 침상에 누워서 있는 천종섬의 혈 자리에 침을 놓았다.
무슨 독에 중독되었는지 바로 알 수 없었기에 응급조치를 취해 체내로 퍼져나가는 독기를 빼내기 위해서였다.
침을 찌른 혈자리에서 검은 핏물이 흘러내렸다.
냄새만으로도 역할 정도로 그 독기가 강했다.
“우욱!”
의원인 백종명조차도 코를 찌를 듯 한 역한 냄새에 코를 틀어막았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벌써 죽었어야 할 만큼 강한 독들이 체내에 흐르는데도, 그나마 숨이 끊어지지 않고 버티는 것을 보면 용하다 싶었다.
‘독공을 익힌 녀석이라 저항력이 높은 건가?’
하지만 아무리 체내의 독에 대한 저항력이 높다고 해도 이 상태로 간다면 천종섬은 사망하고 말 것이다.
“아아! 그, 그게 있지.”
백종명이 허둥지둥 책상 서랍에서 무언가를 찾았다.
서랍을 뒤지던 그가 찾았다고 소리 지르며 그것을 가져왔다.
붉은 비단 주머니였는데, 그 안에는 작은 환(丸)들이 있었다.
‘스승님의 말씀대로 챙겨두길 잘했다.’
그것은 마의 백종우가 만든 해독단들이었다.
마도관의 주치의로 가게 되는 백종명에게 꼭 들고 가야 할지도 모른다며 챙겨가라고 권했던 것이었다.
독이 묻지 않게 교룡피로 만든 장갑을 끼고서 천종섬의 입을 강제로 벌렸다.
그리고는 입 안에 해독단 세 알을 집어넣었다.
“죽을 것 같겠지만. 살고 싶으면 삼켜! 그래. 그래!”
죽어가는 천종삼이었지만 살고 싶다는 욕망은 강했는지 입안에 들어온 해독단을 억지로 꾸역꾸역 삼켰다.
-꿀꺽!
식은땀을 흘려가며 백종명이 허둥지둥 그를 살리기 위해 노력할 때 천여운은 심각한 표정으로 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독기가 퍼져나갈 줄이야.’
독공을 익힌 적이 없는 천여운이 이런 지식이 있을 리가 만무했다.
이렇게 천종섬이 퍼져나간 독기를 제어하지 못하고 죽게 된다면 천여운은 당장에 마도관에서 방출되고 말 것이다.
‘젠장. 죽게는 내버려두면 안 된다.’
미독이라는 것 때문에 화를 이기지 못하고 저지른 행동의 여파가 너무 컸다.
하지만 지금 당장에 후회한다고 해서 부서진 천종섬의 단전이 복구될 리가 없었다.
‘살려야 해.’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처럼 나노가 천종섬의 독을 분석하여 중화시키는 것이 빠르겠지만,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나노머신이 타인의 몸으로 이동하는 것은 불가(不可)라고 했다.
지난번에 팔십 번 생도 자현의 상처를 수복할 수 있냐는 질문 때와 똑같은 답변만을 할 뿐이었다.
‘왜 안 되는 거야?’
[시스템 규정에 어긋납니다. 락(lock)이 걸려 있어서 타인의 체내로 나노머신을 이동시킬 수 없습니다.]‘왜 그게 락이 걸려?’
[사용자의 유전정보가 등록되어, 타인에게 양도하거나 체외로 배출할 수 없습니다.]여기서 천여운은 알 수 없었지만 나노머신에는 프로그램 상으로 절대로 불가능하게 락 코드가 걸려 있는 것들이 있었다.
그것은 미래에 대한 역사, 미래에서 사용하는 살상무기 제조법, 현재의 문명 자체를 바뀌게 할 여러 테크놀러지 정보 등이었다.
그리고 천여운의 체외로 나노머신이 배출될 경우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나노머신은 곧바로 소멸되도록 프로그램이 되어 있었다.
‘별 수 없구나. 그럼 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아!”
천여운은 문득 자신의 옷에 묻은 천종섬의 핏자국을 보았다.
급하게 그를 어깨에 들쳐 메고 온다고 몰랐었는데, 흘리는 피가 묻은 듯 했다.
‘나노 그렇다면 독을 분석해줘.’
[알겠습니다. 해독하려는 물질에 손가락을 갖다 대주십시오.]천여운이 옷에 묻은 핏자국에 손가락을 갖다 대자 손가락 끝에서 짜릿한 무언가가 느껴지며 나노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울렸다.
[독성 물질을 분석합니다.]나노가 독을 분석하는 동안 천여운은 약재를 보관하는 진열장으로 향했다.
백종명은 천종섬의 상태를 살피느라 정신이 없었다.
약재라 적힌 진열장들을 전부 열어보니 수많은 약재들이 종류 별로 잘 분류가 되어 있었다.
[독성 물질의 분석이 끝났습니다.일곱 가지 독성 물질이 혼합되어 새로운 독성 효과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약재들 중에 어떤 걸 조합하면 해독할 수 있을지 분석 해줘. 빨리!’
[알겠습니다.]천여운의 명에 나노가 분석된 독을 약재들을 조합하여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해독제를 만들기 위해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시뮬레이션을 마친 나노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렸다.
[사용자의 시각 정보로 증강현실(增强現實) 개안(開眼)합니다.]천여운의 동공이 흔들리며 흰빛의 입자가 선을 그리며 증강현실이 개안되었다.
흰빛의 입자가 수많은 약재들 중에 동그라미를 그리며 필요한 것들을 표시하기 시작했다.
[갈근(葛根), 포공영(蒲公英), 어성초(魚腥草), 엉겅퀴, 구기자…..]나노가 지시하는 약재들을 얼른 집어 들었다.
천여운은 나노가 알려주는 배합방식 대로 약재의 양을 조절해서 다진 후에 그것을 탕제기에 집어넣고 우리기 시작했다.
탕제기를 우리면서 연기가 피어오르자, 그 냄새를 맡은 백종명의 시선이 천여운에게로 향했다.
“너 뭐하는 거니?”
백종명의 식은땀으로 젖은 얼굴을 닦았다.
얼굴에서 약간의 안도감이 보였다.
백종우가 준 해독단을 먹이고 겨우 침으로 체내로 퍼져가는 독을 제어하면서 그나마 차도를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게……급한 대로 해독약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망설이던 천여운이 솔직하게 말해주었다.
안 그래도 천여운이 만든 작품 덕분에 고생하고 있던 백종명은 어이가 없었는지 호되게 다그치려 했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는 거니? 네가 무슨 수로 해독약을….어?”
그러다 탁자 위에 올라와 있는 약재들에 순간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뭘 알고나 그러는가 싶었는데 천여운이 가져온 약재들은 전부 해독초였고, 일부는 조합하면 해독 효과가 있는 것들이었다.
‘뭐야? 이것들은 약재와 약학을 제대로 배우지 않으면 생각하기 힘든데….’
내심 놀란 백종명이 약재를 찧어서 조합하고 남은 찌꺼기를 손가락으로 찍어서 살짝 혀로 맛을 보았다.
해독초는 잘못 배합하면 독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배합 양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이 녀석 약학을 제대로 공부했구나.’
물론 배운 적은 없다.
나노가 독을 분석하여서 해독 방법을 알려준 대로 제조한 것이었다.
그것을 알 리가 없기에 백종명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정확한 독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무작정 탕약을 제조하는 것은 금물이었다.
“조합이 나쁘진 않은데 독이 무엇인지부터…”
“산독(酸毒), 비어독(緋魚毒), 절구버섯독, 면충독(面蟲毒), 병충독(昺蟲毒), 청와독(靑蛙毒), 홍주독(紅蛛毒)입니다.”
“아……..”
외워둔 것처럼 빠르게 독을 읊자 백종명이 벙 찐 얼굴이 되었다.
독을 추출해서 확인해본 것도 아닌데, 대체 무슨 수로 이것을 알아냈는지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였다.
“백 의원님. 이번 한 번만 믿어주시면 안되겠습니까?”
이 이상은 설명할 길이 없기에 천여운이 간절한 눈빛으로 그에게 말했다.
당황스러워 하던 백종명이 여전히 피부색이 보랏빛인 천종섬을 바라보고는 잠시만 기다려보라고 말했다.
아무리 부탁을 한다고 해도 사람을 살리는 의원으로서 만의 하나라는 확률에 모든 것을 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백종명은 천종섬이 흘리는 검은 피를 작은 그릇에 담아왔다.
그리고는 천여운의 말대로 일곱 가지 독이 들어있는지를 확인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독에 상성인 약재들로 일일이 확인해본 결과,
‘……이럴 수가? 전부 맞잖아.’
놀랍게도 천여운이 이야기한 일곱 독성분이 전부 들어있었다.
이 일곱 가지 독이 섞여서 나타나는 증상이라고 한다면 백종명 역시도 천여운과 마찬가지로 저 약재들을 조합해서 썼을 확률이 높았다.
물론 몇 가지 약재들이 의아하기는 했지만 그것들이 다른 약재의 해독 효과를 증대시켰으면 시켰지 방해가 되는 것들은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미독의 증상도 맞췄었지? 이 녀석…..독과 약을 공부했구나.’
그러지 않고서는 도저히 설명할 길이 없었다.
천여운의 말이 맞는 것을 확인한 백종명은 그의 조합한 탕약을 써보기로 결정했다.
독기가 폭주하여 죽어가는 천종섬의 입에 한 숟가락씩 해독 탕약을 넣으며 그것을 삼키게 했다.
탕약을 전부 먹인 후에 남은 것은 경과를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휴, 일단은 할 수 있는 건 다했으니. 독기가 퍼져나가지 않게 계속 침을 놓을 수밖에 없어.”
“백 의원님을 고생하게 만들어서 죄송합니다.”
앞뒤를 가리지 않고 벌인 결과에 숙연해지는 천여운이었다.
백종명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굳이 단전까지는 폐할 필요가 있었니? 아무리 약육강식의 마도관이라고 해도 이건…..과한 것 같구나. 솔직히 뒷감당을 할 수 있겠니?”
진심으로 걱정해서 하는 말이었다.
어머니가 미독에 돌아가셨다는 말을 하고서 살기를 풀풀 풍기며 나갔을 때, 무슨 일이 터질 것 같기는 했지만 이건 상당히 지나칠 정도의 결과였다.
마도관의 규칙 중에 상대의 단전을 폐하지 말라는 규정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과연 마도관주가 이것을 용납할지 궁금했다.
또한 지금이야 마도관 내에 있으니 사 년 동안 간섭할 수 없다고는 하지만 독마종의 소교주 후보자를 거의 병신으로 만들어 놓았으니, 독마종이 이 사태를 그냥 두고만 볼 지도 의문이었다.
천여운이 담담한 목소리로 고개 숙여 말했다.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벌인 일이니 감당 해내겠습니다.”
단전까지 파괴한 것은 앞뒤를 가리지 않고 분노를 참지 못하고 벌인 일이었지만 이미 벌어진 일을 후회할 순 없었다.
처음부터 여섯 종파를 상대하기로 마음먹었기에 그들과는 부딪쳐야할 운명이었다.
‘아아…..아직 어리구나.’
담담하게 답변했지만 그것에서 천여운이 미숙하다고 느꼈다.
그동안은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여서 몰랐지만 아직은 십오 세의 소년다운 치기어림에 백종명이 진심으로 당부를 했다.
“그게 네 의지라면 어쩔 수 없겠지만. 매사에 좀 더 깊이 생각하고 판단을 했으면 좋겠구나. 본교에서 지내오면서 느낀 거지만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영악한 자가 살아남더구나. 좀 더 유연해지렴.”
백종명은 천여운이 스스로의 강함에 취하지 않고 영악해 지기를 바랐다.
암략이 넘치는 마교에서 오직 강함만으로 모든 것을 돌파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만하고 교만함 그 자체였기 때문이었다.
그런 진심어린 백종명의 당부에 천여운은 생각이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내가…..너무 대책 없이 일을 벌인 것인가?’
너무도 빠른 성장은 천여운에게 교만함을 심어주었다.
그것을 당장에 인지하기는 어려웠지만 백종명의 조언에서 뭔가 잘못되었음은 확실하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휴, 늦었구나. 일단은 돌아가렴.”
시간은 벌써 해정시에 가까워져 있었다.
숙소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이었다.
천여운이 고개 숙여 인사를 한 후에 돌아가려는 찰나에 누군가 침상의 장막에서 조심스럽게 얼굴을 내밀며 어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는…..어떻게 할지?”
그는 십팔 번 생도인 백기였다.
천종섬의 독기가 폭주해서 워낙 다급하게 돌아가는 의무실의 상황에 이도저도 못하고, 침상에 앉아서 상황이 정리되기만을 기다렸던 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