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92)
# 30장 봉마동의 비밀(3) #
봉마동에 봉인되어있던 흉악한 마(魔), 검은 이무기가 날카로운 이빨을 보이며 천여운을 집어삼키기 위해 그 머리를 뻗어왔다.
-타타타탁! 쾅!
천여운이 빠른 몸놀림으로 경공을 펼치며 검은 이무기의 공격을 피해냈다.
거대한 덩치에 맞지 않게 쾌속한 움직임을 가진 검은 이무기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젠장!”
-크카아아아아!
검은 이무기가 틈을 주지 않고 연달아서 천여운이 경공을 펼치기 위해 발을 내딛는 곳을 향해 흉폭하게 울부짖으며 달려들었다.
-쾅!
-쾅!
-쾅!
이무기의 공격이 부딪칠 때마다 남아나는 벽면이 없었다.
좁은 동굴 안에서 이를 피하려고 하니, 천여운은 천장과 옆 벽면 할 것 없이 가리지 않고 쉴 새 없이 경공을 펼쳐야만 했다.
‘이러다 동굴이 무너지겠어.’
무너지지 않는 게 더 이상한 상황이었다.
이 거대한 이무기가 어떻게 이곳에 봉해져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놈이 마음만 먹자고 한다면 충분히 동굴 벽을 뚫어서라도 나가는 게 가능해보였다.
‘저 석실 내부가 전부 청옥석으로 되어 있나?’
만약에 청옥석 벽으로 만들어진 석실이라면 이무기라고 해도 나갈 수 없었을 것이다.
오랫동안 저 안에 갇혀서 배가 고픈 것인지 흉폭함이 터진 이놈이 더 난리를 쳤다가는 동굴이 무너질 것 같았다.
동굴이 무너진다면 이 괴물은 어찌 될지 모르겠지만 자신은 압사당해 죽고 만다.
‘안 되겠다. 일단 석실 안으로 유인하자.’
-쾅!
-타탁!
이무기의 공격을 피해낸 천여운이 이곳저곳 발이 닿는 데로 피하던 방식을 바꿔서, 동굴을 회전하듯이 벽면의 옆으로 경공을 펼쳤다.
-크르르르르!
-스르르르르!
그러자 검은 이무기가 그를 잡기 위해 청옥석 구멍 안에 걸치고 있던 긴 몸체를 움직였다.
‘따라온다!’
검은 이무기가 천여운을 따라잡기 위해 회전하자, 그 뱀처럼 긴 몸체가 구멍에서 완전히 빠져나와 동굴에 똬리를 트는 형태로 메워가기 시작했다.
-팟!
유도한 데로 놈이 막고 있던 청옥석 벽면의 구멍이 열리자, 천여운이 반대편 벽면을 지지대 삼아 신형을 날려 몸을 집어넣었다.
청옥석 석실에 들어서는 순간 싸늘한 동굴과 달리 습한 기운이 올라왔다.
-첨벙!
“물이?”
석실 바닥에 발이 닿는 순간 무릎 높이 정도까지 물이 고여 있었다.
평범한 물이라기보다는 코끝을 찌를 만큼 악취가 섞여서 머리에 없는 두통이 생겨날 정도였다.
나노의 야간투시경 모드가 아니었다면 그냥 물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쭈우우우욱!
발을 들어 올리자 끈적함이 느껴졌다.
물의 색깔은 짙은 검은 빛을 띠고 있었는데, 이게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 물의 정체가 무엇인지 의문스러워 할 틈도 없이 구멍 안으로 검은 이무기가 머리가 파고 들어왔다.
-크카아아아아!
“젠장!”
-첨벙!
천여운이 끈적거리는 물에서 신형을 뛰어 올렸다.
끈적거리는 이 알 수 없는 액체는 일반적인 물보다도 끌어당기는 점도가 강했기에 천여운의 경공이 원래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헉!”
몸이 반쯤 떠오른 것을 검은 이무기가 놓칠 리가 없었다.
놈이 이빨을 벌리고 집어삼킬 기세로 쇄도해오자 천여운이 방법을 바꾸었다.
피할 수 없다면 부딪치는 것만이 살 길이었다.
-우웅!
천여운의 검지와 중지를 모은 검결지에서 푸른 빛이 응집되며 검강이 발했다.
검강이 형성되자 천여운이 자신을 향해 쇄도해오는 검은 이무기를 향해 천마검공의 제 삼 초식을 펼쳤다.
자세가 불안전한 허공에서 펼칠 수 있는 초식은 이것뿐이었다.
-촤아아아아악!
스물네 개의 검식이 교묘하게 맞물리며 푸른빛의 검결이 쾌속하게 회전하기 시작하더니, 회오리를 일으키며 폭풍이 되어 검은 이무기에게 쇄도했다.
-채채채채채채챙!
‘뭐야?’
초식을 펼치는 천여운의 두 눈이 커졌다.
아무리 흉악한 괴물이라고 하지만 검강이 실린 천마검공이 부딪쳤는데, 쇳덩어리에 내려치는 것처럼 금속성이 울려 퍼졌다.
-크카아아아아!
검은 이무기가 분노했는지 포효를 내지르며 몸부림을 쳤다.
그 힘이 어찌나 강했는지 천마검공의 초식이 완전히 끝나기도 전에 천여운이 몸이 뒤로 튕겨져 나가버렸다.
“끄악!”
-쾅! 첨벙!
석실의 벽면에 부딪쳤다가 그의 몸이 끈적거리는 검은 물에 떨어졌다.
그가 부딪쳤던 벽면은 바깥에서와 다르게 멀쩡했다.
본의 아니게 석실 전체의 벽면이 청옥석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몸으로 알게 되었다.
청옥석 벽의 단단함 때문에 충격이 분산되지 않아 등이 부서질 것 같았다.
“헉…헉…”
천마검공의 제 사 초식을 익히느라 육신의 변환을 하지 않았다면 뼈가 부러지든 근육이 파열되었을 것이다.
‘천마검공의 초식으로도 몸에 상처가 나지 않다니.’
몸이 아픈 것보다도 큰 문제는 그것이었다.
검은 이무기는 아무런 상처를 입지 않았는지 멀쩡하기만 했다.
천여운은 자신을 향해 흉폭한 울음소리를 내며 다가오는 검은 이무기를 망연자실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큭, 어떻게 해야 하지?’
천마검공이 통하지 않을 정도면 그 육체의 강도가 청옥석을 능가한다.
공격이 아에 통하지 않는 괴물을 상대로 싸우는 법은 상정해본 적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절망스러워하던 차였다.
‘응?’
뭔가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검은 이무기가 길고 거대한 몸체를 움직이면서 천여운을 향해 다가오는데, 바닥을 적시고 있는 끈적한 물이 철렁거리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물은 여전히 천여운의 무릎까지만 차있었다.
저 정도 거대한 부피의 괴물이라면 무게 때문이라도 물이 더 높이 차올라야 정상이었는데 그대로였다.
흉수이든 영물이든 실체가 있는 몸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천여운이 인상을 찡그리며 나노에게 명했다.
‘나노, 증강현실 개안.’
[알겠습니다. 사용자의 시각 정보에 증강현실(增强現實) 개안(開眼) 가동합니다.]나노의 목소리와 함께 천여운의 동공이 미세하게 떨리며 시야로 흰 빛의 입자들이 선들을 그리며 증강현실이 개안되었다.
‘응?’
증강현실을 개안한 천여운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시야에 보이는 검은 이무기의 옆에 어떠한 수치 표시가 떠있지 않았다.
보통 증강현실을 펼친다면 눈앞에 있는 대상자들의 수치가 흰색 빛으로 표기가 되어서 분석이 되었는데, 아무 것도 표시되지 않았다.
오히려 에너지의 흐름만 알려주는 숫자와 물결 표시의 그림이 보였다.
‘나노, 이 물결 그림은 뭐야?’
[석실 전체에 어두운 플라즈마(plasma) 에너지가 불규칙적으로 발생한 것을 표기한 그래프입니다.]‘플라즈마 에너지?’
[대기 중의 에너지가 비정상적으로 높아져서 이온화 전자의 집합체를 이루는 현상입니다.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았지만 이것을 영적(靈的)인 현상이라고도 부릅니다.]‘이게 영적인 현상이란 말이야?’
[조심하십시오! 대기 스프라이트(Atmospheric sprite) 현상이 덮쳐옵니다.]-크카아아아아!
“칫!”
나노의 경고 소리와 함께 검은 이무기가 입을 쩌억하고 벌리며 천여운의 몸을 집어삼키려 들었다.
-첨벙! 탓!
천여운이 물의 점도에 대항하기 위해 발바닥의 용천혈에 두 배의 공력을 끌어올렸다.
그러자 원래 경공을 펼치던 속도로 신형이 원활하게 움직여졌다.
-촥!
‘역시다!’
공격을 피해내며 검은 이무기를 바라본 천여운의 눈빛이 의심으로 물들었다.
고여 있는 물에 저 거대한 대가리가 박았는데, 물이 튀어 오르지 않고 바닥에 뭔가가 갈라지는 소리만 들렸다.
자신의 추측을 확신한 천여운이 검은 이무기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나노에게 물었다.
‘나노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게 뭔지 알겠어?’
[스물네 개의 철 조각들이 강한 플라즈마 에너지를 방출하며 공중에 떠있습니다.]‘뭐?’
나노의 대답에 천여운의 눈빛이 흔들렸다.
혹시나 하는 의구심이 들어맞았다.
분명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은 검은 이무기였는데, 나노는 아니었다.
‘철 조각들? 거대한 이무기가 아니고?’
[그렇습니다.]인간의 육안은 때론 뇌의 영향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기계인 나노머신은 사물을 직관적으로 받아들인다.
나노의 말을 듣고서야 눈앞에 보이는 것이 검은 이무기가 아니라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은 천여운이 고민에 빠졌다.
-크르르르르!
여전히 자신의 눈앞에는 흉폭한 검은 이무기만 보인다.
나노가 말한 대로 플라즈마 에너지가 영적인 기운이라면 스물네 개의 철 조각들이 그것을 뿜어대면서 이런 환상을 만들어냈으리라.
‘그렇다면 철 조각들을 처리한다면 저 환상이 사라질까?’
계속해서 검은 이무기를 따돌리기만 해서는 방법이 없었다.
그렇다면 그게 정답이든 아니든 부딪쳐야 했다.
-크카아아아아아!
계속해서 달려드는 검은 이무기의 공격을 피하며 천여운이 나노에게 명했다.
‘나노, 네가 얘기하는 철 조각들의 위치를 붉은 빛으로 표시해줘.’
[알겠습니다.]-우우웅!
천여운의 동공이 파르르 떨리며 검은 이무기의 날카로운 이빨과 두 눈알, 머리를 두르고 있는 가시들에 스물네 개의 붉은 빛이 표시되었다.
긴 몸체에도 분산되어 있으면 어떡하지 하고 고민했는데 그건 다행이었다.
‘어?’
그런데 이무기의 대가리로 표시된 붉은 빛의 위치가 묘했다.
천마검공의 스물네 개의 검식을 따로 펼치게 되면 저 방향들로 찌를 수 있었다.
마치 천마검공의 기본 검식을 펼치게 의도한 것처럼 말이다.
‘이럴 수가!……설마 이것이 조사님의 안배란 말인가?’
스물네 개의 철 조각이 어째서 저 위치에 있는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천마검공의 검식을 익혔다면 분명 저것을 맞출 수 있다.
천여운의 눈빛이 날카로워지며 붉은 빛들을 응시했다.
-크카아아아아아!
검은 이무기가 포효를 내지르며 천여운을 향해 정면으로 무섭게 뻗어왔다.
삼 년 동안 천마검공의 심법을 운기하면서 허구한 날 해온 것이 천마검공의 기본 검식이다.
화경의 경지에 오른 지금이라면 그것을 거의 동시에 펼칠 수 있다.
“하압!”
천여운의 몸이 잔상을 일으키듯이 스물네 갈래 갈라졌다.
그와 동시에 천여운의 검결지에서 푸른빛 검강이 발하며 검은 이무기에게 표시된 붉은 빛의 점들을 향해 쇄도했다.
-챙챙챙챙챙챙챙챙챙챙챙챙챙챙!
금속성의 소리가 석실 내부에 퍼져나갔다.
천여운의 검강이 닿는 곳마다 푸른빛의 입자와 함께 노란 불꽃을 튀겼다.
‘제발!’
-챙! 스르르르르!
스물네 개의 천마검공의 검식이 동시에 붉은 빛의 점을 관통한 순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그를 집어삼킬 듯이 입을 쩌억 벌리고 있던 검은 이무기의 입을 통과해 천여운의 신형이 지나쳐갔다.
-첨벙!
분명 검은 이무기의 입안으로 들어왔어야 했는데 눈앞에는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보이는 것은 봉인된 석실을 들어오기 위해 뚫어놓은 청옥석 벽면뿐이었다.
‘성공이다!’
천여운이 떨리는 눈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아아아! 이무기의 정체가 바로 이것이었구나.”
그가 천마검공의 검식을 펼치고 지나친, 그곳의 허공에는 스물네 개의 다른 형태를 가진 검은 철 조각들이 미세한 진동을 일으키며 떠있었다.
“이건 대체?”
그것을 살펴보기 위해 다가가는 순간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
“앗?”
-채채채채채채채챙!
허공에 떠있던 스물네 개의 철 조각들이 자력이 일어난 것처럼 하나로 뭉쳐지는 것이 아닌가.
하나로 뭉쳐진 검은 철 조각들이 이룬 형태는,
“검?”
그것은 검고 영롱한 빛을 내뿜는 검(劍)이 되어 있었다.
검에는 여전히 영력이 남아있는지 허공에 떠서 그 날카로운 검신이 떨렸다.
이해할 수 없는 기이한 현상에 할 말을 잃고 넋을 놓고 있던 천여운이 조심스럽게 허공에 떠있는 검을 향해 다가갔다.
가까이 다가가니 검신에 음각이 새겨진 것이 보였다.
[天魔劍]“천마검?”
새겨진 음각의 이름은 바로 천마검이었다.
천마검이라고 한다면 천마신교의 교주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보검인데, 대체 이 검은 무엇이란 말인가?
천여운은 뭔가에 끌린 것처럼 말없이 검병을 손에 쥐었다.
-탁! 고오오오오!
그 순간 떨리던 검신의 흔들림이 멈추며, 알 수 없는 검은 기운이 천여운의 손을 타고 흘러들어왔다.
“이, 이게 뭐야?”
당황한 천여운이 화들짝 놀라서 검병에서 손을 놓으려 했지만 검은 기운은 이미 그의 전신을 잠식해왔다.
“끄으으으윽!”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이상한 감각에 오한이 느껴졌다.
천여운의 새하얗던 얼굴이 검게 물들더니,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리며 물 바닥에 한 쪽 무릎을 꿇었다.
-첨벙!
고통스럽게 온몸을 뒤틀던 천여운이 바라보고 있는 세상이 완전히 검게 물들었다.
그 세상은 심연과도 같은 어둠 그 자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