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cromancer Infinite Skill Player RAW novel - Chapter 224
14화
-내 뜻에 동조할 수 없다면, 결국은 소각당하는 것이 이 세계를 위해 도움이 될 것이다.
시스템이 칼리드 일행에게 던진 말이었다.
칼리드 이전에 떨어진 누군가에게도 같은 말을 했겠지.
그들에게는 통했을지 모르겠지만.
이쪽에게는 안 통해.
첨혈창이 만들어낸 자그마한 소음.
그건 분명 첨혈창이 ‘무언가’와 충돌했다는 뜻이었고, 그 말인즉-
‘거기 있었구나?’
시스템의 물질적인 파츠가 그곳에 존재한다는 뜻이었다.
소리가 들린 이상 칼리드가 놓칠 리는 없다.
“강신계, 거력의 악마.”
“강신계, 항마의 정령.”
“강신계, 철갑의 군신.”
“강신계, 신속의 악마.”
순식간에 네 악마를 불러내 칼리드의 몸에 안착시키고는, 야수처럼 내달리는 칼리드.
얼마 지나지 않아 시커먼 어둠 사이에서 반짝이는 은빛 덩어리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여기에 있었네에?”
정확히는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게 얽힌 기계 장치.
수백 개의 칩과 톱니바퀴들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맞물려 작동하는 하나의 덩어리였다.
칼리드의 서너 배는 되는 크기.
그가 거기에까지 도달하자 위기감을 느꼈던 걸까.
-손대지 마라!
칼리드를 저지하려는 듯 급박하게 외치는 시스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지?”
들을 가치도 없다.
곧 있으면 저 수많은 광선들이 이쪽으로 쏟아질 테니.
그 전에 먼저 으스러뜨려 줘야지.
칼리드는 거력의 악마가 깃든 주먹을 머리 위까지 치켜들었다가-
있는 힘을 다해 그대로 내려쳤다.
콰작!
묵직한 타격음과 함께 움푹 패 버린 고철 덩어리.
덩달아 거기에 박혀 있던 칩과 기계 부품들이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칼리드!!! 칼리드 발데아!!! 그만두지 못할까!!!
그제야 시스템이 위기감을 느낀 건지 발악하듯 소리를 질러댔지만.
미쳤다고 멈출까.
칼리드는 오히려 주먹을 쥔 손에 가속도를 더해 기계 덩어리를 내려치기 시작했다.
-넌 기어코 말을 내 말을 듣지 않는구나, 칼리드 발데아….
“애초에 난 빈센처럼 네 수족이 아니거든.”
시간을 끌기 위함일까.
아니면 다른 목적이 있는 걸까.
쉼 없이 조잘거리는 시스템의 훼방에도 칼리드는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쿵. 쿠웅. 쿵.
자잘한 기계 장비들이 산산조각이 나고, 서너 조각으로 토막 나 버릴 때까지.
칼리드는 오롯이 저 커다란 고철 덩어리를 짓이기는 데 몰두했다.
‘확실히 공격은 멈춘 것 같은데.’
이 기계 뭉치를 으깨버리고 나니 확실히 쏟아지던 광선 공격은 없어졌다.
칼리드에게뿐만 아니라 세 사람의 비명 소리 같은 것도 들리지 않았다.
-어리석은 것. 설마 그 부품 하나가 내 본신이라 생각했던 것인가? 그건 어디까지나 일부일 뿐이니.
분명 기계 장치를 부순 건 이쪽인데.
칼리드를 도발하듯 지껄이는 시스템.
놈의 말마따나 저 장치가 시스템의 본체라 생각하고 부숴 버렸는데.
저렇게 잘도 떠들어대는 걸 보니 정말로 거대한 시스템의 일부분을 부순 정도인 모양이었다.
‘그럼 진짜 본체는 어딘가 따로 숨겨져 있다는 건데.’
아쉬움에 쩝 입맛을 다시는 칼리드.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부수어 보거라. 한낱 부품이야 다시 복구하면 그만인 것을.
시스템의 말대로 방금까지 칼리드가 박살 내놓았던 기계 덩어리들이, 자아를 가진 마냥 서서히 저들끼리 달라붙고 있었다.
“그래서, 그렇게 오만하게 떠들어 댈 힘이 남아 있는 건가?”
-너 역시 결국 이 몸의 피조물인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니, 이 무한한 공간에서 말라 죽는 것이 네 유일한 미래일 것이다.
심지어 꽤나 빠른 속도.
벌써 절반가량이 원래 위치로 돌아와 동작하기 시작했다.
시스템 역시 칼리드가 본체를 찾지 못했다는 사실에, 그를 자극하는 말들을 주저리주저리 내뱉어댔다.
흡사 영원히 찾지 못하고 이곳에서 죽게 되리라는 확신이 있는 듯한 말투였다.
“어지간히도 꽁꽁 숨겨 놓았나 보네.”
-그저 너 같은 하찮은 존재가 찾지 못할 위치에 존재하는 것뿐이니.
그러나 시스템은 모르고 있었다.
비록 물리적으로는 접근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한들, 이미 시스템의 일부인 저 기계 덩어리를 발견한 이상.
본질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 생겨났다는 것을.
“멍청하긴. 그건 지금까지는 그랬겠지.”
-무어라?
상대가 어느 곳에, 어떤 형태로 존재하든.
순수한 실존 자체로 마주할 수 있는 공간.
그리고 그 공간을 여는 방법.
“혈 계, 침진공.”
칼리드의 짤막한 스킬 시동어와 함께 다시금 시야는 완전히 어두워졌다.
***
‘여기는 언제 와도 익숙해지진 않는단 말이지.’
사방이 어두컴컴한 공간.
칼리드는 눈을 뜨자마자 주변을 스윽 둘러보았다.
시야가 시커먼 건 차원의 틈과도 비슷한 수준이었지만.
침진공으로 만들어진 이 공간은 발을 디디고 있는 바닥마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점이 조금 달랐다.
“도망치려는 생각은 안 하는 게 좋을 거야. 여긴 둘 중의 하나가 소멸하지 않는 한, 벗어날 수 없거든.”
정확히는 칼리드가 침진공을 해제하는 순간이 되겠지만.
시스템이 소멸하든, 자신이 소멸하든 스킬을 거두어들일 생각이 없었기에 같은 말이나 진배없었다.
-도대체 무슨 수를 쓴 것이냐, 칼리드 발데아!!!
칼리드의 목소리를 들은 걸까.
반대편에서 들려오는 시스템의 목소리.
그는 놈의 말소리를 듣고 나서야 빙그레 웃으며 걸음을 옮겼다.
“넌 갇혔어. 정확히는 네 본질만 이곳으로 넘어 온 셈이지.”
침진공으로 만들어 낸 세계에서는 기존의 육체는 모두 무의미해진다.
칼리드 역시 본래의 몸 대신 그의 정신과 마력만 이곳으로 이동해 왔으니 시스템 또한 마찬가지.
칼리드는 눈을 들어 시스템이 있는 곳으로 시선을 틀었다.
그리고 그곳엔-
“풉.”
저도 모르게 새어 나오는 실소.
그 자리엔 칼리드 몸의 반 정도 되는 영체 하나가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저게 시스템의 핵심인가?’
그가 여태껏 침진공의 세계로 불러들였던 다른 어떤 존재들보다도 작지 않은가.
반대로 시스템이 칼리드를 본 순간 녀석은 저도 모르게 겁에 질린 아이처럼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네, 네놈! 어째서…!
“여긴 바깥처럼 껍데기가 필요한 곳은 아니거든. 그보다 네 진짜 모습이 그 정도라니…. 생각했던 것보다 작아서 실망스러운데.”
놀리듯 말했지만 칼리드는 알고 있었다.
시스템이 저렇게 작아진 이유는 결국 칼리드를 비롯한 다른 이들에게 자신이 가진 능력을 이리저리 나누어 주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처음에는 대단한 권능인 양 생각했지만.
결국에는 제 살을 잘라 넘겨주는 꼴이나 다름없었으니까.
-가까이 다가오지 마라!
“너야말로 도망치지 마. 어차피 여기선 도망갈 수 없어. 어느 방향으로 가더라도 말이야.”
뒤로 슬금슬금 물러서던 녀석도 칼리드의 말이 맞다는 걸 알았는지.
결국 멈춰선 채 이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게 진짜 시스템이었다니.’
칼리드는 가까이로 다가가 찬찬히 녀석을 살펴보았다.
결국 마나 덩어리이긴 하지만 사람으로 치자면, 어린아이 정도의 크기.
칼리드의 허리춤까지나 올까 싶은 키였다.
특이한 점은 이곳에 떨어진 다른 존재들과 달리 밝은 파란색으로 빛나고 있다는 점이었는데.
‘뭐, 가진 마력과 에너지가 다르니 그럴 수 있겠지.’
칼리드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결국 네 뜻은 이것이냐, 칼리드.
“먼저 움직인 건 너다, 시스템. 내 힘을 빌려 아샨을 소멸시켜놓고 같은 짓을 벌이려 하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어찌하여 내 원대한 계획과 아샨, 그 오만하고도 어리석은 자의 뜻을 한 데 묶으려 드는가!
웃기는 이야기다.
칼리드는 저도 모르게 새어 나오는 코웃음을 참지 못했다.
“기존의 질서를 부수고 네 마음대로 새로이 만들어내겠다는 건데, 그게 아샨과 다르다?”
-그자는 오롯이 제 욕심을 위해 움직이지 않았던가! 나는 다르다!
그렇지.
대개 자신은 다르다고 말하니까.
절반 이상이 기계 덩어리로 이루어진 시스템조차 같은 말을 하고 있지 않나.
“내 눈엔 같아 보인다, 시스템. 멀쩡한 이 세계를 네 마음대로 뒤틀고 그 위에 무언가를 짓겠다는 건, 결국 남아 있는 자들을 생매장해 버리겠다는 뜻 아닌가?”
-변화에는 필연적인 희생이 필요한 법이다. 큰일을 치르는 데 작은 희생 따위를 고민한다면 그거야말로 어리석은 짓이 아니겠나!
거참 거창한 말이군.
칼리드는 녀석의 말에 한동안 입을 다물고 있더니, 느릿느릿하게.
하지만 또박또박 한 자씩 끊어가며 놈의 말에 답했다.
“그러니까… 보다 큰 걸 위해선 작은 걸 희생해도 괜찮다?”
-당연한 것 아닌가! 어찌해 그 간단한 진리를 모르는가!
“그렇다면 당장 내가 너를 이 자리에서 으깨버려도… 별문제가 없겠네?”
-그건 무슨 말도 안 되는…!
“왜냐하면, 지금의 넌 나보다 작으니까.”
궤변에는 궤변으로 응수해 줄 뿐이다.
물론 놈의 말이 맞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지금의 칼리드에게는 지켜야 할 사람이 있고 지켜야 할 땅이 있다.
그리고 시스템의 말은 그 모든 걸 뒤엎어버리자는 이야기.
당연하게도 받아들여질 리가 없지 않은가.
그리고 속까지 파고 들어가자면 그 갈아엎어질 대상에는 칼리드 본인조차도 포함되는 이야기이기에.
어쩌면 둘은 절대로 양립할 수 없는 존재인 셈이었다.
저벅. 저벅.
칼리드가 한 걸음씩 시스템을 향해 나아가자, 똑같은 속도로 뒷걸음질치는 녀석.
-자, 잠깐!
“네게는 너를 뺀 다른 모든 것들이 도구 정도로만 생각되었겠지. 하지만 그것도 오늘이 마지막이 아닐까 싶군.”
다시금 한 걸음씩.
같은 페이스로 움직이는 둘 때문에 영원히 좁혀지지 않을 것 같았지만.
얄궂게도 칼리드와 시스템이 딱 달라붙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턱.
새파란 영체의 모습을 한 시스템의 어깨를 붙잡자마자 거세게 요동치는 마력.
칼도, 마법도, 스킬도 필요 없다.
그저-
마력의 덩어리를 받아들일 뿐.
“잘 가라, 시스템.”
작은 곳에서 큰 곳으로 흐르려는 마력의 특성.
칼리드는 그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시스템에게서 흘러나오는 마력을 빨아당기기 시작했다.
-아, 안 돼!!!
놈은 저항하려 했지만 이미 마력의 덩어리가 되어 버린 시스템이 저항할 수 있는 방법 따위는 없었다.
더군다나 여러모로 유용한 스킬들 역시 칼리드에게 모조리 넘겨준 이후이니.
시스템이 저항할 수 있는 방법은 아이처럼 버둥거리는 것.
그게 전부였다.
칼리드가 마력을 흡수하기 시작하자 시스템의 모습은 조금씩 작아지더니.
이내 엄지손가락만큼 작은 크기까지 줄어들었다가, 완전히 증발해 버리고 말았다.
팡.
기포가 터지듯 가벼운 폭발음과 함께.
존재 자체가 지워져 버린 시스템.
그와 함께 몰려드는 막대한 마력에 칼리드는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고 말았다.
***
“…차려!”
“…어나!”
“정신 차려! 정신 좀 차려 봐!”
으음.
칼리드는 어지럽게 섞여드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천천히 눈을 떴다.
가장 먼저 보이는 건 칸젤의 얼굴.
더불어 그 뒤에서 걱정 어린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는 엘리온과 하얀의 모습이었다.
“일어났어!”
“다행이다!”
그리고 뿌옇던 시야가 완전히 회복되자 보이는 건.
하얀을 만났던 신전.
바로 그곳이었다.
정확히는 그 입구 어딘가.
아마 시스템이 소멸하자마자 세 사람이 이곳까지 자신을 옮겨 온 것이겠지.
“그보다, 어떻게 된 거요?”
“무슨 말이지?”
“분명 차원의 틈에서 헤매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곳으로 튕겨 나와 버렸으니….”
아아, 그런 건가.
칼리드는 직접 시스템과 대면해 그를 소멸시키고 사라지는 장면까지 직접 목도했지만.
저 녀석들은 그 과정을 보지 못했으니 난데없이 이곳으로 튕겨져 나왔다 생각하겠지.
무어라 설명하는 것이 좋을까.
칼리드는 몇 마디 말을 우물거리다가 끝내 짧게 뱉어 주었다.
“시스템은 소멸했다.”
“에?”
“예에?!”
“내가 직접 녀석을 소멸시켰다.”
애초에 시스템은 아샨과 달리 그리 큰 힘을 가진 존재가 아니었다.
물론 녀석이 약해진 만큼 칼리드가 강해진 것이니 그리 말하는 것도 조금 이상하긴 하지만.
칼리드의 말에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눈을 꿈뻑이는 세 사람.
그는 몇 마디 더 말해주려다가 그만두었다.
왜냐하면-
“크흑!”
갑작스레 몰려드는 두통에 무어라 말할 틈도 없었으니까.
정확히는 칼리드에게 몰려드는 수많은 지식과 정보들.
본래 그의 것이 아니었던 것들이 무자비하게 쏟아지자, 칼리드는 하마터면 또다시 정신을 잃을 뻔했다.
‘빌어먹을…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분명 이 대륙에 대해서는 그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정말로 새 발의 피 수준이었다.
처음 이 대륙이 만들어진 그 순간의 기억부터 시작해서.
이 대륙 어딘가에 존재하는 작은 생명체 하나의 정보까지.
그 모든 것들이 한 데 몰려드는 그 느낌은.
불쾌함을 넘어서서 통증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한 번도 겪어 본 적 없는 고통에 머리를 싸매고 끙끙대기를 한참.
일련의 과정들이 끝난 순간 칼리드는 무언가가 망치로 머리를 후려친 듯한 느낌을 받았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지?’
눈을 돌려 칸젤을 바라보자.
칸젤이 이 세계에 떨어진 이후에 겪어왔던 일들부터 시작해.
그가 입고 있는 옷의 종류와 재질, 그의 능력치, 스킬과 지식 수준까지.
마치 칸젤 그 자체가 된 듯 칼리드의 머리에 정보들이 새겨졌다.
이번에는 시선을 돌려 하얀을 바라보자 마찬가지의 과정들이 반복해서 펼쳐졌고.
엘리온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거… 설마… 시스템의 기억과 지식들이 내게 넘어온 건가?’
칼리드가 알 수도 없었고 알 필요도 없었던 지식들까지 이미 그의 머릿속에 안착되어 있었다.
이건….
그야말로 신적인 존재가 되지 않는 이상 접근할 수 없는 수준의 정보들.
그리고 혼란스러워하는 칼리드에게 마지막으로 주어진 건.
새로운 정보와 지식도, 마력도 아닌.
단 한 줄의 메시지였다.
[새로운 세계의 질서가 되신 것을 환영합니다, 칼리드 발데아 님.]***
시스템을 자신의 것으로 흡수한 지 며칠이 지난 후에야.
칼리드는 마지막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대략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시스템을 없앤 순간 내가 그다음 시스템이 되어 버린 거였어.’
시스템은 신(神)은 아니지만 그와 가장 근접한 존재.
세계의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는 존재이자, 질서를 유지하는 자.
그것이 본래 시스템의 역할과 할 일이었다.
그리고 그 시스템의 마력과 본질을 흡수해 온 순간.
자연스럽게 칼리드가 그 역할을 함께 맡게 된 것이리라-
그는 그렇게 추측했다.
‘이게 시스템의 진짜 힘… 인 건가.’
며칠 동안 칼리드가 실험해 본 것 몇 가지 중의 하나는 시스템의 능력들에 관한 것이었는데.
희한하게도 발데아 영지에 앉아있는 도중에도 대륙 곳곳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일들이 그의 머릿속으로 쏟아지듯 들어오는 것은 물론.
이전의 시스템이 그랬듯 칼리드가 원한다면 손을 한 번 튕기는 것만으로도 땅의 지형을 바꾸고 변화시킬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다른 존재들에게 간섭하고 개입할 수 있는 수없이 많은 기능과 능력들까지.
어쩌면.
정말로 다른 사람들이 말하던 ‘신에 가장 가까운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 아닐까.
“칼리드.”
새로운 시스템이 되어 버린 칼리드에게 가장 먼저 다가온 건.
칼리드 자신의 예전 모습인 전사, 칸젤이었다.
“무슨 일이지?”
녀석을 비롯한 세 사람에게는 시스템의 이야기와 그 이후에 칼리드가 얻게 된 힘에 대해서까지 간략히 설명해 주었기에.
저들은 칼리드가 어떤 존재가 되었는지를 이미 알고 있었다.
“오늘은 내게 부탁할 것이 있어 왔다.”
“부탁할 것?”
평소의 칸젤답지 않게 머뭇거리며 말을 꺼내는 녀석.
칼리드는 녀석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이제 네게는 시스템의 권능이 주어졌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다른 존재들에게까지 그 힘을 펼칠 수가 있는 것인가?”
“뭐, 그런 셈이지. 물론 그걸 가지고 다른 일을 벌일 생각은 없지만.”
물론 마음만 먹는다면 대륙을 한데 통일하고 제멋대로 좌지우지하는 것도 가능할 만큼의 힘이지만.
그걸 활용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애초에 신성 제국의 일마저도 다루기 귀찮아 보르도와 벨톤에게 던져버리지 않았던가.
칼리드의 답에 한참을 더 망설이던 칸젤.
우물쭈물하던 녀석은 힘겹게, 힘겹게 칼리드를 향해 다음 말을 내놓았다.
“…그게 가능하다면… 나를 소멸시켜 주었으면 한다.”
“뭐?”
그게 무슨 말이지?
칼리드는 칸젤의 말에 황당하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애초에 나와 너를 비롯한 우리는 이곳에서 난 존재들이 아니다. 당연히 이곳에 머물러야 할 이유도 없고.”
“….”
“칼리드, 너는 시스템 그 자체가 되었으니 새로운 이유가 생긴 셈이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 아니, 애초에 이전의 네가 ‘삭제’한 존재들이지 않나.”
그… 렇지.
칼리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하려다 가까스로 참았다.
칸젤의 말마따나 그와 엘리온, 하얀을 비롯한 칼리드의 캐릭터들은 그가 삭제를 결정한 존재들이다.
본래라면 완전히 소멸했어야 할 존재들.
그것이 이전 시스템의 영향을 받아 강제로 이쪽으로 넘어오게 된 것이지.
지금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어야 할 이들이었다.
“그래서, 다시 삭제되기를 원한다?”
“그렇다. 물론 그 힘은 오롯이 네게만 부여되어 있으니, 네 결정에 맡길 일이기는 하지만.”
“다른 녀석들은?”
“이미 물어보았지. 적어도 엘리온과 하얀은 나와 뜻을 같이했다.”
‘존재해서는 안 되는 자들’이라.
비록 원치 않게 이 세계에 간섭하게 된 이들이라 한들.
본래 이곳에 있던 이들처럼 숨 쉬고 움직이는 녀석들이다.
칼리드 역시 마찬가지고.
그는 칸젤의 말을 몇 번이고 곱씹어 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도록 하지.”
“고맙다.”
지금 당장 그리 해주기를 바라는 걸까.
고맙다는 마지막 말을 끝으로 찬찬히 눈을 감는 칸젤.
칼리드는 미미하게 떨리는 손으로 칸젤의 어깨를 붙잡았고.
그의 마력이 움직임과 동시에 칸젤의 몸이 풍화되듯 허공으로 흩어져 버렸다.
마지막 인사를 나눌 시간도 없었다.
시스템이 삭제를 명한 이상, 칸젤의 존재는 그 자리에서 지워질 뿐이기에.
그 뒤를 이어 엘리온과 하얀의 흔적 역시 칼리드의 감각에서 완전히 지워져 버렸고.
하아-
그제야 칼리드는 참았던 숨을 작게 몰아쉬었다.
***
“칼리드 님!”
“칼리드 님께서 돌아오셨다!”
“만세! 칼리드 님이다!”
저 멀리 보이는 진청색의 성벽.
그 위풍당당한 건축물 안으로 들어서기 전인데도.
리톤의 사람들 모두가 밖으로 나와 칼리드의 복귀를 축하하고 있었다.
“이제 더는 다른 곳으로 가실 일이 없다 들었습니다.”
이때다 싶어 달라붙은 일라딘.
그를 비롯한 리톤의 신도들은 움직일 틈도 주지 않고 금세 칼리드 주변을 에워싸 버렸다.
“뭐, 그렇긴 한데.”
“이제야말로 리톤의 진정한 주인이 누구인지! 어리석은 신도들에게 보여줄 때가 되었습니다!”
끄응.
저 모습 오랜만이군.
언제나처럼 칼리드를 보자마자 황금빛 안광을 뿌리며 달려드는 일라딘과.
거의 같은 모습을 하고서 칼리드의 이름을 연호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칼리드는 미묘한 웃음을 머금으며 작게 숨을 들이켰다.
그렇지.
시스템의 힘을 얻었건, 신이 되었건, 어쩌면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닐지도.
칼리드만을 바라보는 수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있으니까.
칼리드는 일라딘의 말에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모두에게 선포하듯 큰소리로 외쳤다.
“리톤의 주인, 칼리드 발데아가 돌아왔다!”
-<사령명가의 무한스킬 플레이어 외전> 완-
사령명가의 무한스킬 플레이어
지은이
: 대왕생
제작일
: 2023년 07월 03일
발행인
: (주)에이시스미디어
편집인
: 에이시스미디어 편집팀
주소
: 서울특별시 강남구 선릉로 428 11F 125호
전자우편
: acesmedia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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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976-0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