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olithic Hunter RAW novel - Chapter 142
142화
내 기억 속의 사이네가 환영처럼 그녀의 옆에 보였다.
그리고 그 두 여자들은 나를 다르면서도 같은 눈빛으로 보고 있다.
‘정말 저 여자가 사이네일까?’
계속해서 보자 저 백인 여자가 사이네와 비슷한 분위기를 풍긴다는 느낌이 들었다.
저 여자가 정말 내 기억 속의 사이네라면 이번 어비스에서 뭔가 엄청난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혹시 사이네도 나처럼……?’
몸은 사라지고 영혼만 강제 소환을 당했을 수도 있다.
‘그게 아니면…….’
전 어비스로 끌려갈 때처럼 게이트가 열렸을 수도 있다. 하여튼 엄청난 일인 것은 분명한 것 같다.
“그럼 저 여자들은 어떻게 할 거냐?”
늑대발톱은 이달투 이달투드워프들에게 신경이 쓰이는 듯 내게 물었다.
“저 여자들은 이달투드워프와 같이 살 겁니다. 신경 쓰지 않아도 돕니다.”
여자들은 모두 짝이 있었다.
그리고 이달투드워프들은 자신의 짝들에게 맹목적인 충성을 다했다.
자기한테 잘해 주지 않으면 다른 이달투드워프를 찾으면 그만이었고, 몇 번이고 짝을 바꾸는 여자도 있었다.
‘일처다부제라니까…….’
계속 짝을 바꾸는 여자는 아마도 이 원시시대에서 가장 속 편한 여자가 분명했다.
“제 이달투드워프들은 목책 밖에서 대나무로 초막을 짓고 살 겁니다. 그러니까 괜한 걱정 하실 필요 없습니다.”
“알았다. 족장이 하는 일이니 걱정하지 않으마.”
늑대발톱은 나에 대한 신뢰감이 대단하다. 내 명성 수치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들을 믿는 아버지의 마음이라는 것을 나는 이미 알고 있다.
물론 내 혈족들은 똑같지만 말이다.
“안 돼! 동굴사람은 위험해!”
그때, 아직도 걱정되는지 큰바위가 목책 밖에서 열심히 땅을 파고 있는 이달투드워프들을 감시하다 빽 소리쳤다.
“신경 쓰지 마요.”
“……그런데 이상하다. 동굴사람들이 여자들을 잡아가지 않는다. 땅만 죽어라 파고 있다.”
큰바위는 땅을 파는 이달투드워프들이 이상한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역시 주인님이 주신 것으로 일을 하면 잘된다니까.”
“그러게…… 땅이 이렇게 잘 파이네.”
“그런데 저들이 우리를 싫어하나 봐.”
“상관없어. 우린 주인님 말씀만 잘 들으면 된다.”
땅을 파면서 이달투드워프들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저것들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
늑대발톱과 큰바위에게 이달투들의 말은 괴성처럼 들릴 것이다.
하지만 오랜 시간을 지내서인지 이달투드워프들 옆에 있는 여자들은 이달투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고, 그들의 말에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저희 대신 일을 해 줄 일꾼들입니다. 이달투드워프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름이 아주 쉽게 1부터 30까지입니다.”
“……동굴사람은 동굴사람이다.”
여전히 큰바위는 이달투드워프들이 못마땅한 모양이다.
하지만 저들은 우리와 다를 뿐이지, 틀린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둘이 융화할 때까지는 시간이 걸리지만 결국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그보다는 설명하기 어려운 일이 너무 많다. 그리고 설명 듣기 참 곤란한 상황이다.
‘……모두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
지금 당장 내 궁금증을 풀 필요는 없다.
오늘만 날인 것은 아니고, 내일도 있으니까.
쾅쾅! 쾅쾅!
“왜, 이놈들아! 왜?”
그때, 이달투드워프1이 내가 뭔가 말할 것이 있는지 목책 문을 두드렸고, 이달투드워프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던 큰바위가 맞서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깊이 팠습니다!”
내 귀에는 정확하게 들리지만 큰바위에게는 짐승이 울부짖는 소리로 들릴 거다.
“뭐라는 거야?”
“깊이 팠습니다! 한번 봐 주십시오!”
쉴 틈이 없다.
하지만 아무리 피곤해도 이 악취는 해결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코가 썩지 않고, 또 전염병도 걱정도 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저한테 말하는 겁니다.”
“족장한테 뭐라는데?”
“땅을 깊게 팠다고 한번 봐 달라는 겁니다.”
“그래? 그런데 족장은 어떻게 알아?”
큰바위가 신기하다는 얼굴로 나를 보며 물었다.
“그냥 알아요. 그냥!”
“하하하! 역시 내 아들 족장은 모르는 것이 없다!”
큰바위가 이달투드워프의 말까지 알아듣는 내가 자랑스러운 모양이다.
“그건 그렇고 저 여자들은 겁도 없는 모양이다. 저렇게 태연하게 동굴사람들 옆에 앉아 있다니…… 웬만한 담력으로는 못할 일일 텐데…….”
“제 이달투드워프들은 생각보다 순하거든요.”
늑대발톱의 질문이 들려 동굴에 들어가려다가 다시 목책으로 돌아와서 대답했다.
“마 안 먹어…… 먹어요?”
그때, 연꽃이 할머니와 제비꽃의 눈치를 보며 내게 말했다.
‘왜 자꾸 동굴에 들어가자고 하는 거지?’
조금 이상했다.
그러고 보니 나를 쳐다보던 눈빛도 묘했다.
내 신체는 이제 빠른 레벨 업 때문에 다 컸지만 연꽃은 벌써 여자의 향기가 물씬 풍겼다.
‘아직 아이를 낳을 때는 아니니까.’
엉뚱한 생각이 들어서 피식 웃었다.
연꽃은 짝인 나와 단둘이서만 있고 싶은 것일 수도 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우리 둘은 짝이니까.
사실 나 역시 자신을 사이네라고 말하는 저 여자가 없었다면 연꽃과 단 둘이 잠시 동안이라도 같이 있고 싶다.
나를 우러러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그녀의 품에서 쉬고 싶기도 했다.
“가지고 와! 시원한 바람이나 맞으며 밖에서 먹게.”
“응! 아니, 예!”
“할머니! 너무 눈치 주지 마세요. 제 짝입니다. 짝! 그리고 하늘 부족의 큰어미입니다.”
할머니께서는 좀 서운하시겠지만 내 짝은 내가 챙겨야 한다.
“누가 눈치를 줬다는 거냐?”
“그러게요, 어머니. 호호호.”
눈치를 주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연꽃을 보는 시선이 날카로웠다.
할머니와 제비꽃은 연합을 구축한 것 같다. 이래서 ‘시’짜들이 무섭다.
“나는 그냥 하늘 부족의 큰어미가 된 연꽃이 그에 맞게 말과 몸을 움직였으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이 드는구나.”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연꽃이 아직 어리다지만 하늘 부족의 큰어미잖아요. 족장이 말한 것처럼 말이죠. 호호호!”
“맞다. 제비꽃, 네가 많이 가르쳐 줘야 할 것 같다.”
연꽃은 앞으로 시집살이를 제대로 할 것 같다.
“예, 할머니. 그리고 제비꽃 언니…….”
명량했던 연꽃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배고파! 어서 마나 가지고 와.”
할머니와 제비꽃이 연합을 해서 연꽃을 저렇게 눈치를 주는 것은 치사한 일 같다.
하지만 내가 나서서 그만두라고 나설 수는 없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은근히 연꽃의 편을 들어 주는 것뿐이다. 그리고 이럴 때는 그냥 연꽃과 함께 마를 먹는다는 핑계로 자리를 피하는 것이 최고일 것 같다.
“알았어요, 땅속에서일어서 족장님!”
연꽃이 내 말에 대답을 하고 동굴 속으로 들어갔고, 나는 목책 밖으로 나갔다.
“힘들지?”
할머니와 내 생모인 제비꽃이 보고 있기에 연꽃이 작게 속삭였다.
“힝…… 할머니는 이해가 가는데…… 제비꽃 언니가 나한테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다 우리를 걱정해서 그러는 거지.”
내 어머니를 내 어머니라고 말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운 순간이다.
하지만 내가 안타깝다고 느끼는 것을 어머니인 제비꽃의 애절함에 비할 수는 없다.
“나도 그렇게 생각할게. 무사하게 돌아와 줘서 고마워.”
무척이나 나를 걱정했던 시간과 조바심이 연꽃의 눈동자를 통해서 느껴졌다.
“앞으로는 걱정 안하게 할게.”
“응.”
연꽃은 분명 착한 여자다. 하지만 착한 여자라 해도 내가 하늘 부족의 족장이고, 연꽃이 악어머리 족장의 딸인 이상 마지막까지 의심을 놓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런 의심을 해야 하는 내 상황이 서글퍼졌다. 내가 하늘 부족의 족장이 아니었다면 온전히 연꽃을 믿고 사랑해 줄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연꽃이 어머니처럼 되려면…….’
분명 애를 낳아야 할 것 같다.
그리고 그 아이가 족장이 된다고 각인시켜 주면 된다. 그리고 나는 그 아이와 연꽃을 위해 살고 힘을 키워 망할 놈의 신을 죽이면 된다.
‘망할 놈의 신을…….’
어느 순간부터 망할 놈의 신을 죽이겠다는 마음보다 이 삶에서 연꽃과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가끔 든다. 하지만 그건 결코 이룰 수 없는 바람이라는 것을 나는 이미 알고 있다.
* * *
“이 정도 깊이까지 파면되겠습니까?”
원래부터 대나무 숲의 땅은 딱딱하지 않기에 이달투드워프들이 판 구멍은 제법 깊었다.
“이달투드워프1의 머리 깊이까지 더 파!”
“예, 알겠습니다.”
“다시 판다!”
이달투드워프1이 다시 다른 이달투드워프들에게 지시를 내렸고, 작업은 다시 시작됐다.
“십장아!”
“예, 주인님!”
이달투드워프1은 땀을 뻘뻘 흘리며 땅을 파고 있었다.
“똑똑한 십장은 혼자 일하지 않는다.”
솔선수범은 좋다.
하지만 아무리 솔선수범을 한다 해도 부지런한 한 사람 이상의 몫은 하지 못한다.
그러니 노가다 십장 정도가 되면 열심히 일하는 것보다 정확한 지시를 내릴 줄 알아야 한다.
“예?”
“생각을 좀 하라고! 너 혼자 일하지 말고.”
“어…… 일을 하지 말고 쉬라는 겁니까?”
이달투드워프들 중에 이달투드워프1이 제일 똑똑하다.
일머리 수치가 가장 높았다. 그런데 내 뜻을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이거…… 완전 큰바위 서른 명을 데리고 다니는 꼴이 되겠네…….’
앞으로 한동안은 입에 단내를 달고 살 것 같다.
“어떻게 해야 잘할지, 빨리할 수 있을지 고민을 하라고. 또 어떤 일을 해야 할지 생각을 해 봐.”
“생각이라굽쇼?”
“그래, 이제 십장이니 생각해 봐야지. 땅도 파야 하지만 또 뭐를 해야 할까?”
“어…… 주인님이 시키시는 명령을 들어야 합니다.”
이달투드워프1의 얼빵한 대답에 내가 이달투드워프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라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이달투드워프들은 현생인류가 아니다.
즉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가 아니라 호모사피엔스에서 갈라진 또 하나의 인종이고, 머리가 썩 뛰어나지 못하다.
‘레벨 업을 하면 좀 더 발전하겠지.’
그리고 나는 힐끗 목책 위에서 사이네라는 여자를 봤고, 마침 나를 보고 있었는지, 아니면 계속 보고 있었는지 눈이 마주쳤다.
‘활도 가지고 있네…….’
딱 그 느낌 그대로 사이네다.
“……됐다.”
머리만 복잡해서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찡그렸다.
“그냥 제가 대가리를 박을까요?”
이달투드워프1은 자기 때문에 내가 화가 난 줄 아는 모양이다.
“됐다.”
“감사합니다. 주인님!”
“땅을 파고 너희들 여기서 살아야 하니까 대나무로 초막도 지어라.”
“예, 알겠습니다.”
“저놈들이 이상한 짓을 하면 죽창을 던져서 죽인다.”
하지만 큰바위는 여전히 경계를 풀지 않고 있었다.
‘너무 흥분하신 것 같네…….’
그리고 늑대발톱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산딸기를잘따가 숲에 갔다가 사라졌다고 했지.’
큰바위의 반응이 이제야 이해가 됐다.
아마도 우리가 사는 산맥 근처에도 이달투들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