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olithic Hunter RAW novel - Chapter 144
144화
“그쪽도 활을 좀 쏘는 것 같은데 같이 가자.”
“예. 알겠습니다.”
내 말에 사이네는 놀란 표정을 잠시 지었다가 다시 무표정한 얼굴로 되돌리고 담담하게 대답했다.
‘저런 표정은 딱 엘프의 표정이기는 한데…….’
엘프는 시크한 면이 많다. 그래서 지난 어비스에서도 많은 헌터들이 엘프에게 말을 잘 걸지 못했다.
모든 일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듯 무표정한 표정으로 일관하고 남자들이 추파를 던질 때도 얼음처럼 차가운 눈빛으로 바라보기만 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헌터들이 더는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다.
하지만 용기 있는 자가 미녀를 가진다는 말처럼 오지랖이 좀 더 넓은 헌터들은 거절당해도 계속해서 엘프들에게 말을 걸었고, 그러다가 서로 친해졌다.
‘나도 처음에는 치기 어린 장난이었지.’
나도 모르게 사이네가 떠올라 미소가 머금어졌다.
우르르 쾅쾅!
우리가 자리에서 일어나 동굴 밖으로 나왔을 때, 하늘에서 천둥이 쳤다.
“……비가 올 것 같아요.”
연꽃이 말했다.
그러고 보니 장마철의 끝자락이다.
매일같이 쏟아지던 비가 요즘은 이틀에 한 번 오고 있다. 하지만 오늘 비가 쏟아진다면 저 백인 여자와 이야기를 할 기회가 날아가는 것이다.
“아니다. 달도 별도 떠 있다.”
하늘을 바라본 늑대발톱의 말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가죠. 비가 쏟아지면 그때 동굴로 뛰어가면 되니까요.”
“가자! 비 올 때까지 활쏘기 연습을 한다!”
늑대발톱의 말에 아이들이 활쏘기 훈련장으로 뛰어갔다.
‘대장 놀이가 재미있으신 모양이네.’
나쁠 건 없다.
* * *
레드의 거대한 초막.
타크의 진언을 듣고 타크와 와탕카를 물린 레드는 깊은 사색에 잠겼다.
‘내가 가졌던 힘에 비하면 헌터의 힘은 너무나도 하찮다. 그런데 나는 왜 헌터에게 당했던 거지?’
레드는 손을 쥐었다 폈다.
자신이 헌터가 된 후 한 가지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바로 헌터가 한없이 약한 존재라는 것.
물론 그 약하다는 기준은 자신의 드래곤이었을 때를 기준으로 한 것이었다.
현재 레드의 레벨은 300대 중반이었다.
악어머리 부족 전사들의 수는 3백 명이 넘었다고 보고를 받은 상태고, 레드는 자신이 3백 명의 전사를 이끄는 헌터 최강욱과 대결을 펼쳐서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때는 고작 열두 명에게 당했었지…….’
레드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점점 더 깊은 사색에 빠졌다.
그때를 생각해 보면 쉽게 공격 명령을 내릴 수 없었다.
한 번 패한 자의 두려움이라고 할까?
그것도 아니면 신중함이라고 할까?
이것이 레드의 첫 번째 실수라면 실수였다.
“타크!”
“예!”
오랫동안 사색에 빠져 있던 레드가 타크를 불렀다.
“우리는 전사의 수를 6백으로 늘린다.”
레드는 지난 어비스의 패배에 대해 곱씹으며 다시는 패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듯 말했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잘못된 보고와 오해로 인해 상황이 점점 더 꼬이고 있었다. 하여튼 그렇게 땅속에서일어서에게 방어구를 받고 승승장구하고 있는 악어머리 부족에게 거대한 위기가 닥치고 있었다.
“그리고 매머드를 잡아야겠다. 더 많은 상아가 필요할 것이다. 전사들을 무장시킬 무기가 필요하다.”
“예?”
“휴먼 궁수들을 떠올려라. 봄까지 철저하게 준비해서 숙련된 궁수 2백을 만들어라.”
이것이 바로 레드가 저지른 두 번째 절대적인 실책이었다. 레드가 시간을 두고 준비하는 만큼 헌터 최강욱인 땅속에서일어서도 빠르게 성장할 테니 말이다.
“예, 알겠습니다.”
사실 레드는 지금까지는 타크가 이끌다시피 하고 있는 부족의 일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어떻게든 헌터 최강욱을 죽이고 신이 자신에게 한 약속대로 이 원시 지구를 떠나 자신이 살던 곳으로 돌아가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 기지개를 켜듯 거대한 본신으로 돌아가 창공을 마음껏 날고 싶었다.
“아니다, 내가 직접 전사들을 이끌고 매머드를 사냥해 화살촉의 재료를 확보할 것이다.”
레드는 자신의 결정을 번복했다.
저번 어비스처럼 독불장군처럼 혼자서 싸우다가는, 무리를 지어 자신에게 덤벼든 헌터 최강욱에게 패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패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레드의 변화가 놀랍기만 한 타크였다.
‘혹시 마음이 변하실까?’
최강욱을 죽이고 자신이 있던 곳으로 떠나겠다고 말한 레드의 마음이 혹시나 변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타크였다.
그럼 자신에게 줄 수도 있다는 이 부족은 영원히 레드의 노예가 될 것이고 자신은 족장이 아니라 그저 노예들을 관리하는 노예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레드의 앞이기에 내색을 할 수 없었다.
“감사합니다, 레드 님!”
타크는 그러면서도 레드의 말에 미소를 지었다.
‘돌아가게 만들면 된다.’
타크는 어차피 레드가 최강욱을 죽이면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갈 것이고, 남은 이 부족은 자신에게 주겠다는 약조를 받았다. 타크의 머릿속에는 미래를 생각해 최대한 레드를 이용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강한 전사를 만들어야겠다. 그 망할 놈과의 마지막 결전을 위해서라도!”
“예, 준비하겠나이다.”
“물러가라.”
그렇게 레드의 명령에 와탕카와 타크가 레드의 움막에서 나왔다.
‘최대한 시간을 끌고 레드를 이용해야 한다. 내 부족이 더 커질 때까지!’
타크는 타크대로 자기만의 꿍꿍이가 있기에 당장 공격하겠다는 레드를 목숨을 걸고 막았다.
‘레드는 헌터 최강욱을 죽이고 이곳을 떠날 것이다. 반드시. 그렇다면…….’
타크는 헌터 최강욱이 창 한번 제대로 잡아 보지 않은 휴먼 1천여 명을 이끌고 1만이 넘는 오크 군단을 괴멸시켰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와 전쟁을 벌인다면 자신이 이끌어야 할 용 부족이 어떻게 될지 짐작이 됐다.
‘시간을 최대한 끌고 전사들을 숨겨야 해. 그렇게만 한다면 레드가 떠나는 날이 바로 내 세상이 되는 날이다!’
타크가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을 때, 옆에서 와탕카가 으르렁거렸다.
“네 부족? 누구 마음대로 네 부족이라는 거냐! 이 망할 놈아, 구렁이 부족 전사도 내가 다 죽였고, 다른 놈들도 내가 다 잡아 왔다. 그런데 왜 부족이 네놈의 것이라는 거냐?”
와탕카가 결국 화를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레드의 초막 안에서 타크가 한 말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것도 최대한 화를 억제한 것이었다. 만약 이곳이 레드의 움막 앞이 아니었다면 와탕카는 최소한 타크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을 것이다.
“레드 님께서 귀환하실 때 내게 이 부족을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그럼 나는?”
“너는 너 나름대로 부족을 만들어야겠지. 너는 내 밑에는 죽어도 못 있잖아.”
타크가 묘한 미소를 보였다.
“뭐라고? 이 망할 놈이 정말!”
와탕카가 타크에게 주먹을 날리려는 듯이 한 손을 치켜들자 레드의 막사 주변에 있던 전사들이 와탕카를 노려보며 다가갔다.
“이 새끼들이! 감히 누구에게 그딴 눈깔을 하는 것이냐!”
“족장님께 말 함부로 하지 마시오!”
놀랍게도 지금까지 한 번도 와탕카에게 뭐라고 하지 않았던 전사들이 타크를 족장님이라 부르며 경고를 하면서, 당장이라도 타크가 명령만 하면 창으로 공격하겠다는 살기 어린 눈빛을 번뜩였고, 와탕카는 그들의 행동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지금 뭐라고 했느냐!”
그러고는 정신을 차린 와탕카가 허리께로 손을 뻗어 도끼를 뽑아들었다. 와탕카를 노려보던 전사들은 등에 돌려 멘 나무 방패와 돌창을 돌려 쥐고는 와탕카에게 겨눴다.
더 놀라운 것은 그 전사들 모두 나무를 덧댄 가죽 갑옷을 입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 새끼들이 정말 미쳤구나!”
“쯧, 됐다. 신경 쓸 것 없다. 가자!”
와탕카의 성질이 펑 터지려는 순간, 타크가 와탕카를 대놓고 무시하며 자신의 움막으로 가 버렸고, 전사들은 땅바닥에 침을 퉷 하고 뱉으며 타크의 뒤를 따랐다.
“저 휴먼 새끼들 다 죽입니까?”
네안데르탈인 전사 하나가 타크와 그의 전사들이 먼발치로 사라지자 와탕카에게 말했다.
퍽!
와탕카가 바로 주먹을 날렸다.
“으윽! 왜?”
“이 새끼야, 아까는 왜 가만히 있었어?”
“죄, 죄송합니다.”
“허…… 모든 오크를 통솔했던 오크 군단장인 내 꼴이 말이 아니군. 왜 나는 어디서도 이렇게 대접을 못 받는 거야!”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인상을 찡그리는 와탕카였다. 하지만 누구도 그에게 관심을 보이거나 위로를 하는 원시인은 없었다.
* * *
“용신께서는 뭐라고 하십니까?”
타크의 초막도 레드의 초막에 못지않을 정도로 컸고, 각 인종별로 여자들이 타크의 시중을 들고 있었다. 정말 왕처럼 군림하고 있는 타크였다.
“전사들을 이끌고 매머드 사냥을 나가신다고 하셨다.”
“정말이십니까?”
“그리고 우리에게 매머드의 고기와 더 좋은 무기를 주신다고 하셨다.”
“이 모든 것이 다 타크 님께서 용신께 말씀을 잘 드려서 이루어진 일입니다.”
모든 것이 타크의 공으로 돌리는 전사들이었다.
“배탈이 났던 아이들은 어떻게 됐지?”
“말씀하신 대로 시큼한 열매의 즙을 내서 물에 타 먹으니 괜찮아졌습니다.”
“그래. 배탈에는 매실이 제일 좋지. 자주 먹여라.”
“감사합니다. 타크 님!”
타크는 이 원시 부족에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
‘나도 이제 휴먼이다! 나라고 해서 왕국을 만들지 말라는 법은 없지.’
인간을 부러워했던 타크는 인간이 되고 새로운 야망을 품었다.
‘레드 님도 나처럼 인간이 되셨지만 오직 귀환만 생각하고 계시니까…….’
타크가 레드가 있는 거대한 초막을 봤다.
‘제가 황제가 되고 레드 님께서 귀환을 하시면 레드 님을 용신으로 모시겠나이다. 하하하!’
* * *
“그런데 갑자기 날개 쥐가 왜 이렇게 많지?”
아이들은 원래 호기심이 많다. 그리고 대나무 가지에 내려앉아 있는 박쥐들에게 관심을 보였다.
“그러게.”
내가 활쏘기 연습을 할 때는 사냥한 동물의 사체를 과녁 삼아 연습을 했지만 궁수들이 늘어나서 그런지 대나무 통에 마른풀을 넣어서 과녁을 만든 것 같다.
“우리, 움직이는 거 맞히기 내기를 할까? 저기 가지에 앉아 있는 날개 쥐를 맞히는 거야.”
아이 하나가 다른 아이에게 내기를 걸었다.
“내기?”
“그래, 시큼한 거 다섯 개 걸고 하자.”
아마도 열매를 걸고 내기를 하려는 것 같다.
“그러자!”
아이들이 활을 들고 돌아섰다.
“멈춰!”
내 말에 아이들이 나를 봤다.
“왜 그러세요? 족장님!”
-주인님! 우, 우리를 쏘려고 합니다요!
배트맨이 호들갑을 떨었다.
언제부터인가 배트맨은 사람의 말까지 알아듣기 시작했다.
저것도 저러다가 진짜 사람이 되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호들갑 떨지 마라.’
-……알겠습니다요.
지금 하늘 위에서 원을 그리며 날아다니는 끼옥도 박쥐들을 보고 그냥 군침만 흘리고 있다. 맹금류인 보라매에게 박쥐는 먹잇감이다. 하지만 끼옥의 눈에도 내 펫이라는 것이 보이기에 잡아먹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날개 쥐는 절대 죽이면 안 된다.”
“왜요?”
“끼옥과 같다.”
“끼옥처럼 우리를 지켜 준다고요?”
애들이라서 질문이 더 많다.
“그래, 활이나 쏴라. 질문 더 하면 맞는다.”
“예.”
“과녁에 쏴!”
나는 아이들에게 그렇게 말하고 대나무 숲으로 걸어가는 백인 여자를 봤다.
마치 따라오라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