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vigator Leveling Up RAW novel - chapter 91
“음? 누구지?”
나는 발신번호가 저장되어 있지 않다는 표시를 보자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여보세요.”
“미스터 장! 접니다. 이안.”
“이안 요원?”
“네. 하하하.”
“무슨 일이에요? 한국에 온 건가요?”
“네, 해적 관련 자료를 해양경찰에 전달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지금 인천 공항이니 서울에서 일을 마치고 부산으로 내려갈 계획입니다.”
“오! 부산에 오시면 꼭 연락 주세요.”
“알겠습니다. 전해드릴 말도 있습니다.”
“네.”
이안 요원이 부산에 온다고?
반가운 친구를 만나는 기분이 들었다. 좋은 소식에 잠시 울적했던 기분도 사라지기 시작했다.
* * *
– 부산 남해지방해양경찰청 인근
며칠 뒤.
나는 김해공항에서 이안 요원을 만나 함께 남해지방해양경찰청으로 이동했다.
나는 이안 요원에게 물었다.
“이안, 그런데 미스터 L의 정체는 밝혀졌나요?”
이안 요원은 내 말에 살짝 긴장한 표정을 짓더니 대답했다.
“미스터 장, 제가 전에 미스터 L을 소말리아 해적들 본거지에서 검거했다는 말을 했지요?”
“네, 그때 CIA 제임스 요원이 해적단 두목 샤크하고 함께 생포했다고 했습니다.”
이안 요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CIA에서 검거한 직후 현지에서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심문을 진행했습니다.”
“잘됐군요. 뭔가 확인된 정보가 좀 있었습니까?”
“문제는, 현지에서 미스터 L을 후송하던 컨보이가 현지 무장단체의 대대적인 습격을 받았습니다.”
“네? 그런 소식은 언론에서 보도가 없던데요?”
이안 요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공개되지 않은 정보입니다. 아마도 내부에서 정보가 새어 나갔던 것이 분명합니다.”
“미스터 L이 도망친 건가요?”
이안 요원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아닙니다. 대규모 폭격 때문에 미스터 L은 그 자리에서 즉사했습니다. 입막음?”
“······! 입막음?”
“네, 아마도 미스터 L로부터 정보가 새어나갈 것을 두려워한 세력이 손을 쓴 것으로 보입니다.”
“음······.”
만약 이안의 말이 사실이라면 미스터 L의 배후에 있는 세력은 생각보다 강력한 적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알아낸 정보는 없는 겁니까?”
이안이 살짝 미소를 짓더니 대답했다.
“많은 정보를 얻진 못했지만 얻은 정보도 제법 있었습니다. 특히 그가 중국계 영국인이라는 사실은 확인이 되었습니다.”
중국계 영국인이라?
내가 고민하는 표정을 짓자 이안 요원이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저는 이곳에서의 일을 마치며 싱가포르로 넘어갈 예정입니다. 그곳에서 중국계 자본과 연관이 있는 해상업계의 보험사들에 대한 배후 정보를 수집할 예정입니다.”
“음!”
해운의 중심은 아직 영국 런던이다.
하지만 런던 못지않게 떠오르는 신흥 시장이 바로 싱가포르였다. 특히 화교가 경제권을 장악하고 있는 곳이니 중국계 자본의 동향을 파악하기에 좋은 곳이었다.
내가 이안에게 물었다.
“싱가포르에는 인맥이 좀 있습니까?”
“MI6 지부가 있어 도움은 받을 수 있을 텐데 자세한 내용은 가봐야 알 것 같습니다.”
“음, 제가 좀 도와 드릴까요?”
“음?”
나는 선박유 밀매 사건 당시 만났던 글로벌 인맥 삼합회의 싱가포르 지부장 얼굴이 떠올랐던 것이다.
구린 정보는 구린 곳에서 얻어야 하는 법. 아무래도 뒷골목에 있는 자이고 싱가포르 범죄조직을 거의 장악했다고 하니 이안 요원에게 큰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내 등 뒤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장보고 이항사!”
그는 오늘 만나기로 한 남해지방해양경찰청 소속 차진혁 경위였다.
“차 경위님!”
나는 다가온 차진혁 경위를 보며 반갑게 인사했다.
“그래 일찍 왔네.”
“네.”
“그런데 같이 오신 분은?”
차진혁 경위가 내 옆에 있는 이안을 바라보았다. 큰 체구의 이안이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다.
“차 경위님 이분은 이안 요원입니다. 영국 MI6 소속의 요원입니다. 해신해운 선박 줄리엣호가 소말리아 해적들에 피랍될 뻔했을 때 저희를 구해주신 분입니다.”
“아! 오늘 소말리아 해적들 자료 전달해주기로 하신 분이 바로?”
“네?”
“하하하. 정말 반갑습니다.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차진혁 경위가 내 말에 눈을 똥그랗게 뜨고 이안을 바라보며 손을 내밀었다.
“이안 요원 이분은 차진혁 경위님이십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이안 요원이 눈을 가늘게 뜨더니 차진혁 경위가 내민 손을 덥석 마주 잡았다.
“음?”
차진혁 경위가 작은 신음을 흘렸다. 두 사람의 표정이 심상치 않게 변해가기 시작했다.
두 남자가 마주 잡은 손이 시간이 지나도 풀리지 않았다.
‘왜 이래?’
두 사람의 얼굴은 평온했다.
하지만 마주 잡은 두 손은 하얗게 핏기가 사라져가고 있었다.
부들부들
두 사람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며 이안 요원이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이안의 얼굴이 점차 빨갛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진심을 다하는 표정.
‘음? 뭐야?’
이 아저씨들 뭐 하는 거야?
설마 힘 싸움?
< 띠링! >
+ 경고: 두 명의 위대한 전사들이 힘겨루기를 하고 있습니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지 않게 조심하세요! +
‘하? 뭐라고? 새우 등?’
나를 아주 약골 취급하는 내용이네?
갑자기 떠오른 메시지창을 바라보는 나도 두 사람을 상대로 가볍게 호승심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해적재판 (1)
– 남해지방해양경찰청
두 사람의 대결을 바라보며 나도 참전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 띠링! >
+ 경고: 무모한 행동을 자제하세요! +
뭐?
소말리아 해적, 싱가포르 범죄조직인 흑룡회, 러시아 마피아들과 싸울 때도 말리지 않았는데?
나는 끓어오르는 호승심을 잠시 가라앉힌 후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괴수대전을 바라보았다.
“······.”
역시 참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 아무래도 아닌 것 같네.’
아무리 내가 태권도와 이종격투기를 수련했다지만 이들에 비하면 아마추어가 분명했다.
내가 잠시 참전(?)을 고민하는 사이 두 괴수들의 대결이 마무리되어 가는 분위기였다.
“하하하. 이거 안 되겠습니다. 제가 졌습니다.”
‘뭐? 이안 요원이 졌다고?’
내 예상을 깨고 항복 선언을 한 사람은 다름 아닌 이안 요원이었다.
이 사람은 MI6의 살인면허를 받은 최정예 요원인 더블오나인(009)이라고!
그런데 이안 요원이 졌다고? 뭐야 저 사람?
창백해진 이안이 고개를 절레 흔들었다.
나는 깜짝 놀란 눈으로 차진혁 경위를 바라보았다.
다부진 체격으로 근육질인 듯 보였지만 그렇다고 근육이 유달리 많은 것도 아니었다. 키도 190cm가 넘는 이안 요원에 비해서는 10cm가량 작아 보였다. 평범한 체구의 차진혁 경위가 이안 요원을 힘으로 제압한 것이다.
“하하하. 과연 MI6 요원이시군요. 조금만 더 했으면 제가 먼저 포기했을 겁니다.”
차진혁 경위가 너스레를 떨었다.
하지만 그가 겸손하게 말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가쁜 숨을 내쉬는 이안 요원과 달리 차진혁 경위는 그다지 표정 변화도 없어 보였던 것.
“오늘 조사가 제법 즐거울 것 같군요.”
차진혁 경위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보고야, 오늘 참고인 조사 받으면 나중에 재판에 증인으로 불려갈 수도 있다고 말해줬지?
“네, 괜찮아요.”
“오케이.”
“이안 요원 진술서는 익명으로 보고서만 남겨두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저는 먼저 들어가서 조사를 할 준비를 해 놓고 있겠습니다. 커피 한잔들 하시고 준비가 되면 올라오십시오.”
차진혁 경위가 방긋 웃으며 자리를 떠났다.
나는 차진혁 경위가 떠나자 이안 요원을 바라보았다.
“이안 요원, 무슨 일입니까?”
“하하하. 차진혁 저 사람은 정말 소문대로 괴물(Monster)이네요.”
“네? 차진혁 경위를 알고 있습니까?”
내 물음에 이안 요원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사실 오기 전부터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음? 어떻게?”
“세계 해군 특수부대들이 모여서 기량을 겨루는 대회가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전설적인 기록을 세운 사람이 있습니다. 한국 특수부대의 괴물이라고 불리는 사내에 대한 전설적인 이야기가 있습니다.”
꿀꺽. 괴물?
“그럼, 그 괴물이 바로?”
“네, 바로 저 사람입니다. 미스터 차진혁.”
나는 입을 살짝 벌린 채로 이안의 말을 듣고 있었다.
“제가 MI6에 들어가기 전에 SBS에 복무했다는 이야기를 드렸지요?”
“네.”
“그때 사실 저도 그 대회에 참석했습니다. 저는 부대의 주니어였죠. 그래도 SBS에서는 발군의 실력이었습니다.”
“결과는 어떻게 됐습니까?”
“하하하. 보시지 않았습니까? 그때도 상대가 되질 않았는데, 지금도 마찬가지네요.”
나는 그 말에 눈을 부릅떴다.
“그때나 지금이나 저 사람이 괴물인 건 여전하군요.”
“……!”
내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자 이안이 정색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미스터 장, 제가 약한 게 아니라 저 사람이 괴물인 겁니다.”
“물론 그렇죠.”
나는 이안 요원의 실력을 실제로 목격한 사람이다. 그가 SBS 저격수들 사이에 신화적인 인물이라는 것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의 실력은 나도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차진혁 경위가 한 방에 러시아 마피아 세르게이를 잠재운 기억을 떠올렸다.
좀처럼 제압할 수 없었던 세르게이도 차진혁 경위의 주먹 한 방을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기절해 버리지 않았던가?
이안이 나를 바라보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흠흠, 그나저나 잘 아시겠지만 제 특기는 격투술이나 힘자랑 같은 것들이 아닙니다.”
“네?”
“제 특기는 사격입니다. 알잖아요?”
“아, 네 그렇죠. 하하하.”
“······.”
“······.”
이안 요원은 스스로 말하고도 변명처럼 들렸는지 살짝 얼굴이 달아올랐다.
이안 요원이 대화 주제를 전환하려는 것처럼 다급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흠흠! 그나저나 미스터 장, 이번에 또 사건이 있었다고요?”
“네, 허허허.”
“사고가 끊이질 않는군요? 사고를 찾아다니는 건지······.”
“하하하. 어쩌다 보니.”
내가 사고를 찾아다닌 것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미스터 장의 태권도 실력을 제가 잘 아는데 상대하기 어려운 사람이 있었다고요?”
“네. 이후에 알게 된 내용인데 차진혁 경위님 말로는 러시아 마피아들 사이에서 이름난 칼잡이였다고 하더군요.”
“음! 큰일 날 뻔했군요.”
이안이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나에게 작은 상자를 하나 내밀었다.
“이건 제 선물입니다.”
“음? 뭔가요 이게?”
상자를 열어보니 고급 시계가 들어있었다. 나는 영국 런던 사보이 호텔에서 이안이 선물로 준 고급 슈트와 명품 시계를 떠올렸다.
“음? 시계?”
“네, 한번 보시죠.”
“전에 런던에서 명품 시계를 선물로 받았는데요?”
“이건, 좀 다릅니다.”
“네? 뭐가요?”
이안은 주변을 살짝 둘러보더니 나에게 귓속말을 이어갔다.
“하하하. 사실 부가적인 기능이 좀 있습니다.”
“음?”
“이런 일이 또 생기면 아마 도움이 많이 될 겁니다. 미스터 장 주변에 사고가 많이 발생한다고 특별히 ‘C’의 허락을 받아 가지고 나온 물건입니다.”
“······!”
나는 잔뜩 기대되는 표정을 시계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상자 밑에 들어있는 설명서를 읽어보는 나의 표정은 제법 진지했다.
이안은 내가 선물을 마음에 들어 하자 다행이라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 * *
– 부산지방법원 청사 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