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99)
# 32장 변수의 육 단계 시험(3) #
마교의 수뇌부인 장로들은 각 종파의 수장이면서 마교의 최고 고수라 불린다.
수많은 전투 경험에 높은 무위를 지닌 만큼 한참 후학인 마도관의 생도를 상대로 선공을 양보할 거라는 예상과 달리 시작과 동시에 기습적인 공격을 감행했다.
‘주군!’
‘이런 비겁한!’
그 광경에 천여운의 수하들 모두가 가슴을 졸였다.
그러나,
-스스스스!
강기가 실린 지팡이에 가슴을 관통 당한 천여운의 신형이 흐릿해지며 사라졌다.
‘아!’
이형환위(移形換位).
그것은 너무 빠른 경공으로 잔상이 남는 현상을 말한다.
공격을 당하기 바로 직전에 신형을 이동하기 때문에 아무리 뛰어난 고수라고 해도 곧장 알아채기 힘들다.
‘노부를 상대로 이형환위를 썼다고?’
놀라는 것은 잠시였다.
백오는 당황해하지 않고 강기가 둘린 지팡이를 회전시키며, 무방비 상태가 되어버린 뒤쪽으로 파마장법(波魔杖法)의 방어 초식을 펼쳤다.
-휘리리릭! 팟!
그 순간 사라졌던 천여운이 신형이 백오의 바로 뒤쪽에서 나타났다가, 물샐 틈 없는 방어초식에 다섯 보 뒤로 보법을 펼치며 물러났다.
‘대응이 빠르다.’
지금까지 대결했던 적들과는 확연하게 달랐다.
수십 년 동안 수백 회가 넘는 적들과의 싸움으로 경험이 풍부한 백오는 이형환위로 사라진 천여운이 자신의 허점인 뒤쪽을 노릴 거라고 확신했다.
물론 예상은 들어맞았다.
‘세상에…..’
‘정말 화경의 경지가 틀림없구나.’
멀리서 대결을 관전하는 생도들과 무공교두들이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 중에서 누구 한 명도 천여운의 이형환위를 감지한 자가 없었다.
그들의 눈에는 그저 순간이동을 한 것처럼 사라진 천여운이 백오의 뒤에서 나타난 것처럼 보였을 뿐이었다.
그나마 천여운의 신형을 감지할 수 있었던 것은 단상 위에 있는 좌호법 이화명과 공증인으로 참관한 구 장로 사마의뿐이었다.
‘이럴 수가…..’
내색하진 않았지만 이화명은 천여운이 펼친 경공에 놀라워했다.
그가 잘못 본 것이 아니라면 천여운의 움직임은 대호법 마라겸과 겹쳐보였다.
풍신(風神)이라 불리는 마라겸의 경공은 마교에서 일인자라 불릴 만큼 그가 작정한다면 누구도 그를 잡을 수가 없다.
‘오 층 비급서재에 대호법의 경신법이 있었나?’
그 예상은 정확했다.
천여운이 펼친 경신법은 풍신공이었다.
다만 그는 자신이 펼치는 경신법이 누구의 것인지는 모르고 있었다.
‘쓸 만하다.’
풍신공을 익혔을 당시에는 과연 얼마나 뛰어날지 반신반의했는데, 독마종의 종주인 백오조차도 육안으로 판별해내지 못한 것을 보면 굉장한 경신법이라 할 수 있었다.
경공이 빠르다는 것을 인식한 백오가 천여운의 허실을 분석했다.
‘발이 빠르다면 그것을 죽여야지.’
생각과 동시에 실행도 빨랐다.
백오는 곧바로 천여운의 다리 쪽을 향해 지팡이를 휘둘렀다.
그러자 지팡이에 실려 있던 장강(杖罡)이 튀어나와 천여운의 다리로 쇄도했다.
-촤아아아악!
‘탄장강?’
탄장강(彈杖罡).
화경의 경지에 오르면 기를 다루는 것이 완숙해지면 검기를 날리는 것처럼 응축된 기의 덩어리인 강기마저도 발사시키는 것이 가능해진다.
천여운이 허공으로 뛰어오르자, 대연무장의 바닥으로 탄장강이 작렬했다.
-콰쾅!
강기가 부딪친 연무장 바닥에 굉음과 함께 모래 먼지가 올라왔다.
그 먼지를 뚫고 어느새 지척까지 다가온 백오가 파마장법(波魔杖法)의 오 초식인 마경섬육(魔境殲肉)을 펼쳤다.
노리는 것은 천여운이 아닌 바로 다리였다.
‘내 움직임을 봉하려는 건가?’
이를 쉽게 당해줄 그가 아니었다.
허공으로 떠오른 천여운이 등허리에 차고 있던 하얀 도집에 도병에 손을 붙잡았다.
-챙!
도집에서 잠들어 있던 백룡도가 그 새하얀 전신을 드러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하얗고 얇은 도신에 백오가 속으로 비웃었다.
‘이 노부의 현철장을 그런 얇고 하찮은 도로 막을 수 있을 것 같으냐!’
겉보기에는 그저 독특하게 생긴 백오의 지팡이는 현철로 만들어져서 그 강도가 굉장하다.
거기에다 강기마저 실렸으니 그 위력은 암석마저 가볍게 부숴버릴 정도였다.
천여운이 얇은 도신의 백룡도로 몸을 빠르게 회전시키며 접무도법의 제 이 초식 회원접경(回圓蝶警)을 펼쳤다.
-채채채채채챙!
강기와 강기가 실린 초식이 부딪치면서 엄청난 파공음이 터져 나왔다.
“윽!”
“귀, 귀가 찢어질 것 같아!”
대결을 관전하던 생도들 중에서 아직까지 초절정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 이들은 내공이 부족했는지 파공음에 실린 공력에 고통스러웠는지 귀를 틀어막았다.
-챙! 촤아아아!
허공에서 초식을 부딪친 두 사람의 신형이 서로 연무장 바닥으로 떨어져 밀려났다.
‘대체 저 도는?’
백오가 어이가 없다는 눈으로 천여운의 손에 쥐어진 백룡도를 바라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초식 대결은 균등했으나, 백오가 쥐고 있는 현철로 만들어진 지팡이에 수많은 자국이 나있었다.
얇은 도신에 부러질 거라 생각했던 백룡도는 멀쩡하게 그 영롱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누가 저 놈에게 저런 보도(寶刀)를 주었단 말인가?’
이상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분명 화경의 경지에 올랐다고 해도 천여운은 전투 경험이 현저히 부족할 텐데, 생각 외로 냉철하게 잘 대응해냈다.
마치 수백 회의 전투를 치른 경험이 풍부한 무인처럼 말이다.
제일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내공이었다.
‘이놈 정말로 화경 초입이 맞나?’
풍겨져 오는 기운만 느꼈을 때는 화경 초입에 불과했는데, 철장과 도가 부딪칠 때마다 실려 있는 공력이 백오 자신에게 전혀 밀리지 않았다.
백오는 시작할 때부터 십성 공력을 전부 끌어올린 상태였다.
상대가 자신보다 하수라고 생각해도 전투에 있어서는 전력을 다해야 하는 것은 수많은 전투 경험을 통해서 잘 알고 있었다.
한 수의 방심만으로도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생사의 대결이었다.
‘그렇다면 실력을 숨겼다는 소리인가?’
몇 차례 부딪친 것만으로도 백오는 천여운이 풍겨지는 기운을 조절해서 실력을 숨겼다는 것을 파악했다.
상대에게 실력을 숨기려면 적어도 그와 동일한 수준이거나 그 이상이어야만 한다.
백오의 눈빛이 좀 전과 달리 진중해졌다.
‘노부를 상대로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고? 이놈 정말 괴물이구나.’
외손자인 독마종의 소교주 후보자인 천종섬이 감당하지 못할 만 했다.
그도 교내의 수많은 인재들을 보았지만 이렇게까지 빠르게 무공이 성장하는 자는 본 적이 없었다.
어젯밤 그를 찾아왔던 붉은 면사포의 무 부인이 떠올랐다.
‘백 종주. 마도관의 요청을 받아들이세요.’
‘무 부인…..지나친 월권이라고 생각하지 않소?’
교주의 부인이라고는 하나 다른 종파의 종주이자 장로에게 명령할 권한은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기분이 좋지 않았던 백오가 노기가 오르려 하자, 무 부인이 그에게 솔깃한 제안을 했다.
‘신의의 소재를 알고 있습니다.’
‘뭐요?’
신의(神醫).
중원 최고의 의원이라 불리는 자였다.
죽은 자가 아니면 못 살리는 자가 없다고 불리는 전설적인 의원이었다.
알려지기로는 황제의 주치의였다는 이야기도 있었고, 편작이나 화타의 후손이라는 소문도 있었지만 정확한 신상정보를 아는 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확실한 것은 실력만큼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만큼 최고라는 점이었다.
다만 그 소재가 워낙 신출귀몰해서 고관대작이나 무림 세도의 정보력으로도 알 수가 없었다.
외손자를 치료하고 싶어 하는 백오의 바람을 건드린 것이었다.
‘그 말을 노부가 어찌 믿는단 말이오?’
의심스러워하는 백오에게 그녀가 주홍색 옥패를 보여주었다.
그것에는 의(醫)라고 새겨져 있었다.
‘예전에 조부께서 신의에게 이 패를 받았다고 했지요. 패를 가지고 어떤 장소로 가면 만날 수 있다고 하더군요.’
무 부인의 조부라고 한다면 전대 현마종의 종주 무진경이었다.
과거 오십여 년 전, 정사마의 전력 수만 명이 집결하여 대전쟁이 일어난 사평 대전에서 수많은 전공을 세운 마교의 영웅이었다.
결국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백오는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마도관의 요청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거요?’
‘놈을 죽이세요.’
‘무 부인, 노부가 아니더라도 다른 장로들도 놈을 죽일 수 있소.’
화경의 경지에 올랐지만 아직까지 전투 경험도 부족했기에 백오가 아니더라도 다른 장로들도 충분히 처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무 부인의 생각은 달랐다.
‘아니요. 지금 본교에 남아있는 장로님들 중에서 천여운을 죽일 수 있는 건 백 장로님뿐이에요. 왜냐하면 백 장로님은…..’
‘……그를 죽이면 그 뒷감당은?’
‘좋아요. 이번 일로 사태가 커진다면 저희 현마종에서 적극적으로 수습하겠습니다. 차기 소교주가 정해졌으니까요. 호호호호홋.’
그것이 어젯밤에 무 부인과 나눴던 대화였다.
무 부인은 지금 교내에 남아있는 장로들 중에서 유일하게 천여운을 죽일 수 있는 사람이 그라고 말했다.
‘현마종…..정말 무서운 정보력이다.’
그녀의 말대로 이 정도 실력이라면 다른 장로들이 감당하기 어려웠다.
적어도 자신을 포함해 삼 장로 이상이 아니고는 천여운을 상대할 자가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무 부인이 천여운의 진정한 실력을 어떻게 아는 지가 중요하지 않았다.
손자의 치료를 떠나서 놈을 여기서 죽이지 않는다면 여섯 종파는 정말 최악의 적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래. 여기서 이놈을 없애야 해.’
-촤아아아아아!
천여운을 죽이기로 결심한 백오의 전신에서 보랏빛 독기(毒氣)가 뿜어져 나오더니, 사방으로 뭉실 거리며 퍼져 나갔다.
보랏빛 독기가 스치자 대연무장의 모래바닥이 검게 물들었다.
단상 위의 석좌에 앉아서 지켜보던 좌호법 이화명과 구 장로 사마의가 놀라서 동시에 일어났다.
“독을 개방하다니!”
“백 장로! 이 자가 대체 무슨 짓을!”
공증인으로 온 사마의조차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비록 독마종주인 백오가 독(毒)이 주공이라고는 하지만 암묵적으로 생사를 다퉈야할 적을 상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면 사용하지 않는다.
독인(毒人)의 경지에 오른 그는 최악의 살상 병기라고 불릴 만큼 위험했다.
무공의 경지와 별개로 수백의 독기를 발산하는 독인이 마음먹고 상대를 죽이려고 든다면 막을 자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설마 도전자를 죽일 작정인가?”
공증인으로 참여할 때부터 독마종을 지목했다는 말에 우려했었다.
장로의 자리가 걸려있는 대결이기 때문에 상대를 봐줄 필요는 없었지만 본교의 새로운 전력이 될 수 있는 고수이기에 어느 정도는 감안할 줄 알았는데, 이렇게 되어버리면 생사의 대결이 되어버린다.
‘천여운!’
우려했던 사태가 벌어지자, 좌호법 이화명이 두 눈을 감았다.
교주에 의해 이 년 동안이나 금옥에 갇혀 있는 등 종파의 힘이 약화되어서, 적어도 대결에 있어서 선을 넘기지 않을 거라 여겼지만 아니었다.
‘엄청난 독기다.’
바로 근방에 있는 천여운은 백오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독기에 눈빛이 차가워졌다.
불리해진다면 독을 쓸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라면 정말 죽일 기세였다.
“후우!”
-스물스물!
백오가 호흡을 내뱉자 그의 입에서 보랏빛 수증기가 흘러나왔다.
파마독경의 칠층까지 끌어올린 것이었다.
파마독경(波魔毒經)은 독마종의 독의 진수를 모은 독공이었다.
최종 경지인 팔층에 이르면 독인이 되는데, 체내에 수백 가지가 넘는 독을 품을 수 있게 되고 기(氣)마저 용해시킬 수 있는 위력의 독공을 펼칠 수 있게 된다.
칠층만으로도 그 살상력은 수백에 이르는 절정의 무인들을 몰살시킬 수 있을 정도였다.
‘저게 독이라고?’
‘저, 저런 괴물을 어떻게 이긴 단 말이야.’
‘죽을 지도 몰라!’
사방으로 몰아치는 보랏빛 독기에 대연무장 바깥까지 물러난 생도들과 무공 교두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천여운을 쳐다보았다.
천여운을 단숨에 집어삼킬 듯이 부풀어 오르는 거대한 독기였다.
‘주, 주군!’
‘천 공자님!’
주군에 대한 강한 신뢰를 가지고 있는 천여운의 수하들조차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가 항복 선언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육 단계 시험을 통과하기도 전에 그가 백오가 내뿜는 독에 중독되어 죽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천여운은 이 엄청난 독기에도 불구하고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백오를 노려보고 있었다.
“건방진 애송이 놈. 시신조차 남기지 않고 죽여주마!”
-팟!
독공을 펼칠 준비를 마친 백오의 신형이 천여운을 향해 번개처럼 뻗어왔다.
온몸에서 보랏빛 독기를 흘리는 그는 불길함 그 자체였다.
백오가 가볍게 지팡이를 휘두르자 수백의 독이 섞인 독기가 지옥의 파도처럼 일어나 천여운을 덮쳤다.
-촤아아아아아아아!
보랏빛 독기의 파도가 스쳐지나가는 연무장의 바닥이 검게 변색되며 강렬한 독기에 타들어가는 것처럼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아아아….”
“이럴 수가…..”
독기의 파도가 덮친 곳은 무엇 하나 멀쩡한 곳이 없었다.
뿌옇던 보랏빛 독기가 가시며 바닥이 드러난 곳은 검게 물든 모래 자국 이외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지켜보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당한 것처럼 인상을 찌푸리며 시선을 회피했다.
이 정도 독기라면 뼈 조각조차 타들어가서 죽었을 것이다.
‘네놈이 자초한 것이다. 어리석은 놈.’
백종(百種)이 넘는 독기를 조합한 파마독세(波魔毒世)를 펼쳐서 살아남은 자는 여태껏 존재하지 않았다.
백오가 승리를 확신하고 전신의 경맥을 순환하고 있는 파마독경의 칠층 독기를 가라앉히려는 순간이었다.
-촤아아아악!
아직까지 완전히 가시지 않은 보랏빛 독기로 가려진 곳에서 파란빛의 탄도강(彈刀罡)이 백오의 목을 노리고 날아왔다.
“아닛?”
당황한 백오가 놀라서 현철 지팡이에 강기를 실어 막아냈다.
-채애애앵!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어느새 천여운의 신형이 그의 바로 앞까지 파고든 것이었다.
“!?”
곧바로 반격을 해야 하는데 백오는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진 일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독기에 검게 타들어가고 있는 천여운의 흉측한 피부가 눈에 보일 정도로 엄청난 속도로 재생하는 것이 아닌가.
핏줄과 근육들이 꿈틀거리며 연결되는 모습이 징그럽기마저 했다.
“네, 네놈….대체?”
-오싹!
괴물처럼 재생하고 있는 천여운의 눈빛에서 느껴지는 흉흉한 마성에 백오는 생애 처음으로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느꼈다.
“이제 내 차례다.”
“뭣?”
-퍼억!
“끄아아아악!”
-쾅! 쾅! 쾅! 쾅! 쾅! 쾅!
엄청난 괴력이 실린 천여운의 일권에 백오의 몸이 모래 바닥을 물수제비처럼 수차례 튕겨져 나가더니, 대연무장의 반을 가로질러서 겨우 멈출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