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55)
# 18장 전화위복(轉禍爲福)(2) #
[사용자의 체내의 신진대사를 촉진시킵니다.]무천심법을 운기하는 천여운을 나노가 체내 신진대사를 촉진시켜 기의 활성화를 도왔다.
반복적으로 십사경맥의 특정 혈 자리를 순환하던 내공은 점차 약효에 영향을 받아 그 덩치를 불려나가기 시작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한참을 운기에 집중하던 천여운이 드디어 눈을 떴다.
눈을 뜨자마자 가장 먼저 그를 자극하는 역겨운 냄새에 천여운이 검은 액체가 묻은 상의를 벗어던졌다.
“하아, 진짜 지독하다.”
운기에 집중할 때는 그나마 잊을 수 있었는데, 끝나고 나니 버티기 힘들었다.
구금동의 동굴 안의 공기에서 열기가 느껴졌다.
그것은 천여운의 무천심법을 운기하면서 내공이 증식되는 과정에서 몸의 열이 발산되면서 일어난 현상이었다.
단전에서 느껴지는 다른 묵직함에 천여운이 내공의 양을 확인해보았다.
“아!”
그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전화위복(轉禍爲福)이라는 말이 가장 어울리는 순간이었다.
놀랍게도 일 갑자를 약간 상회했던 내공이 어느새 일 갑자 반(구십 년)에 도달해 있었다.
마치 마룡단을 처음 복용했을 때처럼 효과가 굉장했다.
독마종의 종주인 백오의 원래 목적이었던 내공 손실은커녕 오히려 반 갑자 가까이 내공이 늘어난 기연을 얻게 된 셈이었다.
‘…..정말 선물을 줬네.’
백오의 작은 선물은 천여운에게 큰 선물로 다가왔다.
처음 마도관을 입관 했을 때만 하더라도 내공이 전무했던 천여운은 이번 전화위복으로 인해 모든 생도들을 통틀어 다섯 손가락에 드는 내공을 지니게 되었다.
‘나노가 없었더라면 정말 큰 일 날 뻔했다.’
나노는 불운한 천여운에게 있어서 인생의 전환점이나 마찬가지였다.
나노 머신이 없었다면 벌써 수차례 죽었을 지도 몰랐다.
불운마저도 행운으로 바뀌는 나노가 있었기에 더욱 고마움을 느끼는 천여운이었다.
‘이번에는 정말 운이 좋았다. 독마종에서 그렇게 대담하게 나올 줄은 몰랐다.’
한편으로 독마종의 종주인 백오의 계략에 빠지지 않은 것을 다행스럽게 여겼다.
모든 것이 자신의 어리석은 판단으로 벌어진 일이었다.
한 번 잘못된 판단이 어떻게 역풍이 되어서 돌아오는지 이번 위기를 통해 제대로 겪게 된 그였다.
‘쓴 경험을 했다.’
이번에는 운이 좋게 전화위복되어 내공을 얻게 되었지만 두 번 다시는 어리석은 판단을 범하지 않겠다고 다시 한 번 다짐하는 기회가 되었다.
‘그나저나 이건 대체 뭐지?’
천여운이 몸을 일으켜서 동굴의 안쪽으로 들어갔다.
등불 하나가 비추고 있는 동굴은 어둡기 그지없었지만 천여운에게는 나노의 야간 투시경이 있었다.
‘나노. 야간 투시경 모드.’
[사용자의 눈에 야간투시경(夜間透視鏡) 모드를 개안합니다.]나노 머신인 나노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려 퍼지며 천여운의 동공이 흔들리더니, 이내 어두웠던 그의 시야에 빛이 증폭되면서 어두웠던 동굴 안쪽이 선명하게 보였다.
동굴 안쪽의 벽면이 일부 깨져있었는데, 백오가 공력을 실어서 천여운을 날려 보냈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었다.
‘뭔가 느낌이 이상했어.’
동굴 벽에 부딪쳤던 천여운 그 안쪽이 꽉 차 있는 것이 아니라 비어있는 것만 같았다.
순간 이를 기이하게 여겼지만 백오가 강제로 먹인 독단을 먼저 해결해야 했기에 잠시 잊고 있었다.
-수우우우!
“아?”
벽면에 깨져있는 부분에서 미세한 공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안쪽이 비어있지 않고는 일어날 수 없는 현상이었다.
어쩌면 안쪽에 다른 공간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천여운은 호기심이 생겨났다.
‘한 번 확인해볼까?’
-탁탁!
천여운은 금이 간 동굴 벽의 밑 부분을 주먹으로 살살 쳐가면서 조금 더 공간을 확보하기 시작했다.
워낙 세게 부딪쳤던지라 조금만 쳐도 벽이 바스라지면서 점차 천여운이 기어서 들어가면 들어갈 수 있을 만한 구멍이 생겼다.
‘됐다.’
구멍이 생기자 그 안에서 서늘한 공기가 들어오면서 열기로 가득했던 좁은 동굴이 시원해져갔다.
천여운은 엉금엉금 기어서 어두운 구멍의 안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안으로 천천히 기어들어간 천여운이 인상을 찌푸렸다.
‘엇?’
좀 더 넓은 동굴이 있을 지도 모른다는 예상과 달리 그 안에는 어딘가로 연결되는 듯 한 동굴 통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기어서 들어왔던 몸을 일으켜 세우고 뒤로 돌아보았다.
막혀 있는 동굴 벽은 원래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라 후에 막아놓은 것처럼 부자연스러운 형태를 하고 있었다.
좁은 동굴의 벽면은 자연스럽게 되어 있어서 몰랐는데, 그 안쪽의 벽면을 보니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일부러 막아놓은 건가?’
아무래도 이곳에는 뭔가가 숨겨져 있는 것 같았다.
통로를 따라 들어가서 확인해볼까 고민을 하던 찰나에 나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통로의 안쪽에서 미세한 야광 빛이 감지되었습니다.]야광 빛이라는 말에 천여운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한 야광 빛을 내는 것은 오직 야광주밖에 없었다.
이왕 확인해보기로 했으니 안쪽으로 들어가 보자는 생각에 천여운이 동굴 통로를 따라 들어갔다.
천여운이 있던 구금동의 동굴은 산꼭대기에 아까운 곳에 있었는데, 이 동굴의 통로는 마치 산봉우리의 안쪽 아래로 안내하는 것만 같았다.
‘점점 밝아진다.’
나노의 말대로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청녹색의 밝은 빛이 강해지고 있었다.
굳이 야간투시경 모드를 하지 않아도 보일 정도였다.
‘나노 야간 투시경 모드 해제.’
[사용자의 눈에 야간투시경(夜間透視鏡) 모드를 해제합니다.]야간 투시경 모드를 해제하고 안쪽으로 들어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통로의 끝이 드러났다. 그 끝에서는 지금까지보다도 환한 야광 빛이 흘러나왔다.
통로의 끝으로 다가가서 그 안으로 발자국을 내딛는 순간,
“어엇!”
발을 디딜 곳이 없었다.
당황한 천여운이 재빨리 몸을 뒤로 빼지 않았으면 떨어질 뻔했다.
대체 무언가 싶어서 그 안으로 고개만 빼꼼 집어넣었는데 놀랍게도 그 안에는 굉장히 넓은 공동이 자리하고 있었다.
“여긴 대체?”
의아한 것도 잠시였고, 천여운이 공동 안을 살펴보더니 그 안으로 뛰어내렸다.
높이는 열세 자(尺) 정도였는데, 일반 사람들은 그냥 뛰어내리기 힘들어도 천여운은 경공으로 충분히 내려갈 수 있었다.
-탁!
그 공동 바닥으로 내려온 천여운이 자신이 들어왔던 통로를 살폈다.
그곳은 이곳을 들어오는 통로라기보다는 엄밀히 얘기하면 공기를 순환시키는 환기구에 가까웠다.
넓은 공동 안의 높이는 생각보다 높았는데, 열여섯 자 정도는 되어보였다.
“와!”
천장을 쳐다보는 천여운의 입에서 탄성이 절로 흘러나왔다.
공동의 천장에는 수를 헤아리기 힘든 많은 야광주들이 박혀서 내부를 청록색의 환한 빛으로 밝히고 있었다.
워낙 밝아서 천장을 똑바로 쳐다보기 힘들 정도였다.
“구금동에 이런 곳이 숨겨져 있었다니.”
놀라웠다.
그런데 막상 무언가가 있나 둘러보니, 공동 한가운데에 있는 원 형태의 굵고 긴 석봉을 제외하고는 아무 것도 없었다.
꽤나 공동이 넓었는데도 아무 것도 없는 것을 보아선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공간인 것 같기도 했다.
공동의 벽의 남쪽 방향으로 이곳을 나갈 수 있는 입구로 보이는 곳이 있었는데, 그 바깥쪽에 거대한 암석에 놓여 있어 나갈 수 없도록 막고 있었다.
‘정말 사용하지 않는 곳인가 보구나.’
이런 멋진 장소를 그냥 내버려둔다는 게 이상하게 느껴졌다.
“어?”
바깥으로 나가는 입구 쪽을 쳐다보다가 문득 땅 밑을 바라보았는데, 바닥 쪽에 무언가가 쓸려나간 자국이 길게 연결되어 있었다.
자국의 크기만 보았을 때는 큰 비석 같은 것을 밀어서 가지고 나간 것 같았다.
쓸려나간 흔적들을 따라가 보니 자연스럽게 공동 안쪽의 중심부로 향해졌다.
‘하나가 아니네?’
바닥에 쓸려나간 흔적들은 하나가 아니었다.
공동의 한가운데에 세워진 석봉을 중심으로 주변에 오각 형태로 마주보게 세워져 있었던 것을 끌고 나온 것 같았다.
어지간히 무겁지 않고는 이렇게 바닥이 패일 정도로 끌리진 않았을 것이다.
‘바닥의 자국만 보면 꼭 비석 같다…..비석?’
천여운은 문득 무언가가 떠올랐다.
비석이라고 하니까 왠지 모르게 마도관의 비급 서재에 있던 청옥석 비석이 생각났다.
일 층과 이 층의 비석에서 천여운은 천마 조사의 심득이 담긴 절세검법의 초식과 검마의 검법으로 추정되는 파훼검법의 초식을 손에 넣었다.
‘생각해보니 비급 서재의 층마다 청옥석 비석이 있다고 했는데….’
비급 서재는 총 다섯 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다면 청옥석 비석 역시도 총 다섯 개라는 것을 의미하는데, 공동의 한가운데에 남아있는 흔적들은 딱 다섯 개의 무언가가 놓여 있던 자국이었다.
뭔가 의구심이 들자 확인해보고 싶어졌다.
‘나노. 증강현실을 개안해서 비급 서재에 있던 일 층의 청옥석 비석을 입체영상으로 구현해줘.’
[알겠습니다. 사용자의 시각 정보에 증강현실(增强現實) 개안(開眼) 가동합니다.]천여운의 동공이 미세하게 떨리며 시야로 흰 빛의 선들이 생겨나며 증강현실이 개안되었다. 이어서 나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스캔한 일 층 청옥석 비석을 입체 영상으로 구현합니다.]-솨아아아!
그러자 흰 빛의 입자들이 선을 그리며 천여운의 눈으로 청옥석 비석이 모습을 드러냈다.
크기부터 시작해 모든 것이 동일한 형태였다.
‘나노, 공동의 바닥에 흔적들 보이지? 저곳 중에 혹시 이 비석이 놓여 있는 자리가 있었는지 분석할 수 있어?’
[청옥석 비석과 바닥의 흔적들을 대조해서 비교해보겠습니다.]나노의 목소리와 함께 청옥석 비석의 입체영상이 하나에서 다섯 개로 늘어나며, 바닥에 있는 흔적들로 입체영상이 움직였다.
입체영상 청옥석 비석들이 전부 오각의 형태로 마주보게 바닥의 흔적들에 놓이는 순간 천여운의 눈이 커졌다.
‘크기가 동일하다.’
놀랍게도 바닥에 남겨진 흔적의 크기와 청옥석 비석의 바닥의 크기가 동일했다.
그렇게 다섯 개로 나누어진 청옥석 비석의 입체 영상 중에 오각에서 남쪽 방향으로 향해 있는 흔적에 있던 것이 붉은 빛을 띠었다.
[바닥의 흔적들과 대조했을 때, 일 층에 있던 비석이 원래 있었던 위치로 추정됩니다.]천여운이 가까이 다가가서 바닥 쪽을 살피니 정말 그랬다.
청옥석 비석의 밑쪽의 작은 홈들이 눌린 자국이 공동의 바닥에 눌려서 남겨진 흔적들과 거의 동일했다.
약간 다른 점은 아무래도 비석을 끌고 나가면서 마모된 자국인 듯 했다.
‘서재의 이 층에 있던 비석도 구현해서 대조할 수 있어?’
[알겠습니다.]나노의 목소리와 함께 시야로 비급 서재의 이 층에 있던 비석이 생겨나며 나머지 비어 있는 네 개의 흔적들과 대조되기 시작했다.
이 층에 있던 청옥석 비석은 서남쪽에 남겨진 흔적에서 붉은 빛이 흘러나왔다.
마찬가지로 바닥을 살펴보니 그 홈의 흔적들이 일치했다.
‘아아아…..여기였구나. 여기였어.’
우연으로 발견한 것이었지만 청옥석 비석의 출처는 바로 이곳 야광주 공동이었다.
어째서 비석들을 옮겼는지는 모르겠지만 원래 있던 장소는 이곳이 틀림없었다.
생각해보면 다섯 청옥석 비석들을 굳이 마도관의 비급 서재의 층층마다 배치한 것이 의아하긴 했었다.
만약 이곳에 각 층마다 흩어진 비석들이 전부 있었다면 한 번에 천마 조사님의 심득인 절세검법을 익힐 수 있었을 지도 몰랐다.
‘그런데 이 석봉은 대체 뭐지?’
한 가지 의문점은 공동 한가운데에 우뚝 서있는 이 석봉이었다.
청옥석의 비석들이 하나 같이 그것을 바라보는 형태로 놓아져 있는 것이 의문스러웠다.
천여운이 석봉의 가까이로 다가서서 그것을 살펴보았다.
‘그냥 세워 놓은 건가?’
그렇게 석봉에 무언가라도 적혀 있을까 빙 둘러보는데, 둥근 석봉의 북쪽 방향에 손으로 새긴 글씨가 위에서 아래로 새겨져 있었다.
[天魔劍功]“천….마….검….공!!!”
새겨진 글씨를 읽는 천여운의 심장이 빠르게 두근거렸다.
그리고 천마검공이라 적힌 글씨의 아래에는 청옥석 비석의 앞쪽인 시조의 글귀 밑에 있었던 것과 같은 작은 점들이 무언가를 형상하는 그림 같은 모양으로 찍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