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machines in Moorim RAW novel - Chapter 17
17. 무벽(武癖), 놀라다.
17. 무벽(武癖) 놀라다.
삼단삼극권은 삼극권을 고친 것이고, 삼극권은 오행권을 간략히 한 것이다.
그리고 오행권은 황보세가의 독문 무공.
은밀전같은 황실 소속의 단체에 왜 뜬금없이 황보세가의 무공을 원류로 하는 삼단삼극권이 있는가 했는데, 이제서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한은 즉시 일어나서 정중하게 예를 갖추었다.
황보상에게서 삼단삼극권이 나온 이상 집안의 어른을 대하듯 대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이곳의 문화고 예의다.
예의로 갑옷을 삼아 사회생활을 헤쳐나가는 것은 어른의 기본.
이한은 이 사람에게서 얻어야 할 것이 많았다.
“이제서야 눈치를 채다니. 듣던 것보다 둔하군.”
“은밀전주께서 저에 대해 많은 말씀을 하신 모양입니다.”
“그래. 그놈이 소개장에도 자네에 대해 주절주절 많이 늘어놓았더군. 그런데 기둥화로를 만든 사람이 자네라면서?”
“그렇기는 합니다만.”
이한은 갑자기 튀어나온 과거의 발명품에 어리둥절했다.
기둥화로는 로켓 스토브를 말한다.
생긴 것은 일반적인 화덕보다 좁고 높게 생겨서 모양은 좀 우습지만, 연료를 3할 정도 적게 사용할 수 있다는 엄청난 강점을 가졌다.
은밀전에 들어간 첫해에 상품으로 만들어서 한 철 장사 잘한 기억이 있다.
개인이 흙벽돌로도 만들 수 있고, 알고 보면 구조도 단순한 편이어서 다음 해부터는 판매량이 곤두박질치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갑자기 그게 왜?
“원래는 여문기가 뭐라고 하든 돌아볼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자네가 기둥화로를 만들었다는 것을 알게 된 뒤로 생각이 바뀌었지.”
이한은 이어질 말을 기다렸지만, 황보상의 말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왜 바뀌었는지는 설명을 듣지 못했다.
사실 차분하게 설명을 들을 상황도 아니었다.
황보상의 제자들이 몰려왔기 때문이다.
“사부님! 인사드립니다!”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사부님. 사부님. 사부님.
시끄러울 정도였다.
해가 질 때가 되자 갑자기 나타난 황보상의 제자들은 11명이나 되었다.
10대 초반에서 후반까지.
하루의 노동을 마치고 온 빈민가의 청소년들이었다.
그들은 황보상의 찬모가 준비해둔 저녁 식사를 하고 수련을 시작했다.
몇 명은 마보를 한 채 축기를 시작했고, 몇 명은 기본적인 초식을 반복했다.
그리고 그들 중 두 명은 삼단삼극권과 초식은 비슷하지만 풍기는 느낌은 전혀 다른 권법을 지도받았다.
“좀 다른가?”
[삼단삼극권과도 차이가 나고 제가 복원하고 있는 오행권과는 차이가 많이 납니다. 새로운 종류의 삼극권이 아닐까 추측 중입니다.]“초식은 비슷한데.”
[삼단삼극권에서 발견한 ‘비전’이 그대로 존재합니다.]“그렇다면 위력이 너무 약하지 않을까?”
[삼단삼극권과 다른 운기법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확답하기는 어렵습니다. 좀 더 분석할 필요가 있습니다.]그때 황보상이 끼어들었다.
“자네 생각이 맞네. 위력이 약한 것은 사실일세. 이것은 삼극권에서 한 번 더 간략화한 것이니까. 대신 배우기가 더 쉽지.”
황보상은 이한이 나노와 나누던 대화를 들은 모양이었다.
나노가 하는 말이 외부에는 들리지 않으니 겉으로 보기에는 이한이 혼잣말을 한 것처럼 보인다.
“설마 삼극에서 하나를 더 제거한 것입니까? 화기 아니면 금기를?”
“아니. 두 개를 제거하고 토기만 남겼네.”
“그것이 가능합니까?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토기만을 남긴 걸세. 화기나 금기를 남기기에는 너무 위험하니까.”
내공심법에 손을 댄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그야말로 한 분야의 대종사라고 할 수 있는 능력자가 아니고야 함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
변형된 초식을 만들었다는 사람은 종종 있어도 내공의 흐름을 바꾸어 보았다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운 이유가 딴 것이 아니다.
그런 짓을 한 사람은 대개 죽었기 때문이다.
주화입마가 별 건가.
이한은 황보상의 과격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토에서 금이 나오고 금에서 수가 맺힌다. 수에서 목이 생기면 목에서 화가 일어난다. 화에서 토를 남긴다. 토를 시작과 끝으로 삼아서 오행을 모두 끌어내는 것인데, 가능하기는 하더군.”
“그러면 오행권과 다를 것이 없지 않습니까?”
“아직은 멀었지. 위력이 너무 약해. 오행권과는 비견할 수도 없어.”
황보상의 말에는 목표를 향해 달리는 사람의 열망이 서려 있었다.
나이와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는 자신의 소망을 강렬하게 피력했다.
“나는 익히기 쉬운 오행권을 만들려고 하네. 그것이 내 평생 숙원이지. 삼단삼극권 역시 그 과정에서 나온 것에 지나지 않아.”
“그래서 제한을 두셨던 겁니까?”
“무슨 의미지?”
황보상의 안색이 굳어졌다.
황보상은 오행권의 비전을 은밀전에 남긴 적이 없었다.
아니, 비전이 있다는 언급 자체를 한 적도 없었다.
그런데 비전을 암시하는 말이 나온 것이다.
예상하지 못한 말을 들은 그는 설명을 요구했다.
“내공을 익힌 후 삼단삼극권을 운용해보니 맞지 않는 옷을 입는 것 같은 불편함이 있었습니다. 초식만 익혔을 때는 전혀 알 수 없었던 문제였지요. 그래서 나름대로 고쳐보았습니다. 그제서야 알 수 있겠더군요. 삼단삼극권이 온전한 무공이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주게.”
이한은 내공을 끌어올리며 삼단삼극권의 초식을 차례대로 펼쳤다.
황보상이 은밀전에 남기고 이한이 배운 원래의 삼단삼극권이었다.
그다음에는 나노의 분석에 따라 수정을 한 삼단삼극권의 초식을 펼쳤다.
그에 따른 내공의 수발 역시 달라졌다.
황보상 정도 되는 무림인이라면 직접 손발을 맞대보지 않아도 상대의 무공을 평가할 수 있다.
그는 삼단삼극권에 큰 변화가 일어났음을 금방 알아보았다.
오행권에 근접할 정도의 위력.
그리고 오행권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안정성.
이것은 황보상이 알고 있던 비전과도 다른 것이었다.
황보상은 예고도 없이 이한의 무공시전에 끼어들었다.
그러나 이한은 황보상을 맞아들여 약속 대련이라도 하는 것처럼 공방을 이어갔다.
같은 계열을 무공을 익힌 두 사람이 비슷한 초식을 주고 받았다.
가끔은 합이 맞아떨어지는 군무와도 같고 가끔은 바람과 흙먼지까지 끼어들어서 호흡을 맞추는 것 같았다.
어우러지는 공방의 움직임은 두 사람이 함께 추는 춤이었다.
주변에서 각자 수련하고 있던 황보상의 제자들은 넋을 잃고 둘의 어울림을 바라보았다.
이한은 황보상과 주먹을 맞대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삼단삼극권과는 비슷한 형.
그러나 현격한 차이가 나는 내공의 운용.
그 속에 품고 있는 기운 역시 복잡했다.
이것은 오행권이었다.
나노 역시 이한과 같은 의견이었다.
[오행권으로 추정됩니다. 좀 더 빠르고 강렬하게 무공을 펼쳐주십시오. 기본이 되는 데이터를 수집할 기회입니다!]흥분한 나노의 목소리가 이한에게 들려왔다.
물론 이한 역시 그렇게 할 생각이었다.
이한의 움직임이 더 빠르고 강렬해졌다.
그러나 황보상의 움직임은 이전보다 확연하게 느려졌다.
마치 무당의 태극권을 연상케 하는 움직임이었다.
이한은 자신의 움직임이 상대의 움직임에 얽매이기 시작했음을 알아챘다.
초식에 제한이 생기고 내공의 수발도 마음대로 할 수가 없었다.
몇 초식이 지나자 그 영향이 확연하게 나타났다.
이한은 삼단삼극권이 가진 힘을 온전히 이끌어내지 못하고 점점 좁은 공간으로 몰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것은 무공이 가진 격의 문제였다.
신공이라고 할 수 있는 오행권과 후인들이 이리저리 만져대서 균형이 깨져버린 유사품과의 차이였다.
이한은 점점 답답해졌다.
초식은 물론 내공의 수발까지 얽어매는 답답함에 마음까지 고통스러워졌다.
마음이 움직이자 내공이 움직였다.
나노가 분석해서 제시했던 비전과는 또 다른 흐름이었다.
새로운 내공의 흐름이 초식을 통해 발현되는 순간 지금까지의 답답함이 한순간에 터져나갔다.
그 힘에 밀린 황보성이 훌쩍 뒤로 물러섰다.
그것으로 둘 사이의 공방이 끝났다.
[화기를 통한 내공의 격발 가능성을 발견했습니다. 분석 후 정리해서 브리핑하겠습니다.]“자네. 뭔가?”
“예?”
이한은 멍청하게 반문하고 말았다.
황보상이 무엇을 말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황보상은 지금 당장 친절하게 설명해 줄 기분이 아니었다.
그는 어이가 없을 정도의 허탈함을 느끼고 있었다.
“불편해서 고쳐보았다고? 세상에는 천재가 많으니 비전을 그런 식으로 스스로 깨닫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고 납득하려고 했지. 그런데 비무를 하다가 또 다른 비전을 깨달아? 하늘이 불공평하다는 것을 내 일찍이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내가 알고 있었던 것보다 더 불공평했던 모양일세. 따라오게나.”
황보상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안으로 들어갔다.
이한 역시 그의 뒤를 따랐다.
둘 사이에 술상이 놓이고 한잔 시원하게 들이켜고 난 후에야 황보상은 입을 열었다.
“나는 평생을 오행권에 매달려 왔네. 무공을 수련하고 탐구하는 경지를 넘어 그릇될 정도로 집착하는 경지에까지 이르렀지. 그래서 강호의 동도들은 나를 무벽(武癖)이라고 부른다네.”
벽(癖)이라는 단어는 어떤 일에 과하게 집착하고 집중하는 것을 뜻한다.
그러니까 무벽은 아주 심각한 무공 덕후라고 하면 의미가 비슷하다.
황보상의 말에 의하면 오행권의 문제점을 해결하고, 대성하기 위해 온갖 무공을 섭렵하고 끌어모으다가 얻은 별호라고 한다.
황보상이 무림에서 유명한 3괴(怪) 중의 한 명이라니 그것은 이한에게 신선한 놀라움이었다.
무벽(武癖), 서치(書癡), 생사의(生死醫).
이렇게 셋은 특이한 기행으로 유명한 자들로 정사지간의 무림인으로 알려졌다.
서치는 책벌레를 의미한다.
동서고금의 온갖 서적을 끌어모아 거대한 전각 안에 가득 채우고 그 안에서 지내고 있는 자였다.
서치는 희귀한 고서적을 노린 흑도의 무리들이 도적질을 하러 왔을 때 모조리 목을 잘라서 담장에 내걸은 것으로 유명해졌다.
생사의는 병을 고친답시고 칼로 팔과 다리를 자르고 가끔은 배도 가른다고 해서 유명해진 자였다.
그럼에도 그가 멀쩡하게 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것은 본신의 무공이 고강하다는 점도 있지만, 반드시 죽을 사람도 그렇게 칼을 대서 살리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었다.
인간 백정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한이 보기에는 시대적인 한계로 고생하고 있는 외과의에 지나지 않았다.
모두 흥미로운 자들이겠지만, 눈앞에 있는 황보상만큼은 아니었다.
황보상은 무림의 최고 실력자라고 할 수 있는 3황 5제에게까지 들이댔던 사람이었다.
단순히 그들의 무공에 대해 궁금증이 생겼다는 이유만으로 말이다.
“자네는 내가 왜 처음에 품었던 생각을 바꾸어서 자네를 받아들이기로 했는지 아나?”
“모르겠습니다.”
“자네가 예친왕에게 한 방 먹였기 때문이지.”
이한은 그제서야 황보상이 왜 기둥화로에 대해 물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예친왕은 경사에 석탄을 공급하는 상인들의 뒷배였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