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vigator Leveling Up RAW novel - chapter 35
배를 세운 건 저놈인데 왜 나를 보냐!
‘그리고 내가 매번 원해서 이런 짓을 하는 게 아니라고!’
억울하다 억울해!
싸늘한 분위기가 이어지자 이등항해사 김호영이 의견을 제시했다.
“음! 선장님 그래도 우선 배를 옮겨야 되지 않겠습니까?”
“배를?”
“저 미친놈이 배를 운하 한가운데 세우고 갔지 않습니까? 뒤 따라 오는 배가 곧 도착할 것 같습니다.”
“벌써 그렇게 접근했나?”
“아직은 거리가 있지만 곧 문제가 될 것 같습니다. ”
“으음!”
이희영 선장이 한숨을 쉬었다.
“이항사님, 안됩니다.”
내가 이등항해사의 의견에 반대하자 사람들이 나를 주시했다.
“강제도선구역인데 배를 옮기면 그걸 꼬투리 잡을 겁니다.”
“뭐?”
“저놈들이 이대로 돌아갈 놈이 아닙니다. 분명히 사람을 시켜서 우리가 배를 움직이는지 지켜보고 있을 겁니다.”
“설마 그렇게 까지?”
“그렇고도 남을 놈들입니다.”
“그럼 여기에 이렇게 배를 세워두자는 말이야?”
“그리고 공간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 배를 가장자리로 옮겨도 문젭니다. 강풍이 불기라도 하면 더 큰일입니다. 뱃머리가 돌아가 가장 자리에 수심이 낮은 곳에 걸리기라도 하면 수에즈 운하 전부를 막을 수도 있습니다.”“그건 삼항사 말이 맞다.”
이희영 선장도 내 의견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등항해사 양화종이 나를 바라보았다.
“삼항사, 그럼 어찌할 생각인가?”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모아졌다.
‘지금 쯤 나타날 때가 됐는데.’
< 띠링! >
신호음과 함께 퀘스트 창이 떠올랐다.
+
<메인 퀘스트(#05)를 시작합니다.>
시나리오 진행에 따른 메인 퀘스트를 진행합니다.
“해신해운 선박을 호구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을 혼내주세요!”
세부 퀘스트 : 도선사 갑질
클리어 조건 : 해신해운 선박의 호구 탈출
제한시간 : 수에즈 운하 통과 전까지
보상 : 명성 + 20, 글로벌 인맥, 사내 평가 상승, 글로벌 명성 상승
실패시 : ???
+
‘그래 이럴 줄 알았다!’
나는 선교의 사람들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사실 제가 이럴줄 알고 준비한 일이 있습니다.”
“뭐?”
나의 말에 선교에 모인 사람들이 기대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살짝 부담스럽네?’
나는 생긋 웃어보였다.
* * *
– 선박 “M.V. 비너스”호의 선교
사실 나는 퀘스트 때문이 아니라도 이번 기회에 미스터 퐁퐁을 제대로 교육시켜줄 계획이었다.
그런데 때마침 퀘스트까지 부여되니 보상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일석이조의 기회.
이번 기회에 버릇을 고쳐놓지 않으면 이 자식은 도저히 손을 쓸 수 없는 상태로 흑화(?) 될지도 모르기 상황.
그 이유는 미래에 발생하는 대형사건 때문이다.
전생에서 20XX년 수에즈 운하에 대형 사고가 발생한다.
전 세계의 물류이동에 지장을 초래했던 대형 사고.
컨테이너선에 의해 수에즈운하가 가로 막히는 초유의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당시 사고의 원인에 대한 여러 의견이 있었지만 일부 항해사들은 수에즈운하의 도선사들이 도선을 하는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었다.
당시 사건을 보도한 언론에서는 수에즈운하의 도선사들의 실력을 문제 삼는 기사도 있었다.
수에즈 운하 도선사들의 경력이 짧다는 지적이 있었다.
국내 도선사들은 5년 이상의 선장 경력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최소 15년 이상의 승선 경험이 요구되지만, 수에즈는 이런 경력을 요구하지 않는다.
수에즈 도선사들은 최소한의 교육만 받은 채 도선사 업무에 투입되기 때문에 도선사들의 실력에 차이가 있다는 지적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나라마다 차이가 나기 때문에 꼭 승선경력이 없다고 하여 도선 실력이 부족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사실 수에즈 운하에는 거센 조류나 복잡한 지형이 없고, 잔잔한 수면에서 선박을 운항하기 때문에 큰 어려움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큰 문제가 발생하는 일이 적기 때문이다.
하지만 점차 컨테이너 선박이 대형화하면서 수에즈 운하의 상황도 달라지고 있다.
전생에 사고가 난 선박의 길이는 400m에 달하는 대형선박으로 운전이 쉽지 않아졌고, 선박이 대형화 되면서 바람의 영향을 크게 받게 되는 문제가 발생했다.
실제로 사건 초기에 갑작스러운 돌풍에 따른 영향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실제 대형화물선은 바람의 영향을 크게 받는데,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으로 뱃머리가 움직이는 성질을 때문에 운항에 방해가 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수에즈 운하는 사막 한가운데 있어, 사막에 부는 돌풍을 막아줄 장애물이 없다.
그리고 대형 컨테이너선박은 갑판 위로 컨테이너를 10층까지 쌓는 경우도 있어 바람에 취약한 선박 중 하나이다.
그리고 당시 이 선박을 도선했던 이도 다름아니 미스터 퐁퐁이었다.
강제 도선 구역
-선박 “M.V. 비너스”호의 선교
미스터 퐁퐁이 하선한 지 제법 시간이 흘렀지만 비너스호는 여전히 정선한 상태.
아직 비너스호의 항해사들은 결정을 하지 못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레이다로 주변을 확인하던 이등 항해사가 선교 뒷부분을 확인하더니 말했다.
“선장님, 선미 쪽으로 배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등 항해사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 말에 사람들이 고개를 돌려 선미(배의 꼬리) 쪽 방향을 살피기 시작했다.
다행인 점은 그래도 바로 근처까지 다가온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운하 내에서 저속으로 운항하다 보니 아직은 시간적 여유가 있어 보였다.
‘음, 빨리 와야 할 텐데.’
나도 시간이 좀 더 필요했다. 아직 중요한 인물이 도착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
그리고 지금 보니 미스터 퐁퐁이 여간 잔머리를 굴린 게 아니었다.
그 다급한 상황에서도 제법 꾀를 부린 후 하선했던 것.
비너스호가 정선하고 있는 위치가 아주 절묘했다.
완전히 운하의 교통을 가로막은 것은 아니었지만 교통을 교묘하게 방해하는 위치.
‘괜히 도선사가 아니네?’
수에즈 운하의 지리 지형을 꿰뚫고 있는 도선사다운 실력을 보여준 것이다.
‘이런 일에 그렇게 열심히?’
왜 최선을 다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다른 선박들이 우리를 추월해 지나가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무리하면 비너스호를 피해서 지나갈 수도 있겠지만 이 운하 내에서 그렇게 무리하게 운항할 선박은 없었다.
아마도 비너스호 뒤에서 거리를 두고 기다릴 가능성이 높았다. 이대로 가다가는 비너스호가 수에즈 운하의 교통을 방해할 가능성이 높다는 뜻.
잘못하다가는 다른 선박들로부터 원망과 컴플레인을 들을지도 모르는 상황.
이희영 선장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계획이 있다고 했으니 믿고 기다려 주고는 있다.
하지만 이렇게 무작정 계속 시간을 흘려보낼 수는 없는 일.
“선장님, 조금만 더 기다려 보시죠. 아직 준비가 덜 됐습니다.”
내가 대답했다. 그 말에 사람들의 불안감이 더욱 커져 갔다.
그때였다.
선교로 뛰어 들어오는 사내.
“써(Sir)!”
조셉이었다. 그는 나를 부르더니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준비가 끝났다는 뜻.
‘왔구나.‘
그럼 필요한 배우들은 다 모인 거네?
호구 탈출 미션을 시작해 볼까?
내 얼굴에 사악한 미소가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 * *
쌍안경을 들고 비너스호의 모습을 유심히 관찰하는 사내가 있었다.
화난 얼굴을 하고 있는 사내는 다름 아닌 미스터 퐁퐁.
그는 도선선에 내린 후 비너스호의 모습이 잘 내려다보이는 곳을 찾아 올라간 상태였다.
쌍안경을 들어 비너스호를 바라보고 있는 그는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은 표정이었다.
“이것들이 감히 나를 엿 먹이다니!”
분이 풀리지 않은 미스터 퐁퐁은 연신 입으로 욕설을 내뱉고 있었다.
도선사가 된 이후 이런 모욕은 처음 당하는 경험.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나를 이렇게 대한 것은 이놈들이 처음이다.’
마치 처음 모욕을 당한 드라마 속 재벌가의 장남처럼 그도 몰려오는 수치심을 이기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도 평소 호구로 생각하던 해신해운 선박의 항해사들에게 이런 취급을 당했다고 생각하니 더욱 화가 난 상태.
‘이놈들 어디 한번 배만 움직여봐라. 가만히 두지 않겠다.’
미스터 퐁퐁은 선배 도선사로부터 전수받은 자신의 비기를 선보일 생각이었다.
말을 듣지 않는 선박을 교육시킬 때 쓰라고 자신에게 선배 도선사가 알려준 방법.
그는 비너스호가 도선사가 승선하지 않은 채로 움직이는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수에즈 운하는 도선사가 반드시 탑승한 상태에서만 운항할 수 있는 구간으로 지정되어 있다.
도선을 하고 있던 자신이 하선한 상태였기 때문에 비너스호에는 승선한 도선사가 없었다.
흥분한 미스터 퐁퐁 옆으로 짐꾼이 다가왔다.
“그래, 연락했나?”
“네, 코스트 가드(해경)에게 말해뒀습니다.”
“뭐라고 하던가?”
“바로 출동 준비를 하겠다고 합니다. 근처에 도착하면 연락을 주겠답니다. 준비하고 있을 테니 연락하면 바로 달려오겠다네요.”
“그래, 흐흐흐. 해신해운 놈들 그때도 큰소리칠 수 있는지 한번 보자.”
미스터 퐁퐁이 비릿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도선사님! 저, 저기! 움직입니다.”
깜짝 놀란 짐꾼이 손을 들어 올려 비너스호를 가리키고 있었다.
비너스호가 살짝 방향을 틀어 가장자리로 배의 위치를 옮기려는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다.
“카, 카메라!”
“네?”
“빨리! 저거 빨리 촬영해둬!”
“네? 네!”
짐꾼이 큰 소리로 대답하더니 허겁지겁 디지털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비너스호가 움직이는 모습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딱 걸렸다. 이놈들!”
그는 옆에 있는 짐꾼을 바라보며 말했다.
“해경에게 연락해라!”
“바로 오라고 할까요?”
“그래, 현행범을 잡았다고. 크크크.”
완벽한 증거를 확보한 미스터 퐁퐁의 얼굴에는 함박웃음이 어리기 시작했다.
* * *
-선박 “M.V. 비너스”호의 선교
“스타보드(우현) 5도!”
이희영 선장이 긴장한 표정으로 외치자 조타수 조셉의 얼굴에도 긴장감이 같이 흘렀다.
조타수 조셉이 오른쪽으로 살짝 기울이자 비너스호는 앞으로 천천히 나아가면서 운하의 우측으로 살짝 이동하기 시작했다.
한참을 정선해 있던 비너스호가 운항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움직인 거리도 채 몇십 미터에 불과했다.
움직인 거리가 얼마 되지도 않았건만.
교통 신호를 위반하는 사람들을 단속하기 위해 사각지대에 숨어서 단속하던 경찰차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처럼 갑자기 수에즈 운하에 큰 경적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위이이잉잉!”
그들은 마치 우리가 움직일 것을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빠르게 나타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