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73)
# 23장 칠마검을 습득시켜라 (2) #
‘이걸 만드는데 꽤 공을 많이 들였다. 본 장로의 역작이라 할 수 있지. 오 년은 거뜬히 쓸 수 있을 테니, 주의사항만 지키길 바란다.’
마교의 십이 장로인 천면귀인(千面鬼人) 환의가 인피면구를 주기 전에 했던 말이다.
돼지가죽으로 만들어진 인피는 썩지 않도록 방부제 처리가 되어있고, 천잠사를 엮었기 때문에 탄력성이 뛰어나 어지간한 충격에도 찢겨지지 않는다.
더군다나 환의가 어떤 술법을 부려놓기라도 했는지, 피부색도 감정에 따라 바뀔 정도로 정교했다.
딱 한 가지 불편한 점이 있다면 매번 저녁마다 면구를 벗어서 공기가 통하게 하고, 접착 약도 새롭게 발라야 했지만 그런 점도 감수한 문규였다.
‘대체 어떻게 안 거야? 귀신도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정교하다 했잖아요!’
십이 장로 환의는 누구도 인피면구를 알아보지 못할 거라 호언장담했다.
그런데 천여운은 인피면구를 알아차린 것도 모자라 심지어 여자라는 사실마저 알아냈다.
문규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얼굴이 못나서 인피면구를 했다고 할까?……피휴, 아니야. 바보도 아니고 그걸 믿을 리가 없잖아.’
못생겨서 그렇다고 하기에는 성별을 숨긴 것을 설명할 수가 없었다.
마땅한 핑계 거리를 생각할 만한 게 없었다.
아까 전에 겪었던 그를 떠올리면 타인을 쉽게 신뢰하는 유형은 아닌 듯 했다.
‘이익. 아직 반년도 안 되었는데, 벌써 들키면 어쩌자는 거야.’
혼자 온갖 표정을 짓다가 울상이 되는 모습에 천여운이 인상을 찌푸렸다.
허봉만큼이나 자신의 감정이 잘 드러나는 문규였다.
고민을 하던 문규가 천여운을 한 뼘 올려다보며 애원하는 눈빛으로 말했다.
“공자님! 제발 아무한테도 얘기하지 말아주세요.”
“…..얘기한다고 쫓겨나는 것도 아닐 텐데, 왜 숨기는 거지?”
천여운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무림을 살아가는 무인들이 아니라 평범한 민초의 범인들이라면 모를까.
마교는 남녀를 떠나서 실력으로 인정받는 강자존의 법칙을 따른다.
굳이 얼굴과 성별을 숨겨가면서 활동할 이유가 없었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불편한 몸으로 무릎까지 꿇어가며 수하로 들어오길 청했기에 받기는 했지만 문규가 여전히 수상하게 느껴지는 천여운이었다.
“혹시 얼굴에 상처가 있다거나, 흉측하기라도 하나?”
“…….”
순간 말문이 막혔다.
얼굴이 못나서 그랬다는 말은 바보가 아닌 이상 믿지 않겠지 라고 생각했던 문규였다.
그런데 저렇게 진지한 눈빛으로 묻는 것을 보면, 정말 자신이 인피면구로 얼굴을 가린 이유 중 하나로 짐작한 듯 했다.
이에 기분이 나빠진 문규가 살짝 눈을 흘기더니,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휴, 공자님. 그럼 약속부터 해주세요.”
“약속?”
“어디 가서 절대로 발설하지 않겠다고!”
“…..알겠다.”
이상하게 말려드는 느낌을 받았기에 천여운이 퉁명스럽게 답했다.
다리가 불편한지 문규가 건물 벽에 살짝 기대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지금 제 모습은 쌍둥이 동생의 얼굴이에요.”
“응?”
문규는 이란성 쌍둥이라고 했다.
그녀의 남동생 이름은 문유로 종파에서 유일하게 종주를 이을 혈손이었다.
문규의 아버지인 문성은 두 쌍둥이가 태어나기도 전에 마교의 사천성 지부에 파견을 나갔다가, 사파의 습격으로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출산을 앞두고 있던 그녀의 어머니는 그 소식에 충격을 받고 난산(難産)을 하고 말았다.
“제 동생을 낳는 도중에 어머니는 돌아가셨어요.”
‘아….’
듣고 보니 그녀는 부모가 없이 자랐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천여운은 내색하지 않았지만 내심 동질감을 느꼈다.
양친을 여읜 이야기를 하면서 문규의 눈빛에는 씁쓸함이 담겨 있었지만, 애써 슬픈 내색을 보이진 않았다.
“제 동생은 난산 끝에 태어나서 몸이 병약했죠.”
같은 쌍둥이였지만 순산을 했던 문규와 달리 동생인 문유는 분만시간이 길어지면서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
선천적인 천치(天癡)로 태어난 것이었다.
아들을 잃은 것도 모자라 하나뿐인 손자가 천치로 태어났으니 구 장로 문연은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닐 수가 없었다.
종파의 종주를 대대로 남자가 이어온 마룡장종에는 불행스러운 일이었다.
고심 끝에 문연은 이 사실을 대외적으로 숨겼다.
덕분에 마교의 사람들은 마룡장종에 쌍둥이가 태어났다는 것 이외에는 어떠한 사실도 알 수가 없었다.
후손을 보기 위해 젊은 후처를 들이기도 했지만 아이를 가지는 것은 천륜이었다.
하늘은 더 이상 마룡장종에 아이를 점지해주지 않았다.
문연은 천치인 손자를 치료하기 위해 많은 공을 들였지만, 선천적으로 그렇게 태어났으니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할아버지는 많이 슬퍼하셨어요.”
겨우 당대에 와서 여섯 종파에 버금갈 만큼 세를 키웠는데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런데 새옹지마라고 하였던가.
천치로 태어난 손자 문유와 달리 손녀 문규의 무에 대한 재능은 가히 천부적이라 할 만큼 놀라웠다.
고작 열여섯의 나이에 절정의 경지에 이를 만큼 엄청난 무재에 문연은 기뻐하는 한편으로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 와중에 점점 마도관의 입관 날이 가까워졌죠.”
시일이 가까워질수록 문연은 노심초사하게 되었다.
그 날 교내의 모든 종파는 손자, 자식들을 누구 할 것 없이 마도관에 입관시켜야 했다.
이제 겨우 말을 할 줄 아는 문유를 무슨 수로 마도관에 보낸단 말인가.
그렇다고 손자를 두고 손녀만 보내게 된다면, 문제가 있음을 시인하는 꼴이었다.
“꼭 밝히지 못할 이유가 더 있나?”
천여운이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물론 손자가 천치라고 밝혀지면 종파의 자존심에 금이 갈 수도 있었지만,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결국은 드러날 수밖에 없는 문제였다.
“……왜냐하면 여섯 종파에서는 어떻게 해서든지 저희 마룡장종을 산하에 두고 싶어 하거든요.”
교의 근간을 이루는 여섯 종파.
그들은 늘 서로를 견제하고 균형을 이루고 있다.
지금은 현마종에서 제일 압도적인 세를 구가하고 있었지만, 여기서 마룡장종을 산하로 받아들이게 된다면 일발 역전이 가능해진다.
“안 그래도 종종 매파를 보내오는데, 만약 저희 쪽의 사정을 알게 된다면. 으으.”
문규가 몸서리를 쳤다.
종파의 종주를 맡을 후손이 제 구실을 못하고 있는 마룡장종이다.
이런 마룡장종의 손녀와 맺어지게 된다면 종파 간의 연계를 넘어서, 고스란히 그 힘을 가져올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그렇군.’
천여운이 납득이 가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에 천치인 문유가 무리해서 마도관에 입관했다면 여섯 종파의 후손들이나 소교주 후보자들이 무슨 수를 쓰던지 그를 사고로 몰아갔을 것이다.
문유마저 없게 된다면 확실하게 마룡장종을 흡수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할아버지께서는 어떻게든 여섯 종파와의 관계를 멀리하기 위해 중립을 표방하셨죠.”
마룡장종이 당대에 와서 여섯 종파의 손에 넘어가는 것을 원하지 않는 구 장로 문연이었다.
그렇게 노심초사 하는 문연에게 손녀인 문규가 뜻밖의 제안을 한다.
“할아버지께 남장을 하고 마도관에 들어가겠다고 했어요.”
그녀 역시도 종파의 이런 상황을 잘 알기에 자신이 문유를 대신해서 마도관에 들어가겠다고 했다.
“차라리 제가 문유인 척을 하고 마도관에 입관해서 훌륭한 성적을 거둔다면 여섯 종파에서도 매파를 보내거나 허튼 수작을 부리진 않을 거라 말씀드렸죠.”
처음에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했던 문연이었다.
하지만 마도관의 입관 날이 다가올수록 초조해진 구 장로 문연은 결국 그녀의 뜻을 받아들였다.
문연은 유일하게 종파의 사정을 알고 있는 막역지우(莫逆之友)인 십이 장로 환의에게 부탁하여 문유의 얼굴을 본뜬 인피면구를 제작했고, 그 결과물이 바로 지금 문규의 순박한 얼굴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문규는 동생의 이름을 쓰지 않고 자신의 본명으로 마도관에 입관했다.
그것은 혹시나 나중에 성별이 들켰을 경우, 종파나 동생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기 위한 그녀의 고육지책이었다.
‘이런 사연이 있었구나.’
문규가 인피면구를 쓰고 성별까지 속여가며 마도관에 들어오게 된 사정을 알게 되자, 천여운은 그녀에 대한 의심이 깨끗하게 사라졌다.
그리고 처음으로 다른 누군가의 고충을 이해하는 마음이 생겼다.
‘되게 진지하게 듣네.’
진지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저도 모르게 인상을 써가며 몰입하는 모습에 문규가 피식하고 웃었다.
“이제 제가 왜 인피면구를 했는지 아셨죠?”
천여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문규 역시도 본의 아니게 정체를 들키지 않기 위하여 사연을 말한 것이지만, 처음으로 자신의 감춰왔던 비밀을 말하고 나니 일부 답답함이 해소되었다.
문규가 걱정이 되었는지 다시 한 번 강조하듯이 말했다.
“공자님. 남아일언중천금이라고 했죠?”
“……그래.”
“약속하셨으니까 비밀을 지키셔야 해요! 꼭!”
남자인 문유의 인피면구로 말투는 여성스러운 것이 참 어색하긴 했다.
그것이 궁금해졌는지 천여운이 물었다.
“목소리도 변조한 건가?”
일부러 목소리를 굵게 내고 있던 문규였다.
그녀가 방긋 웃더니 지금까지와 다른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연하죠. 하나라도 허투루 하면 금방 들키거든요.”
맑고 또랑또랑한 소리에 천여운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이렇게 들으니 확실히 소녀가 틀림없었다.
목소리를 굵게 낼 때는 변성기가 지나지 않은 소년 같았는데 신기하긴 했다.
“음음, 그런데 계속 목소리를 일부러 굵게 내다보면 목이 금방 쉬어요.”
그래서 되도록 필요한 말 이외에는 잘하지 않는 문규였다.
“원래 목소리로 하니까 목이 한결 편하네요. 헤헤.”
기분이 좋아졌는지 해맑게 웃는 모습에 천여운이 자신도 모르게 입 꼬리가 올라갔다.
“앗?”
그때 문규가 놀란 눈으로 고개를 들어서 어두운 밤하늘을 바라보더니, 허둥지둥 뭔가를 품에서 꺼냈다.
뭔가 약이 들은 작은 호리병이었다.
“하마터면 깜빡할 뻔했어요.”
“응?”
“공자님이랑 대화 나누느라고, 깜빡했는데 약을 발라야 하는 시간이에요.”
“그게 접착 약인가?”
“네. 이거 얼마나 귀찮은데요. 매일 저녁마다 접착 약을 다시 안 바르면 면구가 언제 떨어질지 모른다고요.”
“아!”
정교한 인피면구를 착용하면서 유일하게 번거로운 점이었다.
환의의 인피면구 제작 기술은 매우 뛰어나서 이것을 쓰고 있어도 갑갑한 점은 없었지만 늘 접착에 신경 써야 하는 단점이 있었다.
“안 그래도 한 쪽 팔을 다쳐서 혼자 접착 약을 바르기 너무 힘들었는데. 이건 다행이네요.”
-쭈우우욱!
그 말과 함께 문규가 인피면구의 이음새 부분을 잡더니, 조심스럽게 그것을 당겼다.
그러자 문규의 얼굴을 덮고 있던 면구가 고무처럼 주욱 늘어나더니, 순박했던 인상의 얼굴 피부가 벗겨지고 원래의 얼굴이 드러났다.
“아…..”
천여운이 자신도 모르게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녀의 얼굴은 천여운이 막연히 상상했던 것과 완전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새하얀 얼굴에 초롱초롱한 눈망울.
복사꽃잎으로 물들인 듯한 분홍 입술은 조그마한 앵두 같았다.
달빛에 비친 소녀의 모습은 타인에게 무뚝뚝한 천여운 마저도 넋을 놓게 만들었다.
“자! 두 손 벌려보세요.”
“응? 이렇게?”
“네!”
천여운의 두 손을 올리자 문규가 인피면구를 거꾸로 올려놓았다.
문규는 작은 호리병의 마개를 열어서 접착 약의 액체를 인피면구의 안쪽 면에 고루고루 바르기 시작했다.
“귀찮을 만하죠? 헤헤.”
반달 모양의 눈웃음을 짓는 문규의 모습에 천여운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처음으로 이성을 바라보면서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미묘한 감정이 무엇인지를 알 수 없기에 천여운은 이내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왔다.
“됐다. 고맙습니다.”
접착 약을 전부 바른 문규는 다시 인피면구를 피부에 붙였다.
한 손으로 하는 힘겹게 이음새를 붙여나가는 것이 불편해보였기에 천여운이 그것을 도와야만 했다.
인피면구를 붙인 문규는 눈이 처지고 순박한 인상인 동생 문유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공자님 덕분에 오늘은 빨리 붙였네요. 비밀을 얘기한 게 꼭 손해를 보는 것만도 아니네요. 헷.”
별 것 아닌 것에도 긍정적으로 말하는 문규였다.
그렇게 인피면구에 이야기가 마무리 되고, 문규가 천여운에게 물었다.
“저는 보시다시피 아직 낫지 않아서 당장에 훈련은 힘들어요. 공자님은 격세석 연공실에서 훈련하시다가 숙소로 오실 거죠?”
“그래.”
“저는 숙소로 돌아갈게요. 공자님의 숙소가 몇 호실이죠?”
“사 관, 칠 호실인데?”
“오늘부터 공자님의 조에 들어갔으니, 숙소에 짐이라도 옮겨야겠네요. 그럼 있다가 뵐게요.”
그 말과 함께 문규는 절뚝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숙소 방향으로 갔다.
순간 아무 생각 없이 격세석 연공실로 들어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던 천여운이 멈칫했다.
“잠깐만…..쟤 여자잖아.”
다시 남장을 하면서 위화감이 없었는데 문규는 여자였다.
천여운은 한동안 그 자리에 멈춰서서, 이 상황을 어찌해야 할지 난감해 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