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olithic Hunter RAW novel - Chapter 141
141화
“십장!”
나는 바로 이달투드워프1을 불렀고, 털썩 주저앉아 휴식을 취하던 이달투드워프1이 후다닥 목책 안으로 뛰어들어 와 내 앞에 섰다.
“예, 주인님!”
물론 나와 이달투인 이달투드워프들이 말이 통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놀라는 것 같다.
“방금 네가 앉았던 자리에 구덩이 좀 파라.”
“예, 주인님! 지금 당장 파겠습니다.”
그리고 이달투드워프1은 내 명령에 맨손으로 땅을 파기 시작했다.
“손으로 파지 않아도 된다. 이걸로 파라.”
“네? 이걸로요?”
삽이라고는 머리털 나고 처음 봤을 거다.
“시범을 보여주지, 이렇게 파는 거다.”
이달투드워프1이 이달투드워프 중에서 가장 일머리가 뛰어나다고 해도 결국 이달투드워프다.
난생처음 하는 일에는 한참 동안 미숙하기 때문에 시범을 보여 줘야 했다.
푹!
나는 삽자루 부분을 발로 밟고 땅을 팠다.
“아~ 이렇게 쓰는 거군요.”
이달투드워프1이 웃었고, 아이들은 그 모습을 보고 놀랐는지 급히 숨을 집어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애들 놀라니까 입 다물고.”
“옙!”
“가서 깊게 파라. 아주 깊게!”
화장실부터 만들어야 할 것 같다. 이대로는 냄새가 나서 살 수가 없을 것 같다. 그리고 비위생적인 환경 때문에 전염병도 생겨날 수도 있다.
‘제주도에 가면 다 있지.’
내 주위에서 빙글빙글 돌던 멍들이 어느 순간 흩어지더니 여기저기 떨어져 있는 것들을 주워 먹는 것을 보고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리고 이달투드워프1이 삽을 들고 자신이 앉았던 자리를 파기 위해 후다닥 목책 아래로 내려갔을 때, 계속해서 나를 보고 있던 백인 여자가 조심스럽게 다가오더니 내 앞에 섰다. 그리고 그녀의 뒤에는 연꽃도 다가오고 있었다.
“참! 우리 짝…… 아니, 족장님은 모르지?”
연꽃이 저 백인 여자를 내게 소개시켜 줄 모양이다.
‘원시시대에도 질투나 시기심이 있을까?’
아니, 그게 없다면 여자가 아닐 것 같다.
“저…….”
백인 여자가 나를 부르려다가 말꼬리를 흐렸다.
그리고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표정 참 묘하네?’
역시 백인종이든 황인종이든 여자는 속을 알 수 없는 존재다.
“나한테 할 말 있나?”
혹시 나한테 관심이 있냐고 물으려다가 연꽃이 옆에 있어서 참았다.
키가 크고 나서 물가에 가는 버릇이 생겼다.
그리고 그때마다 나르키소스처럼 한참 동안 물가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감탄했다.
좀 잘생겼다. 아니, 아주 많이 잘생겼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백인 여자가 내게 아직 질문도 하지 않았지만 나는 백인 여자의 말에 표정이 굳어졌다.
이 원시시대에서 단도직입적이라는 어휘를 사용하는 원시인은 없기 때문이었다.
“너…… 지금 나한테 지금 뭐라고 했어?”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떨렸다.
“당신이 헌터 최강욱입니까?”
숨이 턱 하고 막혔다.
“……너, 누구냐?”
나도 모르게 백인 여자를 노려봤다.
“제가 먼저 물었습니다. 당신은 최강욱입니까?”
단호한 말투였지만, 그녀의 눈빛은 지진을 일으키듯 떨리고 있었다.
그 눈동자에서 다급함이 느껴졌다. 마치 무엇인가에 쫓기는 느낌이다.
그녀는 내가 헌터 최강욱이라고 확신하는 것 같다. 찰나지만 내가 당황해서 되묻는 것을 듣고 확신한 듯 눈빛의 떨림이 멎었다.
쿵쾅! 쿵쾅!
내 심장도 뛰고 있다.
수많은 의문이 증폭되는 순간이다.
저 백인 여자를 처음 본 것은 악어머리 부족에서였다.
그때도 나를 보던 저 여자의 시선이 이상했다. 하지만 악어머리 족장과 담판을 지어야 했기에 그냥 넘겼었던 것이 떠올랐다.
맞다.
내 진짜 이름은 헌터 최강욱이다.
그리고 저 백인 여자가 내 본래의 이름을 안다는 자체가 이렇게 수많은 두려움을 불러일으킬 줄은 몰랐다.
‘저 여자는 누구지? 어떻게 내 이름을 아는 거지?’
내 이름을 아는 헌터들은 레드 드래곤을 척살하는 최종 미션을 클리어하는 과정에서 모두 죽었다. 그러니 최강욱이라는 이름을 아는 사람은 더 이상 있을 수가 없다.
게다가 여기는 원시시대이자 새로운 어비스다.
진짜 나에 대해 아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그런데 눈빛이 익숙해.’
딱 두 번째 보는 여자였지만 오랜 세월을 같이한 듯 익숙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말도 안 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정말 익숙한 느낌이다.
“……무슨 말을 하는 거지? 최강욱? 그런 이름도 있나? 너무 요상한 이름이군.”
원시인들은 신체의 특성이나 어떤 의미를 담아 이름을 정한다. 그래서 내 이름이 땅속에서일어서다.
“아닌가요? 정말 아닌가요?”
왜 대답을 못하는 눈빛으로 내게 다시 물었다.
“나는 하늘 부족의 족장, 땅속에서일어서다! 그러니 헛소리는 하지 마라.”
“……정말 아닌가요?”
“나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
의도적으로 인상을 찡그렸다.
처음에는 혼란스러웠지만 많은 사람이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에 내가 나라는 것을 밝힐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상하게 신중해져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저 여자를 믿을 수도 없으니까.’
요즘 부쩍 지난 어비스의 최종 미션이 떠오른다.
불개미 던전을 발견한 후부터 더 그렇다. 그리고 죽기 직전, 놀란 눈빛으로 변했던 레드 드래곤이 떠올랐다.
‘망할 놈의 신이 나를 이곳으로 보냈으니까…….’
어쩌면 다른 놈도 보냈을 수도 있다. 어이없는 생각이지만 말도 안 되는 일은 아니다.
어떻게 되었건 나는 영혼만 이곳으로 넘어왔으니까.
내게 일어난 일이 다른 사람들에게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만약 나 말고도 다른 놈이 넘어왔다면…….’
그리고 그놈이 망할 놈의 신의 비호를 받고 있다면 백 퍼센트 내 적이다.
‘그렇다면 할머니가 신탁을 받는 것처럼 내가 이곳에 있다고 들은 건가?’
나를 이곳으로 보낸 신이 신탁이라는 미명 아래 내 정보를 흘렸을 수도 있고, 그 정보를 가지고 염탐을 하기 위해서 왔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내 이름을 안다고 해서 ‘아이고, 반갑습니다. 예, 내가 바로 헌터 최강욱입니다. 그런데 그쪽은 누구십니까?’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적어도 이 여자는 내 존재를 알고 있다는 건데…….’
걱정한다고 해서 일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걱정을 거듭하면서 가설을 만들고 행동하면 최악의 순간을 막을 수 있다. 자신의 몸을 챙기는 사람이 감기만 들어도 큰 병원에 가는 사람은 암도 조기에 발견하는 것처럼 걱정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닌 거다.
“정말 모른다는 건가요? 아니면 모르는 척하고 있는 건가요? 그것도 아니면 내가 믿을 수 없다는 건가요?”
백인 여자는 흥분한 듯 언성을 높여 말했다.
마치 추궁해서라도 내 정체를 반드시 밝혀내겠다는 눈빛이다.
“할머니! 저 여자는 누구죠? 얼굴 색깔이 우리랑 달라요.”
우선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강 너머에 사는 사람들 중에서 하얀얼굴들이 있다. 그리고 이 여자는 지금까지 너를 애타게 기다렸다.”
할머니는 백인 여자를 힐끗 보시고 나서 내게 말씀하셨다. 아마도 할머니는 백인종에 대해 좀 아시는 것 같다.
‘오래 사셨으니까.’
그래서 원시시대에서는 나이를 먹은 사람을 괄시하지 않는다.
“저를 기다렸다고요?”
“그래, 너를 꼭 만나야 한다고 내게 말했다.”
“그래요? 그런데 저를 보자마자 엉뚱한 소리만 하네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저 여자가 누군지 모르겠다. 하지만 저 여자는 나를 알고 있는 눈치다.
그러니 저 여자가 나에 대해서 어떻게 아는지,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다.
“아는 사람이야?”
연꽃이 호기심 짙은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연꽃은 그녀를 아는 눈빛이다. 물론 나 역시 저 여자를 처음 본 것은 아니다. 악어머리 족장과 아침을 먹을 때, 저 여자가 나를 한참이나 보다가 어디론가 갔던 것이 떠올랐다.
“아니! 어서 들어가자. 피곤해.”
“응, 마를 삶아 놨어. 배고프면 먹어.”
연꽃이 다시 나를 보며 웃었고,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마주 웃으며 돌아서서 동굴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런데 땅속에서일어서야! 저 동굴사람들은 어떻게 할 생각이냐?”
“일꾼으로 써야죠.”
“일꾼?”
늑대발톱은 일꾼이라는 단어의 뜻을 몰라 나를 봤다.
“예,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도와서 일을 할 사람입니다.”
나와 불개미 던전을 클리어할 때 생사고락을 같이했다.
목숨을 걸고 싸운 전우에게 노예라고 말하기는 좀 그랬다. 그리고 나는 그들을 펫, 또는 노예라 생각하지 않는다.
이달투드워프들은 내 부족민이다.
“저것들이…… 사람들이라고?”
현생인류들은 현생인류의 아종인 이달투들을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다.
이상한 모양으로 구겨진 늑대발톱의 표정을 보고 유추해 낸 것이지만 현생인류에게 이달투는 사람이 아니라 짐승이라 생각하는 모양이다.
“키만 작을 뿐이지, 사람은 사람이죠.”
“아니다. 동굴사람이라고 불리지만 사람이 아니다. 만약 저들이 사람이라면 검은털사람도 사람이다.”
아마도 검은털사람은 원숭이나 침팬지를 말하는 것 같다.
“예?”
“저들은 짐승이라고 말하는 거다.”
“상관없어요. 앞으로 사냥도 하고, 열매도 따고, 이런저런 일들을 할 때마다 저를 도와서 하게 될 겁니다.”
내가 꿋꿋하게 내 의견을 피력하자 늑대발톱이 한발 물러서는 듯 표정이 담담해졌다.
“……하지만 네 말을 잘 들을지 모르겠다.”
“그건 걱정 마세요. 지금도 제가 명령한 대로 땅을 파고 있잖아요.”
나와 늑대발톱이 있는 곳은 동굴 입구지만, 목책 밖에서 이달투드워프들이 땅을 파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그럼 저놈들도 동굴에서 함께 지낸다는 거냐?”
모두가 이달투드워프드들이 별로 달갑지 않은 눈빛이다. 늑대발톱도 그렇고 큰바위도 그렇고 모두가 다 그렇다.
특히 여자들은 겁을 먹은 표정이 역력했다.
이건 다시 말해 이달투가 어떤 짓을 하고 사는지 알고 있다는 의미다.
“여자들도 있어요.”
“정말? 정말 이달투 원정대가 성공한 거야?”
“물론이죠. 저는 땅속에서일어서입니다. 하하하!”
그리고 백인 여자는 여전히 나를 물끄러미 보다가 지금은 이야기를 할 때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는지 표정이 담담해졌다.
“사이네 언니! 언니도 들어가서 같이 먹어요!”
‘……뭐? 사이네?’
연꽃이 이름을 부르는 순간 깜짝 놀라 황급히 뒤돌았다.
아니,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우연의 일치로 내가 알고 있는 사람과 이름이 같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원시시대에서 사이네라고 작명하는 것은 절대 흔한 일이 아니다.
‘저 백인 여자의 이름이 사이네라고……?’
내가 홱 하고 뒤돌자 나를 담담히 보고 있던 백인 여자의 눈빛이 확신했다는 듯이 반짝였다.
내 기억 속 사이네라는 이름은 가벼운 의미로 자리 잡고 있지 않다.
이번 어비스뿐만이 아니라 저번 어비스에서도 흔하지 않은 이름, 그리고 내게 일어난 일이 다른 사람에게도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는 생각이 겹쳐졌다.
그리고 내 눈앞에 서 있는 저 사이네라는 백인 여자가 정말 내 기억 속의 사이네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