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61)
# 19장 이 명찰은 네 것이다(4) #
스물네 개의 궤적을 그리는 검식들을 막아보려 했지만 세 개의 식이 한계였다.
호진창은 이를 악물고 전신에 호신기운을 끌어 올렸다.
-파파파파팍!
천여운의 검결지가 그의 요혈들을 찌르면서 쓰라린 고통이 느껴졌다.
저 손에 진검이 들려있었다면 꼼짝없이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맨손이라고 해도 고절한 초식에 담겨 있는 검력이 거센 폭풍과도 같았기에 몸이 회전하기 시작했다.
“크으으윽!”
당황한 호진창이 내공을 십성으로 끌어올려 검력에 대항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초식에 실려 있는 내공의 수위가 자신을 능가하지 않았다.
-핑그르르르!
강제로 회전하게 된 호진창이 겨우 검력을 이겨내고 바닥에 착지했지만 균형을 잃고 한쪽 무릎을 꿇고 말았다.
-탁!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생도들이 입을 벌어져서 경악을 금치 못했다.
천여운이 어떻게 이런 고절한 검법을 익혔는지는 모르겠지만 중요한 것은 호진창을 무릎 꿇렸다는 사실이었다.
‘……입체영상에서처럼 되었다.’
이런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낸 천여운도 자신만의 전율을 느끼고 있었다.
방금 전 호진창이 펼쳤던 칠마검의 고절한 초식은 청옥석에 남겨져 있던 파쇄 검초와 흡사했다.
다만 호진창이 배합한 검 초식은 청옥석에 남겨진 파쇄 검초의 초창기의 수준에 불과했고, 완성된 파쇄 검초가 스물네 개의 식으로 이루어졌다면 칠마검은 고작해야 여덟 식뿐이었기에 천마검공을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 검초….’
호진창의 떨리는 눈빛으로 고개를 들어 올려 천여운을 바라보았다.
천여운은 여전히 경각심을 잃지 않고, 언제든 공수를 취할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교두의 기세가 아직 살아있다. 대결은 끝나지 않았어.’
초식 면에서 압도했지만 호진창의 몸에 초식을 적중시켰을 때 강한 반탄력을 느꼈다.
구금동에 숨겨진 공동에서 천마검공의 심법을 얻으면서 운기가 자유로워져, 그 무위가 절정의 완숙한 경지를 넘어서 극(極)에 가까워지고 있는 천여운이었지만 아직까지 초절정의 고수와는 수위 차가 있었다.
‘재미있구나. 천여운.’
호진창의 몸에서 투기가 흘러나왔다.
본신절기를 쓴 것은 아니었지만 손에 사정을 둔 것도 아니었다.
이런 절세 검 초식으로 자신을 밀어붙인 천여운과 진심으로 전력을 다해서 겨뤄보고 싶어졌다.
“후우!”
호진창이 바닥에 손을 짚은 채로 길게 호흡을 내뱉자, 날카로운 예기가 손끝으로 흘러나오며 돌바닥에 균열이 일어났다.
-쩌저저적!
그것은 체내로 파고든 천여운의 검기를 배출해낸 것이었다.
‘검기를 배출했어?’
천여운의 눈이 커졌다.
초절정에 이른 고수들은 체내의 운기가 완전히 자유로워지는 경지이기에 내부로 침투한 타인의 기를 배척할 수 있다.
검기를 완전히 배출해낸 호진창이 호흡을 가다듬으며 일어섰다.
경이로운 능력에 천여운이 다시 자세를 취했다.
‘역시 초절정이구나.’
천마검공으로 선기를 취했다고 끝날 싸움이 아니었다.
그런데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검기를 해소하고 멀쩡하게 자리를 털고 일어난 호진창이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투기가 가득했던 그 강렬한 기세를 거둬들였다.
‘뭐지?’
호진창이 여전히 경계심 가득한 천여운을 향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정말 놀랍구나. 천여운. 일신우일신이라는 말은 너를 위한 말인 것 같구나.”
‘아……’
기세를 거둬들인 것은 정말로 승부를 마무리한 것이었다.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날이 갈수록 새로워진다는 말이다.
불과 엿새 전만 하더라도 절정의 초입에 불과했던 천여운은 공력에서부터 초식까지 그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수준으로 향상되었다.
그야말로 괴물 같은 성장 속도라고 할 수 있었다.
‘본교에 상상을 불허하는 괴물이 탄생하는 걸지도 모른다.’
라고 생각했지만 이것은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다.
호진창이 자신의 오른쪽 가슴에 붙이고 있는 노란색 명찰을 떼었다.
‘엇?’
“설마?‘
그 모습에 생도들의 눈이 커지며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오늘은 본 교두의 패배를 인정하마. 너는 조장의 자격이 충분하다. 이제 이 명찰은 네 것이다.”
호진창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모여 있던 생도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내질렀다.
“와아아아아아!!!”
모두가 흥분했는지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다.
같은 생도로서 모두가 불가능이라 여겼던 선임 무공 교두의 노란 명찰을 얻어낸 것에 대한 놀라움과 경외심이 섞인 환호성이었다.
‘정말로 성공하다니!’
‘한 초식 만에 호 교두의 인정을 받아냈어!’
‘이게 말이 되는 소리야?’
‘저 녀석 정말 괴물이야.’
더군다나 완전히 패배시킨 것은 아니더라도 초절정의 고수인 호진성을 고작 한 초식 만에 한 쪽 무릎을 꿇게 만들었다.
강자존을 살아가는 마도인으로서 그 강함에 열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환호성으로 가득한 한 가운데에서 천여운이 호진창을 향해 고개 숙여,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교두님께 감사드립니다.”
“자네의 실력으로 다시 쟁취한 건데, 무슨 감사인가.”
호진창이 웃으면서 노란 명찰을 천여운의 손에 쥐어주었다.
이로써 천여운은 조장 자격을 박탈 당한지 닷새 만에 다시 제자리를 찾게 되었다.
노란 명찰이 가진 무게감이 전과는 사뭇 달랐다.
‘이 무게감을 잊지 않겠어.’
이번 일을 통해서 자신의 행동 하나가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게 된 천여운이었다.
그렇게 스스로를 다짐하는 천여운의 귓가로 누군가의 외침 소리가 들려왔다.
“주군!!!”
바로 허봉이었다.
오매불망 기다리던 천여운이 중요한 순간에 떡하니 나타난 것도 모자라, 노란 명찰마저 다시 획득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이 모든 상황이 감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허봉.”
“주군! 돌아오시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이곳에 있는 자는 허봉뿐만이 아니었다.
몰려든 생도들의 사이를 비집고 누군가가 그의 앞으로 걸어왔다.
천여운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백기?’
그는 다름 아닌 백기였다.
구금동에 갇힌 바람에 천여운은 닷새 동안 백기가 자신의 수하들과 함께 동고동락했던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의아해하는 천여운의 앞으로 백기가 어색한 표정으로 머뭇거리다, 그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털썩!
그 모습에 천여운의 승리로 흥분을 금치 못하던 생도들의 시선이 단번에 그에게로 향했다.
‘엇?’
‘백기가 왜 무릎을 꿇는 거야?’
‘뭐야? 뭐야?’
조장 급의 생도인 백기가 무릎을 꿇으니 당연히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그는 며칠 전에도 노란 명찰을 획득해서 조장의 자리를 차지했다고 알려져 있었다. 아직까지 어젯밤에 하일명과 생도들에게 습격을 당해서 명찰을 강탈당한 것은 소문이 퍼지지 않았다.
“백기. 왜 무릎을 꿇는 거지?”
천여운의 질문에 백기가 잠시 뜸을 들이더니, 모두가 들으라는 듯이 큰 목소리로 외쳤다.
“먼저 감사의 인사부터 드리겠습니다. 저 십팔 번 생도 백기는 천여운 공자 덕분에 독마종의 독수에 살아남았기에 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습니다!”
“뭐?”
-웅성웅성!
‘독마종에서 십팔 번 생도한테 독을 썼어?’
‘이게 무슨 소리야?’
백기의 외침에 모여 있던 생도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졌다.
독마종의 독수에서 살아남았다고 말을 하니 파장이 큰 것은 당연했다.
천여운이 독마종의 소교주 후보자인 천종섬의 단전을 파괴한 사실이 공표되면서, 단순히 결과만을 접했던 생도들은 그가 독마종의 심기를 건들만큼 겁을 상실하고 멍청한 짓을 했다고만 치부하고 있었다.
그런데 백기의 말대로라면 천여운이 천종섬의 독수에서 그를 도왔단 말이 아닌가.
“독마종의 독수에서 저를 도와주신 천여운 공자께서 구금동에 갇히면서까지 고생을 하신 모습에 이 백기가 감동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뭐지? 이 어색한 말투는…’
백기의 원래 말투를 아는 천여운이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백기가 지금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인지, 그 의도를 눈치 챘기에 가만히 듣고 있을 뿐이었다.
-웅성웅성!
‘아니 그럼 칠 번 생도가 십팔 번 생도 때문에 그랬다는 거야?’
‘그러지 않고서 십팔 번 생도가 저렇게 무릎까지 꿇어가며 말할 이유가 없잖아.’
‘허어. 대체 무엇 때문에?’
떠들썩해진 생도들의 여론이 점차 묘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분위기가 물오르자 백기는 화룡점정을 찍듯이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이 백기, 더욱 목숨을 바쳐 천 공자님의 수하로서 보필하도록 하겠습니다!”
‘하!’
천여운이 속으로 탄성을 내질렀다.
이게 백기의 머릿속에서 나온 것이라면 정말 감탄할 만 했다.
아직까지 수하로 거둬들인 적이 없던 백기가 어느새 천여운의 수하가 되어서 생도들의 여론을 뒤흔들어 놓은 것이니 말이다.
백기의 마지막 발언은 확실하게 방점을 찍었다.
‘십팔 번 생도가 칠 번 생도의 부하였어?’
‘아니 그럼 자신의 수하를 보호하려고 그런 짓을 한 거란 말이야?’
‘세상에.’
‘아랫 사람을 위해서 그랬다고?’
백기의 이 같은 발언이 부정적이게 될지 긍정적으로 작용할지는 알 수 없었지만, 분명 생도들에게 천여운이라는 인물에 대해 새로운 파문을 일으키기에는 충분했다.
술렁이는 생도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흡족한 미소를 짓고 있는 근육질에 거구의 생도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마권종의 고왕흘이었다.
그는 천여운의 앞에서 포권을 한 채로 낯간지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백기에게 전음을 보냈다.
[잘했네. 대사가 조금 어색하긴 했지만.] [……네 말대로 따르는 건 이번 한 번뿐이다.] [하하하핫, 알겠네.]놀랍게도 백기의 모든 어색한 대사는 전부 고왕흘의 머릿속에서 나온 말들이었던 것이다.
고왕흘은 천여운이 대결에서 승리하는 모습에 열광하는 생도들을 보며 그 짧은 틈에 이 같은 계책을 떠올리게 되었다.
덕분에 백기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생도들이 보는 앞에서 연기를 해야만 했다.
날카롭게 툴툴대는 백기였지만 고왕흘은 매우 만족스러웠다.
한편 마도관의 본관 건물의 계단을 오르고 있는 두 명의 무공 교두가 있었다.
그는 방금 전에 천여운과 대결을 펼쳤던 선임 무공 교두 호진창과 전 팔 조의 담당 무공 교두인 임평이었다.
“밖이 시끌벅적하군요.”
그 이유를 모를 리가 없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호진창의 노란 명찰을 얻어냈으니 열광하는 것도 당연했다.
본의 아니게 천여운을 띄워준 셈이 되어버렸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내가 체면이라도 차릴 것 같나. 후후후. 녀석은 충분히 그만한 실력을 갖췄네.”
“그야 그렇지요.”
임평 역시도 무공 교두들 중에서 유일하게 그 대결을 지켜보았다.
걱정스러운 마음에서 지켜보았는데, 오히려 천여운은 그를 다시 한 번 놀라게 만들었다.
“대단한 녀석이더군요. 그런 놀라운 검법을 익히다니.”
검법의 고수인 임평조차도 경악하게 만들 정도의 전율적인 검법이었다.
한 가지 의아한 것은 마교에서 활동하는 내내 한 번도 이 검법을 본 적이 없다는 점이었다.
“그 검법도 우호법께서 가르친 것일까요?”
“글쎄, 화경의 고수이시니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높겠지.”
“……그런 가요?”
도법으로 일가를 이룬 고수가 굳이 제자에게 검법을 가르칠까?
임평은 이를 이상하게 여겼지만 지금으로서 천여운에게 그런 고절한 검법을 가르쳐줬을 만한 사람은 오직 우호법 섭맹뿐이었다.
삼 층으로 올라온 임평은 우측 복도를 꺾어서 무공 교두들의 집무실로 향하려 했다.
그런데 호진창은 한 층을 더 올라가려했다.
“어? 집무실로 안 가십니까?”
“먼저 들어가게. 잠시 바람을 좀 쐬려 하네.”
“알겠습니다.”
호진창은 한 층 계단을 더 올라가 마도관의 본관 건물의 옥상으로 올라왔다.
그런데 옥상에는 난간 쪽에는 먼저 자리를 잡고 있는 이가 있었다.
바람에 흩날리는 붉은 머리카락만 보더라도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관주님.”
그는 마도관의 관주인 좌호법 이화명이었다.
“왔소?”
이화명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본관 건물의 밑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곳에서는 여전히 생도들의 떠들썩한 소리가 들려왔다.
“전음을 보내지 않았다면 순간 자제하지 못할 뻔했습니다.”
“그런 검 초식을 상대한다면 누구라도 그럴 것이오.”
옥상 위에 있었던 이화명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들의 대결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대결에서 천여운이 펼쳤던 엄청난 위력의 고절한 검 초식 또한 바로 위에서 정확하게 볼 수 있었다.
이화명의 바로 옆까지 다가온 호진창이 은밀한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는 젊은 시절 수백 회가 넘게 정파, 사파와 전쟁을 치렀습니다. 그 전투 중에는 당연히 교주님과 함께인 적도 꽤 있었죠.”
“…….”
“호법으로 매일 같이 교주님을 보필하셨던 관주님이라면 저보다 더 잘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호진창의 말에 이화명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말없이 아래만을 내려다보는 이화명에게 호진창이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천여운이 펼친 그 검 초식…..제 눈이 틀리지 않았다면 분명 교주님의 천마검법과 흡사했습니다. 아니, 오히려 그보다 더 전율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