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81)
# 26장 어쩌다 보니 (2) #
무공 교두인 상문여가 의무실에서 정신을 차린 것은 사흘이 지나서였다.
갈비뼈가 부러져서 튀어나올 만큼 중상을 입었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막 깨어난 상문여는 외적인 고통보다도 생도에게 패했다는 분함에 큰 자괴감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었다.
‘이게 대체 무슨 망신이란 말인가.’
다른 무공 교두들과 수많은 생도들이 보는 앞에서 패하고 말았다.
타인의 이목과 명예에 집착이 많은 상문여로서는 그야말로 개망신을 당한 셈이었다.
그런 자괴감은 이윽고 분노로 바뀌게 된다.
‘본신 절기만 사용할 수 있었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크윽.’
당시에는 일류 무공인 칠마검만을 써야한다는 제약으로 원래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만약 원래의 무공을 펼쳤다면 천여운을 십 초식 내로 제압하거나 죽일 자신이 있었다.
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절정 초입에 불과한 실력이니 말이다.
-으득!
상문여가 이를 갈며 복수를 다짐했다.
의무실에서 나간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천여운을 패퇴시키고 마도관에서 내보내리라.
그렇게 쓰디 쓴 인내의 나날 끝에 드디어 그 날이 다가왔다.
내심 천여운이 삼 단계 시험을 통과하기를 바랐다.
그래야만 사 단계 시험인 무공 교두와의 대결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손으로 그를 짓밟아야만 의미가 있었다.
너무 오랫동안 이 순간을 기다려왔기에 더 이상의 인내심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내게 도전하기를 기다릴 필요가 있나? 어차피 저 놈을 병신으로 만들어놓은 후에 내게 도전했다고 하면 될 일이 아닌가.’
발경으로 뇌를 손상시킨다면 이지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
어차피 여섯 종파의 소교주 후보자들처럼 특별한 뒷배가 없는 놈이 병신이 된다고 해서 누가 자신을 탓할 거란 생각도 안 들었다.
‘건방진 놈! 병신으로 만들어주마!’
-촤아아아악!
상문여가 기습적으로 천여운의 목을 향해 도를 휘둘렀다.
분명 무공의 경지가 자신보다 높으리라곤 생각하지 않지만 지난번에 겨뤘을 때 그 외공만큼은 경이로웠다.
‘선공으로 단숨에 쓰러뜨린다.’
보는 이목도 없었기에 거리낄 것도 없었다.
상문여의 날카로운 도날이 천여운의 목에 닿으려던 찰나였다.
-챙!
‘아니?’
언제 뽑았는지 천여운의 도가 그의 기습 공격을 막아냈다.
자신이 감지하지 못할 정도로 빠른 발도에 놀란 상문여가 그를 노려보았다.
그런 상문여에게 천여운이 여전히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
“잘됐군요. 분명 말했습니다.”
“무, 무엇을 말이냐?”
“교두님 입으로 이게 사 단계 시험이라고 했습니다.”
-덜덜덜!
상문여의 귀에는 천여운의 말이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기습 공격을 막은 것에 화가 나서 십성 공력으로 도를 밀어내려 했는데, 꿈쩍도 하지 않는데다가 오히려 도병을 잡고 있는 자신의 손이 떨리기마저 했다.
‘이 녀석 공력이 어째서?’
상문여의 무위는 완숙한 절정의 경지였다.
불과 스물여드레 전만 하더라도 절정 초입이었던 천여운이 막을 수 있는 공력이 아니었다.
그런데 막다 못해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설마 그 사이에 내공이 늘었단 말인가?’
-챙!
그 순간 천여운의 도에서 강한 반탄력이 생겨나며 상문여의 도가 튕겨져 나갔다.
상문여의 신형이 흔들리며 뒤로 밀려났다.
도를 쥐고 있는 손 전체가 통증으로 아려왔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복수를 한다는 생각에 들떠있던 상문여의 눈빛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이놈 무공이 늘었구나.’
그 짧은 기간 안에 설마 진보했으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방금 전에 반탄력을 생각한다면 적어도 자신과 버금가는 내공을 지녔다.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고작 스물여드레 만에 내공이 이렇게 늘 수 있단 말인가?’
마룡단을 섭취한 것도 아니었는데 늘어난 내공에 당황스러웠다.
그것은 독마종의 백오가 강제로 먹인 산공독단으로 인한 기연이었지만, 상문여가 알 도리가 없었다.
‘후우, 진정하자. 어차피 내공이 늘었다고 해서 무공의 경지까지는 아닐 테지.’
절정의 경지부터는 위로 올라가기 위해선 깨달음이 필요로 하다.
설사 내공이 늘었다고 해서 자신의 경지를 밟았을 리는 없을 것이다.
“제법 실력이 늘었구나. 그렇다면 더 이상 봐주지 않겠다.”
“그러시죠.”
“이, 이 건방진 놈이!”
천여운의 태연한 대답에 화가 난 상문여가 상기된 얼굴로 도에 기를 발했다.
-우웅!
상문여의 도에서 선명한 하얀 빛의 도기가 생성되었다.
이렇게 된 이상 도기로 저 건방진 놈의 팔 한 짝이라도 앗아야 속이 풀릴 것 같았다.
“하압!”
강한 기합과 함께 상문여가 자신의 상경도법의 절초인 경이준절(輕二浚絶)을 펼쳤다.
그의 도가 두 갈래로 갈라져서 좌우에서 동시에 쇄도해왔다.
‘쾌속하다. 하지만.’
접무도법에 비하면 느려 터졌다.
천여운이 몸을 빠르게 회전하며 그의 손에 들려있는 도가 잔상을 일으키며 양 옆에서 쇄도해오는 두 갈래의 도식을 막아냈다.
-채챙!
접무도법의 제 이 초식 회원접경(回圓蝶警)이었다.
도기가 실려 있는 초식이 막히자 상문여의 두 눈이 커졌다.
‘이걸 막아? 서, 설마?’
상문여의 두 눈동자에 천여운의 도에 서린 하얀 빛의 선명한 도기가 보였다.
완벽한 형태의 도기는 그가 적어도 완숙한 절정의 경지 이상의 실력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안 돼. 이, 이 녀석 절정의 초입이 아니야.’
당황한 상문여가 보법으로 거리를 벌리려고 했다.
동급 이상의 실력자라면 무작정 공격을 통해 가볍게 대할 상대가 아니었다.
그 순간 천여운의 신형이 번개처럼 튕겨 나오며 상문여를 향해 접무도법의 제 육 초식인 도접도선(刀蝶道鮮)을 펼쳤다.
“크윽!”
-채채채채채챙!
상문여가 방어 도초를 펼치며 막아보려 했으나, 도접도선의 도초가 나비처럼 잔상을 일으키며 그의 눈을 어지럽혔다.
상경도법과는 차원이 다른 쾌속함이었다.
-챙!
“큭!”
도초를 막아내던 상문여가 도를 놓치고 말았다.
천여운의 도초에 실린 공력이 강해서 손바닥이 전부 찢겨나갔다.
도를 놓쳤는데도 계속해서 도식을 멈추지 않자 당황한 상문여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내, 내가 졌다! 사 단계에 통과했으니 그만 해라!”
자존심이 문제가 아니었다.
천여운의 도에 실린 기세만 보았을 때는 자신을 죽일 것만 같았다.
사 단계에 통과했다는 말에 그를 향해 쇄도하던 천여운의 도가 바로 코앞에서 멈췄다.
“하아…하아….”
목숨에 위협을 느꼈던 상문여의 얼굴이 땀범벅이가 되었다.
그런 상문여에게 천여운이 미심쩍은 목소리로 물었다.
“사 단계에 통과한 겁니까?”
“그, 그래. 네가 이겼으니 이제 그만 하자.”
상문여가 패배를 인정한다며 양손을 들어올렸다.
스스로 무방비 상태가 되었다고 알리는 표시였지만 그것은 사실 계책이었다.
방금 전에 겨루면서 실력으로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상문여는 방법을 바꾸었다.
‘네놈을 내가 미쳤다고 통과시킬 것 같으냐.’
여기서 천여운을 무사히 보내게 되면 자신이 그를 인적이 드문 곳으로 데리고 와서 강제로 기습한 사실까지 드러날 지도 몰랐다.
상문여가 몰래 양손에 십성 공력을 끌어올렸다.
천여운이 안심하고 도를 집어넣는 순간, 그의 머리통을 기습적으로 찍어버릴 작정이었다.
“알겠습니다.”
‘걸렸다!’
그 말과 함께 천여운이 도신을 도집을 향하는 순간 상문여의 눈빛에 쾌재가 돌았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퍽!
“끄아아아악!”
-쿠당탕!
상문여의 가슴에 천여운의 주먹이 꽂히며, 그의 몸이 뒤로 튕겨져 나갔다.
엄청난 괴력이 실린 일격에 한참을 날아가서 바닥을 이리저리 구른 상문여가 어이가 없다는 눈빛으로 물었다.
“어, 어째서?”
“그런 거짓말은 양손에 공력이나 숨기고 말하셨어야죠.”
“그, 그걸 어떻게?”
상문여가 놀란 나머지 말을 더듬었다.
공력이 외부로 표출된 것도 아니었는데 어찌 안단 말인가.
기습 계책이 들키자 전의를 상실했는지 양손에 모아져 있던 공력이 흩어졌다.
[적의 양손에 집중되던 에너지가 사라졌습니다. 위협도가 낮아졌습니다.]실시간으로 위협을 감지해서 알려주는 나노의 능력을 상문여가 알 도리가 없었다.
천여운이 그런 상문여를 향해 냉정한 얼굴로 다가왔다.
자신의 능력으로 어찌할 수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인지한 상문여가 두려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미, 미안하다. 이제 정말 거짓말이 아니다. 패배를 인정하마. 그래! 사 단계 시험에 통과했다고 관주님께 말씀드..”
-퍽!
-우드득!
“끄아아아아악!”
상문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천여운의 발이 그의 우측 갈비뼈를 인정사정없이 밟았다.
의무실에서 스물여드레 동안 치료와 운기조식을 병행하여 겨우 나았던 갈비뼈가 고스란히 부러져버렸다.
고통스럽게 비명을 지르는 상문여를 천여운이 악귀나찰과도 같은 얼굴로 내려다보며 말했다.
“처음부터 그러셨어야죠.”
짧은 말이었지만 상문여를 절망에 빠지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 말을 끝으로 천여운의 발이 상문여의 왼쪽 갈비뼈를 지그시 내리찍었다.
-우드드득!
“끄아아아아아악!”
그렇게 반 시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마도관 본관 건물의 일층 관주 집무실.
이번 삼 단계 시험에 대한 결과 보고서 작성으로 관주 집무실에 모여 있던 무공 교두들이 하나 같이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바닥에 누워있는 누군가를 바라보았다.
그는 바로 무공 교두 상문여였다.
“쯧쯧.”
집무실 책상에 앉아 있는 좌호법 이화명이 한심하다는 듯이 혀를 찼다.
눈이 뒤집혀서 기절해 있는 상문여를 데리고 온 것은 칠 번 생도인 천여운이었다.
경비무사들과 함께 상문여를 짊어지고 나타난 천여운은 관주의 집무실에 그를 내려다놓고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얘기해주었다.
‘그렇게 벼르더니 저질렀군.’
‘생도를 상대로 복수를 생각하다니….어리석어.’
무공 교두 중의 일부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양자의 말을 전부 들어봐야 사정을 알 수 있겠지만, 이 일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어보였다.
어차피 사 단계 시험을 치르려면 무공 교두와 겨뤄야 했다.
무공 교두인 상문여가 계략을 꾸며서 강제로 기습을 한 것이라면 교두 해임 감이었고, 천여운이 먼저 도전한 것이라면 정상적인 사 단계 시험을 치른 것이었다.
‘…..적절하게 조절했군.’
설사 상문여가 악의적으로 기습했다고 해도 만약 팔을 자르거나 심하게 보복을 했다면 사정을 모르는 무공 교두들의 반감을 샀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천여운은 약게도 다쳤어도 표가 잘 나지 않게 그의 양쪽 갈비뼈만 몽땅 부러뜨려 놓았다.
‘제법 약아졌어.’
이제는 상황 판단을 적절히 할 줄 안다는 의미였다.
내심 이런 부분을 칭찬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무공 교두들 앞에서 그 말을 하면 입장이 난처하기에 입 밖으로 내뱉진 않았다.
말없이 지켜보던 선임 교두 호진창이 입을 열었다.
“어찌 되었든 합격은…..합격이군요.”
그 말에 동의하는지 이화명 역시도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대 마도관 전 기수를 통틀어 최단시간 안에 사 단계 시험을 통과한 것이었다.
삼 단계 시험이 끝난 당일 날에 반 시진 만에 무공 교두를 쓰러뜨렸으니 기록을 세웠다고 할 수 있었다.
‘훗, 어차피 시간문제라고 생각했으니.’
초절정 고수인 호진창을 무릎 꿇리고, 역혈마공을 사용하는 사파 죄수마저 쓰러뜨릴 정도의 무위가 상승한 천여운이었다.
이화명이 집무실 책상 서랍에서 무언가를 꺼내서 천여운에게 던졌다.
“받아라.”
-탁!
“이건?”
은색 패에 대(隊)라고 음각이 새겨져 있었다.
이것은 대주의 신분을 상징하는 패였다.
좌호법 이화명이 천천히 그의 앞으로 걸어와 가슴에 붙여있는 검은색 번호 명찰을 떼면서 말했다.
“사 단계 시험을 최 단기간에 조기 합격한 것을 축하한다. 천여운 대주.”
마도관에 입관한지 불과 두 달째가 되는 날.
천여운은 생도를 지칭하는 번호에서 자신의 이름을 되찾고 대주의 직위를 얻었다.
어쩌다보니 치른 사 단계 시험의 쾌거라 할 수 있었다.
‘아! 삼 층과 사 층의 청옥석 비석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다른 무엇보다도 천여운을 기쁘게 한 것은 천마검공의 삼, 사 초식을 익힐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마도관 본관의 이 층 의무실.
의무실을 담당하는 의원인 백종명이 들 것에 실려온 무공 교두 상문여를 내려다보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아니. 그렇게 빨리 퇴원하려던 사람이 며칠이나 되었다고. 쯧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