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53)
# 17장 가슴은 뜨겁되 머리는 차가워져라(3) #
좌호법 이화명은 이른 아침에 마도관으로 출근하면서 지난밤에 일어난 일을 보고받게 되었다.
모든 정황을 파악한 이화명이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그것은 빠른 성장과는 달리 천여운이 분노로 인해 냉철하게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스승에게 제대로 배우지 못 해서지. 열나흘 동안 무공을 가르치기도 벅찼을 테니.’
우호법 섭맹을 싫어하는 이화명이었지만 이 부분은 인정했다.
무공을 꾸역꾸역 집어넣는 것만으로도 벅찼을 것이다.
마도관에 들어와서야 시작하는 단계인 천여운은 뛰어난 오성과 속에 담긴 분노를 양분 삼아 빠른 성장을 해왔을 지는 모르겠지만 경험도 미천했고 냉철함이 부족했다.
그런 부족함을 채워주는 것이 스승의 지혜와 조언이었지만 천여운에게는 그럴 만한 사람이 없었다.
‘이놈의 재능을 썩게 놔두기는 아깝다.’
이미 몇 번씩이나 자신을 놀라게 할 만큼 재능과 독기를 보여준 천여운이었다.
제대로 가르치고 조언을 해준다면 더욱 성장할 가능성이 무궁무진했다.
원래는 여섯 종파와의 원만한 관계를 중시하는 좌호법 이화명이었지만 그 역시도 사람인지라 천여운에게 흥미를 가져버리니, 관심이 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뒤처리에 어리숙한 자의 결말이 무엇인 줄 아나?”
“……..”
“그것은 죽음이다. 네놈이 저지른 것은 스스로의 명줄을 잡아당기는 짓이다.”
의원인 백종명과 다르게 이화명은 누군가에게 좋게 말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신랄하게 현실을 비판하는 현실주의자였다.
“여태껏 대놓고 단전을 파괴한 녀석은 네가 처음이다. 쯧쯧, 뒤처리도 제대로 못해서 전전긍긍하지 말고 영악해져라. 살아남고 싶다면 한 수 뒤만 보지 말고 세 수, 네 수 뒤도 살펴야 할 거다.”
“…..알겠습니다.”
백종명에게 조언을 들었을 때는 무언가가 잘못 되었다는 것만을 느꼈던 천여운이었지만 이화명의 신랄한 비판은 그의 미숙함을 피부로 와 닿게 하고 있었다.
여기까지는 어리숙한 뒤처리에 대한 비판이었다.
“네놈이 이곳 마도관에 입관한 목적이 무엇이냐?”
쓰라린 마음에 고개를 숙이고 있는 천여운에게 이화명이 가장 원초적인 질문을 던졌다.
그 말에 천여운의 입술을 꽉 깨물고 답했다.
“…..누구보다도 강해지기 위해서입니다.”
“누구보다도 강해져?”
그것은 단순하게 강해진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떨리는 목소리에 섞인 분노의 감정은 강해지려는 이유를 말해주고 있었다.
천여운은 복수를 할 수 있는 힘을 원했다.
“분노가 네 녀석이 삶을 지탱하고 강해지려는 원동력인가.”
사람은 모두가 목표를 가지고 살아간다.
그 목표는 그 사람의 삶을 지탱하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마도관에 입관하는 생도들은 저마다 각자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
“분노가 삶을 지탱해주는 원동력이 되기는 하지만, 네놈은 소교주 후보자이다.”
좌호법 이화명의 진지한 목소리에 천여운의 눈빛이 더욱 흔들렸다.
“소교주 후보자라는 놈이 최종 종착지까지 분노로 그칠 셈이냐? 분노는 네놈이 거쳐 가야할 길의 일부일 뿐이고 강해지는 원동력에서 그쳐야 할 거다.”
소교주는 대 천마신교의 미래이다.
그가 만약에 평범한 생도에 불과했다면 그 원동력으로 나쁠 것은 없었다.
하지만 그저 분노만을 목적으로 신교의 정점에 서게 된다면, 그 자신과 신교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못해 어두울 것이다.
“나무를 바라보지 말고 숲을 보아라. 네놈의 분노는 나무 한 그루를 태우는 것이 아니라 숲 전체를 불태우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에는 네놈 자신마저 불태우고 재로 남겠지.”
처음에는 천여운의 어리석음만을 꼬집었던 이화명이었지만 어느 순간 그의 조언은 소교주 후보로서 천여운이 가야할 방향성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무슨 소리인 줄 알겠나?”
“……알 것 같습니다.”
“알긴 뭘 알아. 인마. 쥐뿔도 없는 네놈이 생각 없이 분노로 설치고 다녀봐야 네 주변 사람들도 다치고 네놈도 결국에는 비참한 최후를 맞을 거다.”
모든 조언을 거의 악담 수준으로 풀어나가는 이화명이었다.
하지만 그 말에는 어디에도 틀린 말이 없었다.
이화명은 냉철하게 천여운의 미래를 논하고 있는 것이었다.
“칠 번 생도, 아니 천여운. 네놈이 이곳에서 살아남아서 신교의 미래가 되겠다고 결심했다면 가슴은 뜨겁되 머리는 차가워져라. 그렇지 않다면 네 녀석은 복수는커녕 꽃을 펴보기도 전에 짓밟힐 테니 말이다.”
‘……가슴은 뜨겁되 머리는 차가워져라!’
좌호법 이화명의 마지막 그 말이 천여운의 심금을 울렸다.
열다섯 살의 나이가 되도록 누구에게도 제대로 된 조언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오직 그가 나아가야할 방향은 복수의 길이었고 그 끝은 자신의 어머니를 죽음으로 몰아간 여섯 종파를 없애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 후에는?’
그 후를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그것이 천여운의 머릿속마저 붉게 불태우던 불씨를 차갑게 만들었다.
‘관주님의 말씀이 옳다.’
그의 말대로 냉철하지 않고 철없이 복수심만 불태운다면 결국 아무 것도 이루지도 못하고 꺾이고 말 것이다.
복수를 이루고 이곳에서 살아남으려면 그 끝을 복수로만 잡아서는 안 되고 더 높고 웅대한 포부를 지녀야 한다.
그러려면 지금의 부족함을 반성하고 그것을 채워야 했다.
‘가슴은 뜨겁되 머리는 차가워져야 돼. 내게 부족한 것은 냉철함이다.’
백종명의 조언을 들은 후부터 흔들리며 가야할 길을 흔들려하던 천여운의 마음에 드디어 깨달음과 안정이 찾아왔다.
흔들리던 눈빛이 어느새 또렷해지며 안광이 두터워지는 모습을 보이자, 불만스러웠던 이화명의 입 꼬리가 올라갔다.
‘말 귀를 못 알아먹는 멍청이는 아니군.’
만약 자신이 이렇게까지 조언을 해줬는데도 멍청하게 군다면 더 이상의 관심을 접으려고 했던 이화명이었다.
하지만 만약 천여운이 자신의 부족한 점을 깨닫고 그것을 보완한다면 천마신교에는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진정한 괴물이 탄생하게 될 것이다.
‘그 진정한 뒷 배경에는 술주정뱅이 놈의 가르침이 아닌 이 몸의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이 바탕이 되겠지. 후후후.’
좀 더 큰 그림을 그리는 좌호법 이화명이었다.
아직은 그 떡잎이 작으니 좀 더 지켜봐야 알겠지만 말이다.
-사아아아!
이화명이 진기를 거둬들이자 집무실 전체를 무겁게 짓누르던 공기가 가벼워졌다.
그것은 그들의 대화가 끝났음을 의미했다.
천여운이 검은 명찰 옆에 달고 있던 노란 명찰을 떼어서 이화명에게 반납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관주님의 조언을 가슴 깊이 새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자신에게 진정한 깨달음을 안겨준 이화명에게 감사의 포권을 취했다.
그 모습에서 흡족한 마음이 들었지만 이화명은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다.
“무공 교두들은 들어와라.”
“아?”
이화명의 명이 떨어지자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무공 교두들이 관주 집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이 녀석을 당장 구금동으로 데려가라.”
“넵!”
공은 공이고 사는 사였다.
설마 곧바로 구금동으로 보낼 줄은 예상하지 못한 천여운의 눈빛에 난감함이 서렸다.
적어도 수하들에게 자신의 상황을 이야기하고 지시를 해줘야 했다.
“관주님. 구금동으로 가기 전에 잠시만 시간을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천여운의 부탁에 좌호법 이화명이 고개를 저으며 냉정하게 딱 잘라 말했다.
“안 돼.”
“적어도 제 조원들에게 말 정도는.”
“어차피 네 녀석이 구금동으로 가는 건 공식적으로 알려질 사항이다. 그리고 이제는 전 조원들이겠지. 녀석들은 다시 그냥 생도이다.”
“아…..”
그런 그의 말에 천여운은 뭔가를 깨달았는지 짧게 탄식음을 흘렸다.
처음에는 왜 그런 처분이 내려졌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화명의 방금 전 말을 듣고 나니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내 어리석은 행동으로 미치는 영향을 깨달으라는 말이구나.’
천여운이 조장의 자리를 박탈됨으로써 조원들 역시도 조장을 잃은 비조원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단순한 처분이 아닌 책임감을 통감하라고 내린 벌이었다.
덕분에 우두머리인 자가 가져야 할 책임감을 깊이 느끼게 된 천여운이었다.
그렇게 무공교두들에게 구속되어 천여운은 마도관의 구금동으로 끌려가게 되었다.
이 같은 사실이 정식적으로 공표된 것은 점심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모든 생도들에게 알려졌다.
[칠 번 생도는 사 번 생도의 단전을 파괴하여 한 인재의 무공을 상실케 하였기에 그 벌로 현재의 조장의 자격을 박탈하고 닷새 동안 구금동에 면벽 수련을 명한다.모든 생도들은 이 같은 사실을 깊이 새겨, 타 생도의 단전을 파괴할 경우 마도관의 관주로서 이를 절대로 좌시하지 않을 것임을 알린다.]
이 소식은 많은 생도들에게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현마종의 소교주 후보자인 천무연과 더불어 가장 먼저 조장의 자격을 가졌던 그가 큰 사고를 쳐서 이를 박탈당했으니 말이다.
서로 경쟁을 하는 약육강식의 마도관이더라도 단전을 파괴시킨다는 발상은 쉽게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웅성웅성!
공표된 벽보가 붙은 마도관 본관 건물 앞쪽이 굉장히 소란스러워졌다.
‘이 자식 완전 무서운 놈인데.’
‘그냥 무공만 강한 줄 알았더니 독종인가.’
‘돌 아이가 아니고?’
‘사 번 생도면 독마종의 그 천종섬이잖아.’
‘독마종을 건들다니 완전 멍청한 짓을 했군. 마도관을 졸업하면 그대로 세상과 하직하겠는걸.’
‘그 전에 마도관 안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살해당할지도.’
‘그런데 뭔가 믿는 구석이 있으니까 그런 거 아냐?’
‘맞아. 아무리 멍청이더라도 독마종을 그냥 건들 리가 있어? 뭔가 생각이 있으니까 저질렀겠지.’
의외의 반응들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었다.
모든 생도들의 의견은 분분했다.
불과 마도관을 입관할 때만 하더라도 모든 생도들의 천여운에 대한 인식은 여섯 종파의 멸시를 받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비운의 소교주 후보자였다.
그런데 지금은 이 벽보가 붙여졌음에도 불구하고 생도들의 의견이 분분하다는 것은 그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졌음을 의미했다.
“푸하하하핫. 이 녀석 진짜 미쳤구나. 단전을 파괴한다는 발상은 대체 어디서 나온 거야?”
도마종의 소교주 후보자인 천유찬이 벽보를 보며 미친 듯이 웃어댔다.
천여운의 행보는 도무지 그가 예측하기 힘든 방향이었다.
재미있기는 했지만 이 같은 행보가 옳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어쩌면 삼강(三强) 구도로 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그럴 걱정은 할 필요가 없겠군. 제 스스로 떨어져나갔으니.’
무공 교두와 겨루는 모습을 보았을 때만 하더라도 꽤 위험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안심이 되었다.
녀석은 이번 삼 단계 시험도 치르지 못하고 탈락할 것이다.
천유찬이 품속에 있는 세 개의 노란 명찰들을 손에 움켜쥐며 흐뭇해했다.
‘후후후, 잘 된 일이구나.’
검마종의 소교주 후보자인 천경운 역시도 천유찬과 더불어 벽보의 내용을 살피며 좋아하는 반면, 현마종의 후보자인 천무연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지 벽보를 한 번 훑어보고는 그냥 가버렸다.
한편 벽보를 보면서 충격을 받은 일곱 명의 생도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천여운의 수하들이자 조원들이었다.
방출만은 되지 않기를 바랐기에 다행스러웠지만, 이런 마도관의 처분 덕분에 조장을 잃고 다시 비조원의 상태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주군께서 돌아오신다면 고작 하루 밖에 남지 않는데 그 안에 과연 노란 명찰이 남을까?’
마권종의 고왕흘은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주군의 실력은 믿었지만 촉박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어쩌면 무공 교두들을 상대로 노란 명찰을 얻어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조를 상대로 뺏어야 하는 구도가 발생할 지도 몰랐다.
‘더 까다로워질지도.’
그렇게 망연자실해 하는 그들에게 누군가가 다가왔다.
그는 바로 이 단계 시험에서 십이 조의 조장이었던 백기였다.
백기는 천여운의 일곱 수하들에게 무언가를 말했고, 그 말을 들은 일곱 명의 표정은 묘하게 바뀌어갔다.
그렇게 어수선했던 공표가 있었던 바로 그날 저녁.
독마종의 근거지인 십만대산의 마교의 성내 서쪽 장원은 분노로 들썩이고 있었다.
불과 두 시진 전에 마도관주의 경위서 및 서찰과 함께 누군가가 들 것에 실려서 독마종의 장원에 도착했다.
그는 다름 아닌 독마종의 소교주 후보자인 천종섬이었다.
전신의 뼈가 전부 으스러졌고 단전이 폐해져서 보내진 모습에 모든 독마종의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서찰과 경위서를 보는 순간 독마종의 장원은 분노와 살기로 얼룩졌다.
독마종의 종주인 백오의 집무실에 모든 독마종의 수뇌부들이 집결했다.
몇 년 전에 백오가 장로직을 박탈당한 이후로 독마종 전체가 들썩이는 것은 오랜만의 일이었다.
한 시진 전부터 모여 있는 수뇌부들은 전부 백오를 지켜보고 있었다.
백오는 손에는 구겨진 한 서찰이 들려져 있었고, 분노 이상으로 뭔가 고민에 차있는 듯이 눈을 감고 있었다.
종주의 명을 기다리다 답답해진 한 중년의 남자가 입을 열었다.
“이렇게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습니다. 종주! 놈이 마도관을 나올 때까지 기다릴 일이 아닙니다.”
그가 입을 열자 하나 둘씩 의견이 터져 나왔다.
“암살자를 보내시지요. 살마종의 살수를 고용한다면 조용히 처리할 수 있습니다.”
“그럴 게 아니라, 무공 교두들 중에 누군가를 섭외해서 죽이는 건 어떻겠습니까?”
“마도관의 숙수나 고용인들을 이용해서 음식에 무색무취의 독을 하독해서 없애면 깔끔합니다!”
각자가 생각하는 바들은 전부 비슷했다.
어떻게 효과적으로 죽일 수 있는지에 대한 의견들이었다.
자신들이 지지하고 키워낸 소교주 후보자가 병신이 된 것에 분노한 그들은 천여운이 마도관에 있든지 없든지 중요하지 않았다.
오직 그를 죽여야만 이 분노를 진정시킬 수 있었다.
이런 수뇌부들의 격한 의견을 잠자코 듣기만 하던 종주 백오가 감았던 눈을 떴다.
그리고 차갑게 식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놈을 죽이고 나면 그 의심은 누구에게로 향하지?”
날카로운 지적에 한참 동안 분노로 열변을 토하던 수뇌부들의 입이 일제히 닫혔다.
그렇지 않아도 몇 년 전, 화 부인의 죽음 이후에 교주의 견제로 힘이 많이 약화된 독마종이었다.
여기서 더욱 타격을 받게 된다면 여섯 종파의 균형이 흔들리게 된다.
“하지만 이렇게 놈을 내버려두면 우리 독마종의 체면이 뭐가 됩니까?”
백오의 둘째 아들인 백문웅이 붉게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천종섬은 그의 친조카였다.
그런 조카가 무공을 상실한 것도 화가 났지만 이 일로 인해서 다른 다섯 종파들의 비웃음을 사는 것도 싫었다.
“어리석기는. 그런 식으로 체면을 따질 것이었다면 음마종 역시도 나섰을 게다.”
이미 가장 먼저 이 단계 시험에 방출되어서 나온 음마종의 소교주 후보자인 천원려를 말하는 것이었다.
천원려는 무공이 폐해진 것은 아니었지만 오른팔이 잘려서 나왔다.
그녀의 팔을 자른 것 역시도 천여운이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현재 음마종의 신경은 극도로 곤두세워져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아직까지 상황을 좌시하는 것은 인내하는 과정이었다.
“그 사건 이후로 교주는 여섯 종파와 거리를 두고 조금이라도 명분이 생기면 그 힘을 약화시키려 들고 있다. 섣불리 움직일 수 없다는 말이다.”
마도관에 입관한 생도를 건드리는 것은 마교 전체의 규정에 어긋난다.
그것을 깨뜨리고 천여운을 죽이게 된다면 안 그래도 벼르고 있는 교주에게 명분을 넘겨주는 셈이었다.
-으득!
“그럼 녀석이 제 발로 마도관을 나올 때까지 참아야 한단 말입니까!”
백문웅은 참을 수가 없었는지 입술을 꽉 깨물고 말했다.
이에 백오가 눈매를 날카롭게 뜨며 답했다.
“그게 순리이지. 순리이긴 하지만…..”
백오가 손에 꾹 쥐고 있는 구겨진 서찰을 내려다보았다.
그것은 백오에게 보내온 좌호법 이화명의 서찰이었다.
서찰을 한참을 바라보던 백오가 집무실 책상에 걸터둔 지팡이를 손에 쥐며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좌호법을 직접 만나봐야겠구나.”
하루가 지난 늦은 밤 해시(亥時) 무렵,
마도관의 비급서재에서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큰 산봉우리가 있었다.
그 봉우리의 위쪽으로 올라가면 수많은 동굴들이 있었는데, 그곳은 마도관에서 구금동이라 불리는 곳이었다.
마도관에는 특별히 누군가를 가두는 금옥과 같은 시설이 없다.
인재를 육성하는 기관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곳 구금동은 마도관에서 유일하게 외부에서 입구를 폐쇄시킬 수 있다.
거대한 암석으로 봉해진 어두운 구금동의 내부를 비추는 것은 작은 등불 하나뿐이었다.
-오드득!
천여운의 이빨로 텁텁하고 단단한 벽곡단이 씹었다.
‘아아 맛없다.’
좁은 동굴 안에서 천여운은 닷새 치의 벽곡단 만을 먹으며 종일 면벽 수련을 해야 했다.
동굴 입구를 완전히 봉해놓아서 어둡고 습하고 답답하기마저 한 이곳에서 혼자 면벽 수련을 한다는 것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자유자재로 나갈 수 있는 연공실과는 확연하게 달랐다.
보통 생도들이 이곳에 갇혔다면 하루도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천여운은 답답한 것은 있었지만 이곳에서 보내는 시간이 그리 힘들지가 않았다.
개인 연공실보다도 좁은 동굴이었지만 나노를 통해 증강현실을 개안해서 시뮬레이션 훈련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안에서 지켜보고 있지 않는 게 천운이구나.’
다행인 것은 경비 무사들이 동굴 바깥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방해받지 않아서 좋다는 점이었다.
닷새 동안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오직 훈련뿐이었다.
조금이라도 더 강해지는 것이 도움이 되는 길이었다.
오늘도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계속 훈련을 하다가, 다 늦은 밤이 되어서야 배가 고파져서 벽곡단을 먹는 참이었다.
-드르르르!
벽곡단을 씹으며 식사를 하던 차에 동굴 전체가 진동을 울렸다.
“어?”
그것은 닫혀 있는 동굴의 암석이 옆으로 밀려나면서 생기는 진동이었다.
아직은 사흘이나 더 남았기에 지금 당장 동굴이 열릴 리가 없었다.
암석이 반쯤 밀려나면서 답답했던 동굴 안으로 바깥의 맑은 공기가 빨려 들어왔다.
‘하아.’
어찌된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답답했던 공기가 환기가 되자 호흡은 상쾌했다.
바로 그때였다.
반쯤 열린 동굴의 입구로 새어 들어오는 희미한 달빛을 등지고 누군가가 그 안으로 천천히 들어왔다.
그런데 그 복장이 마도관의 경비무사들의 것이 아니었다.
검은 장포를 둘러쓰고 괴이한 형태의 지팡이를 짚고 있는 노인이었는데, 그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네놈이 천여운이로구나.”
목소리에는 살기가 서려 있었다.
뭔가 이상한 낌새를 알아챈 천여운이 내공을 끌어올렸다.
그 순간 노인이 그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상상을 초월하는 거대한 공력이 일어나며 천여운의 몸이 허공으로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