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68)
# 21장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3) #
흰 빛의 도기가 베어진 부분을 중심으로 공중으로 흩날리며 사라졌다.
이 광경을 지켜본 모든 생도들이 입이 벌어졌다.
“도, 도기를 날렸어!”
“그걸 베다니!”
도기를 날려서 원거리 공격을 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절정의 극에 이르러야만 가능하다.
그런 도기를 베어낼 정도면 그에 상응하는 실력이란 말이었다.
그야말로 현재 마도관 생도들의 수준을 한참 벗어난 공방이라고 할 수 있었다.
“천유찬.”
천여운의 시선이 날카롭게 멀리로 향했다.
그곳에는 천여운에게 일격을 당해서 멀리까지 튕겨져 나갔던 도마종의 소교주 후보자인 천유찬이 손바닥에 흰빛의 도기를 형성한 채 서있었다.
천유찬이 아쉽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쉽네. 기습을 당해서 좀 갚아주려고 했는데. 후우.”
천유찬이 목을 돌리면서 근육을 풀었다.
태연스럽게 말을 했지만 아직도 맞은 부위가 얼얼했다.
안면을 강타 당하면서 강한 충격이 뇌까지 울리면서 어지러움 때문에 잠깐 동안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제 정신을 차린 거냐? 늦군.”
도발하는 천여운의 말에 천유찬의 인상이 굳어졌다.
그렇다는 것은 자신이 회복되기를 기다려줬다는 말이 아닌가.
“기다려줬다…..이거냐?”
“처음 주먹은 나에게 수작부린 걸 갚아준 것뿐이다. 기습을 당해서 졌다는 소리는 듣고 싶지 않거든.”
소교주 후보자들간의 대결이었다.
이 많은 생도들의 앞에서 기습으로 쓰러뜨린다면 괜한 논란만 가져올 것이다.
그런 천여운의 말에 천유찬이 기가 막힌 듯 말했다.
“하! 도기 한 번 막아놓고 기고만장하구나.”
말은 이렇게 했지만 내심 천유찬은 도기를 베어낸 것에 놀라워했다.
‘……괴물 같은 성장 속도로군.’
분명 예전에 개인 연공실 건물 앞에서 만났을 때만 하더라도 애송이에 불과했는데, 그야말로 경이로운 성장 속도였다.
이 정도라면 얼마 있지 않아 자신을 완전히 능가할 것이다.
‘그때 팔을 베었어야 했나.’
후회가 되었다.
당시에 천여운의 팔을 베려다가 참았었는데, 그 오판이 이런 사태를 키운 것 같았다.
그렇다면 지금 해야 할 일은 오직 하나였다.
‘더 격차가 생기기 전에 지금 팔 하나를 가져간다.’
천유찬이 평소의 경박스러운 웃음을 지우고 전의를 가다듬었다.
-사아아아아!
‘기세가 바뀌었다.’
기세가 날카롭게 바뀌는 천유찬의 모습에 천여운도 내공을 끌어올려 태세를 갖췄다.
제대로 된 절정의 극에 이른 고수와의 대결이었다.
‘공자님이 이렇게 진지해지시다니.’
천유찬의 수하들이 그 모습에 숨을 죽이고 집중했다.
현마종의 소교주 후보자인 천무연이 아니라면 모든 일에 있어서 항상 여유롭고 경박스러웠던 천유찬이었다.
그런데 저 표정은 정말 적수로 인정해야 나오는 얼굴이었다.
‘분위기가 바뀌었어.’
고왕흘이 공터의 바뀐 분위기에 입을 다물었다.
그들의 원래 계획은 천여운이 대결을 펼치는 동안 천유찬의 수하들을 제압하는 것이었는데, 이 분위기는 우두머리들 간의 일기토(一騎討)가 되어버렸다.
그렇다면 향방은 천여운에게 달려있다고 보아도 무방하지 않았다.
‘여기서 지면 쟁탈전에서 패배하는 겁니다. 주군.’
전 생도들의 시선이 두 사람에게로 집중되었다.
각자가 모시는 주군이 이기기를 바라는 마음에 이곳에 있는 모두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먼저 움직인 것은 천유찬이었다.
-탓!
천유찬의 신형이 번개처럼 생도들을 가로질러 천여운을 향해 쇄도해왔다.
그 동안 보아왔던 누구보다도 빠른 경공이었다.
천여운의 앞에서 뛰어오른 천유찬이 도마종의 절기인 환마도법(幻魔刀法)의 제 이초식인 환도일참(幻刀一斬)을 펼쳤다.
“하압!”
내려치는 단순한 초식이었지만 달려오는 힘마저 실려 패도적이었다.
도기로 펼치는 초식의 위력은 천여운을 단숨에 두 동강 낼 기세였다.
‘이게 도마종의 도법!’
우호법 섭맹에게 전수 받은 접무도법에 버금가는 위력이었다.
짧은 찰나의 순간, 천여운의 머릿속에 도법으로 대응할지 검법으로 대응할지 고민이 되었다.
천여운의 선택은 후자였다.
‘동등하거나 그 이상의 실력자를 상대로 여력을 아끼는 건 사치다.’
천여운이 두 손가락을 모아 검결지를 만들어 검기를 일으켰다.
목검에 검기를 만들어 보려고 한 적이 있었는데, 나무의 강도가 기(氣)를 견디지 못했다.
‘검기?’
천여운이 도기가 아닌 검기를 발하자 눈에 이채가 띠었다.
아까 전에는 떨어져 있어서 잘못 보았나 했는데, 역시 지금 펼치는 것은 검기였다.
-촤촤촤촤촥!
허공으로 치솟는 천여운의 검식과 내려치는 천유찬의 도초가 부딪쳤다.
검기와 도기가 부딪치고 어우러지며 빛이 이리저리 튀며 흩날렸다.
‘이 녀석, 무슨 짓거리냐?’
천유찬의 눈이 가늘어졌다.
접무도법이 아닌 검법을 펼치기에 무슨 짓인가 싶었는데, 검식 하나하나가 평범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데 이 검식들이 이상하게 눈에 익었다.
‘하지만 환도일참의 묘리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천유찬이 펼치는 도식들을 전부 막아냈기에 초식을 파훼시킨 줄 알았는데, 그 순간 천유찬의 도기가 기이한 방향으로 틀었다.
-촥!
놀란 천여운이 검기로 이를 막아냈지만 공력의 여파로 좌측으로 밀려났다.
-촤아아아아!
바닥에 쓸며 밀려난 자국은 대략 여섯 보 거리였다. 첫 초식 대결에서 천여운이 밀리자 이를 지켜보던 천유찬의 수하들이 함성을 질렀다.
“와아아아아아아!!!”
반면 천여운의 수하들의 안색은 어두워졌다.
천유찬의 실력이 이 정도까지일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 정도라면 천유찬 역시도 선임 무공 교두인 호진창과 겨뤘어도 충분히 인정을 받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력이 나보다 조금 앞선다.’
천여운의 눈빛이 흔들렸다.
원래부터도 완숙한 절정의 경지였던 천유찬은 이번에 지급받은 마룡단으로 내공이 일 갑자 하고도 사십 년에 이르러 있었다.
‘초식이 기묘하다.’
더군다나 천유찬이 펼치는 도법은 도식의 경로가 독특했다.
환(幻), 허깨비, 환영이라 불리는 도마종의 도법다웠다.
접무도법을 펼칠 때 잔상을 만들어내 어지럽게 하는 것과 다르게 도식의 움직임이 기상천외해서 사람의 눈을 현혹시켰다.
‘저 오른팔….’
천유찬의 오른팔의 근육만 유독 발달되어 있었다.
저 도법을 펼치기 위해서는 도를 자유자재로 종횡무진으로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그만큼 팔에 과부하가 생긴다.
“운이 좋구나. 단번에 팔을 베어주려 했는데.”
천유찬이 한쪽 입 꼬리를 올리면서 이죽거렸다.
그의 말대로 조금만 늦게 반응했어도 오른팔이 잘릴 뻔했다.
천유찬이 그를 향해 손바닥의 도기로 가리키며 말했다.
“익숙하지도 않은 그딴 어설픈 검법은 집어치우고 접무도법을 펼쳐라.”
“어설픈 검법?”
천여운이 기분이 나빴는지 눈썹을 치켜 올렸다.
“내가 네가 펼치는 검법을 몰라볼 거라 생각했어? 하하하핫.”
의미심장한 천유찬의 말에 천여운의 표정이 굳어졌다.
청옥석에 있던 파훼 검법 초식의 검식을 나누어서 펼쳤는데 알아본 것일까?
천유찬이 호들갑을 떨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무공 교두들이 보여준 것처럼 칠마검을 복합적으로 펼쳤나 본데, 그래봐야 내겐 통하지 않는다.”
천유찬의 말에 천여운이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허탈해했다.
그런데 그는 파훼 검법의 검식을 일부 펼쳤을 뿐인데, 칠마검으로 보았다는 말은 정말 그 검식은 검마가 남긴 것일까?
“경고하지. 오 초식이다.”
“무슨 의미지?”
“계속 고집을 부리고 어설프게 칠마검을 펼친다면 오 초식 이내로 네 오른팔과 평생 안녕하게 될 거야. 나야 고맙기는 하지만 어설픈 상대를 이겼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거든.”
아까 전에 천여운이 했던 도발에 복수하듯이 오만하게 말하는 천유찬이었다.
청옥석 비석에 있던 파훼 검법의 검식들은 천마검공의 검초의 고절한 검식들에 비하면 굉장히 평범하다.
그것은 하나의 초식으로 합쳐지기 전까지는 그 위력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는다.
덕분에 검식들이 평범해 보였는지 어지간히 얕보인 모양이었다.
잠시 말이 없던 천여운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신감이 넘치는군. 그렇다면 내기 할까?”
“내기?”
“그래. 내가 펼치는 어설픈 검법을 오 초식 안에 꺾을 수 있다고 하지 않았나? 그럼 불리한 내기가 아닐 텐데.”
갑작스러운 내기 제안에 천유찬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녀석 무슨 잔꾀를 부리려는 거지?’
염파를 통해 한 번 속았었기 때문에 무슨 수작을 부릴지도 모른다고 의심이 들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생도들의 앞에서 대결을 펼치면서, 허튼 수작을 부린다면 소교주 후보로서 입장만 우스워질 것이다.
천유찬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들어나 보자.”
“내가 이긴다면 네가 가진 노란색 명찰을 전부 받겠다.”
-웅성웅성!
‘이 놈이 정말 돌았구나.’
‘노란 명찰을 내놓으라니? 이런 얕은 수작을!’
천여운의 말에 반응을 보인 것은 오히려 천유찬의 수하들이었다.
내기의 대가로 노란 명찰을 전부 넘긴다면 자신들더러 삼 단계 시험을 포기하라는 것과 차이가 없었다.
당연히 격한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역시 그걸 노린 것이었냐?”
천유찬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대충 예상은 했지만 이번 내기를 통해 끝을 보자는 의미인 듯 했다.
잠시 고민하던 천유찬이 뭔가 좋은 생각이 났는지 입술을 실룩이며 말했다.
“그렇다면 나 역시도 이긴다면 네가 가진 명찰을 받도록 하지. 그런데 명찰을 네 개나 줘야 하는 내가 손해를 보는 것 같으니. 후후, 명찰을 더해서 네 수하인 백기도 받도록 하겠다.”
자신이 제안한 대가를 만족스러워 하는 천유찬의 말에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백기가 화들짝 놀라했다.
설마 천유찬이 아직까지도 자신을 포기하지 않았을 줄은 몰랐다.
어지간히 인재에 대한 집착이 심했다.
“괜찮겠지?”
천유찬의 질문에 백기가 인상을 찡그렸다.
까딱 잘못해서 천여운이 패하게 된다면 그렇게 꼴도 보기 싫은 천유찬의 밑으로 들어 가야할 판국이었다.
‘젠장! 정말 괜찮은 거냐?’
백기가 천여운의 눈을 바라보았다.
정말 자신이 있는 것인지 확인하고 싶어서 쳐다본 것이었는데, 그 영롱한 눈빛에는 아무런 떨림이나 두려움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 모습에 신뢰가 생겨난 백기가 천유찬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내기가 제법 할 맛이 나는군.”
이런 내기라면 손해를 보지 않는다는 생각에 천유찬이 만족스러워했다.
어차피 접무도법이 아니라 어설프게 칠마검법을 펼친다면 오 초식이 아니라, 삼 초식 이내에도 파훼하고 팔을 잘라버릴 자신이 있었다.
“덤벼라. 이번에는 선공을 양보해주마.”
천유찬이 오만한 표정으로 손을 까딱거리며 말했다.
이러한 도발에도 천여운은 감정변화 없이 담담하게 앞을 향해 일 보 내딛었다.
-쿵!
그리고 천유찬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천여운의 검결지에서 흘러나오는 흰 빛의 검기에서 평범한 검식이 시작되었다.
그것은 칠마검에 있는 검육(劍六)과 흡사해 보이는 검식의 전개였다.
‘어리석긴. 괜한 고집을 부려서 네 녀석의 소중한 오른팔과 수하, 노란 명찰까지 전부 잃는구나. 쯧쯧.’
천유찬이 속으로 그를 비웃었다.
무공 교두들을 상대하기 위해 칠마검의 비급서를 수십 번이나 읽었다.
그 허점은 눈을 감고도 보일 정도로 극명했다.
“하압!”
-촤촤촤촤촥!
천유찬이 오른손에 도기를 생성하며 큰 기합성과 함께 환마도법의 제 사초식인 도환도첨(刀幻道添)을 펼쳤다.
그의 도초가 현란하게 회오리를 치며 천여운이 펼치는 검초에 파고들었다.
-채채채채챙!
두 사람의 검초와 도초가 정면에서 부딪쳤다.
그 순간 자신만만하게 도초를 펼치던 천유찬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뭐, 뭐지? 이게 정말 칠마검이라고?’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분명 평범하게 시작한 천여운의 검식이 갑자기 변화를 일으켰다.
단순했던 검식이 하나씩 더해갈수록 현묘한 변화와 더불어 고절한 검초로 바뀌어갔다.
그 변화는 고요했던 호수에 격랑이 일어나는 것과 같았다.
-채채채채챙!
‘안 돼. 이러다간…큭!’
다섯 번째 식부터는 도저히 막을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도초를 펼치던 천유찬의 팔이 꼬이기 시작했다.
안되겠다 싶어서 변초를 쓰기 위해 환마도법의 제 오 초식을 펼치려했는데, 그럴 틈이 없었다.
-파팍!
“헛?”
도초를 펼치기도 전에 도기를 두른 손이 튕겨나갔다.
신형이 흔들리는 순간 검초가 만들어낸 격랑 속으로 천유찬의 몸이 빨려 들어갔다.
-촤촤촤촥!
“크으으윽!”
다양한 변화를 일으키는 검식들이 천유찬을 스치고 지나갔다.
검기가 요혈들을 파고들면서 피가 터져 나왔고, 천유찬이 몸이 이리저리 튕기며 고통스러워했다.
그리고 검초의 마무리인 마지막 스물네 번째 식이 천유찬의 목을 베려는 순간, 천여운이 그 방향을 틀었다.
-촤악!
“끄아아아아아악!”
천유찬의 입에서 찢어질 것 같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이것을 지켜보는 모든 생도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툭! 꿈틀꿈틀!
천유찬의 잘려나간 오른팔이 땅바닥에 떨어져, 아직까지 신경이 살아있는지 꿈틀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