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58)
# 19장 이 명찰은 네 것이다(1) #
혼자서 연공실 건물로 향하는 그의 뒤로 오종과 허봉이 급하게 달려와 따라잡았다.
백기가 의아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식사들 안 해?”
“식사야 한 끼 거른다고 죽겠나. 다~네가 임시 조장이라서 따라온 거야. 어디 가서 두드려 맞게 할 순 없잖아?”
“……그렇게 걱정이 많아서야 칠 번 생도가 나오면 밥도 제대로 못 먹겠군.”
백기의 무뚝뚝한 목소리로 하는 농담에 오종이 피식하고 웃었다.
반면 허봉은 말없이 인상을 쓰고 따라갈 뿐이었다.
의견도 물어보지 않고 당연하다는 듯이 따라오라고 한 것에 대한 무언의 시위였다.
‘흥!’
오종도 그것을 알기게 헛기침을 하며 일부러 모른 척 했다.
“흠흠.”
그렇게 그들은 개인 연공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백기의 경우는 내공이 일 갑자에 약간 미치지 못하는 절정의 초입이었지만, 절정의 실력에는 포함되었기에 격세석 연공실이 개방되었다.
“맞은편 건물이라 따라오진 않아도 되는데.”
“혹시 모르지 않나.”
개인 연공실 건물로 들어가도 되는데, 오종과 허봉은 맞은편의 건물까지 따라왔다.
말로는 괜찮다고 하면서 백기는 이런 배려에 내심 고마움을 느꼈다.
십이 조에서 생도들과 거리를 두고 생활했을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세 명은 길을 따라 맞은편 건물의 앞쪽까지 올라왔다.
“이제 다 왔으니까 굳이 여기까….응?”
말을 다하기도 전에 백기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것은 주변에서 느껴지는 많은 인기척들 때문이었다.
“왜 그래?”
백기의 반응을 이상하게 생각한 오종이 의아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제 막 일류고수의 경지에 이른 오종은 인기척들이 움직여서야 이를 알아챌 수 있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격세석 연공실 건물의 뒤편에 숨어있던 자들이 건물의 앞쪽으로 몰려들었다.
날이 저물어서 어두웠지만 얼추 스무 명 정도 되어 보이는 생도들이었다.
‘이런…..’
오종과 허봉의 눈빛에 당혹감이 서렸다.
그들은 작정하고 자신들을 기다렸는지 손에는 지급받았던 목검들이 들려 있었다.
인원에서 밀린다고 생각한 오종이 백기에게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도망쳐야 한다고 눈짓을 했다.
‘여기서 기다렸다는 건 뭔가 수가 있다는 말이겠지?’
백기 역시도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들이 몸을 돌려서 뒤쪽으로 경공을 펼치려는 순간 또 다른 무리의 생도들이 우르르 몰려와 퇴로를 가로막았다.
“엇?”
익숙한 얼굴에 허봉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퇴로에는 열 명의 생도들이 가로막고 있었는데, 그 맨 앞에는 날카로운 눈매에 앞머리를 뒤로 빳빳하게 넘기고 있는 한 생도가 있었다.
그는 바로 육 조의 조장이었던 백팔 번 생도, 하일명이었다.
‘하일명?’
이 단계 시험인 조별 진형 대결에서 개인의 힘만으로 타 조의 진형을 박살내는 기상천외함을 보여주었기에 웬만한 생도들은 그를 전부 기억했다.
얼마 전에 개인 연공실에서 천장이 부서지는 불의의 사고를 당해서 의무실에 입원했었다고 알았는데, 퇴원한 모양이었다.
“너희들?”
퇴로를 막고 있는 생도들의 모습에 백기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그들은 다름 아닌 전 십이 조의 생도들이었다.
뜻밖의 얼굴들의 등장에 백기의 흉터가 그어진 눈동자의 당혹감이 서렸다.
“조장. 요새 신수가 좋소.”
“원래의 조원들을 버리고 다른 조원들과 함께 하니 좋은가 보지?”
전 조원들의 빈정거리는 말투에 백기가 인상을 찡그렸다.
그들과는 이 단계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서 지내온 관계였고, 독마종의 소교주 후보자인 천종섬을 따르는 이들이 많았기에 거리를 멀리했었다.
“지금 우리를 이렇게 포위한 이유가 뭐지?”
오종이 자신들을 포위한 생도들을 향해 외쳤다.
어차피 도망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의 진짜 목적을 알아야 했다.
물론 짐작 가는 것은 있었다.
“킥, 그걸 몰라서 묻는 거냐?”
퇴로에 있는 생도들의 선두에 있던 하일명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리고는 백기의 오른쪽 가슴에 달고 있는 노란색 명찰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 노란 명찰. 넘겨라.”
역시 목표는 노란 명찰이었다.
십이 조의 조원들은 며칠 동안 백기가 유일하게 혼자 있는 시간이 저녁 무렵 연공실을 사용하는 때라는 것을 알고서 이렇게 패거리를 모아서 노린 것이었다.
격세석 연공실의 앞쪽에 있는 스무 명은 육 조의 생도들이었고, 퇴로를 막고 있는 이들은 십이 조의 생도들이었다.
“그 말을 내가 들을 거라고 생각하나?”
백기가 천천히 보폭을 벌려 언제든 출수할 준비를 하며 말했다.
그 말에 하일명이 입 꼬리를 올리며 답했다.
“듣지 않으면 좋은 꼴을 보지 못할 텐데. 아아, 아닌가. 그냥 줘도 곱게 보낼 생각따윈 없지만 말이야.”
-으득!
하일명이 뭐가 그리 기분이 좋지 않은지 이빨을 갈았다.
그가 이렇게 분노를 불태우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며칠 전에 있었던 개인 연공실에서의 불의의 사고 때문이었다.
천여운이 본의 아니게 연공실의 바닥 벽을 뚫는 바람에 하일명은 머리를 다쳐서 뇌진탕 증세가 오래가는 바람에 한동안 의무실에 입원해 있었다.
‘헛?’
의무실에 입원해보니 가관도 아니었다.
자신이 복면을 쓰고 습격했던 천무금을 비롯해, 갈비뼈가 부러진 무공 교두 상문여,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단전이 파괴된 천종섬까지 왔다.
자신을 비롯한 의무실 대다수가 천여운의 작품들이었다.
‘…..뭐야 이 새끼.’
도대체 천여운 그놈이 무엇을 하고 다니는지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였다.
흉흉한 의무실 분위기에 입을 다물고 조용히 지내야만 했다.
물론 제일 큰 이유는 천무금의 눈에 띠어서 괜히 기습을 했던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였다.
‘망할!’
그렇게 힘든 의무실 생활을 끝내고 어제 오전에 퇴원을 하게 되었는데, 덕분에 다른 조장 급의 생도들보다도 늦게 노란 명찰 획득에 들어가야만 했다.
마룡단을 흡수하고 내공이 늘어서 절정의 초입에 이른 하일명은 자신감에 차서 남은 노란 명찰을 가진 단 한 사람을 찾아갔다.
그는 바로 선임 무공 교두인 호진창이었다.
나름 의무실에서 며칠 동안 칠마검을 분석했던 하일명이었지만 초절정의 고수인 호진창을 감당해낼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빌어먹을 선임 무공 교두!’
처참하게 깨진 하일명은 하루 동안 운기조식만을 해야 했다.
단 하나의 노란 명찰을 제외한 모든 명찰들이 생도들의 손에 넘어갔다는 사실을 알게 된 하일명에게 남은 선택지는 오직 하나였다.
타 조의 노란 명찰을 빼앗는 것뿐이었다.
‘어떤 조를 노려야 하지?’
그렇게 고민하던 차에 전 십이 조의 생도들이 하일명에게 합작을 제안했다.
자신들과 힘을 합쳐서 노란 명찰들을 빼앗자는 것이었는데, 그 일 목표가 바로 백기였다.
‘다른 조보다도 인원이 덜 모여서 훨씬 상대하기도 쉽다.’
‘오호. 그래?’
대다수의 조장 급의 생도들은 이미 조원들을 거의 모은 상태였다.
아직까지 조원들의 반을 채우지 못한 조는 천여운의 수하들이 결집한 백기 조뿐이었다.
‘그 구금동에 갇힌 칠 번 생도의 부하 녀석들이 모인 조라서 그가 나오길 기다리느라 아직 조원들을 전부 모으지 않은 것 같다.’
‘좋아. 함께 하지.’
두 번 생각해볼 가치도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두 차례 당한 것 덕분에 천여운에게 복수하고 싶은 생각으로 가득했던 하일명에게는 이익에 부합되는 합작이었다.
“네놈들 그 빌어먹을 칠 번 생도 놈의 따까리들이라지?”
저들이 만약 천여운과 관련이 있는 녀석들이라면 그들의 노란색 명찰을 빼앗는 것이야 말로 최고의 복수라고 생각한 하일명이었다.
“뭐? 따까리?”
따까리라는 말에 오종을 비롯한 허봉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천여운의 수하들이니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비하하는 말에 기분이 나빠진 그들이었다.
“네놈들은 오늘 잘못 걸렸어.”
하일명은 그들에게 노란 명찰만을 뺏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다.
팔다리라도 부러뜨려 놓을 생각이었다.
이미 표정에서부터 그런 악의가 느껴졌기에 백기는 고민이 되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아무리 자신이 절정을 앞둔 무위라고는 하나, 지금 그들을 포위하고 있는 생도들 역시도 마룡단을 복용하고 일류의 내공을 지녔다.
그런 이들이 서른 명씩이나 되었기에 어떻게 반전을 꾀할 수 있는 숫자가 아니었다.
더군다나 하일명에게서 풍겨지는 느낌이 절대로 하수가 아니었다.
적어도 절정의 초입에 이른 것이 틀림없었다.
‘모두가 당하면 어떻게 해볼 틈이 없다.’
명찰을 빼앗기지 않게 혼자서라도 탈출해서 이목이 많은 식당 쪽으로 도망가는 방법도 있었지만, 그렇게 되면 오종을 비롯한 허봉이 당하고 만다.
백기가 오종에게 전음을 보냈다.
[오종. 내가 노란 명찰을 넘길 테니, 넌 허봉과 탈출해라.] [뭐? 너는 어쩌고?] [어차피 모두가 도망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내가 어떻게든 저들을 막아 보겠다.] [무슨 소리야! 함께 해야지!] [바보 같은 소리하지마. 여기서 노란 명찰을 빼앗기면 다시 조가 분해된다. 그렇게 되면 내일 칠 번 생도가 구금동에 나와도 모든 것이 무산된다.]아직까지 단 하나의 노란 명찰이 남았지만 그것은 모두가 포기한 자리였다.
초절정의 고수를 상대로 빼앗는 것은 불가능 그 자체였다.
백기의 일침에 오종이 고민을 하다 쓰라린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이 같은 말을 허봉에게도 전음을 보냈다.
‘흥. 뭔가 수작을 부리나 보군.’
말없이 서로를 쳐다보는 것에서 전음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한 하일명이 손짓으로 공격하라고 표시했다.
이에 생도들이 일제히 백기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칫!”
백기가 거친 소리를 내뱉으며, 가슴에 있던 노란명찰을 뜯어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넘겼다.
“나?”
원래는 오종에게로 넘기기로 했는데 어쩌다보니 허봉에게 넘어갔다.
명찰을 넘긴 백기가 신형을 튕겨 하일명이 있는 쪽을 향해 경공을 펼쳤다.
유일한 퇴로가 있는 방향이 그곳이었기 때문이었다.
먼저 앞서서 달려든 그의 십이 조 생도들이 망설임 없이 목검을 휘둘렀다.
‘내게 조장으로서 섭섭했다면 미안하다. 하지만…..’
이렇게 더러운 수작을 부리는 것은 용서할 수 없었다.
백기의 발이 수십 개의 음영을 만들어내더니 생도들에게 쇄도했다.
-파파파파팍!
과연 내공의 거의 절정에 이른 백기의 초식은 호진창과의 대결을 펼칠 때보다도 한층 그 위력이 강해져 있었다.
각자가 방어 초식을 펼쳐보았지만 오히려 백기의 발에 실린 각기(脚氣)에 의해 목검들이 부러지거나 발차기에 맞고 바닥을 뒹굴었다.
-퍼퍽! 콰직!
“크헉!”
“엇! 내, 내 목검!”
목검을 부러뜨리지 말라고 마도관주가 신신당부했었다.
확실하게 상대를 밀어붙이려고 가져온 목검이 부러지자 생도들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반면 하일명은 백기의 발에서 희미하게 빛나고 있는 각기에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아직 선명하지 않은 것을 보면 자신과 동급의 무위였다.
‘절정이라 이거지?’
순식간에 앞서 공격해온 세 명의 생도들을 쓰러뜨린 백기는 곧장 하일명을 향해 각법을 펼치며 달려들었다.
그와 동시에 전음으로 외쳤다.
[이때다! 도망쳐!]백기의 전음이 들리자 오종과 허봉이 쓰린 얼굴로 정면을 향해 경공을 펼쳤다.
백기가 생도들을 쓰러뜨리고 이동한 경로가 유일하게 비어있는 퇴로였다.
두 사람이 교묘하게 그 틈을 통과했다.
-슉슉!
파란 두건이 펄럭거리며 땅바닥에 떨어졌다.
그들이 빈틈을 통과해 대립하고 있는 백기와 하일명을 지나쳐 도망을 시도하자 생도들이 외쳤다.
“잡아! 저 놈이다! 저 대머리 놈이 그걸 가지고 있어!”
“이런 미친놈들이 누가 대머리라는 거얏!!!”
도망치던 허봉이 대머리라는 말에 발끈해서 소리 질렀다.
미처 몰랐는데, 경공을 펼치느라 파란 두건이 벗겨지면서 솜털이 자라다 만 민둥 머리가 드러나버린 허봉이었다.
“대머리 거기서!”
“빌어먹을!”
경공이 느린 허봉을 생도들이 따라잡으려고 하자, 이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오종이 몸을 돌려 자신에게로 노란 명찰을 넘기라 했다.
“받앗!”
다급히 명찰을 받아든 오종이 그가 따라잡힐 걸 걱정해 소리쳤다.
“허봉! 무조건 달려!!!”
“알아요!”
아무리 허봉이라도 그것을 모를까.
지금 잡히면 저들의 기세로 보아 뼈도 못 추릴 게 틀림없었다.
허봉은 절대로 붙잡히지 않기 위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젖 먹던 힘까지 내공을 짜내, 마도관의 식당 쪽을 향해 경공을 펼쳤다.
그렇게 한참을 내달리던 허봉은 식당 앞쪽에 도착해서야 알아채고 말았다.
노란 명찰을 넘긴 후로 아무도 그를 쫓지 않았다.
“…….이런 십할.”
땀으로 젖은 허봉이 망연자실한 얼굴로 욕을 내뱉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