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olithic Hunter RAW novel - Chapter 16
16화
“……흥, 큰바위는 너 때문에 저렇게 됐다는 것만 알아라.”
지금 난 기억도 없는 아이인데도 저러는 걸 보니 늑대발톱은 좀 뒤끝이 있는 것 같다.
“살리고 싶으냐?”
주술사 할머니가 내게 물었다.
“살릴 수 있다면요.”
“네가 잘해야 한다. 땅속에서일어서야.”
“예?”
“네가 하는 일에 따라 우리가 죽고 산다.”
주술사 할머니는 오래 산 만큼 지혜로웠다.
‘그 미묘한 분위기가 이거였군.’
저들의 세력이 밀리고 있다는 것을 이미 짐작하고 있다. 그래서 족장의 자리도 내놓은 것이리라.
“저는 그런 거 몰라요. 그냥 살리고 싶을 뿐이에요. 그리고 살리라고 했고요.”
“살리라고? 땅속에서일어서, 네가 살릴 수 있단 말이냐?”
주술사 할머니의 신탁은 쇼가 아닐지 몰라도 나는 쇼다.
“하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살려다오. 내 아들을 살려 다오. 가여운 큰바위를.”
주술사 할머니가 내게 간청하듯 말했고 나는 여자를 봤다.
“밖에 누가 오는지나 좀 보세요.”
“뭐?”
“아무도 몰라야 하는 일이잖아요.”
“알았어.”
여자는 대답하고 움막 밖으로 나가 자리를 잡고 앉더니 넓적한 돌멩이 위에 도토리를 갈기 시작했다.
‘살릴 수 있을까?’
모든 것은 운에 달려 있다.
이미 출혈량이 많고, 정신을 잃은 그가 다시 일어나리라는 보장도 없다.
하지만 나는 하겠다고 마음먹었고,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나는 삼베 조각에 물을 적시고는 조심스럽게 큰바위의 상처 부위를 닦았다. 상처 부위에 물기가 묻자 딱딱했던 피딱지가 흐물흐물해졌다.
‘다행스럽게 머리가 터져서 곪지는 않았다.’
외부 출혈이 없었다면 피가 두개골 내피에 뭉쳐져서 죽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두개골이 깨지기는 했지만 부어 있지 않기에 뇌에는 큰 충격이 없어 보였다.
내가 보기에는 그랬다.
‘원시인들이라 두개골이 단단해서 이런가?’
문득 호주 원주민이 떠올랐다. 호주 원주민들의 두개골은 다른 인종보다 단단하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나는 바로 쑥과 담뱃잎을 입으로 씹어 잘게 다졌다. 즙이 배어 나와 혀끝이 알싸해졌다.
그리고 쑥과 담뱃잎을 씹어서 무르게 한 후에 큰바위 상처 부위에 붙였다.
-응급처치 스킬 생성이 생성되었습니다.
내 치료에 또 하나의 스킬이 생성이 됐다. 물론 예상했던 일이다.
“이런 것은 누가 알려 준 거냐?”
내 행동을 살피던 주술사 할머니가 조용히 내게 물었다. 기초적인 약초 치료 방법인데 주술사지만 모르는 것 같다.
“하늘님요.”
말하기 곤란할 때는 앞으로 하늘님 핑계를 댈 참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하늘님이 다시 보낸 아이니까.
“으으으!”
담뱃잎의 독성 때문에 큰바위가 고통스러운 신음을 토해 내며 스르륵 눈을 떴고, 큰바위의 흐릿한 시선에 내가 보였는지 팔을 뻗어 내 손을 꼭 잡았다.
놀란 것 같다. 그러면서도 내가 살아 있다는 것에 안도하는 것 같기도 했다.
이것이 아버지의 마음인가?
난생처음 겪어 보는 낯선 감정이었다.
“아, 아들아……!”
팔이 아플 정도의 손아귀 힘이었다.
“내, 내가 너를 지…… 지킨다.”
죽어 가고 있는 상태에서도, 분명 정신이 혼미한 상황일 테지만 큰바위는 나를 지키겠다고 말했다. 나도 모르게 코끝이 시큰해졌지만 내색하면 안 된다.
‘아버지로 모셔야겠네.’
이 정도의 마음이라면 아버지가 분명했다.
“……아파요.”
큰바위의 손아귀 힘 때문에 인상을 찡그릴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큰바위는 스르륵 다시 정신을 잃었다.
“이 풀이 어떤 풀인지 아시겠죠?”
주술사 할머니에게 말했다.
“울타리 옆에 있는 풀들이구나.”
“큰바위가 죽지 않는다면 하루에 몇 번이라도 풀이 마르면 다시 발라 주세요.”
“이러면 살 수 있냐?”
“저야 모르죠.”
내 말에 주술사 할머니가 인상을 찡그렸다.
“저를 위해서 살고 싶다면 살아나야겠죠.”
“……너를 위해서?”
말실수가 분명했다. 그리고 오래 산 만큼 지혜로울 주술사 할머니이니 내 속내를 짐작한 것 같은 눈빛을 보였다. 그리고 나는 갈은 흑요석 돌칼을 이용해 삼베를 길게 찢어 큰바위의 머리를 감쌌다.
‘붕대 감기 스킬이 생성이 되겠지.’
응급처치 스킬이 생성이 되면 자동으로 붕대 감기 스킬이 생성이 된다.
-붕대 감기 스킬 생성이 생성되었습니다.
-붕대 감기 스킬에 의해 환자의 생명력이 1% 상승했습니다.
메시지가 떴고, 바로 어이가 없어졌다.
‘마력이 턱없이 부족해서 그래.’
하늘을 가리듯 울창하게 자란 원시림이 있는 대자연이지만 이곳에 흩어져 있는 마력의 양은 내가 건너온 어비스와는 다르게 형편없는 것 같다.
보통 붕대 감기 스킬 1성이면 5퍼센트 정도 생명력이 상승하는데, 1퍼센트라니. 속된 말로 회칼에 대동맥이 잘렸는데 그냥 반창고 하나 붙여 준 거나 다름이 없을 것 같다.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다는 좋은 거니까.’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안 하는 것보다 하는 것이 좋다.
겨우 붕대 감기 스킬의 효과가 생명력 1퍼센트를 상승시키는 것밖에는 안 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죽어 가는 자에게는 1퍼센트의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도 큰 힘이 되는 일이 분명했다.
‘젠장! 마력이 0이네…….’
눈앞에 떠 있는 홀로그램을 보니 마력 수치가 0으로 변해 있었다. 다른 수치들과는 다르게 마력 수치는 사용할 때마다 줄어들었다가 다시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자연적으로 채워진다.
붕대 감기 스킬을 한 번 사용했는데 마력이 바닥이 났다. 대자연에 흩어져 있는 마력이 희박하니 마력 10을 채우려고 해도 오래 걸릴 것 같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치료는 다 한 것이다.
‘내가 매일 치료를 해 주면…….’
큰바위가 살아날 확률이 더 높아질 거다. 매일매일 생명력이 1퍼센트씩 올라가니까. 하지만 나는 이곳에 또 올 수는 없을 것이다. 내가 다시 이곳에 온다면 붉은개는 반드시 나를 의심할 테니까.
“그대로 하마.”
“잘 먹이시고요.”
“알았다.”
그렇게 내가 할 수 있는 치료는 끝났다. 이 정도가 치료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이곳이 원시시대이기 때문이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큰바위가 살고 죽는 것은 이제 큰바위의 살겠다는 의지와 운명에 달렸다.
“아시겠지만 제가 이랬다는 것은 비밀입니다.”
내가 큰바위를 치료해 줬다는 것을 붉은개가 안다면 나를 의심하게 될 것이고 그럼 내게 이로울 것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오냐.”
“땅속에서일어서야!”
그때 늑대발톱이 미안한 눈빛으로 나를 불렀다.
“왜요?”
“……목은 괜찮냐?”
이제야 미안한 모양이다. 그리고 내게 사과를 하는 늑대발톱을 제비꽃이 흘겨보고 보고 있었다.
“안 괜찮아야죠.”
“뭐?”
늑대발톱은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 되물었다.
“숨어서 다 보고 갔으니까요.”
“기…… 기억이 돌아온 거냐?”
“아니요, 아무 기억도 안 나요. 하지만 큰바위가 나를 살리려다가 이렇게 됐다는 것과 붉은개가 나를 죽이려고 했다는 것만 기억하면 되는 거잖아요.”
내 말에 늑대발톱이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다시 내 손으로 내 목을 할퀴어서 더 선명하게 상처를 냈다.
“뭐, 뭐 하는 거냐?”
주술사 할머니가 놀라 내 손을 잡으며 물었다.
“붉은개의 부하가 늑대발톱이 제 목을 조르는 것을 보고 갔어요.”
내 말에 늑대발톱도 주술사 할머니도 멍한 표정을 지었다.
‘아군도 속였어야 했는데…….’
큰바위를 치료까지 해 주고 나니 내 속마음을 속일 수가 없었다.