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69)
# 21장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4) #
천유찬을 따르는 생도들은 당연히 그의 승리를 확신했다.
그 동안 그들이 지켜보았던 천유찬은 평소의 경박한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을 만큼, 독할 정도로 무공 연마를 하는 노력하는 영재였다.
본래의 타고난 실력에 부지런함마저 갖췄으니 성장 속도가 남달랐다.
이곳에 입문할 당시만 하더라도 절정의 경지였던 그는 부단한 노력으로 절정의 극에 올라 생도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이런 모습에 생도들은 천유찬을 더욱 신뢰하고 그야말로 소교주로서 가장 적합한 후보자라고 확신하게 만들었다.
‘고작 칠마검 따위로 공자님을 상대한다고? 하!’
‘천유찬 공자께서 질 리가 있나.’
‘멍청한 놈. 제까짓 놈이 실력이 늘어봐야.’
그러나 막상 대결의 결과는 모두가 예상했던 것과는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촤악!
천여운의 검기가 쾌속하게 스쳐지나가며 무언가 바닥에 떨어졌다.
파닥거리는 그 무언가는 바로 천유찬의 잘린 오른팔이었다.
“끄아아아악!”
-털썩!
팔이 잘려나가자 천유찬이 비명을 지르고는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극도의 자존심으로 기절할 것 같은 고통에도 이를 악물고 겨우 버텼지만, 그의 상태는 최악이라 할 만큼 좋지 않았다.
“내기는 내가 이겼다.”
천여운이 오만하게 밑으로 천유찬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마, 말도 안 돼!’
‘공자님께서 패하시다니!’
‘고작……일 초식 만에…..이,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인가?’
누구 하나 눈앞에서 벌어진 광경을 보고도 믿기 힘들었다.
오히려 부정하고 싶을 정도였다.
그 강한 천유찬이 고작 한 초식도 버티지 못하고 오른팔마저 잃고 말았다.
마지막에 와서는 천여운이 목을 베려던 검식의 경로를 틀어서 팔을 베었으니 목숨을 구해준 셈이기도 했다.
“크윽!”
검기에 잘려나간 팔의 단면에서 많은 피가 흘러내렸다.
잘린 팔 만큼은 아니더라도 요혈에서도 피가 흘렀기에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천유찬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타타탁!
천유찬 스스로가 잘린 부위 쪽의 혈도를 눌러서, 출혈이 심하지 않도록 지혈시켰지만 빨리 의무실에 가야할 만큼 상태가 위태로워 보였다.
“공자님!!!”
양도종의 우금필을 비롯한 천유찬의 수하들이 놀란 나머지 다친 그에게 달려가려 했으나, 두 발자국 채도 걷지 못하고 멈춰야만 했다.
-우웅!
천여운의 검결지에서 뻗어 나온 날카로운 검기가 천유찬의 반대쪽 왼팔을 겨냥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이 자식이!”
“멈춰. 한 발자국만 더 걸어오면 남은 팔도 자른다.”
“아, 안 돼!”
협박을 무시하고 달려들기에는 정말 왼팔마저 자를 기세였다.
만약 다른 생도들이 그런 것이라면 허세라고 치부하고 달려들었을지 모르겠지만, 천여운은 그 동안 남들과는 다른 행보를 보여주었다.
무인의 단전마저 파괴시킨 녀석이 팔을 자르는데 망설임이 있을 리가 만무했다.
‘크윽! 저놈이라면 정말 한다.’
천유찬의 수하들을 다시 뒤로 물러나야만 했다.
더군다나 위급한 상황이었기에 미처 의식하지 못했는데, 천여운의 수하들 역시도 언제라도 출수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덕분에 천유찬의 패배로 자신들이 열세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말았다.
“자! 약속을 지켜라.”
천여운이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있는 천유찬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러자 천유찬이 고통스러워하는 와중에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대체 어떻게 한 거지?”
“무엇을 말이냐?”
“하찮은 칠마검 따위로 어떻게 그런 고절한 초식을 펼쳤느냔 말이다.”
마교의 또 다른 전설이라 불리는 검마가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칠마검은 일류 무공에 불과한 검법이었다.
그런데 천여운이 펼친 검 초식은 가히 절학이라 할 만큼 상상을 초월하는 위력이었다.
마교 내에서도 도법으로는 세 손가락 안에 든다고 할 수 있는 도마종의 환마도법으로도 어찌할 수 없었다.
“하찮은 칠마검?”
“…..그래!”
“그렇게 보였다면 네 수준으로 검 초식을 거론하기에는 아직 멀었다.”
“!?”
천여운의 단호한 말에 천유찬이 벙 찐 얼굴이 되었다.
예전에 처음 천여운과 만났을 당시에 그가 했던 말을 고대로 돌려주었다.
‘그 정도 수준으로 내 목숨을 거론하기에는 아직 멀었어.’
물론 빚을 갚아준 것도 있었지만, 아직 천유찬의 수준으로는 칠마검을 비롯하여 검마의 파훼 검법의 신묘함을 이해하기에는 정말로 역량이 부족했다.
어이가 없어하던 천유찬이 감정적으로 복잡해졌는지 쓰라린 표정을 지었다.
‘……소교주가 되기 위해 그렇게 달렸건만.’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양팔이 멀쩡해도 천여운에게 패했는데, 이젠 외팔이 되었으니 어찌할까.
더군다나 환마도법을 연마하던 오른팔을 잃었으니 그의 무공은 격감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래서는 검마종의 소교주 후보자인 천경운마저도 상대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런 생각까지 들자 점차 허탈하던 감정이 불꽃처럼 타오르기 시작했다.
한참을 입을 다물고 있던 천유찬이 이를 갈며 말했다.
-으드득!
“노란명찰을 넘겨줘라.”
그 말에 천유찬 수하들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이걸 넘기게 된다면 삼 단계 시험을 치를 수 없게 된다.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우두머리인 천유찬이 내기에서 졌기 때문에 약조를 어긴다면 오히려 그의 입장만 우스워지는 셈이었다.
“천여운!….하아….이게 끝이라고는 생각하지 마라.”
-털썩!
그 말을 끝으로 천유찬은 더 이상 고통을 참지 못하고 쓰러졌다.
출혈이 심했기 때문이었다.
패배를 해서 완전히 절망했다고 생각했는데,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다는 모습이 다른 소교주 후보자들과는 의지나 근성이 다르긴 했다.
‘공자님!’
그 모습에서 위안이 되었는지 천유찬의 수하들의 눈빛에도 결의가 차올랐다.
마치 그 눈빛은 ‘두고 보자. 언젠가 빚을 갚아주마.’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흥!”
양도종의 우금필이 오지란이 가지고 있던 노란 명찰과 자신의 것을 떼어서 들고 왔다.
마지못해 넘겨주면서도 눈빛을 부라리며 천여운을 무섭게 노려보았다.
-탁!
우금필이 천여운에게 노란 명찰들을 넘기며, 목소리에 힘을 주어 경고했다.
“공자님의 말씀대로 이게 끝이라고 생각…”
바로 그때였다.
-퍽!
미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천여운의 주먹이 우금필의 복부에 꽂혔다.
“크웨에에엑!”
속에 있는 장기기관이 전부 뒤틀리는 느낌과 함께 우금필이 피를 토해냈다.
어찌나 고통스러웠던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버린 우금필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숨 막힌 사람처럼 거친 호흡을 내뱉더니, 어이가 없다는 눈빛으로 소리쳤다.
“헉!…헉! 이, 이게 무슨 짓이냐! 약조를 지켰는데.”
“노랑명찰로 끝낸다는 약조를 한 적이 없는데.”
“뭐?”
우금필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반문했다.
적어도 수장들끼리 대표로 일기토를 겨뤘다면 승패가 결정 난 것인데, 노란 명찰로 끝내지 않겠다는 무슨 의미인가.
그러자 천여운이 빙그레 웃으며 쓰러져 있는 천유찬을 쳐다보며 말했다.
“아까 천유찬에게 좋은 걸 배웠거든. 후환을 남기지 말라. 이런 것?”
그 말에 우금필은 온몸에 소름이 돋아왔다.
아무래도 천유찬이 부상을 입고 기절해있는 가짜 천여운의 힘줄을 자른 것을 말하는 듯 했다.
결국 자신들마저도 쓰러뜨려서 후환을 없애겠다는 소리였다.
“정말 독하구나. 그렇다고 패배한 상대를 이렇게까지….”
-쾅!
“컥!”
우금필이 미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안면을 강타하는 괴력이 실린 주먹에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눈이 뒤집혀서 기절하고 말았다.
쓰러져 있는 우금필을 향해 천여운이 경멸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니들은 하는 건 괜찮고, 당하면 독하다는 거냐. 억지 논리 펼치지 마라.”
이에 천유찬의 수하들은 뭔가 틀어졌다는 것을 알아챘는지 방어태세를 취했다.
천여운이 수하들을 향해 큰 목소리로 외쳤다.
“전부 쓰러뜨리고 팔, 다리를 전부 부러뜨려!”
“네!!!”
그 명이 떨어지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천여운의 수하들과 전 십이 조의 생도들이 일제히 적들에게 신형을 날렸다.
“비, 빌어먹을!”
천유찬의 수하들의 입에서 절로 거친 소리가 튀어나왔다.
설마 천유찬을 쓰러뜨린 것도 모자라 자신들마저 노릴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듯 했다.
그들에게 있어서 최악의 상황이었다.
최대 전력이라 할 수 있는 천유찬, 우금필이 쓰러졌고, 패권종의 진유 역시도 아까 전 천여운에게 내상을 입었기에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았다.
‘칫, 나 혼자서 어찌 하란 말이야! 정말 망했구나!’
유일하게 멀쩡한 절정 초입의 고수인 오지란 혼자서 분전한다고 될 상황이 아니었다.
수적으로도 열세했기에 어떻게 반전을 꾀할 수가 없었다.
결국 불과 일 각 채도 되지 않아, 천유찬의 수하들은 세, 네 명을 제외하고는 전부 제압되고 말았다.
세, 네 명은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도망쳤기 때문이다.
어차피 충성심이 낮은 수하들이라면 특별히 후환을 걱정할 필요는 없기에 억지로 붙잡진 않았다.
여기서 당한다면 끝이라는 것을 알기에 천유찬의 수하들은 고군분투를 했지만, 천여운이 참전하면서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우드득!
“끄아아악!”
“아악!”
“내 다리!”
비명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천여운과 수하들은 기어코 천유찬의 수하들의 팔다리를 전부 부러뜨렸다.
심지어 여자 생도인 오지란도 예외가 아니었다.
‘으으으으으!’
‘이 놈은 정말 독종이다. 건드리면 안 돼.’
그들과 부딪칠 당시만 하더라도 쌍욕을 하면서 반항했던 그들이었지만, 막상 팔다리가 전부 부러지고 나자 두려움으로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모든 상황이 정리가 되고 천여운이 갈연을 불렀다.
쓰러뜨린 적들을 의무실로 옮기려던 갈연이 의아해하며 천여운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뜻밖에도 천여운은 그들에게 노란 명찰 두 개를 넘겼다.
“받아라.”
“이, 이건…..”
갈연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설마 천여운이 자신들에게 노란 명찰을 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어째서 노란 명찰을?”
엄밀히 말한다면 자신들 역시도 어젯밤 백기들을 습격하는데 일조를 했기에 특별히 노란 명찰을 바랐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자신을 이용한 천유찬에게 복수를 하는 걸로 만족하려 했던 그들이었다.
“어차피 이 많은 노란 명찰을 다 들고 있어봐야 쓸 데도 없다.”
천여운이 가지고 있는 노란 명찰은 총 여섯 개였다.
무공 교두 호진창에게 획득한 명찰 하나와 하일명에게 빼앗은 명찰 하나, 그리고 천유찬에게서 빼앗은 명찰 네 개였다.
아무렇지 않게 말을 하는 모습에 갈연의 동공이 흔들렸다.
‘아아….경쟁을 위해서 노란 명찰을 굳이 주지 않아도 되는데. 이렇게 넘기다니 이 분은 정말 그릇이 다르구나!’
천유찬에게 한 번 데이면서 소교주 후보자들에 대한 신뢰가 없던 갈연과 십이 조의 생도들이었지만 이런 호의에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갈연은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어차피 이번 일로 우리들은 도마종에 밉보인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천여운 공자가 소교주가 되도록 돕는 것이 옳지 않을까?’
고민하는 그들의 모습에 고왕흘의 눈빛이 반짝였다.
사실 천여운에게 노란 명찰을 주라고 건의를 한 것은 고왕흘이었다.
앞으로의 소교주 쟁탈전과 적들을 감당하기 위해 세력을 계속해서 확장해야 하는 천여운에게 새로운 조력자들을 만들기 위한 계책이었다.
‘제발 통해야 할 텐데.’
갈연과 전 십이 조 생도들이 천여운을 바라보는 눈빛에 감격과 존경이 비치고 있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와 줘야했다.
그런 바람이 통하기라도 한 것일까?
-털썩! 털썩!
갈연을 포함한 열아홉 명의 생도들이 전부 무릎을 꿇었다.
그 많은 인원이 한 번에 천여운의 앞에 무릎을 꿇자 분위기가 고조되며, 지켜보는 천여운의 수하들의 더욱 흥분하여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이게 무슨 짓이지?”
천여운이 아무 내색하지 않고 그들에게 물었다.
그러자 갈연과 생도들이 일제히 바닥에 이마를 세차게 박으며 외쳤다.
-쿵!
“천여운 공자님께 충성을 맹세하고 싶습니다. 저희를 받아주십시오!”
진심과 열망이 담긴 그들의 눈빛에 천여운의 입 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