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olithic Hunter RAW novel - Chapter 15
15화
“제가요? 저는 붉은개의 아들이라면서요?”
내 말에 늑대발톱이 묘한 눈빛을 보였고 나를 바라보고 있던 제비꽃도 슬픈 눈빛으로 나를 봤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거냐?”
“저 사람 처음 봐요.”
“살리고 싶다며?”
늑대발톱이 내게 말했다.
“죽어 가고 있잖아요. 죽게 그냥 둘 수는 없잖아요.”
“그게 전부냐?”
“네.”
속이려면 모두를 속여야 한다.
‘다 속이기 위해서 나는 나도 속일 것이다.’
우선은 의심을 받지 않고 생존하는 것이 제1차 목표니까.
“정말 모른다는 거야?”
늑대발톱의 목소리가 살짝 변했다. 흥분한 것 같다.
“누군데요?”
“……됐다. 그만해라. 그럴 수도 있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니까. 잠시 다 잊어버릴 수도 있다.”
애매한 상황인데 주술사 할머니가 정리해 줬다.
“하지만 어머니…….”
“모르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지. 이제 우린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혈족의 위태로움을 극명하게 표현이 되는 순간이었다.
‘붉은개가 마음만 먹는다면…….’
이미 대세는 붉은개 쪽으로 기울었기 때문에 당장이라도 이들을 죽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이런 상황에서도 붉은개가 왜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지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동굴에서 큰바위를 돌도끼로 찍었을 때는 사생결단을 내겠다는 눈빛이 분명했는데 지금 와서 왜 이러는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큰바위가 가여워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땅속에서일어서도 가엽고…… 흑흑흑!”
그때 제비꽃이 측은한 눈빛으로 큰바위를 보며 늑대발톱에게 말했다.
“…….”
하지만 아무도 대답하는 사람이 없다.
정말 늑대발톱은 큰바위가 죽을 것 같기에 나를 데리고 온 것 같다.
“살릴 수는 없나요?”
내가 다시 묻자 주술사 할머니는 내 머리를 쓰다듬다가 입을 열었다.
“……그건 어려울 것 같구나. 저렇게 머리가 깨진 사람은 먹은 것을 토해 내다가 죽는다.”
실제로 큰바위의 상태는 위태했다. 지혈도 하지 못하고 그냥 눕혀 놓은 것 같다. 고통에 겨워하는 그는 이제 체력이 고갈되어 숨만 간당간당하게 붙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두개골 함몰이야.’
정확하게 돌도끼로 그렇게 끔찍한 공격을 당했으니까 어떻게 보면 숨이 붙어 있는 것도 용한 것 같다.
‘치유의 손길이나 붕대 감기 스킬만 있었어도…….’
이 순간 스킬이 모두 사라진 것이 아쉬웠다.
여전히 큰바위가 내 아버지라 느껴지지는 않지만 나를 살리려다가 저렇게 됐으니 안타까웠다.
‘즉사하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라면 다행이겠지.’
죽지 않았다는 것은 살릴 수도 있다는 의미지만 이 순간 큰바위에게 필요한 것은 기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이 순간 그 기적을 일으켜서라도 큰바위를 살리고 싶다.
‘일단 외부 감염부터 막아야겠다.’
살리겠다는 결심이 섰다.
나를 끔찍하게 생각하는 큰바위를 살릴 수만 있다면 차후 붉은개를 처리할 때 내게 큰 힘이 될 것이다.
나는 움막 안을 살폈다. 그리고 대나무 통 하나를 발견했다.
“물 좀 떠 올게요.”
“뭐?”
“목이 마르네요.”
“이 새끼가 정말!”
그때 늑대발톱이 흥분해서 내 목을 움켜잡았다.
“네 아빠라고!”
“커어어억!”
숨통이 조여 왔다.
“늑대발톱!”
주술사 할머니가 놀란 듯 소리쳤다.
“그러지 마요. 늑대발톱, 아이는, 그 아이는…….”
제비꽃이 뭔가 말을 하려다가 말꼬리를 흐렸고 제비꽃의 반응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목덜미로 밀려드는 압박감 때문에 숨이 턱턱 막혔다.
‘쥐, 쥐새끼가 있겠지.’
내가 붉은개였다면 반드시 쥐새끼를 보냈을 것이다. 내가 약하고 위태로울 때는 철저하게 적의 처지에서 생각해야 한다.
내가 붉은개라면 그 황당한 꼴을 당한 직후인 지금, 절대 의심의 눈초리를 풀지 않을 테니까.
“그만! 그만해라!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다!”
“이런 짐승만도 못한 새끼는…….”
“컥, 사, 살려 주…… 주세요…….”
늑대발톱의 아귀힘이 얼마나 강한지 목이 잡힌 것만으로도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상할 정도로 분노가 큰 것 같다. 기대가 큰 만큼 분노가 큰 법인데, 늑대발톱은 내게 무슨 기대를 했는지 모르겠다.
“어서 놔줘라!”
“어서 놓으라고요. 놔요. 어서!”
주술사 할머니가 다급하게 소리를 다시 질렀고, 그제야 내 숨통을 조르고 있던 늑대발톱이 나를 팽개치듯 쓰러뜨렸다.
쿵!
“크아악!”
그 상태로 옆으로 쓰러져 비명을 질러야 했다.
‘완력이 장난이 아니네.’
원시인이기 때문인 것 같다.
강하면 살지만 약하면 죽는, 약육강식의 법칙이 지배하는 이 원시시대에서 살아남은, 아니, 살아 있는 자들은 모두 강자라 봐야 했다.
내 판단으로는 현대인보다는 몇 배는 완력이 강한 것 같고 헌터로 따진다면 레벨 50 정도 수준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시인의 강함이 이 정도인지는 몰랐군.’
이 원시시대에 와서 여러 번 놀라고 있다.
“넌 그냥 죽었어야 했어!”
늑대발톱이 제대로 흥분한 것 같다.
“늑대발톱!”
제비꽃이 앙칼지게 늑대발톱에게 소리를 질렀다.
“모든 것이 다 내…….”
“그만해라!”
늑대발톱이 뭔가를 말하려다가 주술사 할머니가 그 말을 자르듯 말했다. 늑대발톱은 말꼬리를 흐리고 겁먹은 듯 아무 말도 없이 서 있는 여자를 한 번 보더니 나를 다시 노려봤다.
“물…… 물 떠 올게요.”
“물은 내가 떠 줄게.”
제비꽃이 내게 말했다.
“됐어요. 제가 떠 마실 수 있어요. 괜히 데려와서 저한테 왜 이러는 거예요?”
제비꽃에게 그렇게 말하고 늑대발톱을 노려봤다.
“저딴 새끼는 그냥 둬! 제비꽃!”
“아이잖아요.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라고요.”
“으음…….”
늑대발톱은 치미는 화를 참으려는 듯 길게 신음을 토해 냈다.
“물을 떠 올게요.”
늑대발톱의 눈치를 보며 움막 밖으로 나왔고, 눈에 멍이 들어 있는 원시인 하나와 눈이 마주쳤다. 원시인 남자는 눈이 마주치자마자 딴청을 부리다가 움막을 떠났다.
‘역시 쥐새끼를 보냈네.’
다른 것은 몰라도 이번 내 인생은 꽤 오래 눈치 게임으로 버텨야 할 것 같다.
주위를 살피며 강가에서 대나무 통에 물을 담고 울타리 옆에 있는 쑥을 땄다. 다행히 더는 나를 감시하는 쥐새끼는 없는 것 같다.
아마도 늑대발톱이 내 목을 조르는 것이 쥐새끼에게는 임팩트가 컸던 모양이다. 아마도 바로 달려가 고자질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 나 역시 돌아가서 붉은개에게 있었던 일을 사실대로 고자질하면 된다.
‘담뱃잎이 있군.’
큰바위는 아직 죽을 때가 아닌 모양이다.
쑥과 담뱃잎은 염증 치료와 피를 멈추게 하는 효능이 있다. 물론 이것으로 큰바위를 살릴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아직 정확한 상처 부위는 확인도 못 했으니까.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다 할 생각이다.
하여튼 나는 쑥과 담뱃잎을 따고는 밖에서 안 보이게 몰래 움막으로 다시 들어왔고 쑥대와 담뱃잎을 따 온 내 모습을 본 늑대발톱과 주술사 할머니는 당황한 눈빛을 보였다.
“그 풀들은 왜 따 온 거야?”
늑대발톱은 여전히 나를 못마땅하다는 눈빛으로 퉁명스럽게 말했다.
나 때문에 목숨을 건 큰바위가 불쌍해 저러는 것이라 반감은 들지 않았다.
“살리고 싶어서요.”
아주 작게 속삭이듯 말했다.
“뭐?”
늑대발톱이 되물었지만 나는 대답 대신에 죽은 듯 잠들어 있는 큰바위의 옆에 앉았다.
그리고 아무 말도 없이 대나무 통에 담긴 물을 퍼 피딱지가 더덕더덕 붙어 있는 얼굴을 닦았다.
“뭐 하려는 거야?”
늑대발톱이 소리를 질렀다. 아직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것 같다.
‘왜 저렇게 나한테 흥분하지?’
동굴 속에서도 그렇게 침착했던 늑대발톱인데 말이다.
“가만히 있어라.”
주술사 할머니가 늑대발톱에게 말했다.
“하늘님이 다시 보내신 아이다.”
주술사 할머니의 말에 그때 그 순간이 쇼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쇼였다면 이런 소리를 안 할 테니까.
“……예.”
그제야 늑대발톱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를 노려보다가 밖으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